윤정원 개인전
먹빛의 흔적 속에 내재되어 있는 생명성
윤정원은 수묵화의 전통을 존중하며 이를 바탕으로 추상적인 작품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수묵을 중요한 표현으로 하는 작품은 대개 사물의 형태를 보이는 그대로 그려내는 것 보다 먹에 의한
사의(寫意)적인 표현에 무게를 두면서 철학과 조형적 방법을 모색하는 편이다.
글 | 오세권 (미술평론가, 대진대학교 교수)
[2010. 6. 9 - 6. 22 백운갤러리]
[백운갤러리]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32-5 백운빌딩 5F TEL.02-3018-2355
한국화 분야가 많은 변화를 겪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한국화 작품을 제작하는데 있어 서양화가들이 사용하는 캔버스와 서양 채색재료를 사용할 뿐 아니라 설치, 영상, 사진 등 다양한 장르와 결합해 가고 있는 것이다.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할 다른 쟝르와의 융합적인 표현 뿐 만 아니라, 소재와 주제의 선택에 있어서도 사회현실을 바탕으로 한 것이 많이 나타나 있다. 이와 같은 변화로 인하여 다소 ‘한국화’의 정체성이 모호해지는 것을 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한국화의 새로운 실험성과 도전으로 보여 지기도 한다. 그러한 가운데 한국화의 전통성을 지켜가면서 작품세계를 변화시켜 가는 작가들도 볼 수 있다. 수묵이나 채색을 사용하고 바탕재료도 한지를 사용하면서 실험적인 작품을 보이는 작가들인데 윤정원도 전통적인 재료와 표현방법을 바탕으로 하여 실험적 작품세계를 형성하고 있는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기운129X96cm

기운 67X74.5cm
윤정원은 수묵화의 전통을 존중하며 이를 바탕으로 추상적인 작품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수묵을 중요한 표현으로 하는 작품은 대개 사물의 형태를 보이는 그대로 그려내는 것 보다 먹에 의한 사의(寫意)적인 표현에 무게를 두면서 철학과 조형적 방법을 모색하는 편이다. 즉 수묵을 한국화 표현의 본질적 아름다움과 정신성으로 상정하고 동양미와 사유구조를 반영시키는 표현방법인 것이다. 윤정원도 수묵화의 정신성과 동양미를 존중하며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윤정원의 작품세계에서 중요한 원칙 가운데 하나는 수묵의 조화이다. 농묵. 담묵에 의해 번지고 변화하는 수묵의 표현 그리고 그 위에 가해진 자연스런 드로잉이 화면에서 조형적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특히 수묵의 농담에 의한 묵흔과 파편들의 조화, 묵흔과 여백에 의한 화면의 경영 그리고 거기에 더해진 한지의 오브제들이 서로 어울려 조화를 이루는 작품세계를 추구하는 것이다.

기운129X96cm

기운 95X129cm
이와 같은 수묵 추상의 표현에는 우연적인 필법에 의한 자유로운 표현도 있지만 의도적이고 필연적인 화면 구성의 경영이 작용하고 있다. 필묵의 전통적인 법도를 지키면서 자연스러운 추상의 표현을 통하여 조화로운 화면을 생성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머릿속에서 형성된 이성적 체계와 가슴속 깊은 곳에 담아 두었던 자유의지가 만나면서 자유와 통제의 긴장된 관계가 화면에서 정리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즉 수묵의 자연스러운 효과나 필치가 도입되지만 자연스러운 필치 속에서도 의도적인 질서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한 가운데 희미하게 자연의 형상이 드러나는데 여기서 묵흔들의 긴장된 조화의 관계를 느낄 수 있다. 필치에 의한 묵흔 속에는 먹의 번짐과 의도적인 필선에 의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산수, 풍경, 꽃, 물속, 물고기,... 등 다양한 형태가 희미하게 드러나고 있다. 부분적으로 한지를 자연스럽게 찢거나 구겨서 만들어낸 한지 오브제의 효과도 볼 수 있는데 먹의 변화와 오브제가 하나 되어 다양한 형태를 상상하게 만든다. 특히 자연생명체들의 다양한 형태들을 상상할 수 있다.

비상 혼합재료

비상
윤정원은 수묵표현을 바탕으로 하면서 ‘생명성’의 표현을 중요시 하고 있다. 이 생명성은 동양미술 표현의 중요한 가치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 작품에서 내재되어 있는 ‘생명체에 대한 사랑’을 말한다. 생명체에 대한 사랑은 직접적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간접적인 은유로서 나타나기도 한다. 윤정원 작품에서 나타나는 생명체에 대한 사랑은 특히 자연에 대한 사랑인데 그의 작품세계를 형성하는 근원적 정신이 자연의 생명 사랑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집에서 가꾸는 화초의 성장과 변화에서 나타나는 생명의 순환성을 지켜 보면서 가진 따뜻한 마음과 정이 작품에서 생명사랑으로 변화하여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이상과 같은 윤정원 작품세계는 전체적으로 보아 농묵과 담묵에 의한 필흔을 바탕으로 생명성을 내재화 시켜낸 추상화이다. 말하자면 수묵의 용필 속에 자연이라는 의미가 내재화 되어 그 흔적들이 희미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이성적으로 명확하게 체계화된 것이 아니라 희미하게 잠재해 있는 유년기의 기억 같은 자연의 형상들이 풀어져 나오면서 실루엣 같이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윤정원이 표현한 수묵의 용필에서 나타나는 흔적들은 자연스러운 먹빛의 변화와 함께 응축된 자연의 형상들을 암시하고 있으며, 살아서 숨쉬고 있는 생명체들에 대한 따뜻한 생명사랑의 감흥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자연의 형상들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먹의 흔적 속에 잠재해 있다. 관람자들 개인의 해석에 따라 다양한 자연의 생명체들이 연상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