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중에도 수행자가 있다 / 지운스님
브라함마 라는 스님이 호주에 선원을 열었을 때의 일화입니다.
스님은 한달에 한 번 교도소에 가서 법문을 하곤 하셨습니다
하루는 법문이 끝나고 재소자와 일대일로 상담을 하는
시간을 갖었습니다.
한 재소자가 자신의 체험담을 얘기 하였습니다.
육식을 끊고 채식주의자가 된 사연을...
그 교도소 안에는 동물을 죽이는 날이 있었답니다.
재소자들의 식량으로 쓰기 위해 소.양. 돼지등을 키우고는
그 동물을 잡는 것도 재소자가 하였답니다.
그 역할을 하는 사람은 재소자 중에서도 가장 힘세고
악랄한 이가 맡았습니다.
그는 동물을 죽이면 스트레스도 풀리고 기분도 짜릿해
그 일을 도맡아 했다고 합니다.
전자총으로 쏴 죽이곤 했는데,
대부분의 짐승들은 죽임을 당하는 통로를 들어오면
자신이 죽을 것을 알고 몸부림을 친답니다.
그 몸부림치는 짐승을 총으로 쏴죽이는 쾌감이 대단했답니다.
그런 어느날 소 한마리가 그 통로로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그 소는 다른 짐승들하고는 달랐습니다.
천천히, 요동도 치지 않고,
전혀 두려워 하는 기색도 없이 유유하게 걸어왔습니다.
그러곤 여유로운 자세로 앉아 편안한 눈으로 총든 사내를
바라보았습니다.
이윽고 소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그 눈물은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는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눈물을 흘리는 소의 표정은 죽이는 자에 대한 연민이
가득했습니다.
살생을 업으로 삼고 사는자에 대한 한없는 측은지심의
표정이었습니다.
그는 순간 깜짝 놀라 총을 떨어뜨렸습니다.
그 이후 그는 더이상 짐승을 죽이는 일을 할 수가 없었을 뿐더러
육식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소는 수행자였습니다.
사람만이 수행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소는 한 타락한 영혼을 정화시켰으며
큰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이렇게 자비심은 어떤 살인자도 감화시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자비는 가장 수승한 마음의 언어이며
모든 생명체에 통하는 언어입니다.
우리가 수행을 하는 것은 자비심을 기르는 것입니다.
아무리 높은 도를 얻었다해도 자비심이 없는 수행자라면
그는 깨달은 자가 아닙니다.
동물이라고 감정도 마음도 없다고
한때는 생각했습니다만 요즘 유일하게
티비를 보는 프로그램중에 동물농장을 보면서
참으로 많은 설법을 듣습니다
아래는 해탈고양이를 보내드립니다
SBS-TV,(동물농장)에서 소개한 "불심 깊은 고양이 -해탈이...재 감상..~~~
첫댓글 저도 이 방송 보았습니다.
신기한 고양이였습니다. 나무관세음보살()()()
저도 이방송보고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말 못하는 동물들도 불심이 있다는 것을.....
그 고양이는 내생에 수행자가 될것이라고 발원합니다.....()()()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해탈한 고양이 보살이네요...()()()...
슬프다....어찌말못하는 짐승도 저렇듯 수행하는데......어찌 깨우침이 아직도 멀었는지
생각이 행동을 따르지 못하네(내탓이요 내탓이요.내탓이요)...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미래생에는 꼭 어진사람으로 환생하기를..._()_()_()_..(연지행(경성거사님 처))
소의 대목를 읽으니 마음이 아파 눈물이 저절로 납니다. 예전에 이런 고양이를 수덕사에서 봤습니다. 예불시간, 공양시간을 마치 스님들이 하는것과 같이 하고 꼭 좌복에만 앉고 선방에 포행할때도 마당에 다리운동도 같이 하고 시간을 어찌나 잘 지키던지 스님들 사이에선 유명한 고양이가 있었지요. 그것도 느낌이 꼭 스님같아 스님의 환생인가 했을정도였으니까요. 가이름도 해탈이였는데.. 짐승이라고 함부로 하면 안됩니다. 저도 삽살이와 함께 살고 있는데, 제가 많이 아파 얼굴을 쓰다듬으며 내가 너무아파서어떡하냐. 너랑 오랫도록 살고 싶은데 하며 눈물을 보였더니 ,어. 이 삽살이가 서러운 눈을 하고선 눈물을 줄줄 흘리는거였습니다
항상 야한테 축원을 합니다. 이 생에선 비록 니가 축생의 몸을 받아 매인 몸 되었으나, 부디 염불 많이 듣고 절 지킨 공덕으로 모든 업장을 다 녹이고, 건강하게 천수를 다하고, 다음 생엔 꼭 스님이 되어 공부를 하여 꼭 성불하거라. 하구요. 가가 낮잠을 잘때 니가 그렇게 잠만 자서 어떡하곘냐? 공부를 해야잖나?하는데 아마 부처님이 저를 보실때, 제가 가를 볼때 느끼는것을 느끼실테죠. 나는 이천 오백년전에 부처가 되었는데 너는 왜 그러구 있냐? 가가 자는것을 보면서 저는 이런 생각을 또 합니다. 우리 모두 동성불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