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이태석 요한 신부 선종 : 2010년 1월 14일 오전 5시 35분 빈소 : 영등포구 신길6동 살레시오 관구관 4층 장례미사 : 1월 16일(토) 08시30분 살레시오 관구관 (☎ 02-828-3522) 장지 : 전남 담양 천주교공동묘역 살레시오 성직자 묘역
이태석 요한 신부가 14일 새벽 5시 35분 영면에 들었다.
이 신부는 1987년 인제의대를 졸업하고, 1990년 군 복무를 마친 후 뒤늦게 광주 살레시오 신학대에 입학, 성직자의 길을 걸었다. 2001년 사제 서품을 받자 마자 아프리카 수단 남부지역 톤즈마을에 둥지를 튼 이 신부는 의료와 교육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몸소 실천했다.
수단은 종교와 인종 갈등으로 20여년 넘게 내전이 계속되면서 경제 기반이 대부분 붕괴, 기아에 허덕여야 하는 불모지. 절망과 고통의 땅에서 묵묵히 땀 흘리는 이 신부의 모습이 2003년 KBS 한민족 리포트를 통해 알려지면서 Daum에 후원 카페(수단이태석신부님)와 장학회가 결성됐다. 이들의 후원금은 돈보스코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개교하는 밑거름이 됐다. 톤즈는 8년 동안 이 신부가 뿌린 사랑의 씨앗들이 하나씩 결실을 맺으며 희망을 꿈꾸는 땅으로 탈바꿈 하고 있다.
하지만 모처럼 휴가를 얻어 한국을 찾은 길에 받은 건강검진에서 이 신부는 말기암 판정을 받았다.
이 신부는 지난해 12월 17일 대한의사협회와 한미약품이 공동 수여하는 제 2회 '자랑스런의사상'을 공동수상했다. 시상식에서 이 신부는 "백신을 개발한 것도 아니고 고도의 의술로 불치병을 고친 것도 아닌 내세울 것 없는 조그만한 의술로 (아프리카에서) 몇 년 살았을 뿐인데 과분한 성원을 보내줘 감사하다"며 웃었다. 시상식 소감은 고인의 마지막 고별사가 됐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 카페에 개설된 수단이태석신부님(http://cafe.daum.net/WithLeeTaeSuk/)에는 고 이태석 신부를 추모하는 회원들의 애도가 줄을 잇고 있다.
빈소는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4491번지 돈보스코살레시오 수도회 관구관 4층이며, 장례미사는 16일 (토) 오전 8시 30분 살레시오수도회 관구관 4층 성당에서 열린다. 장지는 전남 담양 살레시오성직자 묘역. 문의(☎02-828-3522).
▲1962년 부산 출생 ▲1987년 인제의대 졸업 ▲1991년 살레시오회 입회 ▲1992년 광주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입학 ▲1994년 1월 첫 서원 ▲1997년 로마 유학(교황청 설립 살레시오대학) ▲2000년 4월 종신서원(로마) ▲2000년 부제 서품(로마) ▲2001년 사제 서품(서울) ▲2001년 11월 아프리카 수단 남부 톤즈마을에서 의료·교육 봉사 시작 ▲2005년 제7회 인제인성대상 수상 ▲2008년 11월 한국 입국 후 대장암 3기 판정 ▲2009년 12월 17일 제 2회 한미 자랑스런 의사상 수상.
아프리카 남수단의 작은 예수님, 이태석 신부님이 하느님 품으로 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슬픔을 가누며 함께 기도드리자고 이 글을 씁니다. 이 신부님에 대해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신부님을 소개해 드리며, 신부님이 일하시던 나라 수단을 위해서도 기도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이 신부님은 살레시오회 신부님이고, 의사 신부님으로도 유명하지요. 이 신부님은 살레시오회에 입회하기 전에 먼저 의사가 되었던 분입니다. 신부님은 어린 시절부터 사제가 되기를 바랐지만, 성직자 혹은 수도자로 형과 누나를 보내며 어머니가 마음 아파하는 모습이 마음에 걸려 의대에 진학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결국 군의관 생활을 마친 후인 91년에 살레시오 수도회에 입회했습니다. 공부는 로마 살레시오 대학에서 하였습니다. 우연한 계기로, 아프리카 선교를 꿈꾸던 이 신부님은 로마에서 30여 년간 남수단에서 활동해온 제임스 신부를 만났고, 그가 이 신부님에게 남수단으로 선교를 갈 것을 권했고, 결국 남수단으로 함께 가서 선교하게 됩니다.
왜 수단이라고 하지 않고 남수단이라고 하는가에 대해 의아해 하실 분이 계실 것입니다. 수단에 대해 조금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수단은 세계에서 가장 열악한 환경을 지닌 오지 중의 오지라고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수단은 벌써 23년째 내전중입니다. 북쪽의 아랍계 정권이 수단의 2/3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수단의 원주민들은 제 고향에서 쫓겨나 척박한 땅인 남쪽으로 이주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거기 척박해 보이던 남쪽 땅에 석유가 매장된 것을 알게 되고, 북수단은 원주민을 남수단에서마저 내쫓으려 했습니다. 북쪽의 아랍계 정권에 맞서 남쪽 주민들이 대항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무장을 하여, 이른바, ‘반군’이 된 것입니다. 미국은 남수단에 매장돼 있는 석유를 확보하기 위해, 북수단 아랍계 정권을 지원했습니다. 남수단의 반군을 쉽게 이길 것으로 기대했지만, 저항이 만만치 않았고, 지금까지 내전이 장기화되어 벌써 23년 째 계속되는 것입니다. 북수단은 남수단 사람들을 굶어 죽게 하기 위해 남부 지역을 완전히 봉쇄했기 때문에, 남쪽 사람들은 북쪽에서 식품이나 생필품을 하나도 들여올 수 없다고 합니다. 모든 물자는 남쪽으로 2800km 떨어진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육로로만 들여올 수 있답니다. 내전은 장기화되고, 세계 여론도 나빠지자, 미국은 최근 남북 수단의 평화회담을 중재하겠다고 나섰지만, 병 주고 약 주는 셈이지요. 내전은 3년째 소강상태라고 합니다. 그런데 북수단 정권은 평화회담을 진행하면서도 계속해서 살육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3300만의 인구 가운데 200만 여명의 남수단 원주민이 죽었고, 300만 여명이 제 고향에서 쫓겨났고, 20여만 명이 국경을 넘어 유랑민이 된 곳이 바로 남수단입니다.
이 신부님께서는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곳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 작은 예수님이 되어 8년 동안 활동하신 것입니다. 처음 그곳에 갔던 이 신부님께서 그들을 보고 이렇게 생각하셨답니다. “가장 보잘 것 없는 이에게 하는 것이 나에게 하는 것이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바로 그들을 두고 하는 말이었구나. 사람이 저렇게도 가난할 수 있구나, 저렇게 죽음 가까이서도 살 수 있구나.….” 그곳은 45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의 나라이고, 그곳 원주민들은 잘 해야 하루에 수수 죽 1끼로 끼니를 때운다고 합니다. 전쟁 때문에 여기저기 깔린 지뢰에 팔다리가 잘린 사람들이 부지기수이고, 간단한 열병이나 맹장염에도 아이들이 죽어가는 그곳에 신부님께서는 신부로서보다도 의사로서 활동하시기 위해 자원하신 것입니다. 그들을 보면서 이 신부님께서 느끼셨던 연민은 예수님께서 병들고 굶주린 사람들을 보시며 느낀 바로 같은 연민이었습니다. “아무런 잘못도 없는 저들이 왜 저토록 고통스럽게 살아야 하는 건지. 영양 상태만 좋으면 쉽게 이길 수 있는 말라리아나 홍역으로 죽어가고, 배앓이로 죽고, 지뢰를 밟아 죽고, 총 맞아 비명횡사합니다. 아이들이 열병에 걸려 신음하면 부모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마당에 물을 뿌려놓고 열이 내리길 기다리는 것뿐입니다.”
이 신부님은 그곳에서 활동할 때, 하루 200명 환자 보살펴야 했지만,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고, 밴드도 운영하였지요. 신부님은 그들에게 해주는 것보다 그들에게 받는 행복이 크다고 하셨습니다, 이 신부님이 활동한 곳은 남수단의 톤즈라는 곳입니다. 이 신부님은 진료소 이외에도 1주일에 한 번씩은 여러 오지마을을 찾아다니며 이동진료를 하였습니다. 그가 찾아가는 날은 마을의 모든 주민이 모이는 날이 되었다고 합니다. 아픈 사람들만 모이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정이 그리워 모이는 것이지요. 아이들이 가장 많이 모이고, 신부님을 가장 좋아했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신부님이 오시면 ‘쫄리, 쫄리’라고 연호하며 몰려들었습니다. 세례명 요한(존)에 성 이(리)씨를 합쳐 그들의 발음으로 부른 애칭이라고 합니다. 이 신부님께서는 그곳 아이들의 우상이기 했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신부님께서는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고 밴드를 운영하시며, 그들에게 삶의 기쁨을 나누고자 하셨습니다. 톤즈의 아이들은 낮 2-3시면 어김없이 신부님의 진료소로 몰려와서, 춤추고 노래하며 논다고 합니다. 이름도 없지만 피리 오르간 드럼 베이스 기타 등 갖출 것은 다 갖춘 밴드도 있습니다. 이 신부님은 악기와 노래를 가르칠 뿐만 아니라 그 아이들이 부를 노래를 만드는 일을 하셨습니다. 이 신부님이 지은 성가 ‘꼼보니’는 이제 톤즈의 시민가요가 되었다고 합니다. “즐거운 노래, 찬미의 노래를 다함께 불러요. 꼼보니는 평화의 사도, 꼼보니는 아프리카의 아버지, 고통을 즐거움으로 승화시켰네.….” 2-3백 명이 넘는 아이들이 함께 노래하고 춤을 추는 모습은, 전쟁터 속에서도 인간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참으로 인간적인 것이 무엇이며, 인간에게 행복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려는 신부님의 바람에 하느님께서 어떻게 응답하시는지를 보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평화회담에 맞춰 ‘평화를 이루려면 다함께 손을 잡아야 한다. 는 내용의 ‘너에게 평화를 주리라’도 작곡했다고 합니다. 이 신부님께서는 어느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나환자 병동에 레지나라는 환자가 있습니다. 손가락 발가락이 다 떨어져 나간 말기환자입니다. 가진 거라곤 저주받은 병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는 항상 행복합니다. 작은 것에 고마워하고, 항상 즐겁게 삽니다. 다른 환자들과 잘 어울리고, 그들을 보살피려 합니다. 레지나에게서 나는 행복이 무엇인지를 배웁니다. 내가 그들에게 해주는 것보다 그들이 내게 돌려주는 행복과 가르침이 더 큽니다.”
병상에서도 그곳 남수단의 사람들을 생각하며 남수단의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셨을 신부님께서 오늘 하느님의 품으로 가신 것입니다. 이제 그들을 위한 기도는 우리의 몫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 이태석 신부님을 당신 품에 받아주소서! 주님, 이태석 신부님께서 온몸으로 사랑을 바친 남수단의 원주민들을 돌보소서!
- 류해욱(예수회) 신부 / 카페 홍천 영혼의 쉼터에서
한국의 슈바이처’ 이태석 신부
이태석 신부 후원회 창립에 목사·스님·교무 참석 '사랑 실천' 종교계 뭉쳤다 이 신부는 내전과 가난으로 황폐해진 남수단 톤즈에서 신부로 의사로 교사로 희망을 꽃피우고 있는 이 신부의 소식이 알려지면서 한인 가톨릭계는 이 신부를 지원하기 위해 '아프리카 희망 나눔 후원회'를 조직했다. 후원회는 마침내 지난달 17일 토렌스에 있는 성프란치스코한인천주교회에서 창립총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는 개신교의 양현승 목사와 불교의 현철스님 원불교의 정안 교무가 참석했다. 후원회 회장이며 이태석 신부의 친형인 이태영 신부는 이를 "좋은 일들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이를 실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종교가 평화를 지향하지만 종교 때문에 다투기도 하는 현실도 있으니까 종교인들이 앞장서서 평화를 이룩하는데 솔선수범하는 것입니다. 단체가 커져서 도움을 요청하면 함께 할 수 있는 분들은 (함께) 할 것입니다." 미주종교평화협의회 상임대표인 양 목사는 창립총회 축사에서 "희망은 부족한 가운데서도 나눌 수 있어서 좋습니다. 비빌 언덕이 되는 희망은 나눌수록 좋습니다. 종교는 사랑입니다. 사랑은 실천입니다. 참여합니다"라고 밝혔다. 양 목사는 "협의회 차원에서 참가를 결의했고 후원회에 헌금도 했다"고 말했다. 양 목사는 또 이태석 신부 후원카페에도 글을 남겨 종교를 뛰어넘는 지지와 참가를 표시했다. 양 목사는 "아프리카에 '희망봉'이 있듯이 여기 토렌스에 '희망봉'이 오늘 생기게 된다"며 "(후원회가) 아프리카의 수단 어린이들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희망을 얻은 일"이라고 말했다. 아이디 이화는 "목사님 스님 교무님 신부님과 함께 한 총회는 주님 보시기에도 참으로 아름다운 나눔의 장이였으리라 믿습니다"라고 답글을 올렸다. 이인석 후원회 홍보담당은 "이 신부님의 활동을 담은 책과 DVD를 본 개신교 신자분이 너무 훌륭한 일을 한다며 선뜻 1년치 후원금을 내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 홍보담당에 따르면 창립총회에는 모두 120여명이 참가했고 이중 80%가 새 회원이었다. 후원회는 우선 회원을 늘리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영어 브로셔와 영어 자막 DVD를 제작해 2세들에게도 홍보하게 된다. 한국에서 암투병 중인 이태석 신부도 창립총회에 축하와 감사의 편지를 보냈다.
제7회 인제인성대상 특별상을 수상한 이태석 신부는 인제대학교 의대 3회 졸업생이다. 의과대 81학번으로 인턴과정을 수료 후, 신부가 되어 저 멀리 내전과 기아로 고통 받는 수단에서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이태석 신부.
2003년 12월 29일 KBS 1TV 한민족 리포트 아프리카에서 찾은 행복 - 수단 이태석신부
너무나 훌륭한 사랑의 삶을 살아가고 계신 신부님
살레시오회 이태석 신부님은 의과대학 졸업 후 사제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늦은 나이에 다시 신학 대학에 가셔서 늦깍이 신부님이 되신 분이십니다.
'가난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라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시고 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땅
아프리카 수단으로 들어가셔서 의료 선교 중이십니다.
아프리카 대부분의 국가가 그러하겠지만 그중에서도 수단은 20년이 넘는
내전으로 땅도 사람들도 너무 피폐해져 있는 상태이고 55도를 넘나드는
더위 속에서 가뭄까지 들어 농사도 제대로 되지 않아
헐벗음이 극에 달해 있는 곳입니다
처음에 이곳을 가보시고 너무나 비참한 가난에 큰 충격을 받으신 신부님은
그곳에서 '목마르다!'하신 예수님의 음성을 들으시고
곧바로 선교지를 수단으로 정하신후 들어가 선교 중이십니다.
의사이시기도 하신 신부님은 하루에 300여명이 환자들을
혼자 돌보고 계시며 결핵환자,
나환자들 에게 특별한 애정을 갖고 치료해주고 계십니다.
어린이들의 교육에도 심혈을 기울이셔서 교육사업도 열정적으로 하고 계십니다.
또한 음악적 천재성을 가지고 계신 분이셔서 그곳 아이들에게 음악으로
마음의 상처들을 치유해주시며 음악선교를 하고 계시기도 합니다.
너무나 훌륭한 삶을 살고 계셔서 일일이 열거하지도 못하겠습니다.
때론 한 끼 식사 값이 될 수도 있는 그 돈이 수단 어린이들의 일 년 양식이 되고
일 년을 교육 시킬 수 있는 돈이 되기도 한답니다.
하느님께서 크게 기뻐하실 봉헌임을 자신 있게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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