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기보다 사랑하게 하소서
신이여, 저를 절망케 해 주소서
당신에게가 아니라 제 자신에게 절망하게 하소서.
미친듯이 모든 슬픔을 맛보게 하시고
온갖 고뇌의 불꽃을 핥게 하소서.
모든 치욕을 맛보게 하소서.
제 자신을 지탱하기를 돕지 마시고
제가 뻗어 나가는 것을 돕지 마소서.
당신이 그렇게 하셨다는 것을 저의 온 자아가 이지러질때
그때에 저에게 가르쳐 주소서.
기꺼이 멸망하고 기꺼이 죽어 가고 싶은 것은
오직 당신 속에서만 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기도". 헤르만 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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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도가 어떻습니까?
우리는 이렇게 철두철미하게 자신을 내던지는 기도를 할 수 있습니까?
이것은 오직 하느님으로만 가득 차고 싶은 영혼이 자아를 비우고 버리게 해 달라는 기도 입니다. 비참함과 절망의 구렁에서만, 또 죽음으로써만, 하느님을 깨닫고, 믿고 살 수 있을것 같다는 생각, 또는 확신에서 바친기도 같아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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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기도를 시 로서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좋아할 수 있을까?
현실에서 절망했을 때 그 고통을 우리는 이겨 낼 수 있는가, 슬픔 고뇌 ,치욕 을 감당해 낼수 있는가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 끝에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내가 주체로서 무엇을 하는 것, 즉 내가 나를 비우고, 내가 사랑하고, 내가 봉사하고,...
그렇게 내가 원해서, 원하는대로 한다면, 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그런데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여기서 '나' 라는 것은 언제나 그냥 있습니다.
그대로 유지되고 있어요. 나는 상처받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실은 '나'를 비우는 것은 아니지요.' 나' 를 비우는 것은 나의 뜻을 거슬러서 내가 원하지 않을 때 일어나는 일, 싫은 사람을 피곤한 시간에 맞이하고, 받아들이고, 사랑하고, 용서 하는것, 더욱이 어둠 속에 내던져진 채, 위로도 빛도 없는 가운데서 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순교와 같습니다. "내"가 상처받고 죽임을 당하지 않고서는 "나"를 비울 수 없습니다. 이렇게 까지 자신을 비우고 내던질 수 있는 것, 이것이 참사랑입니다.
이런 마음이 참으로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길을 가셨습니다. 절망, 슬픔, 고뇌, 치욕을 다 겪으셨고, 그러면서도 끝까지 " 아버지 제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루가23,46)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나보고 새해에는 더 밝은 빛이되어 달라고 합니다.
내가 어떻게 빛이 될 수 있겠습니까? 어둠만 더해 줄 뿐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투명체'가 될 때에만 빛이 될 수 있습니다. 즉 빛이신 그리스도의 투명체가 될 때에 가능합니다. 그래서 새해에는 무슨 소망을 가졌느냐 하면, 오직 하나의 소망으로, 뮤지컬 '가스펠' 의 노래 '데이 바이 데이' 에 나오는 말처럼
"주여, 날로 더욱 당신을 잘 알고, 당신을 더 열절히 사랑하며, 당신을 더욱 가까이 따르게 하소서." 하는 염원만을 지니고 살려고 합니다.
~ 포클라레 젠 대회, 1982.1.30. 김수환 추기경님의 사랑받기보다 사랑하게 하소서 입니다. ~
첫댓글 감명받고 콧물 훌쩍이며 돌아서는 아침!
김수환 추기경님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많은 이들의 지표가 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