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숯의 놀라운 효능을 목격했다. 수많은 미세한 구멍으로 몸 안의 나쁜 균을 빨아들이고 나가는 숯은, 배 아픈 손자를 위해 옛날 할머니들이 아궁이에서 긁어모았던 바로 그 시커먼 숯이다. 숯의 효능을 믿어 의심치 않는 나는, 오늘 저녁 술자리에도 숯가루 봉지를 챙겨나간다.
이숙희 할머니는 매일 숯가루를 마셔 말기 암으로부터 해방됐다.
“여보 나 좀 살려줘.” 밤늦게 아내에게서 걸려온 전화…. 그 목소리는 나지막하고 아주 느렸으며 약간의 떨림까지 감지되는, 그런 목소리였다. 이제 나이도 있고 신장이 약한 데다, 최근에는 당뇨까지 가세한 형편이라 가슴이 철렁했다.
이럴 때 나뿐 아니라 모든 ‘방송쟁이’는 최악의 사태까지 떠올리며 이미 잡혀 있는 방송 날짜와 내가 소비할 수 있는 시간을 순간적으로 계산하게 된다. 내 작업실에서 집까지는 빨리 달려간다 해도 40분 거리. 더구나 나는 수시로 벽시계를 쳐다보면서 편집에 쫓기고 있었다. 아무리 급해도 사연은 들어봐야 할 것 아닌가.
“개 주사 놓다가…”
산 속에서 혼자 지내는 날이 많다 보니 아내는 개를 열 마리 넘게 키우고 있었다. 워낙 개를 좋아하던 터라 시골 생활을 빌미로 개 식구를 많이 늘린 것인데, 그 때문에 사료비로 나가는 돈이 만만치 않았다. 또 철 따라 놓아주어야 하는 주사비용도 만만찮았다.
그 나름으로는 동물병원에 들어가는 돈이라도 아낄 양으로 직접 주사를 놓곤 했는데, 이날 따라 한 놈이 아내의 왼쪽 손을 꽉 물어버렸다. 약이나 바르면 괜찮겠거니 했는데 웬걸, 손 전체가 마비되면서 왼쪽 어깻죽지까지 통증이 번져나가 죽게 생겼으니 손 좀 봐달라는 얘기였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 편집실을 떠날 수 없었던 나는 카메라맨에게 부탁해 응급조치를 취하게 했다. 그것은 병원 응급실로 데려가라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믿는 자연요법 중 한 가지를 아내에게 적용시키는, 의사들이 알면 대단히 분개할 원시적인 방법이었다.
다음날 오전 10시쯤 되었을까? 전화선을 타고 들려오는 아내의 목소리는 아침 산책길에 듣는 개울물 흐르는 소리처럼 낭랑했다.
“여보, 나 푹 잤어.”
나도 놀랐다. 어느 정도 고통을 덜어 주리라 생각했지만 푹 잤다니…. 그 ‘물건’이 그토록 대단하단 말인가? 그날부터 아내는 그 ‘물건’의 열렬한 팬이 되었고, ‘물건’이 다 떨어지면 빨리 구해다 놓으라고 소리친다.
워낙 내가 잡문난독(雜文亂讀)한 데다 귀가 얇아서 태극권에서부터 UFO에 이르기까지 빠지는 분야가 없던 터라 아내는 내가 무엇이 좋다고 아무리 떠들어도 흘려듣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물건’ 덕택에 쌓이고 쌓인 신용불량을 단숨에 거둬냈다. 아내는 지하철에서 ‘예수 불신-지옥 웰컴’ 피켓을 들고 다니는 사람처럼 이 물건을 홍보하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 대상은 캐나다로 유학을 떠난 둘째딸이었다. 딸은 몸무게가 많이 줄고 잠도 푹 잘 수 없다고 여러 번 호소했지만, “건강이 최고다. 밥 잘 먹고…”라고밖에 얘기해주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아내는 ‘옳거니, 이걸 보내주면 되겠구나’ 생각하고 이 물건을 캐나다로 보냈던 것이다. 아내는 이 물건을 목에 두를 수 있는 띠와 이 물건으로 만든 안대까지 보냈다. 일주일쯤 지났을까…. 둘째딸이 전화를 걸어왔다.
“아빠, 신기하더라. 그 안대를 하니까 잠이 잘 와.”
엄마의 극성스런 정성을 실망시키지 않으려는 뜻일 수도 있겠지만, 딸의 목소리는 분명 건강하고 발랄하게 느껴졌다. 그 후에도 그 물건들을 계속 보내달라고 조르는 걸 보면, 단순한 인사치레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 ‘물건’은 숯이다. 시커먼 숯! 검정숯과의 인연을 설명하기 전에 먼저 이숙희 할머니 이야기를 소개할까 한다.
매일 아침 용마산을 오르는 이숙희 할머니는 올해 일흔둘이다. 같은 연배의 할머니들보다 훨씬 건강해 보이지만 할머니는 ‘20년 전에 이미 죽은 목숨이었다’고 한다. 서른둘에 남편 잃고, 그 다음날 시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기막힌 일을 두 번 당했는데, 시아버지 장례를 치른 다음날, 큰아들이 비명에 갔다. 그야말로 줄초상을 치른 후 이숙희 할머니는 시어머니를 모시며 4남매를 키우느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노상에서 장사를 했다. 그러다 쉰하나의 연세에 덜컥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그런데 수술 날짜를 얼마 앞두고 아들이 “수술해봤자 얼마 더 사실지 모르니 자연 치료로 고쳐봅시다”라고 말해, 죽고 사는 건 하늘에 맡기자는 마음으로 그 날부터 하루에 두 번씩 숯가루를 복용하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조선소나무 활성탄을 아침저녁으로 한 대접씩 물에 타서 45일을 마셨다고 했다. 특히 저녁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숯가루만 드셨는데, 정말 놀랄 만한 효과를 보게 됐다. 45일 후 병원에 갔더니 의사들은 할머니가 암, 그것도 말기 암에 걸렸었다는 사실을 곧이듣지 않았다. 모두들 할머니의 담당의사에게 오진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담당의사는 ‘만약 오진이었다면 의사 가운을 벗겠다’고 하더란 것이다. “그래서 이 의사가 찍어보고, 저 의사가 찍어보고 하는 통에 혼이 났었다”며 할머니는 웃었다.
이숙희 할머니네 가족은 모두 숯을 ‘신봉’하고 있다. 둘째아들은 지난해 여름 손톱이 빠져 숯가루를 감아매고 있었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곪지도 않고 말끔히 나았다고 했다. 할머니네 손녀딸은 감기 기운만 있어도 숯 목띠를 하고 학교에 간다.
물론 할머니가 숯물을 마신 것만으로 위암을 고쳤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아침 저녁은 현미 잡곡에 채소와 과일을 아주 조금씩 한 시간 정도 씹어먹고 저녁에는 뒷산 오르기를 거르지 않았다니, 여러 가지 좋은 요인들이 힘을 합해 할머니를 구해냈을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숯가루가 위암 말기를 극복하는 데 어떤 면으로든 도움을 주지 않았을까.
시드니행 비행기 안에서 숯과 상봉
미국 애틀랜타에서 시드니로 날아갈 때 숯과 상봉했으니, 우리들의 조우(遭遇)는 공중에서 이루어졌던 셈이다. 피곤, 짜증, 무료가 적당히 버무려지고 있을 때, 갑자기 기내가 소란해졌다. 여승무원이 ‘승객 여러분 중에 의사나 간호사, 물리치료사가 계시면 도와달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고 보니 누군가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여승무원의 다급한 외침에도 불구하고 의사나 간호사, 물리치료사는 없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벌떡 일어선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내 옆자리에 앉은 승객이었다.
그분은 목사님이었는데, 손가방에서 하얀 약병 하나를 꺼내들고 소란의 근원지로 향해 갔다. 15분쯤 지나자 쓰러진 사람을 일으켜 자리에 앉힌 다음 의기양양하게 제 자리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묻지도 않았는데 약병을 내 눈앞에 들이대면서 말했다. “나는 주무르기만 했고 이놈이 고쳐줬지요”라고….
그는 자신의 행동보다 의문의 ‘약’에게 모든 찬사를 돌렸다.
“아니, 도대체 그 약병에 뭐가 들어 있습니까?”
그는 뚜껑을 열고 병 속에 들어 있는 약을 보여주었다. 그 속에는 새카만, 아주 새카만 알약들이 들어 있었다. 동글동글한 아스피린처럼 생겼는데, 뭘로 만들었길래 그렇게 새카만지 궁금했다.
“도대체 뭘로 만든 겁니까?”
“숯이요. 숯가루 알약이지….”
숯이라! 항아리에 메주를 넣고 간장 된장 띄울 때 함께 넣는 그 숯, 이동갈비 구울 때 탁탁 불꽃을 날리며 타오르는 그 숯이 사람을 구하다니…. 뿐만 아니라 하마터면 비행기는 회항하던가 가까운 공항에 불시착할 뻔하지 않았는가. 그랬다면 시드니에 도착하자마자 감행하도록 짜놓은 스케줄이 형편없이 망가졌을 것이다. 이 모든 불행을 막아준 신비의 알약, 그 숯이 너무도 고맙고 신기해서 ‘윤동혁 PD의 검정숯 이야기’란 제목으로 TV 아침방송에 8부작 시리즈로 내보내고 책도 발간하게 됐다.
‘윤동혁 PD의 검정숯 이야기’가 방영될 때,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매우 강한 반발과 통제의지가 상부로부터 내려왔다. 우리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방송위원회는 이 프로그램이 비과학적이며 왜곡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방송위원회는 특히 이숙희 할머니 편을 본 시청자들이 “말기 위암도 고쳤다더라” 하면서 아무 숯이나 갈아서 벌컥벌컥 들이켜다가 사고라도 생기면 어떻게 책임질 것이냐고 걱정했다. 고맙고 우정 어린 충고였지만 나는 나름대로 그런 사태에 대비하고 있었으므로 방송을 끝까지 지켜봐 달라고 부탁했다.
조선소나무로 만든 숯가루가 으뜸
균을 억제하기도 하는 숯은 항생제 남용을 막아줄 수 있다. 가마에서 막 꺼낸 숯
과학적이어야 한다?! ‘과학’이란 말처럼 ‘비과학적’인 개념도 드물 것이다. 과학은 실험과 논리를 통해 그 정당성을 입증하는 것인데, 항상 ‘그때까지 밝혀진 또는 옳다고 여겨지는’ 기준만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그 기준이 틀리다면 모든 과학적 행위는 비과학적 결과와 확신을 낳지 않겠는가.
그러나 나는 방송위원회의 말을 잘 들어야만 했기 때문에 ‘과학적’ 대비를 해두었다. 기말시험이 가까워 바쁘다며 귀찮아하는 삼육대학교 약학과 교수들을 설득하여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몇 가지 실험에 착수했다.
우선 숯의 해독작용을 알아보기 위해 맹독성 파라티온을 실험용 쥐들에게 투여한 후 어떤 쥐는 그냥 놔두고, 어떤 쥐는 숯가루나 활성탄(곧 설명하겠다)을 먹였다. 이따금 농촌에서 농약 먹고 숨졌다고 할 때, 그 맹독성 농약이 파라티온인 경우가 많다.
파라티온을 마시면 보통은 호흡이 마비돼 죽는다. 몇 해 전 일본 도쿄의 지하철에 뿌려졌던 사린가스와 비슷하다. 이런 독극물은 인류가 1·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대인 살상용 무기로 만들어낸 화학물질이다.
파라티온만 주사한 쥐는 10분 정도 지나자 호흡마비로 죽었다. 다음에는 파라티온을 투여한 쥐에게 쥐의 몸무게에 맞춰 활성탄을 먹였다. 처음에는 무척 괴로워했고 한 마리는 2시간쯤 지나자 죽어버렸지만, 다른 한 마리는 고통을 이겨내고 살아남았다. 물론 쥐와 사람의 몸은 다르겠지만, 독성을 제거하는 활성탄의 위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실험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말라티온이나 청산가리는 활성탄으로 이겨낼 수 없다고 한다. 즉 숯가루나 활성탄이 처리하지 못하는 독성도 있으니, 주의하시란 말이다. 그러니 만약 독극물에 노출된 사람이 있다면 일단 숯가루나 활성탄으로 응급처치를 한 다음 병원으로 신속히 옮겨야 한다. 파라티온 같은 농약뿐 아니라 벌레에 쏘였을 때나 뱀에 물렸을 때도 마찬가지다. 어쨌든 숯가루를 비상용으로 옆에 둬서 손해 볼 일은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가끔 별로 유쾌하지 않은 식중독 사건으로 긴장하게 된다. 김밥을 먹고 단체로 이질에 걸렸다거나, 수학여행을 떠난 학생들이 식중독에 걸려 병원에 누워 있는 모습은 매우 현실적인 공포로 다가온다.
이질은 복통과 설사를 일으켜 사람을 괴롭히는 병인데, 옛날 할머니들은 이런 증세를 보이는 가족이 있으면 바로 가마솥의 숯검댕을 긁어서 먹였다.
바로 이 숯검댕이 활성탄이다. 우리 할머니들은 일반 숯가루가 아닌 활성탄을 사용하셨으니, 그 지혜로움에 경의를 감출 길이 없다. 이 활성탄과 요즘 병원에서 처방하는 항생제를 이질균 속에 집어넣으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예측불허, 그러나 의미 있는 실험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보름 만에 만난 삼육대 하남주 교수는 약간 흥분한 상태로 말했다.
“윤PD, 솔직히 별 기대 안했는데 이게 웬일이야!”
항생제보다 활성탄의 억제력이 훨씬 더 높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항생제를 집어넣은 용기에서는 내성 바이러스들이 항생제를 둘러싸고 난리를 피우고 있는데, 반대로 활성탄이 들어간 용기에서는 이질균들이 활성탄에 둘러싸여 꼼짝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 시커먼 숯가루라고 얕보았다가 크게 놀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나라는 지구촌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항생제 남용국. 빛나는 ‘숯 문화’의 유산을 오늘날에 되살려 새로운 의료과학을 수립하는 데 이바지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자, 그렇다면 활성탄이란 과연 무엇일까? 말 그대로 ‘활성화된(activated)’ 숯이다.
호주는 유칼립투스나무를, 인도네시아는 야자껍질을 사용하는 등 나라마다 그 재료가 다르다. 우리나라에서는 붉은 조선소나무를 쓰는데, 수량이 한정되어 있어 시중에 많이 유통되지는 않고 있다. 그러니까 먹는 활성탄 숯가루라고 하면 어떤 제품인지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활성탄을 설명하려면 우선 숯의 신비를 함축하고 있는 구멍(기공)에 대해 알아야 한다. ‘파라티온을 먹인 쥐가 살아나고 이질이 맥을 못 춘다’고 말할 때, 그것은 숯의 강력한 살균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숯은 어떤 균도 죽이지 못한다. 그저 ‘끌어안고 함께 죽자’는 주의다.
숯은 구멍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먹만한 숯 한 덩어리에 뚫려 있는 무수한 기공들을 쫘악 펼쳐놓으면 테니스 코트 하나가 나온다니, 얼마나 구멍이 많은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구멍 하나하나가 진공 청소기처럼 나쁜 물질을 빨아들인 다음, 죽이는 것이 아니라 몸 밖으로 다 배설되는 것이다.
‘그럼 좋은 물질까지 다 빨아들여 가지고 나가지 않을까’하는 의문이 생길 것이다. 이 부분이 참으로 신통하고 희한하다. 숯의 구멍, 특히 활성탄의 기공은 너무도 작아서 아주 단순한 분자구조만 흡착하는데, 일반적으로 유해한 물질은 분자구조가 작고, 좋은 물질들은 분자구조가 크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숯은 주로 나쁜 것만 제 몸 속에 집어넣고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우리가 보통 숯이라고 할 때 그것은 갈비나 삼겹살을 굽는 숯이고 그 재료는 참나무다. 여기서 이숙희 할머니가 드셨다는 숯가루는 조선소나무로 만든 것이다.
왜 참나무는 아닌가. 전자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참나무 숯의 기공은 조선소나무 숯의 기공보다 훨씬 크다. 그리고 부서질 때 참나무 숯은 면도날처럼 뾰쪽하게 날이 서 신체 내부의 상처 난 부위에 닿으면 해로울 수 있다. 조선소나무 숯은 아무리 잘게 부수어도 표면이 동글동글 부드럽다.
소나무 잎사귀를 하루에 세 잎만 씹어 먹으면 신선이 된다고 했는데, 소나무 숯이라고 어찌 미덕이 없으랴. 더구나 활성탄인데!
활성탄이란 소나무건 참나무건 간에 일반 숯을 특수한 가마 속에서 1200℃의 고열로 다시 한번 활성화시킨 숯이다. 그 구멍은 일반 숯 상태보다 수십 배 더 작아져서 전자현미경으로도 잘 볼 수 없다. 이 천문학적 숫자의 미세한 구멍들이 몸 속 독소들을 열심히 흡수해서 얌전히 밖으로 나간다고 생각해보라. 얼마나 고마운가.
‘엽기적 인물’의 신비한 건강법
그렇지만 술 마시기 전에 숯가루 한 봉지를 탈탈 털어 먹는 나에게 꽂히는 주위시선을 보면, 숯은 여전히 시커먼 숯가루일 뿐 전혀 신분상승이 이뤄지지 않은 채 나만 엽기적 인물로 비쳐지고 있는 것 같다.
‘좋다, 권하진 않으마. 그러나 머지 않은 장래에 너도 감복하고 매달릴 날이 올 것이다.’
이렇게 오기를 부려보는 것은 나름대로 숯의 국제성에 대한 자료를 많이 모아두었기 때문이다.
2001년 겨울, 분쟁지역 전문 다큐멘터리 작가인 김영미(33)씨가 아프가니스탄으로 떠날 때, 챙겨주지 않았는데도 활성탄 봉지를 한 보따리 가지고 갔다. 그녀는 전기도 끊기고 불결한 물을 마셔야 했던 열악한 상황 속에서 자신을 지켜준 것은 숯가루뿐이었다고 돌아와서 말했다.
“숯을 그렇게 요긴하게 썼니?”
“그럼요. 난다긴다하는 외신기자들이 보름을 못 넘겼는데, 전 40일이나 버텼잖아요.”
더러운 물도 숯가루 한 봉지를 풀어놓고 두어 시간 기다렸다 마시면 아무 문제가 없었다. 외신기자들은 그걸 모르고 물을 그냥 마셔 배탈에 복통으로 고생하다 소득 없이 되돌아가더라는 것이다. 그녀는 이번 이라크 전쟁 취재 때도 활성탄 가루를 잔뜩 챙겨갔고, 덕분에 다큐멘터리 ‘긴급르포-일촉즉발의 이라크를 가다’를 제작해 주가를 올렸다.
김PD가 출발하기 전 쿠웨이트가 한국산 방독면 수만 개를 구입했다는 외신보도가 있었는데, 그 방독면의 불쑥 튀어나온 입 부분 끄트머리에 활성탄 필터가 삽입되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미국의 저명한 병리학전문의인 애거사 트래시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숯을 사용하고 있다. 숯은 독성을 제거하고 위를 신속하게 진정시켜주며 몸에 상처가 났을 때도 효과적이다.”
트래시 박사는 예전에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속병을 어떻게 고쳤는지도 말해 주었다.
“그들은 불타는 나무를 개천에 집어넣어서 숯을 만들고는 그것을 꼭꼭 씹어먹었다. 그러한 지혜는 대를 이어 내려온 것이다”
시드니에서 북쪽으로 두 시간 가량 달리면 시더베일 요양원이 나온다. 자그마한 곳이지만 호주 전역에서 사람들이 찾아오는데, 그곳에서 숯 목욕을 하는 광경을 보았다. 활성탄을 풀어놓은 시커먼 욕탕…. 숯에 대한 정보와 신뢰와 애정이 없다면 돈 주고 들어가라고 한들 누가 발을 들이밀겠는가. 그들에게 숯 목욕을 하고 숯 팩으로 통증 있는 부위를 찜질하고 또 숯을 먹는 것은 중요한 치유방법 중 하나였다. 그런데도 숯가루 먹는 내가 엽기적인 인물이란 말인가.
숯먹인 송어 맛이 일품
“이상해요. 똑같은 평창 땅에서, 똑같은 금당계곡을 끼고 키우는 송어지만, 이 집 송어만 특별나게 맛이 좋으니 말입니다.”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대화면 개수리에 민박집을 차려놓았다는 김교운씨가 연방 이상하다면서 송어매운탕 국물을 떠 마신다.
“다른 집 송어에서는 민물 비린내가 나는데 이 집 송어는 외려 고소하잖아요.”
김씨의 부인도 거들고 나선다.
정말이다. 강원도 평창군 대화면 상안미리에 자리잡은 ‘안미송어장’의 송어는 특별나다. 송어 살이 선분홍빛이고 그 살맛은 고소하다. 나중에 매운탕을 끓이면 국물이 달다. 달면서도 천박하지 않고 기품과 풍미가 있어 서울은 물론 수원 안성 등지에서도 단골손님들이 찾아온다.
이곳 금당계곡은 한여름에도 발 시린 냉천이 흘러 주변에 송어횟집이 많은데, 왜 이 집 송어 맛만 유별난 걸까. 그 답은 뜻밖에도 숯에 있다.
“아니, 송어에게 숯을 먹인다구요?”
소백산 참나무 숯가루를 섞은 사료를 송어에게 먹이는 것만으로도 꽤 많은 이득을 보았다고 주인 심언용씨는 자랑했다.
첫째 송어 맛이 좋아지니까 손님들이 더 많이 찾아오고, 둘째 양식장에서 나오던 부유물의 비릿한 악취가 없어졌으며, 셋째로 이것이 제일 중요한데, 숯가루를 쓴 이후 항생제를 예전의 절반 정도만 쓴다는 것이다.
나는 이 송어횟집을 취재하면서 송어 양식장뿐 아니라 이 나라의 모든 가두리 양식장과 돼지 키우고 닭 키우는 사육장에 숯가루를 뿌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고기 맛 좋아지니까 손님 늘어나, 항생제를 조금 사용해 국민 건강에 기여하는 보람도 커져, 게다가 숯가루 값이 항생제 값보다 싸…. 머뭇거릴 일이 아니잖는가.
강원도 고성에 큰 산불이 나고 얼마 되지 않아 아주 흥미로운 뉴스가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피해 본 분들에겐 죄송한 말씀이지만, 산불 덕에 어민들이 싱글벙글한다는 것이다.
동해안에 갑자기 물고기떼가 몰려와 ‘그물이 찢어질 정도’라는 것. 바다에 어른거린 고성 산불의 그림자를 보고 물고기들이 몰려들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밤에 횃불 들고 나가 물고기를 잡아본 경험이 있는 분들은 ‘아, 그럴 수도 있겠다’고 모두들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숯이 물고기떼를 몰고 왔다니…
그때 “턱도 없는 소리 하지 마라”며 ‘숯의 영양학’을 들고 나선 사람이 있었다. 그 주인공은 무명의 영양학자 홍영선씨로, 홍씨는 ‘볶은 곡식론’의 창시자이다. 하루 한끼 볶은 곡식과 약간의 떡, 또는 과일만 먹으면서도 괴력을 발휘하는 인물로, 필자가 3년째 관찰하고 있는 중이다.
“불빛 때문이 아니고요…”
산불이 크게 났으니 얼마나 많은 나무들이 숯으로 변했겠는가. 재는 또 얼마나 많이 쌓였을 것인가. 비가 오니 그 잿물이 다 어디로 흘러갔겠는가. 잿물 속에 칼슘, 칼륨, 철, 인, 아연 등 미네랄이 풍부하게 담겨 있었으니 본능적으로 그 냄새를 맡고 물고기들이 몰려들었다는 것이다.
“개나 고양이를 보소. 맘대로 풀어놓고 키우면 밤에 어디 가서 자는가”
그렇다. 시골 살 때 보면 개가 꼭 재 뿌려둔 곳에 가서 배를 깔고 자는 모습에 늘 신기해하곤 하지 않았던가. 그러니까 숯의 미덕은 단순히 나쁜 물질을 흡착하는 데만 있는 게 아니라, 우리 몸에 필요한 미량 원소들을 공급해주는 데도 있는 것이다.
서울 양재동 삼호물산 빌딩 뒤 먹자골목에 자리잡은 조그만 초밥집 ‘구룡포’는 초밥보다 어죽과 돌게장으로 더 유명하다. 게장이라고 하면 누구나 꽃게장을 떠올리지만, 이 집 게장의 재료는 돌게다. 꽃게처럼 생겼으나 몸집이 훨씬 작고 맛도 떨어져서 가격이 저렴한 편이다.
꽃게장은 못 내놓지요. 초밥보다 더 비싼데….”
주방장 천무갑씨는 비록 돌게가 꽃게에 필적하기 어려운 조건이지만 게장에 들어가는 재료와 섬세한 제조과정을 통해서 꽃게장을 능가하는, 게장의 새로운 문화를 열었다고 자랑했다. 진간장, 생수, 청주를 2:2:1로 섞은 물에 오븐에 구운 대파 양파 마늘 생강을 넣는다. 특히 대파는 한쪽 면이 까맣게 숯검댕처럼 탈 때까지 굽는다. 일부러 그러는 것이라고 한다.
“저 정도는 타야 숯의 역할을 하지요. 간장 우려낼 때 숯 넣는 것처럼.”
아! 숯 문화가 우리 생활 속에 이토록 뿌리 깊게 박혀 있구나.
부산대학교 박건영 교수는 필자와 대학 학번이 같아 그냥 말을 놓고 지내는 사회 친구인데, 박교수가 대학 신입생 시절인 1969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메주에 아플라톡신이 득실거려 한국 사람들이 위암에 많이 걸린다고 보도한 일이 있었다.
당시 농화학과 학생이던 박교수는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그처럼 엉성하고 남루할 리 없다’는 독한 마음을 품고 식품영양학 쪽으로 방향을 선회, 대학원을 마친 후 한국 전통 장류의 독성물질을 연구주제로 삼고 미국 네브래스카 주립대학과 하버드 대학을 거쳤다.
그리고 그 결과, ‘타임’의 보도가 있은 지 15년 만에 ‘메주에 아플라톡신이 있다는 것은 웃기는 이야기’라고 발표했다. 지금까지도 ‘타임’이나 국내외 학회에서 어떤 반론도 제기하지 않은 걸 보니, 그의 논문은 훌륭하게 잘 짜여져 있었던 모양이다.
박교수는 메주의 아플라톡신이 맥을 못 추는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 바로 숯이고, 특히 활성탄일 때 그 효과가 가장 좋다고 말했다. 우리 할머니들이 아궁이 밑에서 긁어모았던 바로 그 숯가루, 그런 활성탄일 때 아플라톡신 수치가 제로로 떨어지더라고 신기해했다.
숯은 내 인생의 동반자
주변 사람들이 그토록 우려했던 ‘비과학적’인 숯은 이처럼 과학적이고 또한 실용적이다. 게다가 값도 비싸지 않고 부작용도 없다. 나는 내 친구인 검정숯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마음놓고 권유할 것이다. 나는 오늘 저녁 술자리에도 숯가루 봉지를 잊지 않고 챙겨간다.
언젠가는 모든 의사들이 처방전에 ‘활성탄’을 써넣을 날이 오리라. 그리고 이 숯가루 덕분에 온갖 종류의 마이신과 항생제를 쓰지 않아도 될 날이 오리라. 그리고 필자가 강원도 산골에서 숯가마와 숯가루로 아토피 피부를 가진 어린이들을 달래주는 모습도 머지 않아 보게 되리라. 숯은 나의 확고한 신념이고 인생의 동반자다.
첫댓글 좋은 정보 고맙습니다. 평소에 저도 이용을 하고 있는데 더 많은 확신을 갖게 하여 주시네요.
정말 좋은내용 가마히 잘 읽었습니다.그런데 숯가루는 어디서 구할 수 있나요? 안내 부탁 드립니다....
글쎄 구입을 어디서 해야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