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방송 새 전파 군침 도네
방송권역 확대로 사업권 쟁탈전... 학계.언론계 “상업논리 배제해야”
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
지난해 12월31일 오전11시10분. 방송위원회로부터 재허가 추천을 거부당한 경인방송(iTV)은 침울한 분위기 속에서 고별행사를 치렀다. 방송사 1층 스튜디오에서는 애국가를 마지막으로 ‘시청자 여러분 죄송합니다’라는 자막과 함께 박광순 대표이사 직무대행의 고별사가 이어졌고 같은 시간 방송국 야외 주차장에서도 사내 출입을 저지당한 노조원 200여 명이 경인방송 고별행사를 따로 치렀다.
전 조합원들이 재건 주춧돌 놓아
방송국 안에 있는 80여 명의 직원들이나 방송국 밖의 노조원들이나 무거운 침묵과 함께 눈시울이 젖기는 매한가지였다. 경인방송의 1대주주였던 동양제철화학은 올 1월 경인방송이 부도처리됐다고 공시했다.
그로부터 10개월이 흐른 현재. 경인방송은 경인지역의 새로운 방송으로 재건되는 행보를 발빠르게 진행하고 있다. 지난달 방송위원회가 연내 새 사업자 선정을 골자로한 ‘경인지역 지상파 방송 허가추천기본정책’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특히 그동안 인천.경기 남부지역에 제한됐던 방송권역을 경기 북부까지 확대하고 서울에서도 케이블을 통해 볼 수 있게 됨으로써 경인지역의 새방송은 2000만 명의 시청자를 확보하게 된다. 이는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절반에 해당된다. 매체 영향력과 광고 수요 등 사업성이 충분하다는 분석이 가능한 배경이다.
따라서 경인방송 인수에 관심을 보여온 기관.업체들의 사업권을 둘러싼 쟁탈전도 뜨겁다. 현재 중기협, CBS, 팬택엔큐리텔, 서울미디어그룹, 휴맥스, 경인방송 법인 등이 적극적인 참여의사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방송위원회 양한열 지상파부장은 “세부 정책방안과 심사기준안을 마련해 10월 셋째주 공청회를 개최, 선정방안을 전체회의에서 의결해 선정 공고를 낸 다음 11월 중 신청을 받아 12월 중 실무심사와 심사위원회를 구성, 운영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경인방송이 새로운 방송으로 재건되는데는 경인방송 전 노동조합원들의 힘이 무엇보다 컸다. 한순간 삶의 터전에서 쫓겨난 경인방송 전 노조원들은 조합명칭을 올 초 ‘iTV희망조합’으로 변경하고 인천 남동구 구월1동에 60여 평의 사무실을 얻어 개소식을 열고 방송재건 작업에 착수했다. 이들 희망조합 조합원들은 저마다 퇴직금의 20%를 출연해 경인지역 새방송 설립기금 10억 원을 만들었다. 이들이 주축이 된 경인지역 새방송 창사준비위원회(이하 창준위)에는 1만5000명이 발기인으로 나섰다. 발기인에는 시민 ․ 사회단체 인사들과 여야 국회의원들, 연예인 등 각계 인사들이 두루 포진해 있다. 언론현업인 단체도 성원했다. 현재 경인지역 새방송 설립기금은 발기인 출연기금을 합해 25억 원이 됐다.
현재 경인방송을 둘러싼 주요 쟁점은 누가 사업자가 되느냐와 어떻게 운영되느냐다. 지난달 방송위는 경인지역 새 방송의 경우 외주제작물 편성확대를 언급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언론계와 학계는 경인지역 새방송의 정체성이 ‘수도권 제2민방’이나 ‘외주 중심 채널’도 아니라 경인지역의 문화와 여론을 대표하는 지역방송이어야 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반현 인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경인지역 새방송은 지역방송으로서 정체성을 갖도록 해야 한다”며 “외주 중심 채널로 갈 경우 과거 경인방송처럼 지역의 뿌리를 상실한 채 표류할 수 있고 또 중앙방송만을 지향하면서 무한경쟁에 나설 경우 방송계 전체가 교란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중파 3사 창준위지지 성명
반 교수는 또 “이를 위해선 소유의 분산을 통해 대주주 독단에 의해 방송이 좌우되지 않도록 하고 소유와 경영 분리도 제도화 해야 한다”며 “시민주와 비영리 민간 재단의 참여가 필요한 것도 그런 배경에서”라고 덧붙였다. 홍기헌 경기언론인클럽 이사장도 “사기업에만 경영과 소유를 모두 책임지게 할 경우 과거 경인방송이 보여준 폐해를 반복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중앙방송의 아류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며 “이윤추구가 목적이 아닌 비영리 민간재단이나 시민주의 참여가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신학림 위원장은 “시민 ․ 사회단체가 주축이 된 방송과 방송을 돈벌이로만 생각하는 주주에 의해 움직이는 방송은 다르다”며 “분명한 것은 창준위가 중심이 돼 함께 손잡은 사업자에게 사업권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 위원장은 또 “경인지역 새방송 설립 사업자로 컨소시엄을 구성할 때 삼성이나 중앙일보, 보광그룹 등이 위장해 참여하는 것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재정 여력을 감안할 때 서울미디어그룹의 경우 제3의 자본주가 있는 것이 아닌가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먼센스’를 비롯한 5종의 여성지와 ‘일요신문’ ‘해피데이스’ ‘시사저널’ 등을 발행하고 있는 서울미디어그룹의 심상기 회장은 1988년까지 중앙일보에서 편집국장, 상무이사 등을 역임했다.
같은 맥락으로 10월5일 공중파 3사 노동조합과 방송현업 직능단체 대표들은 쟁점이 되고 있는 사안에 대해 창준위의 입장을 적극 지지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즉, 새 방송을 이윤 창출의 수단으로 삼겠다는 상업 논리를 배제해야 하고, 새 방송의 경영안정을 위해 외주비율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은 전혀 현실성이 없으며, 일부 재벌과 족벌신문 자본들이 새 방송에 우회적으로 배제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와 함께 경인방송 법인이 연관된 컨소시엄에 신규 사업자 참여 자격이 주어지는 것은 정책적 모순으로 불가하다는 입장과 전직 여인방송 직원들의 고용승계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한편 경인방송 법인은 창준위를 중심으로 한 측의 주장에 개의치 않는다는 입장이다. 이춘대 대표는 “경기 인천에 소재한 건실한 기업들과 투자 협의를 했고 그 중 한기업으로 투자를 이끌어냈다”며 “구체적인 내용과 향후 계획은 10월20일께 발표하겠다”며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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