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연의「칠월」감상 / 장석주
칠월
허 연 (1966~ )
쏟아지는 비를 피해 찾아갔던 짧은 처마 밑에서
아슬아슬하게 등을 붙이고 서 있던 여름 밤을
나는 얼마나 아파했는지
체념처럼 땅바닥에 떨어져 이리저리 낮게만
흘러다니는 빗물을 보며 당신을 생각했는지,
빗물이 파 놓은 깊은 골이 어쩌면 당신이었는지
칠월의 밤은 또 얼마나 많이 흘러가 버렸는지.
땅바닥을 구르던 내 눈물은 지옥 같았던 내 눈물은
왜 아직도 내 곁에 있는지.
칠월의 길엔 언제나 내 체념이 있고
이름조차 잃어버린 흑백영화가 있고
빗물에 쓸려 어디론가 가버린 잊은 그대가 있었다.
여름 날 나는 늘 천국이 아니고,
칠월의 나는 체념뿐이어도 좋을 것
모두 다 절망하듯 쏟아지는 세상의 모든 빗물,
내가 여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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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월은 이미 여름의 절정이다. 금빛 햇빛이 도처에 타오르고 산딸기는 잎사귀 뒤에서 빨갛게 익는다. 숲이 서늘한 녹색 그늘들을 기를 때 칠월은 ‘행복’과 ‘무심’ 사이로 흘러간다. 어떤 연인들은 파경과 이별을 겪지만, 대체로 평화로운 시간이 이어진다. 여름날이 늘 천국은 아니다. 우리에게 당도한 칠월엔 ‘체념’이나 ‘흑백영화’, 이미 추억이 되어버린 ‘잊은 그대’도 있다. 과거라는 빗물에 쓸려가 버린 나날들. 그랬으니 골을 파고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빗물 속에서 문득 ‘당신’이 비치기도 한다.
장석주(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