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식 감독, 역전승의 리더십:"德은 행운을 만든다."
"야구는 끝나 봐야 안다."-말 없이 남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위대한 지도력이다. 人格의 리더십, 침묵의 리더십이다.
趙甲濟
믿기 어려운 역전극이었다. 일본 선발 오타니의 강속구에 눌려 ‘0’의 행진을 이어간 한국은 9회 5안타와 사사구 2개를 집중시켜 경기를 뒤집었다. 한국 선수들이 승리를 확정한 뒤 한데 모여 환호하는 모습. /김경민 기자
金寅植 감독이 이끄는 한국 야구 대표팀은 어제 일본 도쿄돔서 열린 프리미어 12 준결승전에서 4회에 일본 대표 팀에 3점을 내주고 끌려갔다. 일본 팀은 8회 초부터 선발 투수 오타니를 내리고 노리모토로 바꿨다. 나중에 밝혀지겠지만 이게 치명적 실수였다.
8회가 끝나도 한국 팀은 무득점. 지난 8일 '프리미어 12' 개막전에서 일본에 0 대 5로 졌던 한국 대표팀은 또 다시 완봉패를 당할 위기로 몰렸다. 9회 초 기적이 일어났다. 無死 1,2루 때 정근우 선수가 2루타를 치면서 오재원이 홈을 밟아 첫 득점, 이어 無死 만루, 김현수가 노리모토에 이어 등판한 마츠이로부터 볼넷을 얻어 밀어내기 득점, 2대 3으로 추격했다.
올해 한국인 선수로는 처음으로 재팬 시리즈 MVP에 올랐던 한국 대표 팀 4번 타자 이대호가 등장하였다. 그는 4구째를 받아 쳐 좌익수 쪽으로 뻗어나가는 안타로 2점을 보탰다. 4 대 3 역전에 성공한 것이다.
9회 말 일본 팀이 2死 후 1루에 주자를 내보내자 김인식 감독은 투수를 바꿨다(이 결단이 한국 팀을 구했다). 일본의 4번 타자 나카무라는 내야 땅볼로 스리 아웃! 김인식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니 이런 결과가 나왔다”며 “역시 경기 결과는 끝나봐야 아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뉴욕 양키스의 요기 베라가 한 말이다.
한국에 역전패를 당한 일본 고쿠보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침통한 표정으로 “져서는 안 되는 경기에 져서 안타깝다. 그 한 마디뿐”이라고 말했다. 한국 대표팀은 20일 열리는 미국-멕시코의 준결승전 승자와 21일 오후 7시 도쿄돔에서 결승전을 갖는다.
한국 야구 역사상 영원히 기억될 역전승을 거둔 김인식 감독은 덤덤한 표정이었다. 金寅植 감독과 여러 번 사석에서 만난 적이 있다. 두세 시간 같아 앉아 있으면 金 감독은 문장이 되는 말을 세 마디 정도 한다. 빙그레 웃고 있으면서 남의 말을 경청하는 게 그가 하는 일이다. 말이 많은 私席에서 한 사람이 그런 식으로 입을 닫고 있으면 분위기가 이상해지는데 金 감독의 경우는 정반대이다. 그의 온화한 과묵함이 오히려 공기를 따뜻하게 만든다. 어색하지가 않다. 그는 바에서도 우두커니 혼자 앉아 있는 경우가 많다. 쓸쓸해 보이지 않고 근사해 보인다.
수년 전 국제대회에서 한국팀 감독으로 나가 일본팀에 콜드 게임으로 지고 나서 1-0으로 이긴 날이 있었다. 그와 국제 통화를 했는데 '허허'라고 웃기만 했다. 그 웃음에서 그날 받았던 스트레스가 묻어 나왔다. 그는 경기장 안팎에서 喜怒愛樂(희노애락)의 표현이 매우 적다. 남의 험담을 절대로 하지 않는다고 한다. 불만이 없을 리 없지만 안으로 삭인다. 가벼운 뇌졸중을 맞은 적이 있었으나 곧 회복할 수 있었던 것도 평소 쌓은 德性과 인간관계 덕분이란 말이 있다.
金 감독은 德으로 사람을 다스린다. 부하나 선수들은 그에게 미안감을 느끼는 듯하다. 그 미안감을 해소하려고 더욱 분발하는 것처럼 보인다. 말 없이 남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위대한 지도력이다. 人格의 리더십이고 침묵의 리더십이다. 어제 경기를 보고 '德은 행운을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화 감독 시절에 하던 이야기가 기억 난다.
'진 게임을 하고 돌아와서는 복기를 해 봅니다. 몇 차례 하면 새벽이 밝아요. 골똘히 생각에 빠지면 시간 가는 줄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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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4월호 월간조선 인물기사
한국 야구가 세계 최강 미국을 무너뜨리고 「야구 100년史」를 새로 썼다. 지난 3월14일 미국 캘리포니아州 애너하임 에인절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제1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2라운드 1조 리그 2차전에서 한국은 131년 역사를 자랑하는 야구 종주국 미국을 7대 3으로 대파했다. 앞서 A조 아시아 예선에서는 일본에 극적인 3대 2 역전승을 거뒀다.
金寅植(김인식·59) 감독은 축구의 히딩크 감독에 비견될 만큼 영웅이 됐고, 미국의 벅 마르티네스 감독과 일본의 오 사다하루(王貞治) 감독은 리더십 부족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한국 언론과 팬들은 金寅植 감독에 대해 「德將(덕장)」·「智將(지장)」·「福將(복장)」, 「믿음의 야구」 등 화려한 수식어로 극찬을 하며 그의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집중 조명했다.
그에 비해 일본 언론은 『이 굴욕을 잊을 수 없다』, 『일본 야구 멸망 기념일』 등의 극단적인 표현으로 충격을 전했다. 미국 언론 역시 『한국이 인상적인 투구와 시의적절한 타격으로 미국을 이겼다』, 『한국이 잘해서 미국이 졌다』며 패배를 시인했다.
경기 전 「일본의 우상」 이치로(시애틀) 선수는 『30년 동안 한국이 일본을 이긴다는 생각을 못 하도록 하겠다』고 했었고, 미국 대표팀 역시 한국을 「잘해야 트리플A 수준」이라고 폄하했었다. 그러나 한국은 미국과 일본을 차례로 꺾어 한국 야구의 위상을 세계에 알렸다.
이같은 결과는 金寅植 감독의 「믿음의 리더십」이 바탕이 됐다. 그는 코치와 선수를 절대 신뢰한다. 그에게는 선수가 최고의 기량을 펼칠 수 있도록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특별한 기술이 있다. 그의 선수에 대한 믿음은 일본戰에서도 분명했다. 선발투수에 대한 믿음은 미국戰에서도 분명했다. 4회 2사 1·2루에서 김태균(한화) 대신 전날까지만 해도 극심한 타격부진에 허덕이던 최희섭(LA다저스)를 대타로 내보냈다. 결과는 극적인 3점 아치. 최희섭은 金寅植 감독에게 보은이라도 하듯 승리에 쐐기를 박았다. 지난해 메이저리그에서 좋은 경기를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마무리를 맡기기에는 불안하다던 박찬호를 9회 소방수로 기용하는 신뢰를 보였다.
그의 「신뢰 야구」는 프로 첫 지휘봉을 잡았던 시절에도 두드러졌다. 1991년 리그에 참여한 신생팀 「쌍방울」을 이끌던 金寅植 감독은 신인타자 김기태를 줄곧 4번 타자에 중용했다. 그러나 김기태는 프로의 높은 벽에 막혀 4월 한 달간 타율이 겨우 1할에 턱걸이했다. 성적이 곧 감독의 수명인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金감독은 5월에도 김기태를 중심타자로 내세웠다. 결국 김기태는 그해 27개의 아치를 그려 왼손타자 최다 홈런을 기록하며 스타의 길을 걷게 됐다.
「믿음의 야구」를 구사하는 金감독이 맡은 팀은 戰力 이상의 성적을 내곤 했다. 그가 감독을 맡던 시절, 우승 戰力이 아니라던 「두산」은 두 차례나 우승했다. 국가대표를 처음 맡은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는 6連勝(연승)으로 금메달을 획득했고, 이번 WBC 아시아 예선에서도 3連勝을 내달렸다.
金감독의 「믿음의 리더십」은 못다한 선수생활과도 연관이 있다. 1947년 서울 출생인 그는 해병대와 한일은행 시절 국가대표 투수로 활약했지만, 25세이던 1972년 어깨부상으로 은퇴한 비운의 선수였다.
그는 은퇴 후 배문高·상문高·동국大 감독을 거쳐 프로야구 「해태 타이거즈」 코치, 「쌍방울 레이더스」·「두산 베어스」 감독을 역임한 뒤 현재는 「한화 이글스」 감독으로 있다.
2004년 가을 한화 감독 취임과 함께 뇌졸중이 왔지만 임무를 수행할 수 있었던 것도 인간관계의 승리였다. 그가 선수들을 신뢰했던 것처럼 구단 관계자와 언론도 섣부른 판단을 삼가고 그를 신뢰했던 것이다. 그 믿음대로 金감독은 그라운드에 복귀해 지난해 한화를 4位로 끌어올리고, 이번에는 국가대표 감독으로서 승전고를 울렸다.
그는 눈빛으로 말한다. 프로야구단 감독인 그의 방에는 항상 손님이 많다. 기자들은 물론 知人들도 가끔 찾는다. 그런데 그는 아무리 피곤해도 일일이 친절하게 맞는다.
그를 돋보이게 하는 또 하나의 장점은 傾聽(경청)의 기술이다. 한 번 말하고, 두 번 듣고, 세 번 맞장구친다는 「원·투·스리 화법」의 모범을 보여 준다. ● ///////////////////////////////////////////////////////////////////////////////////////
'야구는 끝나 봐야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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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메이저 리그에서 유래하는 우스개와 名言이 많다. 가장 유명한 건 뉴욕 양키즈의 유명 捕手 요기 베라가 한 이 말일 것이다.
'It ain't over till it's over.'
'야구는 끝나 봐야 끝난다'는 뜻이다. 야구의 불예측성을 요약한 말이다. 1973년 그가 감독이던 뉴욕 메츠는 내셔널 리그 동부지구에서 한때 선두 시카고 컵스에 9.5게임이나 뒤져 있었다. 메츠는 막판에 잘 싸워 마지막 날에 지구 타이틀을 차지하였다. 그때 한 말이다.
“Baseball is like church. Many attend, few understand.”
― Leo Durocher
'야구는 교회와 같다. 많이들 모이지만, 이해하는 이들은 적다.'
리오 두로셔는 뉴욕의 브루클린 다저스 감독일 때 더 유명한 말을 남겼다.
'Nice guys finish last.'
'좋은 사람들은 꼴찌하기 마련이다.'
바닥을 헤매는 宿敵, 뉴욕 자이언트 팀을 빈정댄 말인데, 함축성이 있어 심리학이나 사회학 분야에서 연구의 실마리를 제공한 말이다.
야구는 30%의 게임이다. 다저스 감독 출신 토미 라소다는 이렇게 관찰한다.
'아무리 당신이 훌륭해도 게임의 3분의 1은 지게 되어 있다. 아무리 엉망이라도 3분의 1은 이긴다. 차이는 나머지 3분의 1에서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