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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대 명산의 산방 산행자료 >
100대 명산 선정사유 o 가을에 마치 온 산이 빨간 치마를 입은 여인네의 모습과 같다 하여 이름이 붙여질 정도로 경관이 뛰어나며 덕유산 국립공원구역인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적상산은 인기있는 산이다. 단풍철이 거의 다 지난 이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적상산을 찾았다. 버스를 타고온 단체 산행객이 대부분이었다. 적상산은 단풍이 아름다운 산으로 전국에 알려져 있고 그로 인해 매년 단풍철이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적상산은 산 가운데 양수발전소가 생긴 이후로 산행의 맛이 떨어져버린 게 사실이다. 그러나 단풍철에 서창에서 정상으로 올라가는 코스는 역시 가을철 산행의 백미에 속하는 코스임이 분명하다.
양수댐이 들어선 이래 서창은 적상산을 오르는 코스중 필수적인 코스가 되었다. 차로 산속의 저수지를 오르내리는 정도로 적상산을 다 보았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즉 적어도 적상산을 다녀왔다고 말하고 싶다면 적상산의 아름다움이 곳곳에 절경을 이룬 서창코스를 빼놓을 수는 없다. 안렴대에서 능선을 타고 사천리쪽으로 내려오는 코스도 있으나 주로 하산로로 이용된다. * 적상산성 호국사비 ~ 시도유형문화재 제85호 (무주군)
적상산성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절인 호국사에 놓여 있는 비이다.
비는 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용을 새긴 머릿돌을 얹은 모습이다. 사면이 층암절벽으로 둘러싸여 천험의 요새를 이룬 적상산은 고려(高麗)때 도통사(都統使) 최영(崔瑩)과 조선(朝鮮)의 체찰사(體察使) 최윤덕(崔潤德)이 군사를 모아 훈련을 시키던 곳이다. 조정(朝廷)에서는 국난을 대비하여 적상산에 축성(築城)할 것을 여러차례 논의한 바 있었고 광해군(光海君) 2년(1610)에 순안어사(巡按御使) 최현(崔睍)의 상소(上疏)로 부분적인 수축을 하였다. 그후 사고(史庫)를 설치하여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과 『왕실족보(『王室族譜)』를 봉안하였다. 인조(仁祖) 21년(1643) 이조판서(吏曹判書) 이식(李植)이 왕명을 받고 산성을 둘러보니 산성의 수호가 허술하여 알아본 즉 정축난(丁丑亂)시 수군(水軍)과 승병(僧兵)이 흩어지고 없어 사고(史庫) 보존이 어려운 실정이므로 왕께 상주(上奏)하여 사찰 건립과 승군 모집을 허가받아 호국사(護國寺)를 창건하였다. 호국사 창건(創建) 비용(費用)은 전라감사(全羅監司) 윤명은(尹鳴殷)이 본인의 봉급으로 충당하였고 승려 각명(覺明) 등이 일을 맡았으며 현감(縣監) 심헌(沈憲)이 감독하여 완성하였다. 이에 호국사라고 이름 붙인 것은 삼장법사(三藏法師)의 경축기도(經祝祈禱)에서 딴 것이며 산의 모양을 따서 속칭 적상산이라 하였다.
▼ 순치이년이란 광해군2년을 뜻하는 말이다
▼ 안국사 당간지주
안국사 영산회괘불탱 ~ 보물 제1267호
석가가 설법하는 장면을 그린 영산회괘불인데, 괘불이란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하기 위해 법당 앞 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는 대형 불교그림이다.
길이 10.75m, 폭 7.2m 크기의 이 영산회상도는 석가불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다보여래, 문수, 보현보살이 있고, 왼쪽에는 아미타불, 관음, 대세지보살이 서 있다. 화면을 가득 채운 석가모니는 화면 중앙에 서 있는데 이목구비는 큼직큼직하며 건장하고 각진어깨, 노출된 가슴, 유난히 길게 늘어진 팔, 짧아 보이는 하체를 지녔으며 이렇게 크고 건장한 신체는 보는 이를 압도하는 듯하다. 인다. 녹색과 주황색을 주로 사용하였고 회색, 분홍 등 중간색을 넣어 은은한 분위기를 나타내며 구름, 연꽃, 단청문양 등으로 화려하고 환상적인 느낌을 연출하고 있다. 의겸 등 여러 승려 화가들이 그린 이 그림은 본존불을 강조하여 시선을 집중시키는 효과를 의도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조선 정조 16년(1792), 순조 9년(1809)에 뒷벽을 새단장한 기록이 있어 승려화가인 의겸이 활약한 영조 6년(1730)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지만, 보다 정확한 연대는 다른 작품과 비교해야 할 것이다. 이 영산회괘불도는 석가불을 위시하여 증청묘법 다보여래(證廳妙法 多寶如來)와 극락도사 아미타불, 그리고 협시인 관음·대세지보살과 문수·보현보살이 배치된 군집도 형식을 보이고 있다.
주존불인 석가불은 이목구비가 큼직큼직한 원만상의 얼굴에 묵중하고 건장한 신체, 유난히 길게 늘어진 팔, 짧아 보이는 하체 등에서 다소 불균형스러운 비례를 보여준다. 머리 부분은 정상 계주와 중간 계주가 큼직하게 묘사되었으나 이에 비해 육계는 나지막하며, 특히 두 귀가 큼직하여 괴체성을 보이고 있다. 통견의의 어깨에서 건장한 신체를 엿볼 수 있으며 거신형 광배도 큼직하여 화면을 압도시키고 있다. 이 괘불화는 화면중앙의 본존불인 석가불과 왼쪽의 다보여래를 중심으로 문수·보현보살, 관음·대세지보살이 횡대로 배치되어 있다. 이와 같은 구도는 조선시대의 대형 불전인 대웅전이나 대광면전 등에 세폭의 불화가 배치되는 형식을 한 화면에 담은 것으로 보이는데, 본존불을 강조하고 시선을 집중시키는 효과를 의도적으로 과시하여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본존불의 건장하고 각진 어깨, 노출된 가슴과 팔 등은 이상화된 불상으로서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지만 이러한 면은 채색과 문양에서 보충되고 있다. 즉, 녹색과 주홍색을 중심으로 한 회색·황색·분홍 등 중간 색조는 은은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으며, 연화문·모란·변형된 갖가지 꽃무늬, 단청문양처럼 도안화된 여러 문양들이 어우러져 영축산에서의 설법장면을 환상적으로 이끌어주고 있다. 10m가 넘는 대형 괘불도로서 임금과 왕비, 그리고 세자의 만수무강을 빌고 있으며 시주에도 많은 인원이 참가하였다. 화원은 1750년경 경남 고성의 운흥사(雲興寺)를 중심으로 전국각처에서 활약한 의겸비구(義謙比丘)가 참여한 것이 주목된다. 특히 화기의 「□□ 6년」이라는 연대는 옹정(雍正) 6년(1728)과 건륭(乾隆) 6년(1741)으로 추정되는데 운흥사 괘불탱(雲興寺 掛佛幀)(영조(英祖) 6년, 1730, 옹정(甕正) 8년)과는 구도와 묵중하고 괴량감있는 신체, 의습에서 보이는 번잡하고 도안화된 문양 등이 유사하여 양식비교의 필요가 있다. 정조(正祖) 16년(1792)과 순조(純祖) 9년(1809)에 후배지를 중수한 기록이 있어 의겸이 가장 활발히 활약한 시기인 1730년 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지만, 정확한 연대는 개암사 영산회괘불탱(開巖寺 靈山會掛佛幀)(영조(英祖) 25년, 1749, 건륭(乾隆)14년, 보물 제1269호)와 비교해야 할 것이다.
적상산성(赤裳山城) 종 목 : 사적 제146호
절벽으로 이루어진 산 위의 분지를 에워싼 대표적인 방어산성이다. 고려 후기 거란이 침입한 후 최영은 이곳에 산성을 쌓게 하고 창고 짓기를 건의했으며, 조선 세종 때의 체찰사 최윤덕도 반드시 보존할 곳이라고 건의한 바 있다. 고려 때 거란과 왜구의 침입에 이미 산성을 이용하여 인근 여러 고을의 백성이 피난한 사실에서 이 산성은 고려 후기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조선 광해군 2년(1610) 이곳에 조선시대 5개의 역사책보관소 중의 하나인 적상산사고를 설치하고 『조선왕조실록』과 『왕실족보』를 보관하였다. 실록전, 사각(史閣), 선원각, 군기고, 대별관, 호국사를 세웠고 임진왜란 이후 진(鎭)을 두어 산성을 수축하고 운영했다. 현재 성벽은 무너져 숲 사이에서 겨우 그 모습을 찾을 수 있고, 사각과 기타의 건물들도 그 터만이 남아 있다. 최근에 성 안에 저수지를 만들어 놓았다.
산성은 안국사 바로 앞에서 시작된다. 여기부터 복구가 시작됐다는 의미다. 산세가 험해서인지, 성곽높이는 그다지 높지 않았다.
설악산 대청봉에서 시작한 단풍 길은 메뚜기 뜀박질 하듯 부지런히 남하해 어느새 덕유산 자락까지 흘러왔다. 코레일은 전국의 단풍지도에 따라 설악산, 내장산, 지리산, 덕유산 등 전국의 단풍산으로 떠나는 다양한 기차여행상품을 내 놓았다. 당일 여행상품가격이 3~4만선으로 저렴해, 짠돌이 등산객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다.
적상산은 가을이 제격이다. 사면이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어 단풍 든 모습이 마치 여인의 붉은치마를 닮았다 해서 적상(赤裳)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무주군 적상면 일대를 차지하며 거대한 산군을 형성하고 있는 적상산은 사고지와 안국사, 산정호수가 있어 사철 찾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적상산의 제 모습은 가을에 빛을 발한다.
적상산의 가을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무주읍내에서 안국사가 있는 산정호수까지 차를 타고 가는 방법이고, 또 하나는 안국사 너머 서창마을에서 등산을 통해 오르는 방법이다. 두 가지 모두 각자의 매력을 갖고 있지만 단풍여행은 뭐니 뭐니 해도 등산이 최고가 아닐까.
보기보다 완만한 등산코스가 잘 닦여 있어 2시간이면 오를 수 있다. 산행 기점은 무주군 적상면 사천리 서창마을. 산 너머로 도로가 닦이기 전부터 등산로가 있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길로 올랐다. 산 아래에서 바라보면 거대한 하나의 바위 덩어리로 보이기 때문에 도무지 길이 있을 것 같지 않지만, 실제로 산으로 들어가면 몽실몽실한 흙길이 많다. 쿠션 좋은 카펫 위를 걷는 느낌으로 발끝으로 올라오는 촉감이 부드럽다.
볼거리도 많다. 최영 장군이 적상산을 오르다 큰 바위에 길이 막히자 차고 있던 칼로 바위를 내리쳐 길을 내고 올라갔다는 장도바위를 비롯해 장군바위·처마바위 등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계곡과 멀어지며 길은 곧바로 주능선으로 치고 오른다. 오르막을 오르는 동안 이마에 맺힌 땀은 올라온 수고에 보답이라도 하듯 선선한 가을바람이 단숨에 씻겨준다. 아마도 이 맛에 산을 찾을 것이다.
능선에서 만나는 첫 번째 갈림길은 정상인 향로봉으로 가는 길과 안국사 가는 길로 나뉜다. 등산하면서 정상을 밟지 않으면 아마도 뒷 맛이 개운치 않을 것이다. 이곳에서 향로봉은 약 300m 거리로 짧으니 다녀올 만하다. 하지만 정상이 주는 장쾌한 조망감은 없다. 나무에 가려 북쪽으로만 시야 트여 있어 아쉬움을 뒤로 하고 발길을 돌려야 한다.
적상산 최고의 전망대인 안렴대는 고려시대 거란이 침입했을 때 삼도 안렴사가 군사들과 진을 치고 피신했던 곳으로 천 길 낭떠러지가 아찔한 바위 봉우리다. 병자호란 때는 적상산 사고의 실록을 이 안렴대 바위 밑에 있는 석실로 옮겨 난을 피했다고 전해져 오는 천혜의 요새와도 같은 곳이다. 거침없이 펼쳐지는 탁 트인 조망 덕분에 코앞에 덕유산 주봉인 향적봉에서 중봉-남덕유로 이어지는 스카이라인이 펼쳐지고, 멀리 가야산과 마이산의 두 봉우리가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안렴대를 내려서면 해발 천 미터에 올라앉은 호국사찰 안국사가 있다. 높은 곳에 있는 만큼 절 마당에 서면 세상이 다 손에 잡힐 듯 발 아래로 내려다보인다.
안국사는 고려 충렬왕 3년(1277)에 월인 화상이 창건했다고 전해져 온다. 광해군6년(1614) 적상산성 내에 사각이 설치되고, 인조 19년(1641)에 선운각이 설치되어 적상산 사고로 조선왕조실록과 왕의 족보인 선원록이 봉안되었다. 이때 사고를 지키기 위하여 호국사를 지었으며, 안국사는 그 전부터 있던 절이었으나, 호국사와 더불어 이 사각을 지키기 위한 승병들의 숙소로 사용되어 안국사라는 이름이 붙었다. 지금의 산정호수인 양수발전소가 들어서면서 안국사는 호국사지로 옮겨져 지금의 안국사에 이르렀다. 주요문화재로는 보물 제1267호 영산회상괘불과, 유형문화재 제42호 극락전, 제85호 호국사 비, 사적 제146호 적상산성, 기념물 제 88호 사고 등이 있으며, 전 세계의 불상을 수집하여 전시하고 있는 성보박물관이 있다.
조선왕조실록과 왕실 족보인 선원록이 300여 년간 보관돼온 적상산사고 전시관에는 조선왕조실록과 왕실족보 복제본이 제작, 설치돼 있을 뿐 아니라 사고 전시패널과 디오라마 등 총 22종의 전시물이 설치돼 있어 일반인 관람이 가능하다. 무주군 관계자는 "적상산 사고지를 통해 국보이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돼 있는 조선왕조실록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물론, 우리나라 역사를 되새겨보는 계기가 마련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절벽 위에 솟은 적상산이 주는 또 하나의 매력은 산 정상에 호수가 있다는 것이다. 독특한 산 지형이 만들어 낸 적상산 분지(해발 800m)에 위치한 인공호수로 양수 발전소에 필요한 물을 담아두기 위해 만든 댐인데 ‘적상호’라 불린다.
가을빛으로 치장한 호수의 10월은 에메랄드 물빛이다. 한낮에는 붉은 단풍이 물에 반사되어 또 다른 장관을 연출한다. 이른 아침 물안개가 보글보글 피어오르면 산자락을 휘감아 흐르는 산안개와 어우러져 환상적인 자태를 뽐낸다. 호수 끝 전망대에 오르면 무주읍내와 덕유산 자락을 한눈에 감상 할 수 있다.
글_사진 최상석(ozikorea@hanmail.net)
[무주의 또다른 가을산] 곤돌라를 타고 단숨에 오르는 덕유산 향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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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먹을까] 그 중 ‘아름마을 순두부집(063-324-6140)’에 가면 직접 농사지은 콩으로 만든 손두부찌개와 청국장을 맛 볼 수 있다. 1인분 5천원.
[어디서 잘까] 황토로 지은 집으로 적상산 중턱 해발 500m에 자리하고 있어 시원스러운 전망과 함께 황토집의 효능을 체험할 수 있다. 2인 기준 3만원부터 10만원까지 다양한 크기의 방을 갖추고 있다.
문의처 : 철도고객센터(1544-7788) 무주군청 문화관광과(063-320-2647) 적상산 산행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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