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주장 ■
우리는 아직도 밸 없는 국민, 얼빠진 나라?
-자유무역협정 문안 틀린 번역 논란을 보면서-
유럽연합 여러 나라(EU)와 맺으려는 자유무역협정의 우리말 문안이 잘못 뒤쳐져 아주 엉망이라고 국회에서 말썽이 났을 때, 정부(외교부)는 ‘그럴 리가 없다’고 딱 잡아떼더니, 두 번 세 번 지적을 받고서야 ‘죄송합니다’, ‘송구합니다’라고 머리를 조아리는 것을 보면서,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좀처럼 믿어지지 않았다. 207 대문이나 잘못이 있었다니, 어찌 그럴 수 있으리요, 아마도 외무고시 출신 관리들이 그 좋은 머리로 작성하지 않고 싸구려 번역가들에게 돈을 아끼려고 맡겨서 한 것이겠거니 마음을 다잡고 있었다.
그런데 아직도 그 원인이 속 시원히 밝혀지지 않은 채, 한국과 미국 사이에 맺으려 한 우리 쪽 협정문 초안도 부실하여 다시 고쳐야 한다는 이야기가 터져 나오고, 하물며 이미 실행된 지 몇 해가 지난, 한ㆍ칠레 자유무역협정도 부실한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니라는 보도에는,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닌 더 근본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떠오른다.
벌써 십여 년이 훨씬 더 된다. 우리말로 소설을 쓰는 이름난 작가들 가운데, 우리말은 촌스럽고 국제어가 아니니, 아예 영어를 ‘나랏말’로 하자는 영어 공용어론자들이 나와 설쳐댔고, 이 나라의 소설가협회를 이끈다는 사람은 ‘내 소설이 영어로 씌어졌으면 더 많이 세계로 팔려나갔을 터인데, 우리말 소설이어서 덜 팔렸다’는 식의 우스꽝스런 말을 거침없이 해댔다.
그뿐인가. 3년 전 어느 대학교 현직 총장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우리 교육의 살 길은 영어몰입교육’이라고 외치다가 벌떼 같은 비판에 그 논의는 잠잠해졌으나, 영어교육 홍수 때문에 우리나라 국어교육은 떠내려가고 있다.
지난 해 어느 유력 신문의 심층보도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우리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읽기 쓰기도 제대로 못해 이해력이 형편없으며, 심지어는 이것이 심한 ‘정신질환’을 유발하는 큰 원인이 되고 있다고 보았다.
이번에 불거진 외교부의 조약문 초안의 부실은, 결코 상대국의 언어(예컨대 영어 등) 실력이 낮은 데 생긴 문제가 아니고 첫째, 우리말의 읽기 쓰기 능력 때문이요, 둘째는 우리나라, 우리 자신에 대한 스스로 업신여김[자기비하] 때문이요, 셋째 인간으로서 스스로를 가누려는 자신에 대한 자존심, 바꾸어 말하면 밸 없음, 밸 빠짐에서 오는 것이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 지도층 가운데 일부는 외국 글(영어)로만 잘 되어 있으면 됐지, 곧 사라질지도 모를 우리말글이 무슨 대수냐? 하는 어처구니없는 착각에서 오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더 긴 말이 필요하지 아니하다. 문화는 자존심이다. 우리말을 지키고, 가다듬고, 곧추세우지 아니하면 우리 얼은 깃들 데가 없어진다. 누가 끝까지 우리를 챙기고 살필 것인가. 이 땅의 모든 이들이여. 이를 어찌할거나. 이를 어찌할거나.
4344(2011)년 4월 13일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 김경희․이대로․박문희․허홍구
첫댓글 맞는 말씀입니다. 우리말을 찾아야 합니다.
고맙게 잘 읽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