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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시 모음> 김현승의 '부활절에' 외
+ 부활절에
당신의 핏자욱에선 꽃이 피어 - 사랑 꽃이 피어, 땅 끝에서 땅 끝에서 당신의 못자욱은 우리를 더욱 당신에게 열매 맺게 합니다.
당신은 지금 무덤 밖 온 천하에 계십니다 - 두루 계십니다
당신은 당신의 손으로 로마를 정복하지 않았으나, 당신은 그 손의 피로 로마를 물들게 하셨습니다
당신은 지금 유태인의 옛 수의를 벗고 모든 4월의 관(棺)에서 나오십니다.
모든 나라가 지금 이것을 믿습니다 증거로는 증거할 수 없는 곳에 모든 나라의 합창은 우렁차게 울려 납니다.
해마다 삼월과 사월 사이의 훈훈한 땅들은, 밀알 하나가 썩어서 다시 사는 기적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이 파릇한 새 목숨의 순(筍)으로.... (김현승·시인, 1913-1975)
+ 부활절 아침의 기도
주여 저에게 이름을 주옵소서. 당신의 부르심을 입어 저도 무엇이 되고 싶습니다.
주여 주여 주여 태어나기 전의 이 혼돈과 어둠의 세계에서 새로운 탄생의 빛을 보게 하시고 진실로 혼매한 심령에 눈동자를 베풀어주십시오.
'나'라는 이 완고한 돌문을 열리게 하옵시고 당신의 음성이 불길이 되어 저를 태워 주십시오.
그리하여 바람과 동굴의 저의 입에 신앙의 신선한 열매를 물리게 하옵시고 당신의 부르심을 입어 저도 무엇이 되고 싶습니다.
주여 간절한 새벽의 기도를 들으시고 저에게 이름을 주옵소서. (박목월·시인, 1916-1978)
+ 부활절에 드리는 기도
이 성스러운 부활절에 저희들의 믿음이 부활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당신의 뜻에 순종하는 그 마음이 살아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권력과 부정에 굴복하지 아니하고, 정의와 사랑을 구현하는 그 힘을 저희에게 주시옵소서. (피천득·수필가, 1910-2007))
+ 내 믿음의 부활절
지난겨울 얼어죽은 그루터기에도 새싹이 돕습니다
말라 죽은 가지 끝 굳은 티눈에서도 분홍 꽃잎 눈부시게 피어납니다
저 하찮은 풀포기도 거듭 살려내시는 하나님 죽음도 물리쳐 부활의 증거 되신 예수님
깊이 잠든 나의 마음 말라죽은 나의 신앙도 살아나고 싶습니다
당신이 살아나신 기적의 동굴 앞에 이슬 젖은 풀포기로 부활하고 싶습니다
그윽한 믿음의 향기 풍겨내고 싶습니다 해마다 기적의 증거가 되고 싶습니다 (유안진·시인, 1941-)
+ 유년의 부활절
배고팠던 어린 시절 십자가 빛나는 삶은 계란 햇볕 드는 책상 위에 모셔 놓고 노란 병아리 탄생을 기도했었다 졸린 눈 비비며 몇 번씩 확인하며 껍질 깨지기를 기다렸다는 것은 부활에 대한 확신을 가진 증거이지만 긴 세월, 예수를 믿었어도 그때의 믿음만큼 순수하지 못한 것 같다 이번 부활절엔 유년의 신앙 회복하고 싶다
"너희가 어린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니"...... (손희락·시인, 대구 출생)
+ 백합의 말
지금은 긴 말을 하고 싶지 않아요
당신을 만나 되살아난 목숨의 향기
캄캄한 가슴속엔 당신이 떨어뜨린 별 하나가 숨어 살아요
당신의 不在조차 절망이 될 수 없는 나의 믿음을
승리의 향기로 피워 올리면
흰 옷 입은 천사의 나팔 소리
나는 오늘도 부활하는 꽃이에요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부활 단상
꽃들이 다투어 피어나고 새들이 즐겁게 노래하는 이 새봄에 저도 완고함, 딱딱함, 고집스러움을 버리고
새로 돋아나는 연둣빛 잎사귀처럼 연하게 부드럽게 너그럽게 변화되게 하소서.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부활절
주님, 저로 하여 하루에 한 번씩 죽게 하소서
오늘 하루도 나의 죄 무거웠으니
당신이 가리키는 곳 애써 피하고
내 시선이 즐거운 곳에 머물렀나이다
당신이 인도하시는 음성에 마음의 빗장을 닫아
내 육신에 즐거운 말만 주고받았나이다
하루에도 수십 번 뱉었을 차가운 말과
하루에도 수십 번 돌렸을 내 차가운 등을
주님, 오늘밤 무릎 꿇은 침상에서 죽게 하소서
날이면 날마다 그 날의 밤이 내게는 깜깜한 무덤이 되게 하시어
어김없이 밝아오는 아침이 부활의 새벽이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주님, 저로 하여 하루에 한 번씩 새로 태어나는 기쁨을 알게 하소서 (홍수희·시인)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