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학기술부의 ‘2012년 학업중단학생 재정지원사업 공모’와
국무총리실의 ‘대안교육 발전방안’에 관한
대안교육연대와 대안교육부모연대의 성명문
“우리는 '학업을 중단한 이들'이 아니며
개별성을 존중하면서도 건강하고 공적인 가치를 중심으로
즐겁고도 진지하게 공부하고 있다.”
국가는 누구의 것인가? 국민의 것인가, 공무원의 것인가?
대안교육과 관련하여 정부 담당자를 만나면 항상 드는 질문이 이것이다. 왜 그리 고압적이고 당당한지 참으로 알 길이 없다. 아이들이 폭력 속에 죽어가고 학교를 뛰쳐나가는 일이 단 하루도 그치지 않는데 그런 교육 풍토를 만들고도 뭐가 그리 당당한지 의아하다. 공교육을 책임지고 있다는 자부심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온통 개인만의 성취와 좌절로 범벅이 된 그 교육이 어째서 공교육일 수 있는지도 정녕 모를 일이다.
한해에 7만명씩이나 학교 바깥으로 뛰쳐나가는 아이들을 더는 내버려둘 수 없어, 법적 근거도 없는 계획을 세우면서까지 이 아이들을 위한 지원사업을 하는 것은 매우 고마운 일이다. 우리들이 내는 세금에 비하면, 그리고 일반교육을 받는 학생들의 교육지원금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돈이지만, 몫돈이 들어 엄두를 내지 못하던 목공구와 같은 교자재 구입이나 시설물 개보수, 양질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그 돈이 요긴하게 쓸 수 있었기에 반갑고도 고마운 마음으로 잘 써왔다.
하지만 2006년부터 시행해온 '미인가 대안교육기관'이란 명목이 뭐가 그리 못마땅한지 재작년부터는 우리가 그토록 싫어하고 거부하는 '학업중단학생'이란 굴레를 덧씌워 자존감에 상처를 주기 시작했다. 정작 해당인들이 싫어하는 용어를 굳이 쓰려는 이유가 뭔가? 몇 번이고 하는 말이지만 우리는 학업을 중단하지 않았다. 우리가 중단한 것은 인격적인 교감을 느낄 수 없고 개별성이 존중되지 않으며, 생태, 평화, 자유, 인권, 공동체와 같은 건강하고 공적인 가치에는 무심한 채 그저 입시와 출세로만 몰아가는 제도 교육이었다. 그런 배움으로는 도무지 행복하지도 않고 우리 안의 부정성만 더욱 부채질하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삶을 시작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학업중단' 명목의 재정 지원은 우리에게 해당되지 않는 것이라 판단해 첫해에는 거절했다. 우리더러 학생들에게 돌아갈 지원금을 교사와 부모들이 중간에서 가로막고 있다며 몰아세우기도 했지만 우리가 오죽하면 그 어려운 살림살이에도 그냥 주겠다는 지원금을 다 마다하겠는가. 모욕을 견디며 돈을 받으라는 것은 이성인 사이의 대화가 아니다. 이듬해인 작년은 아예 우리가 만든 양식과 내용을 제시하고 용어도 '공교육 중단학생 재정지원사업'으로 고쳐서 일괄 제출하였다. 다행히 담당자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후속 협의를 통해 서로 존중하며 이 사업을 진행하기로 약속하였기에 상황이 진전되는 것 같아 감사하며 올해를 기대했었다.
하지만 후속 협의는 한 번도 없었다. 그 사이에 담당자는 두 번이나 바뀌어 뭐든 다 처음부터 설명해야되는 상황이 되었고 그럼에도 면담을 요청하여 대화를 통해 우려스런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애를 썼다. 그러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공무원들과 대화하는 것은 무의미한 것 같다. 9월18일, 교육과학기술부 일반알림 게시판에 오른 '2012년 학업중단학생 교육지원사업 공모계획'은 그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가 타협안으로 내어놓은 '학교 밖 청소년'이란 표현은 국가기관인 청소년정책연구소에서 공식적인 표현이고 경기도와 서울시를 비롯해 지자체들이 속속 관련 조례를 재정하며 공식명칭화하고 있는데 왜 유독 교육부만 외면하는가. 그렇게 굳은 태도로 변화무쌍하고 발전을 위해 몸부림치는 한 국가의 교육 현실과 미래를 어떻게 헤쳐나갈 수 있는지 걱정이 될 따름이다.
정말이지 공무원들의 국가와 우리들의 국가는 서로 다른 것일까. 사업의 취지와 목적보다는 잣구 하나에 마음 졸이며 그저 별탈없이 진행되기를 바라는 모습을 보자니 안스럽기까지 하다. 오랜 기간동안 대안교육의 이름으로, 사적인 이익을 내세우기 보다 좀더 건강하고 공적인 가치를 실현하려고 애써온 처지에서 보면 누가 공무원인지 헷갈리기조차 한다. 학교밖 학생을 지원할 법적인 근거가 없다고 둘러대지만 어차피 이 사업은 법적인 근거가 없는 사업이 아닌가? 학교 안에 있으나 밖에 있으나 모두 이 나라 국민이고 어디에 있든 배움의 의지로 학업의 길을 가고 있다면 마땅히 격려하고 지원하는 것이 국가의 덕목이 아닌가 진지하게 묻는다. 모든 국민에게 균등한 교육의 기회를 보장하고 공적인 내용으로 배움과정이 이뤄지고 있다면 그에 따른 공적 자원의 지원은 당연한 일이라는 소신을 갖기를 권하고 싶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말하고자 하는 것이 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이야기이니 귀담아 들어주길 바란다. 이번 사업계획서에 들어있는 이전에는 없는 이상한 문구에 관한 것이다. 지원제외시설 항목에 ‘정치적, 파당적 또는 개인적 편견을 교육하는 시설’을 왜 넣었는지 그 의도가 궁금하다. 지난 8월 27일자로 국무총리실 보도자료로 나온 <제11차 교육개혁협의회, '대안교육 발전방안' 확정 발표>에 그 표현이 나왔을 때 그 애매모호한 잣대로 정부의 입맛에 맞지 않는 대안교육현장을 길들이려 드는 것 아닌가 우려했는데 이제 그 실행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 문구가 우리의 상식을 넘어선 방식으로 구현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권고한다.
하지만 담당자도 이미 언급하였듯이 일부 정치적으로 편향된 언론이 그 관점으로 우리 대안교육현장에서 보편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생명 평화 가치 구현의 활동을 어처구니 없는 여론몰이로 낙인찍는 짓에 편승한다면 우리로선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다. 만에 하나 그 항목에 기대어 제외된 대안교육현장이 나온다면 진지한 해명을 요구할 것이다. 해명을 하지 않거나 그 해명이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이성에 기대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면 그 부당함에 대해 우리도 정당한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음을 미리 알린다. 그 대응방안에 대해 우리는 이미 다 합의해 두었다는 점도 함께.
사실과 진실에 바탕을 두고 이뤄져야할 교육행정이 억측과 편견으로 만들어진 풍문에 따라 오락가락한다는 소릴 우린 하고 싶지 않다. 우리도 비판과 비난보다는 긍정과 애정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더욱 아름다운 사회가 되도록 애쓰고 싶다. 그러니 우리의 걱정이 한낱 기우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게 해달라. 그리고 이런 일로 해마다 신경을 쓰고 아이들에게 돌아가야할 마음과 힘을 이런 식으로 낭비하고 싶지 않은 우리의 순수한 마음을 알아달라.
그러기 위해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대안교육현장을 지원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를 마련하는 일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몇 해 전부터 국회의 입법과정에 협력하고 있으며 이제 곧 결실을 눈앞에 두고 있다. 물론 그 법안이 우리의 이상을 다 안고 있는 것은 아니나 우리는 한꺼번에 모든 것을 다 얻을 생각으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기에 현실을 인정할 것은 인정하면서 협력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 제출된 새로운 법안에는 우려스런 점들이 있다. 지나치게 등록제를 강조하는 점이 특히 그렇다. 이는 국무총리실의 안과 통하는 점이 있다. 법적 인정과 재정 지원에 초점 맞춰진 것이 아니라 관리와 감독을 통해 자유정신과 공적 가치 실현의 의지로 가득 찬 대안교육현장을 길들이려드는 것이 분명해보인다. 대안교육의 탁월한 장점이 자율성과 창의성인데 그걸 망치겠다는 것이 아니라면 신중하게 접근해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하여간 이 모든 것이 기우이길 바란다. 우리도 따뜻한 사람들이다. 그 춥고 어둡던 날들 속에서도 이 온기로 아이들을 품어왔고 그 아이들은 행복감 속에서 밝게 잘 자라고 있다. 그러니 우리를 싸움꾼으로 몰아가지 말아달라. 우리의 아이들이 부당한 대우에 분통을 터뜨리며 어른들이 만들어가는 세상을 원망하지 않도록 해달라. 우리가 바라는 것은 그것 뿐이다. 돈도 필요치 않다. 인정도 필요치 않다. 인격을 모독하는 일만은 삼가달라는 것이 우리의 바람이다.
긴 말이었다. 짧게 줄여 알아듣기 쉽게 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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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교육현장은 ‘학업을 중단한 곳’이 아니다. 제도 학교 밖이지만 개별성을 존중하면서 건강하고 공적인 가치들을 중심으로 즐겁고도 진지하게 공부하고 있다. 그러니 ‘학업중단학생’이란 말은 쓰지 말아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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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지원 제외시설 항목에서 첫째항(정치적, 파당적 또는 개인적 편견을 교육하는 시설)과 마지막 항목(기타 시설 운영과 관련하여 수사 중이거나 사회적 물의를 야기한 시설)을 빼거나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합리적인 표현으로 고쳐라. 특히 ‘정치적 편견’은 지우고 ‘사회적 물의’도 ‘재정과 도덕성’에 한정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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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우리는 대안교육의 법적 근거를 만드는 과정에서 공적인 가치의 교육이라는 원래의 취지에 맞게 구현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이는 제도 교육의 안팎을 넘어 모든 국민이 지닌 교육기본권을 건강하게 보장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늘은 하루가 다르게 맑고 환하게 푸르러지며 아름다운 가을을 노래하고 있다.
지상에서도 그러기를.
2012년 9월 26일
대안교육연대, 대안교육부모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