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적 측면에서 가치가 높은 100년 된 목조 가구식 한옥 성당 건축물
100여 년 전에 지어진 목조 가구식 한옥 성당으로 현재 6칸의 공소로 이루어져 있다. 건물의 완성도는 높지 않으나, 지역 교회사적 측면에서 가치가 높으며, 건립 당시 원주 지역에 있던 공소 중 거의 유일하게 남아 있다. 1900년대의 한옥 공소의 희소적인 측면에서도 가치가 있다. 1910년 11월에 공소 축복식을 가졌으나, 실제로 공소가 설립된 연도는 좀 더 거슬러 올라간다.
공소 신자들 사이에 전해 내려오는 구전에 따르면 대안리 공소는 1892년께 설립됐고, 지금의 공소 건물은 1900~1906년 사이에 세워졌다. 뮈텔(Mutel, 閔德孝,1854~1933, 아우구스티노) 주교가 ‘진짜 성당’이라고 했을 만큼 당시로서는 성당이라고 할 만큼 훌륭하게 지어진 건물이었다. 원주교구에서 대안리 공소가 설립된 1892년 이전에 설립된 본당은 풍수원 본당밖에 없다.
이 시골 마을에 그토록 일찍 공소가 설립된 까닭은 대안리 일대는 교우촌이었기 때문에 박해 시대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대안리 근처 덕가산에 숨어 살다가 신앙의 자유가 주어지자 지금의 공소가 있는 마을로 내려와 살면서 교우촌을 형성하였기 때문이다. 공소는 100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많은 풍상을 겪었다. 원래 초가지붕이었으나 1950년대에 초가를 걷어 내고 기와를 얹었다.
그러나 나무 기둥에 흙으로 벽을 바른 공소가 견디기에는 기와지붕이 너무 무거웠다. 그래서 1970년대 들어 지금과 같이 슬레이트지붕으로 바꿨다. 이에 앞서 1960년경에는 공소를 거의 두 배 가까이 확장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실내는 마룻바닥이다. 천장은 전통 한옥이 그렇듯 건물 뼈대인 나무기둥이 그대로 드러난다. 천장이 높아 여름에는 시원한 느낌을 준다. 제대 뒤편에는 제대와 연결된 사제 방이 따로 있다. 과거 일 년에 두 번 판공성사를 주러 오는 사제가 묵는 곳이었다.
대안리 공소는 한국 전쟁 때 인민군 막사로 사용됐고, 전쟁이 끝난 후에는 미군 구호물자를 나눠 주는 배급처가 되기도 했다. 공소도 사람처럼 그동안 숱한 풍파를 겪었으며, 수차례 보수 공사를 받았다. 문화재청은 2004년 12월 31일 대안리 공소를 등록 문화재로 지정하면서 “1900년대 초에 지어진 목조 가구식 한옥 성당 건축물로, 교회사적 측면에서 가치가 높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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