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獻金)인가, 모금(募金)인가? - 교회갱신의 실제 (3)
2005년 6월 1일 박정식 목사 (섬기는교회)
돈은 놀라운 능력과 마력을 갖고 있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것은 거의 신처럼 군림하며 사람들에게 종교적인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오직 했으면 주님께서도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듯 돈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을까? 이 말씀으로 비춰보면 자칫 교회가 그럴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본다.
불신자나 신앙생활을 중단하고 낙심한 사람들이 제기하는 한국교회 문제의 상당수는 바로 돈 문제와 연관이 되어 있다. 헌금의 정신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청지기로서의 삶임을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다른 문제도 그렇지만 항상 성경의 원칙과 그 실천 사이에 있는 커다란 간격이 우리의 아킬레스건이다. 두 말할 것도 없이 이 땅에 있는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완전함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이나 교회도 그렇게 완전하게 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세상이 우리에게 절망하며, 우리를 조롱하는 것은 기본적인 원칙도 지키지 못하는 부끄러운 모습 때문이다.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정성과 감사함으로 겸손하게 드렸던 헌금생활의 모습이 재정충당을 통한 교회성장, 교회 세력의 과시욕, 건축 따위를 위해 강요하거나 인위적으로 계획된 모금으로 변질되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것은 어릴 적 주일이 되면 지폐를 다리미로 정성껏 다려서 하나님께 바치는 헌금은 깨끗하고 아름답게 바쳐야 된다고 일러주시던 부모님의 말씀이다. 또한 부흥사경회나 각종 예배와 집회 시간을 통해 어른들이 바치던 헌금은 그야말로 가난에도 불구하고 감사를 담아드리던 겸손이 배어있는 헌금이었고 연보였다.
그래서 우리는 처음부터 주보에 깨알 같은 헌금 금액은 물론이지만 명단도 싣지 않았다. 헌금에 대한 행정이나 확인이란 명목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된다. 헌금 착오가 있을 리 거의 없고 정 문제가 되면 개인적으로 회계에게 확인하면 될 일 아닌가. 게다가 예배시간에 축복 기도한다고 헌금봉투의 이름과 내역을 낱낱이 불러가며 기도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 아닐까. 우스개 소리로 "축복 기도하는 목사님부터 눈을 뜨고 기도하니 하나님이 받으시겠는가?"란 말도 있지만... 이것은 자칫 바리새인들이 보여준 인간의 의를 부추길 가능성도 많아 보인다. 그리고 그 시간 비중이 예배시간에서 얼마나 많이 차지하고 있는지.
만일 주보에 이름과 금액이 기록되니까 헌금을 잘하고 또 교회 재정 수입에도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한다면 이것은 너무 슬픈 일이다. 은혜와 감사로 하나님께 드려지는 헌금의 정신이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교회에서는 처음에는 일부러 가능하면 무기명으로 헌금할 것을 권장했다. 물론 이름을 적어내는 것을 금지한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께만 헌금한다는 정신을 가르치고 자신의 신앙양심이 헌금생활의 기초가 됨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였다.
신약의 헌금정신은 완성된 복음의 은혜 안에서 십일조가 아니라 전체를 드리는 정신과 자세를 명령하고 있다. 규범적 차원에서도 구약의 십일조 이상의 수준을 마땅히 요구하고 있다고 본다. 제도, 규범, 율법이 아니라 은혜와 헌신, 하나님의 주권 및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는 목적이 신약의 헌금정신이라고 본다. 덧붙여 예루살렘 공동체가 보인 성령 안에서의 수평적인 코이노니아를 위한 사랑의 나눔도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 삶의 본질로서 제시되고 있다.
우리교회에서 중요하게 강조되고 실천된 헌금중 하나가 바로 나눔의 헌금이다. 나눔의 헌금이란 공동체 안의 지체들 중에서 어려움과 가난을 겪는 사람이나 반대로 기쁨과 축하할 일이 있는 지체를 위해 자신의 이름을 적지 않고 교회에 받을 대상과 내역을 적어내면 교회는 그 사람에게 전달하는 심부름만 하는 헌금이다. 예를 들면 필자에게 어떤 성도가 "친정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른 사모님을 모시고 나가셔서 맛있는 식사하시고 커피도 드시면서 위로해 주세요."라고 나눈 헌금이다. 물론 나는 누가 이 헌금을 나누었는지 모른다. 그저 감사하고 사랑의 빚을 졌으니 나도 다른 지체에게 사랑을 되갚을 것을 깊이 생각할 따름이다. 하나님께 자신이 복 받기 위해 하는 헌금은 이보다 한결 쉬울지 모르나, 표시 안 나며 내가 했는지를 드러내지 않는 헌금을 오직 사랑으로 하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작정헌금은 또 어떤가? 교회가 큰 규모의 헌금을 위해 가장 손쉽게 사용하는 방법이 작정헌금이다. 그러나 이 작정헌금의 폐단은 심각하다. 반드시 참여해야 하는 강제성 그리고 헌금액과 헌금자가 노출되는 위험성과 작정금액을 채워야 한다는 부담감 등이다. 우리교회에서도 이 문제로 한 때 고심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작정헌금의 방법과 정신이 성경의 헌금정신에 어긋나는 것 같아 유기명 작정헌금이나 제직회에서 작정하는 방식을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헌금정신을 살리면서도 교회가 정말 중요한 헌금을 위해 특별하게 헌금해야 할 필요가 꼭 있을 때에만 무기명 작정헌금 제도를 도입했다. 무기명 작정헌금이란 헌금의 목적과 목표액만 제시하고 그 참여는 개인이 무기명으로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모든 사람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며, 목표액에 대한 부담도 한결 덜할 수 있다. 그리고 누가 얼마 했는지도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아무튼 헌금은 신앙의 지표이며 은혜에 대한 증거가 된다. 그러나 우리는 아름답고 귀한 헌금의 정신과 방식을 자본주의 사회의 물신 숭배 가치에 의해 오염시키고 있지 않은지 진지하게 생각할 일이다. 헌금이 시험과 실족의 빌미가 되는 것이 아니라, 너무 기뻐서 감사함으로 드리는 귀한 삶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옥합은 깨어지기 위해 존재하며, 향유는 붓기 위해 준비되어야 한다. 헌금은 우리 모두의 주님을 향한 사랑의 고백과 은혜를 담아 드리는 최선의 것이 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이에 못지않게 교회의 헌금 사용과 관리도 성경의 정신에 철저하게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그릇된 헌금과 자본주의적 사고로부터 해방되어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임하는 천국의 복을 누려야 할 것이다.
첫댓글간단합니다 우리는 지금 목사를 믿는거지 하나님을 믿는게 아닙니다 목사가 이름을 불러주고 기도 제목을 불러 줘야 헌금을 한것이 되니까요 한국 교회에서 이름 부르지말고 무명으로 하고 기도 제목 쓰는 곳을 없애면 진짜 헌금이 어떤 것인지 궁금해 하시는 성도가 많을 것 입니다 꼭 필요한것입니다
첫댓글 간단합니다 우리는 지금 목사를 믿는거지 하나님을 믿는게 아닙니다 목사가 이름을 불러주고 기도 제목을 불러 줘야 헌금을 한것이 되니까요 한국 교회에서 이름 부르지말고 무명으로 하고 기도 제목 쓰는 곳을 없애면 진짜 헌금이 어떤 것인지 궁금해 하시는 성도가 많을 것 입니다 꼭 필요한것입니다
꼭 나아가야 할 길인 줄 압니다, 감사합니다
獻金하는 교회보다 募金하는 교회가 더 많을 것입니다. 담임목사(출판기념헌금, 회갑축하헌금)의 말 한마디로 각종 명목의 헌금이 생기니까요.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헌금도 아니고 모금도 아니고 목사에게 착취 당하는겁니다.
때부자가 아니라, 뱃살에 기름이 철 철 넘쳐 흐릅니다 ^^ . 일부 목사님들은 아직도 청렴한 삶을 살고 계심^^
회계 결산을 보니 목사님이 젤 부자더라구요~` 목사님들 초심으로 돌아가야 됩니다...일부겠지만 목사님들이 너무 풍요롭고 고귀하게 보이면 안됩니다..슬픔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