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선조들과 함께하는
4주간에 걸친
도보성지순례
베티성지~ 연풍성지구간
총84.6km 중
둘째주간: 진천성당에서
증평성당까지(23.3km)
1구간: 진천성당 --> 초평공소(9.3km)
2구간: 초평공소 --> 증평성당(14.0km)
위치: 충북 진천군 진천읍 교성리 42 (진천본당)
진천성당 성모동산 십자가 상...........
도보성지순례를 시작하며................
자비로우신 주님 신앙선조들의 빛나는 덕행을 기리며 126위 하느님의 종
시복시성과 최양업 토마스 신부를 성인 반열에 들게 하소서.....
신앙선조들과 함께 하는 도보성지순례를 통해 주님께는 영광이되고
저희에게는 유익이 되게 하소서...
우리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성모동산 십자가의 길...... 기도하며.....
성당 앞 기도하시는 예수님
진천은 병인 박해때 베티 교우촌의 순교자들이 거쳐간 신앙의 증거터이다.
진천성당 전경.......
하느님의 종 김원중 스테파노, 장 토마스 ,오반지 바오로 ,순교자 송 베네딕토와
그의 아들 베드로, 며느리 이안나, 안나의 아이 등... 이 순교하였다
미사중........... 신부님 강론 (10시 30분)
미사중.......... 영성체.....
초평공소로 도보순례 출발 (오후12:15)
진천성당--> 초평공소 (9.3km)
저넘어, 산넘어 ...... 길가에 억새풀이 바람에 한껏 몸을 움직인다
순례중 내내 하느님의 종 126위 시복시성과 최양업 토마스 신부 성인 반열에
들게 하소서............ 기도하며...
청양 다락골 최양업 토마스 신부 생가터
최양업토마스 신부는 청양 다락골에서 순교성인 아버지 최경환 프란치스코와
어머니 이성례 마리아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초평공소로 도보순례 이동중...............
1835년 11월22일에 조선에 입국한 첫 프랑스 사제인 모방나 베드로 신부는 조선에 입국하자마자
조선말을 배우기도 전에 방인 성직자를 양성하는 사업부터 시작하였다
초평공소 도보순례 이동중............ 나란히 나란히 전봇대와 느티나무....
나 신부는 3명의 충청도 출신 소년들을 신학생으로 선발 하였다.
1836년 12월 3일에 3명의 신학생은 서울을 출발하여 28일에 변문에 도착 하였고
중국 대륙을 횡단하여 1837년 6월 7일에 마카오에 도착하였다.
초평공소 도보순례 이동중............... 오갑교를 건너며..........
조선 신학생들은 본래 말레이시아 페낭 신학교에 가기로 되어 있었으나 그 당시
형평상 파리 외방선교회 극동 대표부에 임시로 설치된 신학교에서 1842년 초까지
5년간 공부하였다.
최양업 토마스 친필서한
1838년 11월에 동창 최방제가 사망하였다. 이때 최양업과 김대건은 벌써
라틴어 성경을 읽을수 있었다고 한다.
초평공소 도보순례 이동중.............
1844년 12월 15일 이전에 최양업 김대건은 소정의 신학교 과정을 모두 끝내고
고 베르뇌 주교로 부터 삭발례를 비롯하여 부제품까지 받았다.
이들은 만24세 가 못되서 사제 서품은 받지 못하였다.
2년후 ....
초평공소에 도착하다.............. 오후 2시 30분착
선교사님 께서 반갑게 낯선 순례자를 맞이하여 주신다.
막 어디를 가시려는 듯.... 차량 봉사인듯....
따뜻한 커피를 손수 끓여 주시고 편히 쉬고 순례하기를 권장하신다.
정말 감사하고 고마웠다.
초평공소 입구.............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십시오
늘 기도하십시오
항상기뻐하십시오
초평공소 성모님 상....................
김대건 신부님은 아깝게도 13개월 동안만 사제로 사셨는데 그나마
2개월은 조선에 입국하기 위해 황해바다에서 보냈고 1846년 5월 12일에
순위도에서 붙잡혀 4개월은 감옥에서 보내시다 새남터에서 순교하였다
초평공소 성모님상...................
최양업 신부님은 12년 동안 유일한 조선인 사제로서 조선 8도중 5개도에
산재되있는 127개나되는 교우촌을 담당하였다.
박해를 피해서 사람이 살수없는 골짜기에는 적게는 두어명에서
많게는 50명 정도씩 흩어져 사는 근6천명이나 되는 신자들에게...
초평공소 제대앞.................
모든 성사를 집전 하시느라고 해마다 7천리를 걷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 결과 1859년에는 관할 구역에서만도 예비자가 1천명이 넘어
복음화 사업이 절정에 달했다.
1861년에 조선 대 목구 신자총수는 18.035명 이었다.
초평공소 제대앞에서........... 기도하다
전지전능하신 하는님
126위 하느님의 종 시복시성과
최양업 토마스 신부를
성인 반열에 들게 하소서.....
증평성당으로 도보순례 이동중 (오후 4시)
초평공소에서 -->증평성당(14.0km)
초평공소 제대앞 꽃꽂이 ...........
은총가득담은 사랑의 꽃바구니
증평성당 도보순례 이동중.............
최양업 신부는 엄청난 공소 순회 외에도 교우들을 위해
책을 저술하는 일을 맡았다.
증평성당으로 도보순례 이동중...........
그는 신자들의 일과 기도서, 즉 천주선교 공과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일과
천주교 교리를 문답형식으로 편찬한 선교요리 문답을
재검토하는 일을 맡았다
증평성당으로 도보순례 이동중.............. 초평 저수지를 지나며....
그뿐 아니라 신자들을 위해 중요한 교리를 4.4조의 가사로 지어서
보급시켰다.
이것이 이른바 천주 가사이다.
요리 강령........... 프랑스에서 발행된 그림 교리서
서문에서 " 선교 도리를 묻고 대답함과 상본으로써 풀어 가르치는 것"
이라고 말함으로써 이책이 그림 교리서임을 밝히고 있다.
모두 68폭의 그림이 실려 있다.
선교 요리............. 문답식으로 풀이한 교리서
한국천주교회가 최초로 (1864년) 채택한 교리서
성교감략........... 성경을 역술한 해설서
1866년 중국 북경 교구장인 들라프라스주교가 성경을
역술한 해설서 한글본 <선교감략>은
1883년 조선 교구의 보좌 주교였던 블랑신부에 의해 간행
어화 벗님네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