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 2009. 2. 27.
그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마태 9,14-15)
오늘 묵상----
오늘은 예수님의 고통을 묵상하며
단식과 금육을 지키는 ‘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입니다.
며칠 전에 버스를 타고 학교 졸업식에 다녀오면서 가로수에 싹을 틔운 나무들을
적지 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모진 추위와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그 연약한 싹을
밖의 세상으로 밀어내느라 온몸으로 고통으로
고단한 겨울로 봄을 준비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어찌보면 사순시기에 주님의 수난과 십자가의 고통에 동참하는 것도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그분을 향해 끝없이 손을 내밀고자
그리하여 다가가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기인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단식에 대한 중요한 말씀을 오늘 예수님께서 들려주십니다
주님의 수난에 동참하는 단식입니다. 단식 자체에 매달리지 말고
예수님과 연관된 '신앙 행위'가 되도록 하라는 가르침입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눈에 보이는 일에 잘 나서고
보이지 않는 부분은 해도 표시가 나지 않으니 나서지를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은밀하신 것을 좋아하셔서
숨은 것을 다 보시니 우리는 외적인 것에 너무 치중하지 않아도
됩니다. 겉치레에만 신경을 쓰는 우리, 형식적인 것 때문에
망가뜨리고 망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돌아보게 됩니다.
외적인 것만 화려하고 순수한 마음이 없는 곳에는
신랑이신 예수님의 자리는 없습니다.
그러니 늘 떠나가실 수 밖에 없느 것입니다.
하느님과 나의 관계가 제대로 된 사랑의 관계, 믿음의 관계
일치의 관계인지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됩니다.
자신의 십자가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십자가의
참된 의미를 깨달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엘리묵상**
사랑의 단식
-정순옥 수녀-
신랑과 함께 기뻐하는 모습은 우리의 삶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
수녀회에 입회하여 얼마 안 되었을 때 부총장 수녀님이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그때 한국 공동체에 프랑스 수녀님 세 분이 계셨는데 그 중에 종신서원을 하고
한국에 오신 지 1년여 지난 가장 젊은 수녀님에게 부총장님의 방문과 만남은
아주 특별한 것 같았습니다. 부총장님의 방문을 받은 수녀님은 밥을 먹지 않아도 배부른,
부족한 것이 없을 정도로 행복해 보였습니다.
바라던 것이 이루어진 순간에 체험하는 충만함은 잠시라 해도 소중한 것입니다.
이주 노동자들을 위한 활동은 종종 시간을 다툴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망 사건이나
급한 일이 생기면 식사할 겨를도 없습니다. 함께 일하는 수녀님들,
특히 안 신부님이 끼니를 거르고 늦은 시간까지 일하는 모습을 보면 예수님을 닮았다는
생각과 함께 헌신에 감동을 받습니다.
식사할 겨를도 없으신 예수님과 제자들의 모습, 그리고 지친 예수님이 사마리아 우물가에서
여인에게 물을 청하신 것을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다른 고을에도 가야 한다며 제자들을 재촉합니다.
이것은 음식을 먹는 일보다 하느님의 일(선행)을 우선으로 삼는 사랑의 단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순시기에 교회는 예수님의 단식을 따르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온 세상 교회가 사순절 동안 금욕과 단식을 한 결과 고통 받는 사람들과 나눔의 연대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하며 감사를 드립니다.
옛말에 ‘서러움 중에 가장 큰 서러움이 배고픈 것’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북한과 아프리카의 굶주린 아이들을 생각하며 음식을 낭비하지는 않는지
되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작은 애덕이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다면 그것이 기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