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길게 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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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사회> 수전 프라인켈 지음/ 김승진 옮김, 2012, 을유문화사
매주 화요일 쓰레기 분리수거하는 날이면 나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박스에 한 박스의 종이들과 한 박스의 플라스틱들(유리병 포함)을 가져다 버린다. 매주 버려도 자꾸 쌓이고, 그래서 계속 버리게 된다. 자꾸 사들이기 때문에 버리는 것이지만 오래도록 쓸 수 있는 것임에도 한 번 쓰고 버리는 플라스틱들이 너무나 아깝다는 생각을 많이 했고, 언젠가부터 저 분리수거된 플라스틱들이 어떻게 재활용될까 하는 궁금증과 제대로 재활용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가지고 있었다. 썩지도 않는다는데, 저 플라스틱들은 어떻게 그 존재를 마감할까 하는 막연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을 때, 이 책의 소개가 내 눈에 들어왔고, 바로 구입했고, 몰입해서 제대로 읽었다. 나의 궁금증과 의구심을 해소시켜 주는 내가 찾고자 하는 바로 그 책이었다.
이 책에서 플라스틱이라고 말하는 것은 여기서 다 거론할 수 없을 정도로 종류가 다양하고 많다. 비닐, 나일론, 페트병, PVC, 아크릴, 페놀수지, 폴리우레탄, 폴리에틸렌 등등. 이러한 플라스틱들은 현대인에게 엄청난 혜택을 가져다 준 물질이다. 가볍고 부드럽고 값이 싸고 可塑性(가소성)있는 것이 특징이다. 可塑性이라 함은 “고체가 어떤 힘을 받아 형태가 바뀐 뒤, 그 힘을 없애도 본디 모양으로 돌아가지 않는 성질”인데, 영어로 plastic이라 함은 가소성을 의미할 정도로, 가소성 면에서는 타 물질의 추종을 불허한다. 접시와 같은 모양의 圓盤(원반)과 같이 것은 原型(원형)에 원재료를 넣어 찍어내기만 하면 된다. 플라스틱의 활용도가 무궁무진하여 우리의 삶의 많은 부분을 지탱해 주고 있다. 우리 주변에 플라스틱 제품들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컴퓨터 자판부터 시작하여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플라스틱이 없었다면 인류가 더 많이 불편하고 고단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지금에 와서 플라스틱이 안 좋은 물질이어서 배척하자는 주장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잘 활용해야 하는데...
비닐이 없었다면 농산물은 제철에만 나오게 되며, 보관이 힘들기 때문에 농수산물들이 한꺼번에 출하되어 값은 떨어지고, 저장하기가 힘들고 선도가 떨어져 음식물 쓰레기는 더 쌓였을 것이다. 비닐로 된 일회용봉투가 없었다면 종이봉투가 대신했을 터인데 더 무겁고 투박해서 더 많은 노동력과 운반비용이 필요했을 것이다. 플라스틱이 종이와 나무를 대신하게 되면서 숲이 더 잘 보존되었을 것이다.
내가 어렸을 적인 1960년대에 내가 사는 시골마을에 농사용 온상용 비닐과 비닐로 만든 비료부대가 들어오고부터 인류역사와 같이 했던 ‘쓰레기제로’의 시대는 끝이 났다. 그것들은 벼농사를 지으면서 짚문화를 형성하고 있던 우리 마을에 recycling (재생 이용, 재활용, 재순환)이 안 되는 첫 번째 물질이었다. (저자가 사는 미국에서는 이 시기가 우리보다 한세대가 빨라서 저자의 증조할머니세대라고 서술하고 있다.) 그 비닐은 처음에는 농사혁명을 이룩하게 한 물질이었고 귀해서 대접받았지만, 지금은 논을 빼고는 밭농사를 짓는 온 들판이 비닐로 덥고 있는 실정이고, 그 비닐은 바람에 날리기도 하고, 땅속에 묻혀 흙을 오염시키고 있다.
플라스틱의 최대의 문제는 썩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생물이 물질을 분해시켜야 썩는 것인데 미생물이 플라스틱에서는 살 수가 없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생산된 그 많은 플라스틱, 우리가 쓰다가 버린 일회용 라이터로 대변되는 그 플라스틱은 어디에 있는가? 난지도에도 수도권쓰레기 매립장에도 쌓여 있겠고, 강바닥 바다바닥에도 가라앉아 있겠지만, 조류에 의하여 태평양 한가운데에 떠내려가 환류에 의하여 형성되어 천천히 시계방향으로 소용돌이치는 거대한 쓰레기 섬에도 있을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그 장면은 정말 끔직했다.
“갑판에서 대양의 수면을 보니, 원시의 대양이 있어야 할 그 곳에 내 눈이 볼 수 있는 최대한도까지 플라스틱이었다... 하루 중 어느 시점에 보더라도 모든 곳에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떠다니고 있다. 병, 병뚜겅, 랩, 조각들이.”
플라스틱이 나무와 짚과 같이 썩지 않으니 분리수거와 재활용은 최대의 과제가 된다. 우리 아파트에서 분리수거 되는 플라스틱들은 분류작업을 거치고 잘게 부서져서 아마도 ‘세계의 공장’으로 일컬어지는 중국으로 갈 것이고(요즈음은 베트남 쪽으로도 간다고 한다) 거기서 품질이 안 좋아도 되는 제품으로 재가공되어 전 세계로 수출될 것이다. 이를 저활용(다운사이클)이라고 한다. 우리가 플라스틱을 싸게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이 중국의 제조업체들 덕분인데, 더 정확히 말하면 그 공장들에서 살인적인 노동여건 속에서 일하고 있는 중국의 저임금 노동자들 덕분이다. 플라스틱을 이런 식으로 재가공 되는 것도 많겠지만 더 많은 것은 버려져서 돌아다니거나 쓰레기로 쌓여 있을 것이다. 유럽과 같은 환경 선진국일수록 재활용률이 높으며, 앞으로 기술이 발전할수록 더욱 재활용률은 높아지고 재활용체계도 오염을 일으키지 않는 방식으로 체계화 될 것이다.
지금은 주로 선진국들만 플라스틱을 많이 사용하지만, 앞으로 중국이나 인도와 같은 엄청난 인구를 가진 나라들과 아프리카와 같은 저개발 국가들이 지금 선진국과 같이 플라스틱을 마구 사용하는 날에는 원유로 대표되는 지구의 보존자원의 고갈은 앞당겨질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되면 또한 한계상황 속에서 사는 가난한 나라의 백성들은 맨 먼저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플라스틱들은 썩지는 않지만 잘게 쪼개지고 해체된다. 플라스틱이 제조되는 과정에서 더해지는 각종의 화학 첨가물들은 이 분해과정에서 떨어져 나가게 되는데, 이것들과 미세한 플라스틱 조각들은 인간과 어류를 포함한 동물의 몸속에 들어가서 축적되어 오염과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많은 고래, 상어, 바다거북이, 그리고 다른 동물들이 플라스틱 쓰레기를 먹고 죽는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암이나 불임(不姙)이 많아지는 것은 이러한 것들 때문이리라!
문제는 우리의 소비행태이다. 이 땅에서 제철에 나오는 것을 먹으면 보관도 운반도 문제가 없는데, 다른 먼 나라에서 온 것이거나 계절에 관계없이 먹으려 하니 비닐과 플라스틱의 사용은 끝이 없다. 예를 들어 5~6월에 출하되는 제철 딸기 보다 이르게 출하되는 딸기가 더 맛있고 더 싼데 그 딸기들의 재배를 위하여 온상용 비닐의 사용은 필수적이다. 또한 예전에는 수돗물을 그냥 먹거나 끓여서 먹다가 지금은 페트병에 들어 있는 물을 먹고 캔이나 합성수지에 담긴 음료수, 커피, 술을 마신다.
돈벌이를 하기 위해 폐지를 주우러 다니는 분들이 종이의 재활용에 기여하듯이, 플라스틱의 재활용을 위하여 플라스틱을 수거하는 업체의 노고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 한 예로 매년 시세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지만 재활용품 수거업체는 2160세대가 사는 우리 아파트 단지에서 잘 분류된 옷가지와 종이를 포함하여 재활용쓰레기를 가져가면서 한 달에 800만원을 정도를 내고 있다. 한 가구당 한 달에 평균 약 3700원의 수입을 얻고 있는 셈이다. 재활용 쓰레기로 돈벌이를 하고 있는 셈이다. 예전에 우리가 못 살던 시절에는 미군부대 쓰레기가 돈이 되었듯이, 지금의 우리의 재활용 쓰레기도 돈이 되고 있다.
우리를 플라스틱과 뗄 수 없는 관계로 만든 요인들은 거대한 석유화학업계(우리나라는 원유를 수입하지만 가공하여 석유화학제품을 수출해서 엄청난 이득을 보는 나라이다), 대량의 소유와 소비의 문화, 공동체 지향적 의식의 약화 같은 것을 들 수 있겠지만, 이것들은 지구(자원)에 한계가 없다고 가정하는 정치문화 속에서 발달한 것이다. 지구가 감당하기 힘든 한계상황이 눈앞에 다가오기 시작하면, 대체물질이 개발될 수도 있지만, 그 때에는 어쩔 수 없이 우리의 사고와 행동 방식을 바꿀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 단계에서 플라스틱이 없는 시절로 되돌아가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다. 플라스틱에 대한 문제점을 잘 통찰해서 실행해 나가야 하는데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썩는 비닐, 친환경적 플라스틱이 나오고, 재활용 시스템이 훨씬 체계화되고 있다. 마트에서 비닐봉지를 공짜로 주지 못하게 한다든지,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에게 플라스틱을 수거하게 하는 조치들은 진일보한 조치들이고 긍정적인 효과도 발휘하고 있다.
이 책은 요즈음의 내 관심사인 절약과 녹색에 대한 내용이었다. 저자는 철저하게 취재하고 자료를 수집했으며, 내용을 지루하지 않게 전개하였다. 번역도 전문지식이 많이 필요한 분야임에도 매끄러웠다. 내가 고등학교 때에 화학 과목을 싫어해서 화학의 기초지식이 짧은 것이 이 책을 이해하는 데에 가장 큰 난점이었지만, 좀 두꺼운 책임에도 뒤로 가도 흥미가 떨어지지 않아서 책이 끝나가는 것이 아쉬웠던 책이다. 책 선전에도 나와 있듯이 이 책은 ‘완벽한 책’으로 <보스턴글로브 올해의 베스트 북>이라는 상(이 상이 어느 정도의 권위를 가진 상인지 모르겠지만)을 받을 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