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게 고약한 버릇이 하나 있습니다. 저한테 그런 버릇이 있음을 처음 일깨워준 사람은 제 아내인데, 물론 저는 그럴 리 없다고 부인했지요. 자기가 그러고 있는 줄 알면 그 순간부터 ‘버릇’은 힘을 잃게 됩니다. 버릇은 자기가 그러고 있는 줄 모르는 데서 그 힘이 나오거든요.
처음에는 부인했지만 거듭거듭 지적을 받은 뒤 이제 비로소 시인하게 된 저의 ‘고약한 버릇’이란, 누가 뭐라고 할 때 그게 아니라고 부정부터 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아내가 “복숭아 먹겠어요?” 하면 복숭아를 먹을까 말까 생각도 하지 않고서, “아니, 안 먹어.” 하며 손사래를 치는 거예요. 아내가 “이거 입어요.” 하고 옷을 내밀면 저는 벌써 “아냐, 안 입어.” 거절부터 하고 봅니다.
어저께만 해도, 함께 길을 걷던 연관 스님이 담양 명물이라는 삶은 달걀을 내밀며, “달걀 드시겠어요?” 했을 때 저는 “아닙니다. 금방 밥을 먹었더니 배가 부르네요.” 하고 거절했지요. 거절한 게 잘못도 아니고, 방금 식사를 마친 것도 거짓말은 아니고, 그래서 배가 불렀던 것도 사실이긴 합니다만, 문제는 그 ‘거절’이 아무 절차도 거치지 않고 제 입에서 총알처럼 발사된 ‘버릇’이었다는 바로 그 점입니다.
아내가 지치지 않고 지적해준 덕분에, 만시지탄은 있지만, 이제라도 저에게 그런 고약한 버릇이 있음을 알게 되었으니 천만다행입니다. 이놈의 버르장머리, 내 반드시 뿌리 뽑고 말 것입니다.
어쩌다가 이 글을 읽으신 분들 가운데 혹시 인연이 닿아서 저를 아시는 분이 있거든, 저에게 이런 버릇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무슨 말씀을 하셨을 때 제가 “아뇨, 됐습니다.” 하고 거절하거든, “그거 버릇으로 하는 거절인가요?” 하고 일깨워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해주신다면 제가 이놈의 못된 버르장머리를 바로잡는 데 큰 도움이 되겠습니다.
첫댓글 ㅎㅎㅎ 빨리 뵙고 말씀을 나누고 싶어지네요...그 버릇을 만나고 싶네요...저는 너무 많아서...^^샬롬^^
ㅎㅎㅎ.......
^^ 정말 훌륭한 사모님이 곁에 계시네요. 저도 제가 모르는 어떤 버릇이 있는지 궁금해지는데..이걸 어떻게하면 알아차릴 수 있을지..
가까운 사람에게 정중히 부탁드려보면 어떨까요? 버릇은 좋은 버릇이든 나쁜 버릇이든 바람직하지 않은 점에서는 마찬가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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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있잖아요, 어쩌는 줄 아세요? 제 동생이 그러는데, "언니는 어쩌는 줄 알아? 에를 들어 자장면 먹을래?"하면 처음에는 '응"하지만 조금 있다가는 "...그거 뭐 꼭 먹어어야 하는 건 아니고...." ^^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들어서, 이제는 뭐든지 한번 예, 아니오 했으면 말을 바꾸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애씁니다. 그런데 그거 꼭 그렇게 해야 하는 건가.... ㅎㅎ
버릇은 좋은 버릇이든 나쁜 버릇이든 무의식의 범주에 속하니 고치는게 좋겠죠. 나에겐 어떤 버릇이 있는지 아내에게 물어봐야 겠네요..ㅎㅎ
저하고 가까이서 사는 사람들이 그래요. 지적은 하지 않았지만, 매사에 부정적인 '아니..'라는 단어로 시작하니, 언찮긴 하더라고요. 그래서 한 10여년 만에 처음 며칠전에 지적을 햇습니다. 저항이 좀 거세서, 그냥 하다 말앗지요. 결국 지적을 하지 않은 것이 되엇지만...아니면 말구! 하고 털어버렸습니다. 근데, 저녁에 자려는데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데요! 거 참 거시기해부려서리~@$%@%$
"반드시!" 라는 말은 피할 일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던가요? ^^ "이놈의 버르장머리, 내 반드시 뿌리 뽑고 말 것입니다."는 선생님의 표현이 조금 마음에 걸리네요....물론 '반드시'라는 말 또한, 반드시! * 꼭! 피해야 하는것 만은 아닌지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아뭏든 선생님! 늘 건강하시기를, 늘 평화 그윽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 제주에서 송영섭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