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중국에서 전통 사상에 대한 애정을 유지하고 있던 학자들 일군과 그 사상에다가 서구의 사상 일부를 가미하여 현대 사상적인 수요에 부응할 수 있다는 확신에 찬 그 후세대들이 다시 사상 논전의 전반에 나타났는데 이들을 통틀어 '현대 신유가'라 한다.
그리하여 최근에 들어와서는 중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새롭게 중서 문화의 비교와 아시아의 경제 발전과 관련된 유교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러한 논의를 다시 전통과 서구사상의 프리즘을 통해 통과시켜 본다면 중국 문화 본위파(유학 부흥론), 전반서화파, 서체중용파, 비판계승파로 나누어진다.
유교 자본주의 논의의 사상적인 연원과 모태는 현대 신유가라 할 수 있다. 논의의 직접적 배경은 1960, 70년대 이른바 '유교 문화권'이라고 일컬어지는 동아시아 여러 나라의 비약적인 경제 발전이다. 일찍이 막스 베버는 중국에서 자본주의가 발전할 수 없었던 이유를 유교와 도교에서 찾았으나, 최근 많은 서양학자(칸, 버거)들은 유교 사상과 그 문화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전혀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
2. 현대 신유가 사상론
2-1. 사상적 배경
1919~21년 사이에 이른바 3대주의 논쟁이 발생하여 지식인들 내부에서 이제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색채나 그 한계가 각파간에 선명하게 나타나게 되었다. 즉 첫번째 문제와 주의의 논쟁에서 같은 서화파라 할 수 있지만 점진적 개량주의인 호적과 혁명파인 이대조간의 사상적 거리를 확인하였다. 그것은 문제(구체성, 개별성)와 주의(보편성, 일반성)에 대한 것과, 경험과 실제, 진리의 상대성과 절대성, 역사 속에서 개인의 역할 등에 관한 차이였다.
두번째 사회주의 논쟁은 자칭 사회주의자인 양계초와 장동손 등과 진독수 등 마르크스주의자 사이에서 전개되었다. 전자의 주장은 점진적인 사회개조를 주장한 것으로서 자본가의 인도주의, 착취금지, 노사협조, 교육 보급 등 요즈음 말하는 유교자본주의 혹은 유교 사회주의와 유사한 이론을 주장하였고, 후자는 노동 대중의 강한 혁명에 대한 요구를 결집하고 혁명의 중핵을 이루는 공산당을 조직하여 노동운동과 사회주의 혁명을 통하여 중국의 독립과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세번째는 무정부주의 논쟁으로서 청말 중국 혁명동지회가 발간한 『민보』를 통해 바쿠닌과 크로포킨의 사상을 소개하여 이에 동조하는 많은 지지자를 신해혁명과 5․4운동을 통하여 얻었다. 그런 다음 이 아나키스트들은 군벌, 관료, 자본가들의 강권과 폭압에도 저항했지만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러시아 10월 혁명후에 표방한 조직, 기율, 계급 투쟁, 프로레탈리아 독재의 공산당 강권에도 반대하고 상호부조와 인도주의를 주장한 것이었다. 특히 중국의 아나키스트들은 소국과민, 개인적 해탈과 자유 사상, 상동내지 대동사상의 추구 등을 서구 아나키즘과 연결시켜 주장하였다. 아나키스트들은 이를 통해 마르크스주의자들을 비판한 점에서 외형적으로는 상당히 신유가와 유사함을 볼 수 있으나, 사회 정치적인 사상 경향에 있어서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이러한 당시 사회 정치와 사상적인 바탕아래서 현대 신유가란 바로 5․4운동 이후에 형성된 신유가 학파를 지칭하는 개념이다. 이택후는 신해혁명과 5․4운동 이후로 20세기의 중국 현실과 학술 토양에서 공맹정주육왕을 발양함으로써 중국 철학 혹은 중국 사상의 정신을 강조 계승하고 아울러 다른 것을 주체에 흡수하려고 하는데, 즉 서방의 근대사상(민주, 과학)과 서방 철학(베르그송, 러셀, 칸트, 화이트헤드)을 받아들이고 개조함으로써 당대 중국 사회․정치․문화 등의 방면에 현실적 노선과 방법을 찾고자 하는 것을 기본 특징이라고 하였다. 신유가에 속하는 인물은 양수명, 장군매, 웅십력, 풍우란, 하린, 전목, 방동미, 당군의, 모종삼, 서복관 등 10인으로 볼 수 있다.
2-2. 과현논쟁과 현대 신유가
중국에서 1923년에 일어난 과현논쟁이란 '과학과 현학'의 논쟁 또는 '과학과 인생관' 논쟁이라고도 불리는 것으로 정문강, 호적, 오치휘로 대표되는 과학파와 양수명, 장군매, 양계초, 장동손 등이 주도하는 현학파와의 논쟁을 말한다.
논쟁은 장군매가 「인생관」이란 연설을 하였는데, 정문강이 「현학과 과학」이란 글로 공격을 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장군매가 인생관이란 나 자신 이외의 사물과 인간에 대하여 늘 관찰하고 주장하며 요망하는 바를 지니고 있는데 그것이 인생관이라고 한다음, 그 특징은 주관적, 직관적, 종합적, 자유, 의지, 단일적이기 때문에 과학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해결될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문강은 장군매의 몸에 현학귀신이 내렸다고 매도 비판하면서 과학은 외향적이고 교육과 수양에도 좋은 도구가 되며, 진리 탐구 능력과 애착심을 갖게 하고 복잡한 것에서 간단한 것으로, 혼란 속에서 질서와 논리적인 견해를 갖게 하며, 과학을 이해하면 생활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는 요지의 반박문을 실었다.
그런데 이러한 논의들은 유교자본주의 논의 및 서양의 자본주의나 기술 문명과 과학과는 다른 형이상학적인 정신 문화의 도통이 존재하며 이 두 가지의 결합이 중요하다는 주장과 일맥상통한 점이 있다고 보인다.
2-3. 현대 신유가의 사상적 경향성
1920년대 말부터 1940년대 마까지 현대 신유가들은 중국의 사회 정치적 혼란과 일제의 침략 그리고 국공내전 속에서 국민당 장개석의 존공과 충효교육 정책을 지지한다. 1949년이후 현대신유가들은 중국과 대만을 비롯한 세계 각국으로 흩어졌지만 풍우란을 제외한 모두가 그들의 철학사상과 문화적 보수주의를 계속 이어갔다.
현대신유가는 「중국 문화와 세계」라는 선언문에서 중국의 역사 문화가 아직도 살아 움직이는 생명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면서 정치에 있어서는 정통을, 철학에 있어서는 그 도통성을 주장하고 있다. 과학에 대해서는 문화가운데 도통의식은 계속되었으면서도 과학 지식에 대한 전통은 이어지지 못했다는 실학적인 반성을 하고 있었다. 민주주의에 대한 의식에서, 중국 고대 정치 사상 속의 민의를 반영한 천명을 임금이 지니는 정권의 정통성을 확인하는 모습은 유교 민본 정치의 재확인으로 보인다.
3. 유교 자본주의론
3-1. 유교 자본주의론의 등장
유교자본주의론의 사상적 연원 및 모태는 5․4운동 이래 형성된 '현대신유가'이다. 이중에서도 특히 현대 신유가로부터 유교 자본주의론이 제기될 수 있었던 직접적인 배경은 1960, 70년대 이른바 유교 문화권이라고 일컬어지는 동아시아의 일본을 위시한 한국․대만․홍콩․싱가포르 등의 비약적인 경제발전이다.
동아시아의 경제발전에 대해서 호프하인즈나 샘슨과 같은 서양 경제학자들이 먼저 주목하기 시작했으며, 힉스나 레딩 등은 동아시아의 경제발전을 구조적으로 파악하기 시작하여 정치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정부주도하에서 지속적인 경제성장 정책이 추진되었던 점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잇다. 이어 '문화적 해석'의 입장에서 유교윤리를 해석하려는 학자(칸)도 나타났는데, 유교를 동아시아 경제발전의 중요한 문화적 요인으로 파악한 인물은 버거이다. 그는 현대화를 서구식의 일반적인 유형과 동아시아식의 특수한 유형으로 나누어 볼수 있다면서, 서구 현대화의 문화적 요인이 기독교였다면 동아시아 현대화의 문화적 요인은 유교였다고 보았다. 그런데 그는 사대부와 관리의 윤리로서의 유교와 일반인민의 노동윤리로서의 유교를 구분한 뒤, 후자의 의식 특히 심화된 계층의식과 가정에 대한 무조건적인 희생, 기율과 절약 정신 등 이른바 '용속화된 유교사상'이 높은 생산성을 낳는 노동 윤리가 되었으며, 화해를 중시하는 유교의 규범이 현대 산업제도 속에 깊이 스며들었다고 주장했다.
3-2. 막스 베버의 유교․도교관
베버는 『유교와 도교』에서 비교종교학․비교사회학의 입장에 서서 중국이 자본주의의 길을 걸을 수 없었던 원인을 유교와 도교의 사상․문화적 요인에서 찾고 있다.
베버의 생각은 경제적 요인 외에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도 서양 자본주의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는 생각으로, 역사 발전의 다인론을 말한 대표적인 주장이다. 따라서 이러한 시각을 바탕으로 하여 서양 자본주의의 발전의 순기능으로서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를 검토한 것과 마찬가지 시각에서 중국에서 자본주의가 발전하지 못한 문화적 요인을 유교와 도교에서 찾아 나섰던 것이다.
베버는 먼저 중국이 자본주의가 발전하지 못한 원인을 유교와 도교의 사상․문화적 요인에 앞서 사회․경제적 요소(화폐경제, 거대한 인구증가, 행정중심지로서의 도시 등)에서도 검토하고 있다. 그는 유교에서 비롯된 사상 문화적 요인으로부터 유교사상에는 근대 자본주의 형성의 핵심인 합리성이라든가 자연과학적 사유가 결여되었다고 규정하였다. 이것과 관련하여 자연법과 형식적 법률논리의 결여라든가 또는 유교사상에서 나타나는 경제사상과 전문화의 거부 등이 자본주의의 길을 가로 막았다고 보았다.
아울러 베버는 도교의 사상․문화적 요소에 대한 검토를 통해 검약이 엄하게 강조된 도교의 덕성도 금욕수행적인 성격을 갖는 것이 아니고, 명상적 성격을 지니는 것으로 보았다. 또 뒷날 도교의 무속적이고 반문사적인 성격은 도교가 상인 사회에 견고한 뿌리를 내리는 이유가 되었지만, 도교에서 시민적 윤리는 전혀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고 하였다.
3-3. 유교자본주의론-막스베버에 대한 비판과 관련하여
유교자본주의자들의 논리전개는 유교의 사상 요소 중에서도 자본주의 발전을 추동하는 요소들이 있다는 것으로 모아짐으로써 자연스레 베버에 대한 비판의 성격을 가지게 된다. 따라서 유교 자본주의자들은 먼저 경제정책이나 경제활동상에서 서양의 것과 다르게 특징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을 유교적 사상 요소와 연결시키는 방식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먼저 두유명은 동아시아에 출현한 공업 문명은 교육의 중시, 가족 중심의 기업 운영, 정치가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친점, 저축률이 높은점 등을 공통적 원인으로 들었다.
이에 대해 김일곤은 유교문화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그 가치체계와 윤리 의식을 보존하면서 동시에 효율성과 합리성을 추구하는 경제문화를 중시하고 과학과 기술의 진보를 도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 구체적 내용은 1) 역사․자연․인간간의 조화의식을 계승하며, 2) 가족집단주의의 발전과, 3) 덕치주의와 경제 윤리의 조화, 4) 경제문화에 의한 사회통합, 5) 덕본재말론의 주장 등이다.
이와 같이 유교자본주의론 전개의 기본적인 모형은 먼저 동아시아의 경제나 기업 관리 방식에서 나타나는 특징을 이끌어 낸 뒤, 이것을 유교적 요소와 연관시켜 설명하는 것이다.
4. 중국내의 신유가
4-1. 현대 신유가 연구의 과정
중국에서의 신유가 연구는 1979년 『중국철학』제1집에서 신유가의 최원로라고 할 수 있는 양수명의 회고와 이어 같은 책에 계속해서 역시 대표적 현대 신유가라고 일컬어지는 풍우란의 회상과 웅십력과 몽문통간의 왕복서한이 실림으로써 시작되었다. 1985년 중국근현대철학사에 대해 처음으로 열린 전국적 학회이다. 여기에서 비로소 신유가는 토론의 대상이 되었으며, 신유가라는 호칭이 일반화되고, 문화열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1987년 9월 제1회 전국 '현대신유가 사조' 학술토론회가 안휘성 선성에서 열려 신유가의 정의와 특징, 신유가의 학술상의 공헌, 그 계급 속성과 사회 속성, 신유가 연구의 방법론, 신유가 사상의 미래의 가능성에 대해 활발한 토론을 벌였다.
4-2. 철저 재건론의 대유학 부흥론 평가
전통 문화 및 유학 부흥론에 대한 철저재건론자의 평가를 살펴보자. 한마디로 그들은 일소에 부치고 만다. 그들의 구호처럼 철저재건은 철저부정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면 그들이 보는 철저 부정의 대상은 무엇인가? 전통이다. 곧 전통은 낙후한 중국의 현실을 해결하는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을뿐 아니라 도리어 커다란 방해가 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전통의 죄악은 단지 전통 속에서만 머무르지 않는다. 전통은 중국의 마르크스주의에도 살아움직인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비판의 표적은 사인방을 향하고 있지만 전통의 힘에 의해 중국화된 마르크스주의, 곧 모택동 사상도 부정의 대상에서 제외시키지 않는다.
4-3. 서체중용론의 대유학부흥론 평가
평가의 방식과 차원이 다른 것으로 이택후의 서체중용론을 들수 있다. 그는 종래의 체용 개념에 대한 새로운 정의와 중체로서 유학의 위치를 부정하고 있다. 그는 체를 사회적 존재의 본체, 즉 현실의 일상생활로 보고 있다.
새로운 체에 대한 정의에 따르면 현 중국의 체는 "원래부터 가지고 있었던 사회적 존재의 '체', 즉 봉건적인 소생산의 경제 기초이다."그런데 이 체야말로 중국이 시급히 바꾸어야할 것이고, 중국 사회주의가 나아가야 할 지향점은 현대 대공업사회라고 보고 있다. 그렇지만 현대 대공업사회로서 '서체'위에는 '서학'이 서게되며, '중학'은 어디까지나 '용'이 될 수 없다고 본다.
어쨌든 '중학'으로서 유학의 처리 문제에 대한 그의 견해는 유학이 비록 봉건적 소생산양식 아래서는 중국 전통의 문화심리구조를 이뤄왔지만, 현대 대공업사회로 '체'가 바뀌게 되면 중학으로서 유학은 '서학'에 의해 개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4-4. 비판계승론의 대 유학 부흥론 평가
비판계승론은 가장 넓은 저변과 폭을 가지고 있다. 그 결과 크게보면 풍우란으로부터 당에 이르기까지 모두 비판 계승론 속에 포괄할 수 잇다. 이들은 원칙적으로 전통문화와 철학을 비판적으로 계승한다는 방법에 동의한다. 이들은 신유가들에 대해 양면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먼저 긍정적인 측면에서, 방극립은 현대신유가가 전통철학의 현대화와 서양철학의 중국화 방면에서 행한 탐색과 공헌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종계의 견해도 비슷한데 신유가에 대한 이런 긍정적 평가의 바탕에는 '문화 보수주의론'이 깔려있다. '문화보수주의론'은 미국의 슈워츠가 현대신유가 사상을 규정하기 위해 쓴 말로서, 이후 일본의 오처중이나 중국의 정가동도 이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이어 부정적 평가로는, 이종계는 내포가 풍족한 중국 문화를 간단하게 유교문화로 귀결시킨 점, 문화요소의 사회 발전 속에서의 작용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사상 속에서 사회 발전의 근본 원인을 찾는 점, 5․4운동이 갖는 정확한 사상 방향 및 그것의 중국현대 사상 문화의 창조적 전환 및 누적 방면의 공적을 낮게 평가하거나 심지어는 부정까지한 점, 유학부흥론은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한 사회에서 생겨난 것이기 때문에 현중국사회의 실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였고, 방극립은 계급상 부르조아적 편향을 지적하였다.
유학부흥론에 대한 비판계승론의 비판에서 한 가지 반드시 짚고 넘어갈 문제가 있는데 이것은 비판계승론자들은 유학부흥론자들을 자신과 구분해내고 있지만 마찬가지로 그들도 외형상 과거전통에 대한 선별적․비판적 계승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이들 양자간에는 원칙상의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전통 중에서 무엇을 계승할 것인가? 무엇이 알맹이이고 무엇이 찌꺼기인가에 대한 차이가 있을 따름이다.
4-5. 중국내의 유학 부흥론자
중국 내에서 드러내놓고 유학 부흥론을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대체적으로 신유가 1세대는 양수명, 웅십력, 풍우란, 장군매, 하린 등을, 제2세대는 당군의, 모종삼, 서복관, 방동미, 전목 등을, 제3세대는 두유명, 성중영, 유술선, 김요기, 여영시, 임육생을 들수 있다.
5. 결론
중국내에서 유학 부흥론을 고찰함에 있어 자칫 전통철학의 계승이란 측면에만 제한하여 바라보면 중요한 역사적․현재적 의미를 놓칠 우려가 있다. 분명히 신유가는 전통철학의 계승이라는 측면에서는 많은 부분 성공을 거뒀으며, 바로 그점이 일단 중국내 비판 계승론자들에게 긍정적 평가를 받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신유가는 전통철학을 성공적으로 또 창조적으로 계승하기는 하였지만, 그것은 전통 자체는 아닌 것이다.
중국 공산당의 입장에서는 신유가를 그다지 공격하지 않는다. 따라서 철저 재건론에 대한 효과적인 견제 세력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면 신유가와 유학 부흥론 및 유교 자본주의론에 대한 총괄적으로 서술하면
첫째, 계승의 방법에 있어 그들은 전통에 대한 애정을 '독점적'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그 전통을 계승하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둘째, 방법적인 것에 있어서 유교 자본주의자들은 막스 베버가 유교적 요소가 자본주의 발전에 역기능을 했다고 본 것을 비판하면서, 현 동아시아의 경제 발전을 바탕으로 자본주의 발전에 순기능을 한 유교적 요소를 찾아내고 있다. 셋째, 내용적인 것에 있어서 과연 그들의 말처럼 유교의 여러 요소가 반드시 자본주의 발전에 순기능만 한 것일까? 여기에 대해서는 너무나 많은 반대자들이 있다. 또 자본주의의 발전에 순기능을 하였다고 지적한 유교적 요소가 과연 옳게 해석되었는지도 의문이다. 넷째, 계급적 성격에 있어서 그들의 설명은 보기에는 몰계급적 전체를 대상으로 말하고 있는 것 같지만 내용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그 내용에는 개발독재와 국가 지상주의와 군사파시즘에 대한 장당화의 논리를 담고 있다. 계급 화해론의 원리도 담고 있는데 이는 노사화합과 산업 평화의 구호를 만들어 낼 수가 있다. 다섯째, 현실적인 문제에 있어서 신유가 및 유교 자본주의론은 자본주의 토양에서 자라난 것인데 중국은 사회주의 체제이다.
Ⅱ. 중국 철학의 특성
1-1. 초기 중국 철학을 연구한 학자들의 오류
초기에 서양의 언어로 중국 철학을 연구하는 가정에서 중국 철학의 진정한 성질에 대하여 많은 혼란과 오류가 있었는데 그것은 대체로 첫째, 중국 철학은 신비적이며 오직 직관적 형식에 의해서만 파악 될 수 있다고 믿었다. 둘째, 중국 사상 속에는 새로운 창조적 사상이 없고 또 중국 사상 속에 포함된 여러 가지 논의들은 서양의 전통에서 토론되었다는 것이다. 셋째, 그들은 기계론적 관점에서 중국 철학을 연구함으로써 범하는 일반적인 잘못된 경향, 즉 중국철학을 조박하게 개괄하는 것이다. 넷째, 중국철학은 사회정치학이나 사회경제학, 심지어 사회심리학적 조건 및 각 사상가의 성격과 그가 살았던 시대를 통해 해석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중국철학의 특성을 검토하기 위해서는 1) 중국 철학을 연구하고 평가하는 방법에 대하여 명확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하며, 2) 우리의 방법을 중국철학의 주요 방향 및 전통과 회고 등에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1-2. 초기 유가 시대의 기본관념
유가 이전 시기의 원시적 관념은 매우 깊은 철학적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들은 서로 관련되어 있었고, 인간과 자연 사이의 원시 동족적인 감정에 기초하며, 인간 존재를 발전시킬 수 있는 잠재적 능력을 가진 존재로 만들어야 한다는 정감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이 때문에 인간의 존재 가치는 인간과 진실성의 통일에 대한 충실한 추구, 획득, 혹은 실현에 있었다.
2-1. 유가적 전통
유가는 중국 역사에서 여러 가지 매우 다른 표현 방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도덕적 자아 교육의 필요성과 최소한의 원칙, 천인합일, 개인을 위한 자아실현, 사회적 질서와 정치적 화해의 요구 등은 한대부터 송명 시기에 이르기까지 보편적 원칙으로 긍정되었으며 한 번도 버려지지 않았다. 송명 유가는 이와 기의 문제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들은 이와 기를 가지고 인간 본성의 선함, 천인합일, 물아일체 등을 해석하기도 하였다.
2-2. 도가적 전통
도가 철학의 중요한 특징은 1) 도는 정체적 특성을 가지며, 2) 유한한 특징을 가진 사물과는 다르며, 3) 도는 운동․변화하는 어떤 과정이며, 4) 도 자체는 두 가지 대립하는 사물의 통합이다.
2-3. 중국 불교의 전통
중국 불교의 처음 두 종파는 삼론종과 유식종, 천태종과 화엄종이다.
삼론종의 주요개념은 부집착과 원융무애의 불지에 도달하여 차(此)를 긍정하는 것과 비차(非此)를 긍정하는 것 모두를 초월하고자 하는 것이다. 천태종에 있어서 명확한 것은 인간과 이 세계의 관계에 대하여 관심을 기울였다는 점이다.
선종은 공(空)의 문제를 이해하는 데서는 천태종의 훌륭한 전통을 이었고, 심 혹은 의식의 문제를 이해하는 데에서는 화엄종의 훌륭한 전통을 계승하였다. 선종에서는 깨달음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세계의 존재를 긍정하고 인간의 심을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2-4. 현대 중국의 마르크스주의
중국 근대의 정치․경제 및 사회적 혼란과 소요 속에서 과거를 평가․분석한다거나 미래를 계획․건설․예상할 만한 시간이 거의 없었다.
분명한 것은 중국의 마르크스주의는 유가․도가 및 중국불교 등의 전통적 중국철학을 벗어난 것이다.
3. 중국 철학의 네 가지 특징
3-1. 내재적 인문주의
중국의 인문주의를 구별해 주는 내재적 성격은 다음과 같다. 인간은 도나 천의 최고의 창조적 활동의 결과로서, 그의 덕을 천지와 일치시킬 수 있고, 총명성을 일월과 일치시킬 수 있으며, 그 질서 정연함을 사계절과 일치시킬 수 있고, 길흉을 귀신과 일치시킬 수 있는 그런 존재이다. 유가의 성인, 도가의 진인, 중국불교의 부처 등은 모두 일종의 신앙임을 증명하고 있는데, 그것들 속에서 말하는 인간은 우주의 잠재적 가능성을 가지고 자연 속의 가치를 실현하며 자기를 완성하고 동시에 타인을 완성시켜 주는 존재이다. 이 때문에 중국 인문주의의 내재적 특성은 원래부터 인간과 궁극적 존재의 실재, 인간과 자연 사이에는 아무런 구별이 없음을 인정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으며, 이는 중국 철학에서 절대적 분리와 초경험적 관념이 결핍되어 있음을 설명하는 것이기도 한데, 그것은 사물의 상호관계나 상호작용 속에서 이러한 관념을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3-2. 구체적 이성주의
중국철학에서 사용된 이성의 궁극적 의미는 1) 인간은 자기의 시선을 실재에 두고 사물의 여러 가지 활동과 형태를 관찰하여야 한다는 것이고, 2) 인간의 실제적 문제를 처리하기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인생의 실천 속에서 시종 일관 이성과의 연관성을 보증하기 위한 것이며, 3) 중국 철학은 도덕과 정치적 목적을 지향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중국의 사유에서는 이성의 추상적 원칙과 이성의 구체적 사례에 결코 어떤 분리가 없으며, 이 때문에 순수과학이나 수학, 논리학 등이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이점도 중국 철학에서는 철학 자체를 연역적 이성의 활동으로 간주하지 않고, 인간의 활동에 영향을 끼치고 그것을 인도하는 종합적인 도덕의 성취라고 간주하였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3-3. 생기적 자연주의
중국철학의 생기적 자연주의를 증명하는 증거는 중국철학에는 정신과 물질 및 주체와 객체 사이에는 아무런 실제적인 거리가 없다는 사실과, 인간과 사회 및 국가 사이의 생기적 관계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유가에서는 이론적으로도 인간이 세계의 모든 사물과 서로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완전한 선을 성취하기 위하여 인간은 반드시 도의 활동과 모든 사물의 발생 관계에 참여해야만 하는 것이다. 인간이 도와 동일하다는 것뿐만 아니라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물사이의 생기적 관계에 있어서 매사에 화해를 이루는 것, 그리고 그 화해에 도달하는 것의 의의는 선이라는 가치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었다. 선이라는 가치는 기본적인 역량이고 화해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이면서도 결과이다.
3-4. 자아 수양의 실효주의
중국철학에서는 자아수양의 실효주의에 매우 깊은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에 인간을 구현할 외재적이고 초월적인 힘에 대한 이론에 비교적 관심과 발전이 적었다. 사실 중국철학에 있어서 자아수양의 실효주의로 말미암아 인생의 근본 문제에 대한 관심은 자연적 종교로 나아갈 필요가 없었다. 중국철학의 자아수양은 바로 종교적 예배와 지고한 신을 대신하였다.
자아수양의 실효주의가 종교적 요소와 도덕적 가치를 모두 대신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것이 기타의 여러 가지 많은 기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4. 결론
중국철학의 네 가지 특징은 내재적 인문주의, 구체적 이성주의, 생기적 자연주의, 자아수양의 실효주의로 볼 수 있다. 첫 번째와 마지막 특징은 주로 중국 사상의 도덕, 사회 및 정치적 측면에 관한 문제를 처리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특징은 주로 중국사상의 인식론과 형이상학적 측면에 관한 문제를 처리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중국사상이 도덕․정치․사회 등의 분야에서 내재적이고 변증법적이며, 인식론과 형이상학이 서로 혼합되어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하여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도덕과 사회․정치는 인식론과 형이상학적 기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형이상학과 인식론적 분야의 사상은 도덕적 실천과 정치․사회적 개혁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Ⅲ. 현대사회와 유교윤리
1. 전통에 대한 최근의 태도 변화
오늘날 사람들의 현대와 전통에 대한 관념의 변화를 보면
첫째,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볼 때, 공업의 발전은 환경오염, 생태계의 파괴를 초래하였다. 둘째, 종래의 사회조직에서 볼 때, 가정의 구조는 점점 해체되었으며, 셋째, 개인적 관점에서 현대인은 자연에 대한 친화감을 잃어버렸고 또 가정과의 연계를 끊어버렸으며, 과학․기술․상업사회에서 그는 특별한 의미도 없는 한 개의 컴퓨터 칩이 되어 버렸으며, 올라갈 수 없는 사방의 벽에 갇힌 '이방인'이 되어 버렸다.
2. 현대 사회와 윤리
현대인은 전통적 윤리․도덕을 반대하는데, 그들은 그것이 인간을 지나치게 억압하며 인간의 정서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제창해야 할 것은 바로 전통을 비판적으로 계승하려는 태도이다.
현대인의 문제는 보통 사람뿐만 아니라 철학자들까지도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고 윤리․도덕적 상대주의의 심연으로 빠져든다는 데 있다.
3. 유교 윤리의 대가 콜버그
일정한 기간동안 철학자들은 모두 윤리․도덕의 실질적인 문제에 관한 토론을 회피할 뜻을 가지고 있었지만, 최근에 롤스가 가장 먼저 반기를 들고 '정의'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토론하였고, 이어 콜버그는 인간의 도덕 발전을 여섯 단계로 나누고 그것들은 모든 인류에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것이며, 앞뒤의 순서는 뛰어 넘을 수 없다고 보았다.
콜버그가 주장하는 여섯 단계는 1) 징벌과 복종, 2) 개인의 도구적 목적과 교환, 3) 인간 관계의 규범에 맞음, 4) 사회 제도와 양심의 유지, 5) 권리와 사회 계약, 6) 보편적 윤리․도덕의 법칙이다.
4. 유교가 할 수 있는 공헌
콜버그는 낭만주의적 성선설을 찬성하지 않았으며 자유방임적 태도를 반대하였다. 신유가의 사상가들은 그의 이러한 관점을 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유교적 전통은 현재까지 교화를 중시하고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도가식의 주장을 반대하며, 문화 창조의 가치를 긍정하기 때문이다.
콜버그는 발전에 대해 언급하였는데 결국 발전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본성이 간직하고 있는 가능성인가? 이 문제의 해결책을 동양의 전통에서 연원을 찾는다면 일정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
5. 전통과 현실
우리가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전통과 현대의 결합이며, 선택적으로 전통을 계승하는 것이며, 선택적으로 현대를 맞이하는 것이며, 현대화의 과정을 성공적으로 완성하여 신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Ⅳ. 유가윤리와 경제 발전
1. '중국 문화와 현대화'의 핵심 문제
베버는 유가윤리를 자본주의를 낳을 수 없는, 또 현대 공업화를 낳을 수 없는 구조로 판정하였다.
유가에 대한 베버의 이러한 판정은 오랫동안 학술계에서 아무런 반대에도 부딪히지 않았던 '선고'였다. 그렇지만 베버의 판정은 회의나 수정이 필요한 부분을 가지고 있다.
2. 자본주의 발생과 미발생의 원인
베버는 프로테스탄티즘의 교의가 근로와 절약을 강조하고, 하느님의 소명아래서 이루어지는 노동이 신성한 것임을 강조한다고 지적한다. 더 나아가서 재부도 기독교 윤리를 통해서 긍정된다.
여기서 반드시 지적해야 할 것은 자본주의의 발생은 많은 조건을 통해 종합된 결과이며,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는 단지 그 가운데 하나의 조건일 따름이다. 즉 기독교 윤리가 직접 자본주의를 낳은 것이 아니라, 단지 기독교 문화중의 어떤 성격이 자본주의 경제의 '정신'과 부합된다는 사실이다.
3.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베버는 중국의 전통사회에서 자본주의가 발전하지 않은 원인이 유가 윤리 및 도가의 가치 체계에서 비롯하였다고 판단하였다. 그것은 중국문화와 현대화가 서로 부합되지 않는 것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 중국문화가 중국의 현대화에 장애가 된다는 견해였다.
4. 베버의 유가 윤리관
베버는 전통중국의 물질적 요소에 대해 분석을 하면서,
중국은 유효한 화폐제도를 건립하지 못하였으며, 도시는 정치․군사적 자주권이 결여되었고, 길드는 조직의 자주성은 있었더라도 그 권익이 법률적으로 보장되어 있지 않아서 상업적인 자유와 합작적인 조직형태가 출현될 수 없었고, 재능에 기초한 관료정치는 진실로 관료화의 이성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것의 집중 형태는 정치력을 방대한 제국의 변방에까지 침투할 수 없도록 하였으며, 관리와 지방세력과의 결합을 금지함으로써 관리의 고립화를 가져왔고, 지방 행정 사무의 효과적인 관리를 어렵게 하였으며, 친족조직은 개인주의의 발생에 장애가 되었고, 실질적인 예법은 자본주의적 경제 발전에서 가장 분명한 부정적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보았다.
5. 과연 '발전 체계'가 결여되어 있었는가?
베버의 분석에 대한 학자들의 연구를 검토해 보면 이 논점을 지지하는 것이 대부분이고 그것을 부인하는 것은 적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볼 때 그러한 구조적 요소들은 확실히 자본주의 발전에 불리한 요소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베버 자신도 전통 중국에는 자본주의 발전에 유리한 요소(신분의 계승이 없고, 이주 및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으며, 교육의 자유와 무역에 대한 물질적 제한이 없었다)들이 존재한다고 지적하면서 '구조적 요소'들이 중국에서 자본주의가 발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결정적인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베버의 연구는 그것이 기본적으로 중국의 어떤 '특수한 심리상태'가 존재하지 않는 것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특수한 심리상태가 바로 자본주의의 정신이며, 서양에서 그것은 기독교 윤리로부터 제공된 것이었다. 그러나 중국의 유가 윤리는 그것을 제공하지 못하였다.
베버는 중국에서 자본주의의 발전체계가 결여되어 있었던 원인을 유가윤리에 돌린다. 베버는 유가를 하나의 이성적 윤리로 보았는데, 그것은 순전히 외재세계에 대한 유가의 천진한 낙관적 입장이 인간과 세계간의 긴장성을 절대적으로 미미한 경지까지 감소시키기 때문이다.
베버에 의하면 유자들이 세계에 대한 '긴장성'을 결여하게 된 원인은 유가윤리중에 어떠한 초현세적 절대자의 윤리적 예정도 없으며, 그에 따라 현실세계에 대한 윤리적 개혁 요구가 제시될 수 없다는데 있었다. 나아가 베버는 긴장성의 결여로 인해 유자들 개인에게는 어떠한 '내향적'인 도덕적 노력도 결핍되어 있으며 그것은 기독교와 다르다고 하였다.
6. 준엄한 비판을 받고 있는 베버의 학설
베버는 유자들이 극단적으로 '예'를 중시함으로써 도덕적 자발성에 대한 추구가 결여되었다고 보았다.
유가윤리에서 '예'와 화해를 중시하는 것은 결코 베버가 말한 것처럼 표피적이거나 체면과 관계된 일은 아니었다. 유가의 윤리는 개인적인 행위 동기에 대한 핵심을 충분히 제공한다. 유가의 윤리에는 '이성의 전화'와 '도덕적 추동력'이 존재하는 것이다.
7. 거대한 경제적 현상의 도전
베버의 유가 윤리관은 바로 거대한 경험적 현상의 도전을 받고 있다. 이는 동아시아의 몇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신속하고도 놀랄만한 경제적 발전이다.
8. '동아시아 우세론'의 흥기
9. 동아시아 경제 발전의 해석 : 구조와 문화
9-1. 구조적 해석
동아시아의 경제 기적에 대한 해석은 아시아 경제를 연구하는 사람들엔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힉스와 레딩은 '안정된 정치적 환경 속에서 양호한 경제 정책이 지속적으로 집행되었다'고 주장했다.
동아시아 경제 기적의 미스터리를 해결하는 견해 중 가장 주목받는 것은 호프하인즈와 캘로러의 연구를 들 수 있다. 그들은 동아시아인의 성공은 '심리적․정신적 우세'에서 기인한다는 견해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그들은 문화적 요소를 통해 동아시아의 경제적 성장을 해석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이 지역의 우세는 구조적인 것"이라고 인식하였다. 그들의 시각에서는 동아시아의 경제 발전이 정부의 현명한 행정조처의 결과인 것이다.
그들은 경제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에 유리한 정치적 환경이 요구된다는 것을 주장하였던 것이다.
실제로 학술적이건 비학술적 토론에서 유가윤리는 이미 동아시아의 경제의 근본적인 동력으로 간주되고 있다.
9-2. 문화적 해석 : 유가 윤리
동아시아의 경제 발전이라는 미스터리에 관해서는 '구조적 해석' 이외에 '문화적 해석'이 존재한다. 동아시아 사회는 중국 문화권에 속하기 때문에 문화를 통한 해석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다. 중국 문화의 주된 요소는 유가이고 그 때문에 유가윤리는 동아시아 경제 기적의 미스터리를 해결하는 심층적 요인이 되었다.
2차 대전 이후 현대화를 추동하거나 연구하였던 학자 또는 실무자들은 항상 과학 기술과 경제적 요소에만 주목하였지 문화적 요소는 간과하였다. 제3세계 사회는 과학 기술의 측면에서는 도저히 '비약'할 수 있는 길이 없었고, 그 때문에 심각한 반성이 야기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점차로 가치체계와 관념․사상이 현대화와 기본적인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고 자각하게 되었다. 적지 않은 학자들이 '문화적 동기'가 현대화의 근원이라고 믿고 있다. 동아시아의 학자들이 찾아낸 대체물은 베버에 의해 배척 당했던 '유가윤리'였다.
10. 유가 윤리에 의한 동아시아 경제의 해석
유가윤리에 의해 동아시아의 경제를 해석한 최초의 사람은 칸이다. 그는 동아시아 사회가 모두 '유가 후기 문화'에 속한다고 보았다. 그는 동아시아가 경제기적을 이룰 수 있었던 주된 원인은 대다수의 조직 구성원이 유가 전통의 훈도를 받아 일련의 공통적인 특질을 갖추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엘러타스는 말레이시아의 중국인을 연구하면서 중국인들의 상업적인 성공에 근거하여 유가가 경제발전에 유해하였다는 베버의 견해가 논리적 정합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그는 중국인들이 말레이시아에서 경제적 성공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통중국에서 불가능한 이유를 두 사회의 역사적․사회적 조건이 상이하다는 것에 두었다.
호세리츠와 벨라도 경제발전과 제도․구조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데 동의하였다. 안드레시는 유가가 자본주의에 실제로 많은 장애를 주었지만 그것이 유가의 경제윤리 때문이 아니라 유가가 관료적 정치구조를 강화하였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11. 버거의 '양형 현대화 이론'
유가윤리를 동아시아의 경제 발전의 주요한 문화적 요소로 파악한 것은 저명한 사회학자 버거였다. 그는 오늘날 두 개 형태의 '현대화'가 출현하였다고 지적한다. 곧 서양식 현대화와는 달리 동아시아 사회에서는 새로운, 그리고 특수한 성격을 가지는 현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서양 현대화의 한 근원이 유태교․기독교의 전통에 있다는 베버의 견해를 지지하며, 아시아 현대화의 근원으로 '유가사상' 특히 '유가윤리'를 지목한다.
주의해야할 것은 버거가 현대화의 해석에서 베버의 '문화론'의 진영에 서있다고 하더라도 동아시아의 현대화를 해석하는데 있어서는 오히려 '유가윤리는 자본주의를 낳지 못하였다'는 베버의 견해에 동의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12. 베버의 계승과 수정
버거의 노력은 주로 전형적인 사대부와 유교적 관리의 유가 사상이 현대화에 유해하다는 베버의 견해를 해명하는데 경주된다. 오늘날 동아시아 현대화의 원동력은 또 다른 유가 사상, 즉 일반 인민들의 생활 속에 존재하는 노동윤리, 그의 정의를 빌면 '용속화된 유가사상'이다. 그것은 노동에 힘쓰려는 인민들의 신앙과 가치를 유발시켰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종의 심화된 계층의식과 가족에 대한 아무런 주저 없는 헌신, 그리고 기강과 절약의 규범이다. 버거는 이러한 신앙과 가치가 동아시아 문화의 공통된 유산이라고 보았다. 그는 이러한 '용속화된 유가사상'이 높은 생산의 노동윤리로 전화되었고, 화해를 중시하는 유가의 규범들은 이미 성공적으로 전통적 제도로부터 현대적 제도로 적용되었다고 지적하였다.
13. 동아시아 경제의 해석에 있어서의 세 가지 유파
오늘날 동아시아의 경제발전의 원인을 탐구하는 학자들은, 구조의 관점에 입각한 해석, 특히 경제와 정치 제도적 상황을 강조하는 해석인데, 이것이 '구조론자' 혹은 '제도론자'이다. 다른 하나는 문화의 관점에 입각한 해석, 곧 관념과 가치의 성격에 착안하는 것인데, 이것은 '문화론자'라 부를 수 있다. 그 외에 하나는 경제발전과 같은 복잡한 경험적 현상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문화론'과 '제도론' 양자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것과 같은 태도를 취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상호보충론'이다
14. 문화적 요소와 제도적 요소의 상호 작용
경제와 같은 경험적 현상에 대해서 연구를 함에 있어서 문화적 요소와 제도적 요소 양자는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제도론자들이 강조하고 있는 한 사회의 경제․정치 제도적 성격과 특성은 문화적 관념과 가치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15. 동아시아 사회와 유가 사상
유가 사상은 극히 풍부하고 복잡한 내용을 가지고 있으며, 그 내재적 구조도 다원적인 요소로 결합되어 있다. 아울러 유가 사상에는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새롭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존재한다. 동아시아 사회는 유가 문화의 영향을 받은 문화적 지역이며, 경제 현대화에서 그 사회가 겪고 있는 유력한 경험 현상은 우리에게 베버의 견해를 새롭게 검토하게 만들뿐만 아니라 동시에 유가윤리와 경제발전의 관계에 대한 보다 세밀하고 깊은 연구를 요구한다.
Ⅴ. 유가 철학과 현대화
1. 유가 철학의 중심 과제
유가철학은 일종의 철학적 인류학이라 말할 수 있다. 철학적 인류학은 유학이 인간의 문제와 인간에 대한 성찰에 집중하면서 제시한 일종의 인학이다. '인'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인애의 의미를 가지는 '인'과 금수와 구별되는 인간이라는 의미이다. "인이라는 것은 인간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중국 전통 사상에서 이 두 글자는 상호보완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인학의 범주는 대단히 넓다. 그것은 인식론, 미학, 우주론을 포함한다. 서양에서 등장한 철학적 인간학은 중국의 전통유학에서 제시한 인학 중의 어떤 한 부분을 부각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유학에서 가장 중요한 경전중의 하나는 『논어』이다. 『논어』를 통해서, 그리고 『맹자』의 발전을 거치고 『중용』, 『역전』, 『대학』을 거치면서 드러난 정신의 방향은 유가 내성설(內省說)의 완성 경로라 할 수 있으며, 이 내성학은 그것의 특수한 정신의 방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일종의 생명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유가에서 이루어진 반성은 기본적으로 인류의 문명과 문화의 가치를 긍정하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많은 유학자들은 유가의 사상이 비교적 보수적이라고 한다. 이는 주대 문화의 점진적 붕괴라는 사실에 대해 우려와 불안을 느끼면서 전대의 예악제도를 회복하려고 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자 시대에는 두 가지 학문 방법이 존재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 하나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학문을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을 위해서 학문하는 것이다.
많은 철학 교과서에는 유학이 전통중국의 전제정치제도와 결합되어 있으며, 그것을 위해서 봉사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한 문제는 확실히 검토해 볼만한 것이다.
유가에서 말하는 인성 내지 인문정신, 곧 점차 확산되어 가는 인격 발전의 도식은 평면적인 것이 아니라 입체적이다. 이른바 입체적이라는 것은 한 개인에 대한 유학의 이해가 다양성과 복잡한 차원을 갖는다는 의미이다.
유학의 입장에서 볼 때 개인은 풍부한 내용과 풍부한 내재적 자원을 가지고 있는 구체적 존재이다. 그들은 그러한 내재적 원천을 계발할 수 있으며, 또한 자신을 확대시킬 수 있다. 이러한 자아의 확대는 개인주의에서 운위되는 자아의 확대와는 다르다. 그것은 신비주의가 아니라 비교적 전면적이고, 정합적이며 통일적인, 생태학적 의의를 가지는 철학적 인간학이다.
현실을 중시하고, 우환의 정서를 가지며, 사회를 중시하고, 역사의 발전 과정을 중시하고, 사회의 정합성을 중시하고, 동시에 자신의 인격발전을 통해 사회의 모든 대중들을 점차 안정되고 평화스러운 사회로 나아가게 하려는 이러한 사상은 전통 중국에서 농민의 의연함을 배양하고 지식인들의 인격을 형성하는데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
2. 유가와 지식인
유가는 농업을 중시하고 농업을 근본으로 삼으며, 농민의 성실성과 자연의 리듬, 사계절의 리듬을 중시한다. 그에 비해 상공업은 무시된다.
한 개인이 자신의 인격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세 가지 측면이 상호 연관된다. 즉 부단하고, 전면적이며, 변증법적인 발전이라는 것이며, 이런 학습 과정은 영원하다. 이 때문에 유학이 형성한 지식인들은 자신에게 특히 엄격하며, 다른 사람이나 사회에 대한 요구는 비교적 적다. 그의 의무감은 강하지만 권리 의식은 비교적 약하다. 그러므로 유가의 인학에는 그 나름대로의 내재적 논리성 혹은 사유 방식이 존재한다. 그것은 구체에서 보편으로 이르는 것이다. 여기서의 구체는 점차 심화되는 구체이지 추상화되는 구체가 아니다.
맹자는 우선 분업의 입장에서 한 사회가 유기적으로 발전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상이한 기능이 필요하며, 그 기능 중에는 지식인들의 기능도 포함된다는 관념을 제시한다. 맹자는 지식인은 직접 생산 활동에 참여하지는 않지는 않지만 지적 노동이라는 매우 중요한 국가의 경영활동에 참가한다고 보았다. 유가가 형성한 지식인들은 사회의 양심일 뿐만 아니라 직접적으로 정치에 참가하는 봉사계층이 된다.
중국에서 유학의 전통은 세 가지 상이한 방향을 가지고 있는데, 1) 도덕의 '도'와, 2) 학문의 '학'이며, 3) 정치의 '정'이다.
도는 사람의 도리이고 자신의 인격을 완성시키는 도리이다. 그것은 또한 전면적이고 심오하게 제기된 철학적 인간학이다.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그것은 유가가 특별하게 부각시킨 도덕적 이상이며, 후대에 송명유학으로 발전되면 도학의 문제가 된다.
학은 지식을 중시하고 학문을 중시하는 중국 문화의 전통이다. 중국의 학통은 대단히 복잡하다. 이전에는 오경이 있었고, 그 이후에는 십삼경이 있었고, 또 그 이후에는 사서오경이 과거의 필수적인 과목이 되었다. 이것은 긍정적으로나 부정적으로 중국의 정치 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정은 유가의 전통 속에서 올바름을 의미한다. 유학에 있어서 정치는 소수 집단이 특권 계급으로 변화하여 많은 사람들을 장악하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매우 깊은 교육적인 의미가 있다. 그것은 자신의 인격을 통해서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도 완성하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비로소 '신교'라는 것이 성립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유가에서 최고의 인격형태는 성왕이고, 성왕은 도덕의 문제이자 도덕의 내재적 체현과 정치적 기능이 결합된 이른바 '내성외왕'의 존재이다. 이 때문에 유가의 '도' '학' '정' 삼자는 밀접한 연관을 가진다. 도는 그것의 영혼이고, 학은 그것의 문화 사상적 지혜이며, 정은 사회상의 실질적 기능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중국 정치 문화에서 유학은 정치화된 유가와 도통의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중국철학 속에서의 '인'과 서양철학 속에서의 '인간' 은 서로 차이가 있는데, 유가의 인문사상은 그 함의성이 비교적 전면적이어서 자연이나 천도와 충돌을 빚지 않으며, 자연과 분리되지 않는다. 그에 비해 서양의 인문 사상은 자연주의와 신비주의에 반대한다. 그것은 서양의 과학주의와 결합함으로서 매우 강렬한 침략성을 가지지만, 유학의 인간에 대한 시각에는 침략성이 없다. 현대는 생태계 문제와 자원 고갈의 문제에 직면하고 있고 이러한 상황에 힘입어 유가 사상은 서양의 철학계에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는 것으로 자리 잡았다.
3. 유가와 동아시아 문화 및 그 현대적 운명
현재 일반적인 견해에 따르면 유학에는 3기의 발전이 있었다.
제1기의 발전은 선진시대부터 한대까지 이루어졌다. 전한 시대의 유학은 어느 정도로 정치화된 유학이었고, 그 이후로 유학은 중국에서 몰락하였다. 위진시대의 주요 사상은 현학이었다. 후에 들어온 불교는 당대에 극성하였고, 중국적 특성을 갖춘 중국 불교가 출현하였다.
제2기 유학의 발전은 당말에서부터 송대 초기에 걸쳐 이루어지며, 그때 흥기한 문화 운동이 이른바 송명 이학이다. 이것은 조선, 일본, 월남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1970년대 이후 동아시아의 비공산권 지역은 매우 뛰어난 경제발전을 이룩하였다. 이들 지역은 교육을 대단히 중시하고 전국적인 시험이 시행되며, 기업 발전이 군체적이며, 저축률이 대단히 높은 공통성을 가지는데 문화 역사적 배경에서 볼 때, 모두 후기 유가 사회에 속한다. 이제 유학은 새로운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4. 유가 철학과 세계의 현대화
몇 십년 동안 세계에는 표면적으로 볼 때 서로 충돌하는, 그러나 실은 서로 연관되어 있는 두 가지 사조 혹은 가치관, 세계관이나 인생관이 출현하였다. 그 하나는 '세계 의식' 곧 천하일가 관념의 출현이다. 또 하나는 '뿌리 찾기 사상'으로 자기 종족의 특성과 자신들의 문화 사상을 찾고, 자신들의 땅과 자신들의 민족과 자신들의 집단을 사랑하려는 사상이다. 과거에 사람들은 과학 기술의 발전과 대동사상의 출현에 따라 세계 각지에 상이한 문화적 특징들이 점차 소멸되고 현대화에 의해 통합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오늘날의 사정은 그렇지 못하다. 천하일가의 관념과 뿌리 찾기 의식, 그리고 여러 가지 종교적 관념이 동시에 얽혀서 오늘날 이렇듯 복잡한 다원적 사회를 만들고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인간의 입장에 서서 세계가 직면한 문제에 대해 전면적인 반성과 성찰 그리고 광범위한 철학적 사색을 진행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