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베스테르보르크 임시 수용소를 떠나 죽음의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가는 마지막 열차에서 쓴
우편엽서가 나중에 한 네덜란드 농부에 의해 발견되었는데,
그 엽서는 마치도 오늘 우리에게 남긴 유언처럼 여겨집니다.
“죽음의 수용소로 이송되어가는 사람들로 빼곡한 열차 안입니다.
나는 배낭을 바닥에 내려놓고 그 위에 걸터앉아 이게 마지막이겠지 하며 성경을 펼쳐보았습니다.
펼쳐보자마자 이런 구절이 제 눈길을 끌었습니다.
‘주님은 나의 산성 나의 바위.’
아버지와 어머니, 미샤는 저와 몇 량 떨어진 곳에 있었습니다.
결국 사전 통보도 없이 이송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노래를 부르며 베스테르보르크 수용소를 떠났습니다.”
처음에 그녀는 세상 안에서 만나는 아름다움에 대해 감사를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름다운 꽃들, 릴케의 아름다운 시, 암스테르담 운하 위에 찰랑이며 부서지는 햇살,
어린 아이들의 웃음소리, 갓 구운 빵 냄새...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감사가 그런 소극적이고 제한적인 감사에 머무르지 않고
감사의 외연을 확장시켜나가기 위해 끝도 없는 감사의 훈련을 쌓아갑니다.
“나는 풍요로움으로 가득 차있습니다. 나는 너무도 감사합니다.”
에티의 내면을 가득 채운 풍요로움은 그녀와 사람들의 관계를 깊은 차원으로 성장시켜나갔습니다.
그녀는 세상 안의 다른 피조물 못지않게 동료 인간들에게도 아름다움이 배어있다고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이웃들의 약함을 점점 관대하게 수용하기 시작했고,
누군가가 자신에게 가한 잘못도 쉽게 용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머지않아 그녀 앞에 펼쳐진 삶은 처참하고 혹독했습니다.
죽음의 수용소로 끌려가는 시한부 인생으로 전락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자신 앞에 다가온 뜻밖의 현실을 용납할 수 없었겠지요.
그러나 오랜 영적 투쟁과 그녀의 내면 안에서 깊은 삶의 이동이 이미 한번 이루어진 그녀였기에
오래 가지 않아 이렇게 표현합니다.
“이 모든 이해할 수 없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세상이 하느님 현존으로 충만하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나를 평화로운 책상에서 끌어내어 이 시대의 근심과 고통 한 간운데 있게 해주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녀에게 있어 감사는 좋은 것 나쁜 것 할 것 없이 모든 것을 포용할 만큼
그 범위를 넘어 뻗어나갔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삶속에 퍼져 영혼에 잿더미처럼 내려앉은 비극에도 감사했고,
영롱한 빛을 내며 깊은 의미를 계시해주는 은총의 순간에도 감사했습니다.
결국 그녀는 마지막에 이렇게 적습니다.
“나는 베스테르보르크(아우슈비츠 수용소로 가기 전 머무르는 대기 수용소)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케리 월터스, 아름답게 사는 기술, 생활성서 참조)
우리 시대 대영성가 헨리 나웬 신부 역시 우리에게 감사의 훈련을 촉구합니다.
“감사함의 훈련이란 나의 모든 존재와 소유가 사랑의 선물로,
그래서 기쁨으로 경축해야 할 선물로 주어졌음을 받아들이려고 확고히 노력하는 것입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가톨릭 사랑방 cafe.daum.net/catholicsb
첫댓글 감사합니다. 은총의 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