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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슨 롤리랄라 만델라 이야기
당신이 사는 세상이 불의와 협잡, 부정 부패, 차별과 학대, 살륙과 핍박으로 휩싸여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영국인으로부터 노예로 간주되어 인종차별을 당하는 동포를 본 마하트마 간디가 자신의 전생애를 독립운동에 바쳤듯이 넬슨 만델라 역시 그러했다. 그런 세상이라는 걸 몰랐다면 운명이려니 하고 그냥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무고한 조선인이 일제헌병에게 폭행당하는 현장을 목격한 김구는 그 헌병을 때려죽인 뒤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이처럼 넬슨 만델라도 그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아파르트헤이트를 보았고, 그 길로 무장투쟁에 나섰다. 간디, 김구, 만델라 같은 이들은 결코 흔한 인물이 아니다. 대개는 모른 척하고, 뒤로 숨고, 도리어 이런 지도자들을 비난하는 대열 속으로 기어든다. 그러니까 남아공에 백인독재정권이 선 지 350년만에, 지독한 흑인학대법 아파르트헤이트가 실시된 지 46년만에 겨우 정상화되는 것 아닌가.
- 백인들이 저지르는 350년 차별정책을 멈추게 하다
그는 아프리카의 템부족(族) 족장의 증손자로 출생했다.
-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법으로 흑인 탄압
1948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법률로 선포된 아파르트헤이트는 백인정권에 의한 유색인종 차별 정책이다. 이 법은 인종을 백인, 흑인, 컬러드, 인도인으로 분류하였다. 인종별 거주지 분리, 통혼금지, 출입구역분리 등으로 남아공을 백인 위주의 나라로 만들었다.
만델라는 백인에 의해 저질러지는 이러한 악행을 막기 위해 무장투쟁을 시작했다.
- 인종간혼인금지법 ; 인종이 다르면 결혼할 수 없다.
만델라는 이 끔찍한 <백인 천국, 흑인 지옥 국가>를 깨부수기 위해 진력했다. 그러다가 체포되고, 이후에는 무장투쟁을 지도하다가 다시 체포되어 5년형을 선고받고, 이어서 다른 범죄 혐의 추가로 재판을 받고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이런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 무엇을 바랄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옥중에서 갖가지 상을 받으면서 27년간 복역했다.
그는 출옥한 뒤인 1991년 7월 ANC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면서 무장 투쟁 방식을 버리고 실용주의 노선으로 선회하여 백인정부와 협상을 벌였다. 그로써 350여 년에 걸친 인종분규를 종식시켰다. 이러한 공로로 그는 데 클레르크 대통령과 함께 1993년에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그는 투쟁 방식을 바꿈으로서 세계의 주목을 받고, 결국 1994년 4월 27일에 65%의 압도적인 지지로 흑인 최초의 대통령이 되었다. 만델라는 무장 투쟁에서 대화 투쟁으로 나서면서 그의 뜻을 실현시킬 수 있었다.
- 그의 영광 뒤에 숨은 인물 데 클레르크
프레데리크 빌렘 데 클레르크는 1989년부터 1994년까지 남아공 대통령을 지낸 인물이다. 그가 없었더라면 만델라의 영광도 없었을지 모른다. 넬슨 만델라와 타협해 흑인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를 끝냈다. 또 그의 임기 중에 흑인의 보통평등비밀투표가 보장되고, 흑인과 백인의 모든 권리가 동등해졌다. 1993년 넬슨 만델라와 공동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다. 만델라가 대통령으로 선출된 1994년부터 1996년까지 대리통령(대통령 부재시 임시 맡는 남아공관직. 일종의 명예직)을 지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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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불굴의 영혼 만델라 만세. 만델라의 가치는 비굴하고 비겁하게 뒤에 숨어 입 닥치고 귀막은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목숨 걸고 투쟁에 나섰고, 종신형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은 데 있다. 화해와 용서는 적을 굴복시킨 다음에 빛나는 것이다. 만델라는 지치지 않는 투사였다. 굴복하는 자는 350년간 노예로 살았을 뿐이다. 용인시민들도 이 점을 깨달아야 한다. 노예근성을 버리지 않으면 협잡꾼들, 사기꾼들, 탐욕스런 토호세력의 발호를 막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