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개
킹제임스(KJV) 성경은 1611년 이후로 약 400년 동안 유일한 영어 성경이었다.
1960-70년대 이후 NIV, NASB, NKJV, Living Bible 등의 현대 역본들은
킹제임스와 대치되는 내용들을 담고 있다.
현대 역본들은 단순히 번역의 차이가 아닌 교리적, 신학적 논쟁을
빚을 수 있는 심각한 오류를 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개역성경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
마귀의 계략으로 인해 극단주의자들이 개역성경을 공격함으로 인해
킹제임스 성경의 명성과 권위가 떨어지고 말았다.
분명히 개역성경이 한국 교회에서 지배적으로 쓰인 성경이었고,
이로 인해 많은 영혼들이 주께 돌아왔지만
성경이 어떻게 변개되었는지 여부를 확실히 알아 두어야만
우리가 믿는 바가 맞는지 틀리는지 검증할 수 있고
마귀의 역사를 더 확실하게 꿰뚫어 볼 수 있는 안목이 생기게 되기 때문에
킹제임스 성경(이하 KJV)과 개역 성경을 비교 분석하게 되었다.
2. 정통 성경과 변개된 성경의 역사
(1) 구약성경
정통
*마소라 사본(Ben Chayyim Masoretic Text) : 유대인들이 보존함
변개
*비블리아 헤브라이카(Biblia Hebraica) : 1937년 독일의 키텔(R. Kittel), 페이지당 15~20군데 수정
--> 슈투트가르트 비블리아 헤브라이카(BHS) : 1967/1977년
--> 개역성경, 신국제역(NIV), 신미국표준역(NASB)에도 영향을 미침
(2) 신약성경
정통
*그리스어 공인본문(Textus Receptus)
다수사본의 근거하였으므로 '보편적 본문'이라고도 함
로마 카톨릭의 서방본문과 대비되어 '비잔틴(동방)본문'이라고도 함
루터, 칼빈이 이 본문만을 사용하여 '종교개혁본문'이라고도 함
변개
소수본문 (로마 카톨릭에서 지지하는 사본은 전체 사본의 1%)
*바티칸 사본(로마 교황청 도서관에 전시되어 있음)
*시내 사본(그리스 정교회 수도원의 쓰레기에서 발견됨)
수정 그리스어 본문 : 1881년 영국의 웨스트코트와 호르트
- 삭제, 추가, 변개한 단어: 9,970개 (전체 140,521개 단어의 7%)
--> 네슬레의 그리스어 신약성경 : 1898년
3. 성경의 역사적 흐름
(1) 알렉산드리아
알렉산드리아는 주전 332년에 마케도니아 제국 때 형성된 이집트의 도시이다.
그리스의 사상과 철학이 집대성된 곳이기도 하다.
알렉산더 왕 사후, 시리아의 셀류시드 왕국과 이집트의 프톨레미 왕국으로 나뉠 때
많은 유대인들이 탄압을 피해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로 내려갔고,
유대교와 그리스의 인본주의가 결합되어 성경을 뜯어고치는 알렉산드리아 학파가 만들어졌다.
그 중 필로라는 유대인은 유대주의, 플라톤주의를 혼합하여
구약성경을 모두 비유로 해석하는 학문 체계를 설립했다.
(2) 알렉산드리아 학파
필로는 자신이 원하는 사상이나 철학에 도달하기 위해 '영적 비유 해석'을 이용하여 구약 성경을 왜곡시켰다.
알렉산드리아 신학교는 주후 2세기에 판테누스라는 사람에 의해 세워졌다.
그 뒤에 클레멘트가 학파를 이어나갔다. 이 학파는 그리스 철학과 성경의 비유 해석만을 강조했다.
이 학파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오리겐이었다.
(3) 오리겐의 영향
기독교 역사에서는 오리겐이 훌륭한 사람으로 미화되어 있다.
실제로 그는 종교적으로 열심을 가지고 있었다. 옷 한 벌만 소유하고 신발도 없었고
고기도 거의 먹지 않고 포도주도 마시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필로의 '영적 비유 해석 방법'으로 신약성경을 해석하고 가르쳐 이상한 교리를 만들어냈다.
오리겐 당시에 형성된 그리스어 본문은 크게 시내 사본과 바티칸 사본이 있었다.
(시내 사본: 1844년 시내 산 수도원 쓰레기더미에서 티센도르프가 발견함)
(바티칸 사본: 1481년 로마 바티칸의 도서관에서 발견됨)
(4) 로마 교회 교리의 발전
첫째, 키프리안(주후 195-258년)은 로마 교회의 우월함을 가르쳤고, 카톨릭 교회에만 구원이 있다고 가르쳤다.
둘째, 제롬(주후 340-420년)은 강력한 자기 부인과 성직자들의 독신생활, 마리아 숭배를 주장했다.
주후 382년에 로마 교황 다마수스가 그에게 신약성경을 라틴어로 재번역할 것을 요구했고,
당시 존재했던 원래의 사본과 거의 일치한 '구 라틴어 성경'을 폐기하고 '신 라틴어 성경',
즉 제롬의 라틴어 성경으로 대체하였다.
셋째, 어거스틴(주후 354-430년)은 아프리카의 히포의 감독으로 지냈다. 연옥 교리를 창시하기도 하였다.
그는 '서방 해석 방법'이라는 체계를 통해 교회의 전통에 맞게 성경을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5) 성경 부패
시내 사본과 바티칸 사본은 오랫동안 사람들에게서 무시 당했지만
친 로마 카톨릭 성경학자들(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을 통해 1881년에 영국개역성경이 발행되었다.
이 사본은 '바나바 서신'과 같은 위조문서가 첨가되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단번에 속죄하심에 대한 구절이 삭제되었다.
(6) 안디옥
로마나 알렉산드리아의 신학자들과 달리 안디옥 학파에서는 성경을 비유적이 아닌, 문자적으로 해석했다.
안디옥 학파에 대한 브리태니커 사전의 서술은 다음과 같다.
"시리아에 있던 그리스도교 신학 학파. 전승에 따르면 200년경에 세워졌다.
성서의 비유적 해석과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한 알렉산드리아 학파에 반대하여
성서의 문자적 해석과 그리스도의 인성의 완전함을 강조했다.
4-6세기에 번성했던 안디옥 학파는 여러 명의 주요 신학자를 배출했는데
그들 가운데는 타르수스의 디오도루스, 모프수에스티아의 테오도루스,
성 요하네스 크리소스토무스, 키루스의 테오도레투스 등이 있다."
(7) 신약성경의 보존
현존하는 신약성경 사본들은 약 5,000개가 넘는다.
크게 서방 계열, 알렉산드리아 계역, 시리아 계열, 셋으로 분류된다.
서방 계열과 알렉산드리아 계열에 속한 사본의 수는 전체 사본의 1%에 불과해 소수 사본이라 부른다.
반면, 시리아 계열의 사본들은 다수를 차지하여 다수 사본, 보편적 사본, 종교개혁 사본이라 불린다.
출처: <개역성경분석> / 출판사: 그리스도 예수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