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현대문학》주간과 편집자문위원 4명 동반 사퇴
문인들 “원고 거부 재발방지 실천 지켜보겠다”
〈경향신문〉2013-12-17 21:55:39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월간 《현대문학》이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유신 등을 언급했다는 이유로 작가들의 소설 연재를 거부하거나 중단시킨 데 대해 공식 사과했다. 《현대문학》기고 거부를 선언했던 문인들은 《현대문학》의 향후 실천에 따라 개인적 판단을 내리겠다는 입장이다.
《현대문학》은 17일 보도자료를 통해 “이 일과 직접 관련된 문인들이 받았을 고통에 대해서는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최근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양숙진 주간과 김화영·이남호·이재룡·최승호 편집자문위원들이 모두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또 양숙진 주간이 이날 소설가 이제하·서정인·정찬씨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사과했다고 덧붙였다.
김영정 《현대문학》실장은 “본래 2월호에 사과문을 실을 생각이었으나 어제(16일) 양숙진 주간과 편집자문위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하루빨리 알리는 게 좋겠다고 결정해 다음 주 발행되는 1월호에 사과문을 싣고 이 사실을 곧장 알리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문학》은 사과문에서 “문제의 발단은 지난 9월호에 실린 (박근혜 대통령의) 수필과 그에 대한 평론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서 많은 분들의 애정 어린 우려와 질책과 충고를 들은 바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를 계기로 창간 취지를 되새기며 더욱 정치로부터 문학을 보호하고자 했지만, 그 방법과 지향이 더 큰 정치적 파장과 문학적 비판을 받게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덧붙였다. 또 “ 《현대문학》은 지금까지 어떤 정치세력의 특혜를 받은 적도 없으며 또 기대조차 한 적이 없음을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다”며 “앞으로도 《현대문학》은 상업주의와 정치주의에 물들지 않고 격조 있고 품위 있는 문예지로서의 그 공적 사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삼가 약속드리는 바”라고 강조했다.
소설가 이제하씨는 “양숙진 주간이 오후 3시쯤 전화를 걸어와 사과했다”며 “새 편집진이 어떤 방향으로 자율성을 보장할지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우리는 《현대문학》을 거부한다’는 페이스북 계정을 만들어 문인 74명의 동의를 끌어낸 황인찬 시인은 “재발 방지 약속은 있지만 구체적인 방법에 대한 언급은 없다”며 “작가들이 기고 거부를 철회할지 여부는 《현대문학》의 향후 실천과 개별 문인들의 개인적 판단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현대문학》은 주간과 편집자문위원 사퇴 이후의 구체적인 계획은 마련하지 못한 상태다. 김영정 실장은 “새 주간과 편집자문위원을 선임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며 “그 이전까지는 미리 받아둔 원고로 잡지를 꾸려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다음 주 발행되는 《현대문학》 1월호는 당초 소설가 편혜영·김성종·이승우·김애란씨의 원고를 싣기로 돼 있었다. 그러나 최근 사태 이후 해당 작가들이 게재를 거부함에 따라 이들의 글은 빠진 채 발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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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리는 말씀
현대문학은 창간 이래 59년 동안 단 한 호의 결간도 없이 지령 708호를 발간한 세계적으로 오래된 문예지입니다. 격동의 긴 세월을 견딘 것은 문인과 독자의 사랑 덕분이었고 정파와 상업주의로부터 문학의 자존을 지키려는 창간의 초심이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최근 현대문학은 비난과 오해의 여지가 있는 잘못을 저질렀으며 이것이 몰고 온 파장은 문인들에게 큰 심려를 끼치게 되었습니다. 특히 이 일과 직접 관련된 문인들이 받았을 고통에 대해서는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리는 바입니다.
문제의 발단은 지난 9월호에 실린 수필과 그에 대한 평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서 현대문학은 많은 분들의 애정 어린 우려와 질책과 충고를 들은 바 있습니다. 이를 계기로 현대문학은 창간 취지를 되새기며 더욱 정치로부터 문학을 보호하고자 했지만, 그 방법과 지향이 더 큰 정치적 파장과 문학적 비판을 받게 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이에 대해 현대문학은 다시 한 번 큰 사과를 드리는 바입니다.
현대문학은 지금까지 어떤 정치세력의 특혜를 받은 적도 없으며 또 기대조차 한 적이 없음을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현대문학은 상업주의와 정치주의에 물들지 않고 격조 있고 품위 있는 문예지로서 그 공적 사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삼가 약속드리는 바입니다.
마지막으로 현대문학의 주간은 심각한 책임과 그 동안 현대문학에 보내주신 애정 어린 질책에 통감하며 주간 직을 사퇴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현대문학 편집자문위원들도 함께 사퇴하고자 합니다.
부디 한결같은 애정과 관심으로 현대문학의 새 모습을 지켜봐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현대문학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