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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에 대한 예화 모음
<성구와 금언> ★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창 12 : 1∼3). ★ 그가 아브라함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제시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라함에게 복을 내려 주옵소서(창 14 : 19).
※유대인이 받은 축복
<실 화> ★ 유명한 에멧 폭스씨는 건설적인 사상을 통한 능력이란 그의 저서에 이 같은 시를 읊었다. 어떤 일을 축복하면 그도 너를 축복하니 어떤 일을 저주하면 그도 너를 저주하지. 만일 네가 생의 어느 일을 정죄하면 그도 너를 네게 대항하고 상처 내리라. 만일 그대가 어떤 사건을 축복하면 그 일은 너를 해칠 힘을 잃고 잠시동안 귀찮게 굴더라도 너의 축복이 진실한 것이라면 종국에는 사라져버리고 만다.
★ 폼펜 생활을 하는 남편을 가진 한 자매님이 있었다. 이 가정의 남편은 명색만 가장이지 도무지 가정을 돌보지 않았다. 광산에 미쳐 봄부터 가을에만 집에 있다. 그렇지만 집에 돈이라고 한푼 들여놓는 적이 없었다.
★ 남편이 이중 생활하는 것을 견디다 못해 목사님께 상담하러 온 자매님이 있었다. 살기가 등등한 얼굴로 자기 남편을 "죽일 놈 개 같은 놈"하면서 가정을 돌보지 않는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 영국 북부지방의 한 공원에 12사도의 이름을 붙인 나무가 있었다.
★ 서울 회현동 순산교회 포학화 장로님이 계시다. 본래 김천 사람으로 옛날 만주사변 전 조밥 먹고 감자밥 먹는 서간도 북간도로 망명할 때다. 의식주 생활과 일제 억압을 피하여 고국산천을 등지고 살길을 찾아 만주로 건너가 길림에서 살게 되었다.
성구와 금언 ★ 야곱이 가로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 하겠나이다〈창 32 : 26〉.
실 화 ★ 축복은 가까운 곳에 : 세계에서 가장 큰 다이아몬드를 캐낸 곳은 페르시아의 어느 농촌입니다. 그곳에는 〈알리 하페트〉라는 농부가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집에 놀러온 신부로부터 높은 산을 끼고 강이 흐르며 강가에 흰모래와 자갈이 있는 곳에서 다이아몬드가 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 서대문 대조동 순 복음 교회 시무 하신 박정근 목사님의 간증을 적어 본다. 며칠 전에 한강맨션에 살고 있는 김현숙 집사 님 댁을 심방했다. 박 목사님은 김 집사 님이 그렇게 좋은 집에 사는 줄 몰랐는데 너무 좋은 집에 사시니까 어떻게 축복을 받아서 이렇게 아름다운 집에 사십니까 고 물었다.
★ 한국을 축복 : 한상동 목사님께서 마산교회를 떠나시어 부산으로 가셔T다.
★ 봉사로 축복 받을 쿨만 :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기적과 신우의 종 캐트린 쿨만 선생의 축복 받은 이야기가 있다. 그는 숨은 봉사자로써 이름이 높다. 우선 그녀는 사회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하나님의 사랑을 보다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종교적이며 자선 적인 비영리 기관 캐트린 쿨만 재단을 설립하고 회장이 되어 우선 그녀 자신부터 재단위원회에서 결정한 봉급을 받으며 일하고 있었다.
★ 일본은 기독교인이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본 동경제대를 나오는 사람 가운데 크리스천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일본을 움직이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 오히라 수상도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이지만 일본 정치계 교육계를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은 분명히 크리스천들이 많습니다. 주 예수를 믿어라. 축복의 근원이 되느니라〈실화 1집 2집을 참조하십시오.〉. ◎ 집 한 칸만 주옵소서 : 이 기도는 집이 없는 서러움에 못 견디어 하나님께 부르짖는 한 자매의 기도입니다. 그는 지금 경북 의성군 금성면 경애원내 음성 나환자 정착촌에서 일하며 경애 교회에 다니는 민술자입니다. 그의 나이 지금 21세 젊은 나이지만 그의 생은 파란 만장한 생이었습니다〈그의 간증을 고쳐 씀을 미안함〉.
성경과 갈대를 든 천사가 저를 부르며 십자가를 네게 줄 것이니 나를 따라 오라〉했습니다.
<성구와 금언> ★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창 49 : 22).
<실 화> ★ 불황을 모르는 가게
★ 스탠리 탐의 축복
★ 이성해 목사의 헌금 ★ 반지를 헌금하여 복을 받다
★ 차를 팔아 헌금 그리하여 이 돈을 낼 형편이 못되어 부인회에서 150만원이나 들여서 사준 자가용을 120만원에 팔아서 50만원은 헌금하고 나머지로 빚을 갚았다. 차를 가지고 다니다가 자가용을 팔아 버리니까 아주 애로가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차를 달라고 기도를 하는 중 성회를 인도하고 토요일 집에 돌아와 있는데 서울에서 전화가 와서 받아 보니 과거에 이목사님을 통하여 은혜 받은 집사라고 하면서 목사님이 자가용을 판 자초지종을 물었다. 그리고는 자기가 자가용을 하나 사드리겠다고 해서 전화에다 감사 기도를 해 주었는데 다음날 정말 자가용 표가 왔다. 그리하여 지금은 새 자동차를 가지고 다닌다고 간증한다. 아울러 이목사님은 "고물 차를 하나님께 드렸는데 하나님께선 새 차를 주셨다"고 말하고 있다.
★ 경제의 대국
★ 주택 건축금을 헌금하고 복 받음
〈성구와 금언〉 ★ 너를 사랑하시고 복을 주사 너로 번성케 하시되 네게 주리라고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 소생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네 토지 소산과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풍성케 하시고 네 소와 양을 번식케 하시리니.〈신 7 : 13〉 ★ 건국 지도자들의 정신과 전통을 지키는 한 우리 나라는 번영 할 것이다.〈미국 대통령 취임연설에서〉
실 화 ★ 덴마크의 부흥
★ 축복에 대하여
★ * 뉴턴의 기도 서문 죤 뉴턴이 죽기 2-3년 전 그의 시력은 매우 어두워져 책도 읽을 수 없게 되었는데 수도원에 있는 친구와 형제가 아침식사를 하기위해 찾아왔다. 그들의 습관은 식사 시간에 맞춰 성경을 읽는 것이었는데, 그게 끝나면 뉴턴은 성경구문에 대해 짧게 묵상하면서 적절한 기도를 요청했다. 그러나 그날은 "주님의 은총으로 지금의 내가 되었습니다." 라는 성경을 읽자 조용했다. 결국 몇 분 뒤 뉴턴이 말했다. "저는 제가 돼야만 하는 그런 모습이 아닙니다! 제가 얼마나 불안전하고 부족한가요. 저는 제가 소망하는 모습도, 되고 싶은 모습도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곧 죽을 운명을 피할 수 없을 겁니다. 그와 함께 모든 죄와 불완전도, 비록 저는 돼야 할 모습도, 되고 싶은 모습도, 소망하는 모습은 아직 아니지만 저는 진실로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과거의 제 모습, 죄악과 악마의 노예는 아닙니다. 저는 마음으로부터 사도들과 어울릴 수 있고, 주님의 축복으로 지금의 제가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잠시 후 말했다. "자. 함께 기도합시다!"
★* 생 약 5년 전 나와 아내 아벨라는 서울에서 고향으로 가기 위해 3만 5천피이트로 남태평양 상공을 날고 있었다. 이때 우리 가슴은 답답하고 머리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왜냐하면 그때 35살 된 우리 딸이 병원에서 왼쪽 다리를 절단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온 힘을 다해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그러자 내 마음속에 부드러운 손길을 느끼는 동시에 한 음성이 들렸다. “겸손한 마음으로 주께 기도하라.” 그렇다. 나는 딸의 오토바이 사고를 너무 과장해서 말하면서 슬픔에 젖어 있었던 것이다. 그 애는 단지 한쪽 다리만 잃었을 뿐이다. 척추도 다치지 않았고 시력도 청력도 머리도 다치지 않았다. 그 애는 여전히 아름다우며 앞으로도 신나게 남은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믿음은 비극을 과장하지 않고 겸손하고 솔직하게 기도하는 것이다. 즉 열심히 기도하는 것의 핵심적인 의미는 우리의 모든 어려움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물을 진주로 변화시키심을 믿는 것이다. 그래서 나와 내 아내는 캐롤의 사고에 대해 기도하기 시작하면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다시 믿음을 고백할 수 있었으며,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길 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믿음을 새삼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기도하라. 그래서 우리의 모든 슬픔과 고통 그리고 연약함을 하나님께 맡기므로 하나님이 우리를 강건케 하실 기회를 제공하라.
★* 신앙인의 재산목록 어떤 회계사가 비록 가난하지만 아주 진실한 교인의 세금보고서를 대신 작성해주려고 찾아갔습니다. 그 회계사는 “소유하고 계신 재산에 대해서 말씀해주시겠습니까?” 하고 부탁했습니다. “글쎄요. 나는 너무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거든요. 첫째, 나에게는 영생이 있습니다. 둘째, 크고 아름다운 집이 천국에 있습니다. 셋째, 다른 사람들은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평화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넷째, 말로 다할 수 없는 즐거움이 있고요, 다섯째, 영원히 변하지 않는 사랑을 받았습니다. 여섯째, 현숙하고 신실한 아내가 있고, 일곱째, 건강하고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녀들이 있습니다. 여덟째, 진실하고 변함없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아홉째, 캄캄한 밤중에도 찬송을 부를 수 있습니다. 열 번째, 생명의 면류관이 있습니다. 열한 번째, 나의 필요한 모든 것을 풍족하게 채워주시는 나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살아갑니다.” 그러자 그 회계사는 장부를 조용히 덮으면서 “당신은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당신의 재산에 세금을 부과할 수는 없습니다”`라고 말했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축복의 재산이 무엇인지, 또한 앞으로 하나님 앞에서 회계할 때 보고해야 할 내용들이 무엇인지 깨우쳐주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재산목록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귀중한 하늘나라 재산목록이 풍성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 위기를 축복으로 미국의 어느 직장에서 갑자기 퇴출된 사람이 있었다. 직장에 출근해 보니 아무런 설명도 없이 책상에 해고 통보서가 놓여 있어서 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직장과 상관들에 대한 복수심이 끓어올랐다. 끓어오르는 분노와 함께 자포자기를 한 나머지 그는 가출하고 얼마 의 방황 끝에 그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보. 나는 죽고 싶소. 모든 노력을 다해 봤지만 아무 것도 되는 일이 없소." 아내가 남편에게 말하기를, "여보, 당신은 한 가지 시도를 해보지 않았어요. 당신은 당신이 처한 이 상황과 문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기도해 보신 적이 없잖아요." 이상하게도 이 말이 그에게 큰 감동이 되어 다가왔다. "그래. 맞아. 나는 이 일에 대해 기도해 본 적이 없지!" 그는 아내와 함께 기도하기 시작했다. 며칠 기도하는 동안 마음속에 있던 직장과 상사를 향한 미움과 복수의 감정이 다 사라졌고 머릿속에서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자기 집을 담보로 은행 융자를 얻어 조그마한 건축업을 하다가 어느 날 그는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제가 건축을 하면서 여기 저기 여행을 하다 보니 좋은 호텔이 없습니다. 좋은 호텔은 있지만 너무 비싸고, 작은 호텔은 너무 분위기가 안 좋아서 제가 새로운 호텔을 지었으면 합니다. 우리 이웃들에게 좋은 서비스를 베풀기 위해서 아주 깨끗한 호텔 그러면서도 적절한 가격에 쉼을 제공할 수 있는 호텔을 짓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그는 하나 둘 호텔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세계적인 체인이 된 홀리데이 인 호텔(Holiday Inn Hotel) 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홀리데이 인 호텔의 창업자인 케몬스 윌슨(K. Wilson) 이다. 해고당하여 직장을 잃은 아픔으로 입에는 불평과 원망이 가득한 상황이었다. 만일 계속해서 불평하고 원망하였으면 그는 재앙을 받아 망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혜로운 아내는 기도하도록 가르쳐 주었다. 하나님께서 피할 길을 주셨다.
★* 적당한 긴장은 축복 역사학자 토인비는 그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영국의 어선들이 멀리 북해도까지 가서 영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청어를 잡아 오고 있다. 어부들의 고민은 싱싱한 청어를 런던까지 가지고 오는 것인데 먼 뱃길을 오다보면 거의 다 죽게 된다. 할 수 없어 청어를 냉동을 해서 가지고 올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 어부는 청어를 싱싱하게 런던까지 수송해서 좋은 값으로 팔고 있었다. 그 비결을 알 수 없었다. 그 비결은 다름이 아니라 청어를 수송할 때 청어의 천적인 메기 한 마리를 넣는 것이다. 북해에서 런던까지 오는데 메기는 청어 2-3마리를 먹을 뿐이다. 적당한 긴장은 생의 활력소가 된다.
★* 주객전도 불교사찰에 가보면 어디든지 세 가지 건물이 있습니다. 대웅전, 명부전, 삼성각이 그것입니다. 대웅전은 불타에게 소위 예배를 드리는 곳이고. 명부전은 죽은 사람에 대한 제사를 드리는 곳이며, 삼성각은 삼신 즉 칠성신, 산신, 독성신을 모시는 곳입니다. 그런데 불교인들에게 제일 인기가 있는 곳이 바로 삼성각입니다. 칠성신, 삼신을 모셔놓고 '장사 잘되게 해주십시오, 자식 잘되게 해주십시오, 오래 살게 해주십시오.'하고 비는 삼성각이 가장 붐비고 사람이 많이 몰립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원래 불교에는 삼성각이란 것이 없습니다. 삼성각은 무당종교에서 나온 것인데 지금은 완전히 불교 고유의 것인 것처럼 되어버렸습니다. 휴암스님이 지은 '한국불교의 새 얼굴'이라는 책은 불교개혁에 관한 것입니다. 마술종교, 무당종교가 불교를 지배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쓴 책인데 거기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복에 환장한 한국 불교인들아! 너희 스승은 너희들이 구하는 왕궁을 버렸는데 너희는 그 스승에게서 무엇을 구하느냐? 나는 오늘의 불교인들의 생리에 저항하고 싶다. 설령 불교가 오늘의 병든 복 사상에 저항하다가 설사 신자가 천삼백만에서 백삼십 명으로 줄어들지라도 여지없이 타락된 물질주의 복 사상을 철폐하는 데 앞장서지 않으면 안 된다. 복에 환장한 불교 신자들아.” 이것은 불교의 무당화를 안타깝게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에도 복에 환장한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불교, 유교를 완전히 삼킨 무당종교가 지금 우리 기독교마저 삼킬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무당종교는 쾌락과 요행과 물질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축복은 요행주의·쾌락주의·물질주의의 복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러한 무당적 축복관이 교회 안에 들어와 인간의 본능에 호소하면서, 교회 안에 교묘하게 침투해 들어오고 있습니다. 100년 된 한국 기독교가 외적으로는 놀라운 성장을 하고 있지만, 성경말씀으로 축복관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불교가 변질되듯이 세속화의 물결 속에 머지않아 한국기독교도 변질돼버릴 것이 불을 본 듯 분명합니다.
★* 축도에 대한 소고 다시 '축복'에 대해 몇 마디 해 보고 싶군요. 잘 알다시피, '축복'이란 '복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께 내가 누군가를 위해 복을 비는' 일이지요. 보기를 들자면, 아브라함이 야곱을 (위해 하나님께) 축복하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그런데 만약 하나님이 축복하신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어떻게 되는 일입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하나님보다 더 큰 어떤 존재에게 간청하는 결과가 되는데, 말이 됩니까? 말이 되지 않지요. 그러니 그럴 때에는 이렇게 말을 해야 갰지요. "하나님, 저희에게 복을 주십시오." 또는 "하나님, 저희를 복 주사..."어떤 분들은, 그냥 '복'이라는 말을 들으면, 마치 미신적인 것처럼 들린다고 하는데, 이것은 우리의 고정관념이거나 아니면, 잘못된 시각이겠지요. 해방 전에 번역된 우리의 한글 성경에는 분명히 '복'과 '축복'이 바르게 구별되어 쓰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해방 이후 영어의 영향으로(영어 단어 bless) 우리 기독교계에서는 '축복'이라는 말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몇 년 전에 이 문제와 관련하여 '축도'의 문제가 장로교 계통에서 논란이 된 것으로 압니다. 그러나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지금도 어떤 목사님들은 이 둘을 분명히 구별하여 쓰고 있습니다만, 아직은 많은 분들이 이 둘을 구별하지 못하거나, 안 하고 있습니다. 축도의 문제는 이렇습니다. 바울의 서신에 나타나는 그 말씀들이 과연 하나님의 '복 선포권'을 바울이 대신 받아서 행하는 것이냐? 아니면 성도들을 위해 바울이 하나님께 복을 비는(축복하는)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려면, 언어적인 지식이 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저는 언어학을 전공한 문학박사입니다. 그래서 이쪽은 조금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영어의 일방적인 영향으로 서양말의 'volitive'나 'imperative'를 모두 '명령법'이라 번역하고 그렇게 이해하고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후자는 '명령법'이라 옮겨도 좋겠으나, 전자는 제대로 하자면, '소망법'(원망법, 희망법)이라 옮겨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말을 하는 사람'이 '그 월의 주어'가 '어떻게 해 주기를 바라는' 경우에 쓰는 서법입니다. 그러니 일방적인 명령과는 다른 것입니다. 영어에서는 2인칭 명령법만 나타나고, 1인칭이나 3인칭의 소망법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유럽의 많은 말들에는 이러한 소망법이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일방적인 명령은 '2인칭'에서나 나타나는 일이지요. '1인칭'이나 '3인칭'에서는 명령이 아니라 희망입니다. 문제가 되는 바울의 말씀도 바로 이러한 소망법인 것입니다. 그 월의 주어는 2인칭이 아니고 3인칭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하나님의 사랑' 그리고'성령님의 보살핌' 등이 모두 3인칭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일방적인 명령법이 결코 아닙니다. 말하는 자인 바울이 그 월의 주어로 나타나는 그 세 가지가 성도들과 함께 하기를 바란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밖에도 '축도'라는 말 자체에서도 우리는 이것이 뭔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축도'의 '도'자는 '기도'라는 뜻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분명 기도라면, 인간이 하나님에게 하는 것이지요. 인간이 인간을 위해 하나님께 축복하는 것이지요. 마치 아브라함이 야곱을 위해 하나님께 축복하듯이 말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이 하나님에게 어떻게 기도합니까? 사실, 문제는 목사의 '축복권'(?)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목사에게 과연 '축복권'(?)이 있는가? 당연히 있지요. 순수한 의미에서의 '축복권'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내가 내 아들을 위해 축복할 수 있고, 여러분이 여러분의 친구를 위해 축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교계에서 오해하는 대로의 '축복권'(사실 이것은 축복권이 아니고, '복선포권'입니다.)은 목사에게 있는가? 이것은, 평신도인 제가 뭐라 판단할 수 없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만, 우리 모두가 일반적으로 인정하는 바에 따르자면, 하나님만이 복의 근원되시지요. 그러면, 이렇게 말을 할 수도 있습니다. 목사가 축도를 할 때에는 하나님을 대신한다구요. 그렇다면, 축도라는 용어는 틀렸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께 어떻게 기도합니까? 그럴 경우에는 '축도'라 하지 말고, '복선포'라 해야 겠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결국, 이런 결론이 나옵니다. 예전에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은, 성경을 처음 번역하고, 축도라는 일을 처음 시작하던 때에, 복의 선포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다만 순수한 의미에서 '축도'를 한 것이지요. 그런데, 해방 이후부터인지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우리나라의 목회자들이 '축도'를 '복선포'로 바꾸어 버린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 축복 앤서드 멜로이의 글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가게 주인이 자기 스승에게 찾아가서는, 맞은편에 큰 연쇄점이 생겨서 자기는 망하게 생겼다고 했습니다. 자기 가정이 10년 동안 지켜 온 가게를 잃어버린다면 자기는 다른 기술도 없으니 파멸할 것이라고 걱정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그 가게 주인의 스승은 이렇게 충고를 했습니다. “그 연쇄점 주인을 두려워한다면, 그를 증오하게 될 것이고, 그 증오가 자네가 파멸하는 원인이 될 걸세.”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매일 아침 가게 앞에 나가서 자네 가게를 축복하고, 돌아서서 길 건너 연쇄점도 축복하게.” “아니, 경쟁자이자 파괴자를 축복하라고요?” “자네가 그에게 축복하는 것은 무엇이든 자네에게 좋게 되돌아올 걸세. 자네가 그에게 바라는 악은 무엇이든 자네를 멸망시킬 걸세.” 여섯 달 후에 그 식료품 가게 주인은 자기 스승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걱정과 근심만 했다면 정말로 가게를 닫아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님 말씀대로 했더니 지금은 그 연쇄점까지 맡고 있으며 어느 때보다도 경기가 좋습니다.”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악의는 자신을 파괴하고 이웃을 파괴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마음은 서로를 축복의 삶으로 인도합니다.
★* 축복의 가시 한 교회를 방문했을 때, 우리는 아들 매튜를 주일학교 학급에 데려다 주었다. 체구가 작고 등이 구부정한 여선생이 환한 미소를 보이며 매튜를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후에 매튜는 무얼 배우고 무슨 노래를 배웠는지에 대해 흥분하여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 선생의 탁월한 능력에 감명을 받았다. 곧 그 교회의 목회자가 된 나는 그 여선생이 과부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가끔씩 이 과부의 적극적인 정신에 경탄을 하곤 한다. 그녀의 그런 태도는 다른 사람에게까지도 감동을 주었다. 나는 그녀가 자기의 비밀에 대해 나에게 말했던 것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목사님, 하나님께서는 아이들이 있는 곳에서 제가 똑바로 설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저를 이렇게 작고 등이 굽게 만드셨어요. 저는 아이들을 무척이나 사랑하는데, 만일 제가 키가 크고 몸도 정상이었다면 아이들에게 지금처럼 잘해 주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녀는 자기의 가시를 승리로 바꾸었다. 이것이 바로 그녀가 유용하게 쓰임 받는 존재가 된 이유였다. 그녀에게 있는 가시는 축복이 되었고 그녀는 이것을 기뻐했다. 우리를 통해 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은 위험한 사업이다. 우리의 삶을 쓰임 받는 삶. 열매 맺는 삶으로 만들기 위해 하나님께서 가시를 필요로 하신다면, 우리는 그 가시를 인내할 수 있게 하는 은혜를 구하고, 그 가시의 목적을 깨달아야 할 것이며, 또 기뻐해야 할 것이다.
★* 축복의 기도로 시기심 극복 챨스 스펄젼 목사님과 켐벨 몰간 목사님, 그리고 마이어 목사님이 세 분 목사님은 모두 기독교 교회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분들이시다. 그런데 스펄젼 목사님과 켐벨 몰간 목사님이 인도하는 교회가 큰 부흥을 이룰 때 마이어 목사님이 이런 고백을 하였다고 한다. 하루는 기도를 드리는데 그 자신이 스펄젼 목사님과 켐벨 목사님을 시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회개하여 시기심을 없애려고 아무리 노력하여도 그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질투는 감당할 수 없었다. 마이어목사님은 "주님! 시기를 없애고 평화의 영을 갖게 해주십시오."라고 간절히 기도를 드렸지만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마이어 목사님께서 이 시기의 마음을 극복할 수 있었을까? 그는 기도의 방법을 바꾸었던 것이다. "주님! 스펄전 목사님과 캠벨 목사님의 교회를 부흥시켜주시고 축복해주세요" 라고 기도 드린 후 참 평화를 경험했다.
★* 하나님 자녀들의 삶 이솝 우화에 보면 충직하게 주인을 섬겨오던 늙은 사냥개가 전과 같이 주인과 함께 노루 사냥을 갑니다. 얼마 후 노루를 발견한 사냥개가 있는 힘을 다해 노루를 쫓아가니 노루가 생명을 내어놓고 도망하다가 더 이상 뛸 수 없어 쉬는 사이에 늙은 사냥개가 전과 같이 노루의 목을 물고 늘어졌으나 이제는 이가 많이 빠진 터라 노루가 한 번 몸부림을 치자 물었던 노루를 그만 잃고 말았습니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주인은 말채찍으로 늙은 사냥개를 막 때립니다. 사냥개가 애원을 하며 과거의 공적을 얘기했지만 주인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계속 때렸다고 합니다. 사탄은 이와 같이 사람을 자기의 도구로 실컷 사용하다가 후에 이용가치가 없으면 지옥으로 데리고 갑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의지하고 바라보며 끝까지 순종한 하나님의 자녀들을 끝까지 책임지시며 나이 많아 늙어도 그의 범사에 끝까지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자녀들의 삶을 이 땅에서만 책임지시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늘나라에까지 인도하여 주셔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한 영생의 축복을 누리게 해주시는 분이십니다.
★* 하나님을 위해 힘써 일하자 어떤 목사님이 그가 설교하도록 되어 있는 시골 교회에 어린 아들을 함께 데리고 갔습니다. 교회의 현관에 이르렀을 때 목사는 그 앞에 헌금통이 있는 것을 보고 25센트짜리 동전 한 개를 집어넣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나서 그 교회의 회계가 “우리는 항상 우리 교회를 방문한 목사님께 우리의 헌금통에 들어 있는 모든 돈을 드립니다.”고 말하면서 헌금통을 열어 그 안에 든 헌금 전부를 그 목사에게 주었습니다. 그 안에 얼마의 돈이 들어 있었겠습니까? 단지 25센트짜리 동전 하나뿐이었습니다. 목사가 교회를 떠날 때 어린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아빠, 아빠가 돈을 더 많이 넣었더라면 더 많은 돈을 받았을 것 아녜요.” 우리의 영적 축복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가 쏟아 넣은 것만큼의 결실을 얻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친구에게 귀한 보석들을 보여주면서 “이것들은 참 아름답긴 하지만 소득은 없다네”하고 말했습니다. 그때 상대편 친구가 “나도 자네에게 두어 가지 보석을 보여줌세. 그것들은 별로 예쁘지도 않고 별로 값진 것도 아니지만 소득을 얻을 수 있다네”하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조그맣고 보잘 것 없는 맷돌 두 개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맷돌은 주인을 위해 열심히 일하여 유익한 결실을 맺어줍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람들 중에서도 보기에는 훌륭하나 하나님을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이들이 하나님을 위해 애써 일하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더욱 기뻐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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