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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QHA에 한편의 항공영화 개봉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바로 'REDTEIL' 이라는 영화인데요..
스타워즈 ,인디아나 존스로 유명한 루카스필름에서 제작되고 있는 이 영화는 미육군 항공대 최초의 흑인비행대인 터스키기 (The Tuskegee Airmen) 부대의 활약상을 다룬 항공영화 입니다. 이미 1995년 미국의 유명한 드라마 제작방송국인 HBO (밴드오브 브라더스를 만든 그회사) 에서 드라마로도 제작된바가 있습니다. (주인공이 매트릭스의 모피어스역을 맡은 로렌스 피쉬번 이 주인공으로 활약)
터스키기 부대는 2차대전중 흑인으로만 구성된 비행단으로 독일군을 상대로 놀라운 전과를 올린 전설적인 부배 입니다.
이들이 왜 영화거리가 되댜면 2차대전만 하더라도 뿌리깊은 미국의 인종차별정책으로 흑인은 전쟁에 참여할수 없었고 참여하더라도 보급이나 식당일등 실제 전투와는 상관없는 허접거리 일만 맡아서 해야했죠..
이는 미국의 제32대 대통령인 프랭클린 델러노 루스벨트(Franklin Delano Roosevelt, 1882년 1월 30일 ~ 1945년 4월 12일) 대톨령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미국내 흑인인권단체의 집요한 요구와 영부인인 엘리너 루스벨트(Anna Eleanor Roosevelt, 1884년 10월 11일 ~ 1962년 11월 7일)마져 간절하게 바라져 마지못해 허가를 해줍니다.
하지만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생각했죠
"그 열등한 종자들이 어려운 전투기 조종을 한다고 웃기는군.."
루즈벨트 대통력의 직접적인 명령에 의해 육군은 알라바마주 터스키기에 훈련장을 건립하고 제99 추적비행대 (99th Pursuit Squadron)이라는 흑인 전투기 조종사들의 훈련비행대를 창설하게 됩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수많은 흑인 엘리트들이 전투기 조종사가 되겠다는 열망을 품고 미국 전역에서 몰려들게 됩니다. 터스키기 비행장은 뿌리깊은 인종차별에 시달리던 흑인들에게는 더 높은 곳으로 올라설 수 있는 신분상승의 고속도로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고된 훈련도 훈련이였지만 여기에 이들을 멸시하고 차별하는 노골적인 편견과 군내부의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괴롭힘과도 싸워야 했습니다.
그러던중 1941년 4월 19일 터스키기 비행장을 상황을 살펴보기위해 방문한 대통령 영부인이 수행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흑인 교관이었던 찰스 앤더슨이 조종하는 2인승 훈련기의 후방석에 탑승하여 30여분간 비행을 하면서 착륙후에 영부인은 기념사진을 찍은후 흑인 조종사들의 실력에 의심할 여지가 없다며 계속 지원을 약속하는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대통령 영부인의 든든한 후원을 등에 업게 되면서 1941년 봄부터 13명의 전투기 조종사 후보생들이 본격적인 전투기 조종사 훈련과정에 들어가는데, 이것이 터스키기 에어맨의 전설이 시작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후 혹독한 훈련과정을 이수한 후보생들은 미군 최초의 전투기 조종사로 임관한후 실전에 투입될날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1943년 3월 31일 제99 전투비행대로 명명된 흑인 전투기부대가 튀니지로 날아오게 되는데 이들은 여기서 제 332 전투기연대에 배속된후 최초의 실전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들이 실전에서 최초로 사용한 전투기는 P-40 워호크였습니다. 이들의 주 임무는 지상군의 작전을 지원하는 것이었으며 가끔 독일 전투기들과 마주치기는 했지만 본격적인 공중전에 투입될 기회는 없었습니다.
이후 시칠리로 이동한후 계속 활동하기는 했지만 이들은 의도적으로 전공을 올릴 만한 임무에서는 배재되고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은 부대의 상징으로 꼬리날개 전체를 붉은 색으로 칠했다는 점입니다.
제 33전투기 연대의 윌리엄 모마이어 대령같은 백인 우월주의자들은 흑인 조종사들의 성과를 평가절하했으며 지속적으로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그들에게는 성과를 올릴 만한 기회가 제대로 주어지지 않았음에도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적인 분위기는 극복하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1943년 9월에는 대표적인 언론인 타임지가 흑인 조종사들을 비하하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묵묵히 임무를 수행으며 서서히 차별의 벽을 넘기 시작했고 결국은 독일 본토를 폭격하는 미공군의 폭격기들을 호위하는 막중한 임무까지 성공적으로 수행해내게 됩니다.
사람들은 그들이 훈련을 받은 터스키기 비행장의 이름을따서 터스키기 에어멘 (Tuskegee Airmen) 이라고 불렀으며, 폭격기 조종사들은 꼬리날개가 붉은 색으로 도색된 P-51D 전투기들의 활약상을 여러번 목격하게 되면서 이 터스키기 에어멘들의 전투기들을 '붉은 꼬리의 천사들 (Red Tail Angels)'이라고 불렀다고도 합니다.
이들의 특기할 만한 전과로는 1945년 3월 24일 베를린까지의 폭격기 호위임무에서 제 332 전투기연대의 조종사들이 Me 262 제트전투기들과 교전하여 한치의 물러섬이 없이 싸웠으며 결국 5기의 Me 262를 격추시켰던 사건인데, 이날 그들은 단 한 대의 폭격기나 동료 전투기도 잃지 않았습니다.(이번 아카데미 제품이 그것을 재현한 제품이다)
이 전과가 보고되자 대통령은 이들에게 찬사와 함께 부대표창을 내렸습니다.
결국 터스키기 에어멘은 그들의 존재가치를 확실하게 증명했으며 그들이 미국사회와 군대의 인종차별의 벽을 깨는데 큰 기여를 했음은 너무나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총 500여명의 조종사들이 터스키기 에어멘의 일원으로 활동했으며 이중 190여명이 전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2차대전후에 이들은 여전히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에도 참전하여 미공군의 전투기 조종사로 미국의 자유와 평화의 의미를 알리는데 평생을 같이 했다고 합니다.
영화 레드테일의 개봉에 맞추어 아카데미에서 준비한 한정판 제품은 P-51D & Me262A-1a [Tuskegee Airmen & Luftwaffe] 입니다.
아카데미의 걸작으로 불리는 1/72 P-51D형과 Me-262A-1 이 같이 들어있는 2 IN1 제품으로 터스키기들이 5대의 Me262A-1a를 격추하던 그 영광의 전투장면을 재현한 제품 입니다. (스탠드는 별매!!)
2월24일 출시예정이고 카르토그라프제 데칼포함 소비자가격은 16,000원 (예정) 입니다.
이번시간에는 앞서 아카데미의 1/72 P-51D 형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차대전 최고의 전투기 '날으는 하늘의 캐딜락'이라 불리던
P-51 Mustang (머스탱) 전투기
번역 및 정리 미라지나이트 (www.compmania.co.kr)
2차대전에 활약한 전투기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이라도 아마 무스탕이라는 이름은 한번씩을 들어봤을 듯 하다. 정확히는 머스탱(MUSTANG; 뜻은 야생마라는 의미이다) 이란 발음이 맞겠지만 어느새 미국식 표현에 익숙해져인지 무스탕 이란 이름이 더 익숙해진듯 합니다.
독수리 사러갔다 조랑말을 대신 사온 영국무기사절단..
P-51 머스탱은 2차대전이 한참인 1943년경 등장하여 종전과 한국전쟁까지 등장한 전투기로 2차대전에 등장한 전투기중 가장 우수한 전투기중 하나로 손꼽히는 명기체중 하나 입니다.
한참 히틀러의 야욕이 불타오르던 1939년… 전쟁이 바로 코앞에 임박해 있음을 직감한 영국공군은 아무래도 자국의 공업능력으로는 턱없이 전투기가 부족할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부족한 전투기 생산분을 충당하러 여기저기 알아보던중 역시 당시 최고의 공업능력과 생산력 그리고 항공기술의 최강국가중 하나로 알려진 미국으로 무기구매사절단 보내게 됩니다.
이들은 처음에는 당시 최강의 전투기로 알려진 미국 커티스사의 P-40 토마호크를 구매하러 무기구매 사절단을 파견하게 됩니다
하지만 당시 미국은 ‘전쟁은 유럽만의 이야기!!’ 라고 치부하고 중국이나 프랑스등 다른 나라들로부터 주문받은 전투기 생
산에 한참 열을 올리고 있었는데 도저히 커티스사의 생산능력으로는 영국이 원하는 양의 전투기 생산은 제때 어려운 상
황이였습니다.
[P-40 은 2차대전전 가장 우수한 성능을 가진 전투기였으나 독일의 ME-109 메서수미트나 이어 나온 포케불프등에 비하면속도나
기동성면에서 한참 떨어지는 기체였다]
영국무기사절단은 고심하죠.. 전시라면 우째 미국을 조르거나 압력을 넣어 좀 해보겠는데 당시 미국의 대통령 루즈벨트
는 1차대전 참전이후 극심한 미국의 대공황과 불황기를 막 빠져나온지라..다시는 유럽의 전쟁에 발을 담구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상황이 이러니 영국의 무기사절단이 그렇게 달가울리 없었죠 (그래서 사가던 말던 내버려둡니다.
다만 영국의 처칠과의 입장 때문에 수출금지까지는 못하고 있었죠)
커티스사는 당시 중국 국민당 정부가 주문한 전투기 물량을 대기도 바쁘고 또 사정이 어려운 영국이 비행기만 주문해두
고 지불을 못할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역시 본체만체…
한시라도 급한건 역시 영국무기사절단이였고 (영군 첩보부의 정확한 정보에 의하면 나찌독일의 침공이 코앞에 다가온걸
로 보고가 들어오는지라..) 일단 주문을 넣어두는 한편, 당시 역시 전투기 제작능력이 있던 신생항공사노스 아메리카사에
라도 P-40 토마호크를 같이 생산하면 어떻겠냐고 제안까지하게 됩니다. (물론 돈은 충분히 줄테니..)
[2차대전 전에 창립된 노스아메리카(North American Aviation (NAA)) 사는 회사가 생긴지는 얼마되지 않았지만 기술력
과 패기 하나는 정말 대단한 신생항공사로 P-51 무스탕을 비롯 T-6 택산 이나 B-25 미첼 중폭격기를 생산하여 호평을
받았는데..머스탱의 성공을 기반으로 F-86 세이버 제트 전투기로 빅히트를 치게 된다!]
당연 커티스사는 일언지하에 거절합니다. 어쩌면 라이벌 업체가 될 수 있는데 이런 귀중한 기체를 라이선스 생산하게 하다니.. 누구 좋으라고…
이에 당시 젊은 패기로 가득차있던 노스아메리카(North American Aviation (NAA)) 의 사장인 ‘제임스 킨델버거(James H. Kindelberger)’ 씨는 엄청 자존심이 상한 나머지 이렇게 큰소리 치죠~
[젊은 패기로 가득차있던 노스아메리카(North American Aviation (NAA)) 의 사장인 ‘제임스 킨델버거(James H. Kindelberger)’ 씨 (좌측)과 수석기사였던 에드가 쉬무트 의 모습 당시 젊었던 두 젊은이들이 뭉쳐 제작한것이 바로 P-51 머스탱이였다.]
“ 나에게 4개월만 주시오 그렇게 하면 내가 커티사의 P-40 보다 좋은 전투기를 만들어 드리겠소,,!”
이렇게 큰소리를 치자 영국 무기사절단은 사정이 절박했던지라…
“ 만약 생산된 전투기가 그보다 좋다면 바로 3백대를 구매하고 만약 그보다 떨어진다면 계약은 파기”
한다는 약속만 하고 바로 계약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 계약을 한지 117일만인 1940년 10월26일 노스아메리카의 첫 시험기가 힘차게 하늘을 날아오르게 됩니다.
NA-73이라고 명명된 시제기는 영국 관계자들이 보는 앞에서 멋진 시범비행을 실시했고 최고속도가 P-40보다 무려 시속 40km가 빠른 최고시속 640km를 기록했습니다.
일단 시험비행의 결과는 매우 만족할 만한 것이었으며 영국측이 제시한 조건에 대부분 충족하고 있었으므로 노스아메리카사는 약속대로 영국으로부터 즉시 발주를 받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리하여 영국측으로부터 Mustang Mk. I 이라고 명명된 (노스 아메리칸사의 제식명칭은 P-51A) 이 야생마는 320기의 발주를 받아 생산되는 족족 대서양을 건너 영국으로 실려가게 됩니다.
이로써 영국군은 저렴한 가격에 P-40 보다 뛰어난 전투기를 획득하게되었고 당시 신생항공사인 노스아메리카사는 멋지게 새로운 전투기를 개발하면서 항공사에 그 이름을 올리게 되는 ‘누이좋고 매부좋은.’ 일이 됩니다.
영국에서 조련된 야생마 P-51 Mustang
급한대로 P-40 대신해 전장에 투입된 Mustang Mk.I 은 전반적인 성능은 매우 만족할만하였고 확실히 P-40 보다는 뛰어난 기체인 점은 확실해 보였습니다. 딱 한가지만 빼고..
그 한가지란 다름아닌 미국에서 개발되어 Mustang Mk.I에 (미국명 P-51A) 장착된 미국제 엘리슨 엔진으로는 저공에서 성능을 탁월했지만 고도가 높은 고고도에서는 급격한 성능저하를 가져오는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초기 무스탕에 장착된 엘리슨 엔진은 저공에서만 탁월한 성능을 발휘하는 엔진으로 (무스탕 MK.I은 고도 4.2km(1만4천 ft)에서라면 최대 615km/h(382mph)까지 속도를 낼 수 있었으며, 다른 비행특성도 노스 아메리칸이 장담하던 대로 P-40보다 나았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고고도에서의 성능은 떨어지는 편이었으며, 고도 9.1km(3만 ft) 이상까진 올라가지 못했다는 점이다. 당시 유럽전선에서는 이런 높은 고도에서 공중전이 종종 벌어졌기 때문에 영국군 입장에서는 무스탕 Mk.1을 본격적인 전투기로 쓰기엔 부족했으나, 그래도 이 전투기는 지상공격이나 적 공격기를 쫓아내고 부족하나마 고성능 전투기들을 돕는 보조 전투기로서는 손색이 없는 성능이었다.) 이로인해 한동안 수입된 Mustang Mk.I에 (미국명 P-51A) 은 모두 저공에서의 공중지원임무기체로 돌려져 사용되게 되었다]
그 문제는 엘리슨엔진의 츨력저하 때문이였는데 초기 무스탕에 장착된 엘리슨 엔진은 저공에서만 탁월한 성능을 발휘하는 엔진으로 (무스탕 MK.I은 고도 4.2km(1만4천 ft)에서라면 최대 615km/h(382mph)까지 속도를 낼 수 있었으며, 다른 비행특성도 노스 아메리칸이 장담하던 대로 P-40보다 나았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고고도에서의 성능은 떨어지는 편이었으며, 고도 9.1km(3만 ft) 이상까진 올라가지 못했다는 점이다. 당시 유럽전선에서는 이런 높은 고도에서 공중전이 종종 벌어졌기 때문에 영국군 입장에서는 무스탕 Mk.1을 본격적인 전투기로 쓰기엔 부족했으나, 그래도 이 전투기는 지상공격이나 적 공격기를 쫓아내고 부족하나마 고성능 전투기들을 돕는 보조 전투기로서는 손색이 없는 성능이었다.) 이로인해 한동안 수입된 Mustang Mk.I에 (미국명 P-51A) 은 모두 저공에서의 공중지원임무기체로 돌려져 사용되게 됩니다.
이는 미육군항공대에서 주문된 기체들도 마찬가지였는데 미육군은 이들 기체가 급강하폭격에 유효한 사실을 알고 A-36 아파치란 이름으로 급강하 공격기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무스탕이 고고도에서 약한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무스탕에 탑재된 엔진인 엘리슨의 V1710이 저고도에 특화되어 있는 모델이기 때문인데 최대 1150마력의 힘을 낼 수 있는 이 V1710은, 최대 출력만 놓고 보자면 동시기의 다른 전투기들이 사용하던 엔진에 비해 특별히 약한 편이 아니었지만 비행고도만 높아지면 힘이 약해졌습니다.
애당초 V1710은 고고도 비행을 그리 중요시 하지 않고 설계된 엔진이다 보니 수퍼차저의 성능이 높지 않았습니다.
이에 영국공군은 당시 스피릿화이어에 장착되던 머린 61(Rolls-Royce Merlin 60 series) 엔진을 장착해보게 됩니다.
[예나 지금이나 기초공업력이 강한 영국은 특히 엔진에 관한 절대적인 기술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롤스로이스사는 당시 소형이면서 최고의 성능을 내는 엔진을 만들수 있는 실력이 있었다. 롤스로이스 머린61형이 ( (Rolls-Royce Merlin 60 series)엔진이 바로 그것이였는데 이 엔진은 스핏화이어를 비롯 모스키토등에 장착되던 우수한 항공기용 엔진이였다]
그랬더니…새롭게 개조된 머스탱은 기존의 머스탱과는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성능을 발휘하게 됩니다. 마치 이 엔진은 자신을 위해 만들어진 엔진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죠..
영국제 머린엔진을 장착한 머스탱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시속 704km 라는 경이적인 속도를 보여주게 됩니다.
[영국에서 제작된 머린엔진을 장착한 머스탱은 전혀 다른기체로 여겨질 정도로 우수한 성능을 보여주었으며 영국제 머린엔진을 장착한 머스탱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시속 704km 라는 경이적인 속도를 보여주게 된다. 이 엔진의 장착으로 무스탕의 문제였던 고고도 에서의 엔진출력 저하 문제 역시 전혀 발견되지 않아 오늘날 우리가 아는 궁극의 전투기로 다시 탄생하게 된다 놀라운 발견을 한 영국공군은 이를 Mustang Mk. II 라 부르며 곧바로 자국의 롤스로이스 머린 엔진(Rolls-Royce Merlin 60 series) 을 미국의 팩커드사에서 라이선스 생산하여 탑재하여 생산해줄 것을 주문하는 한편 2천대라는 대규모 물량을 추가 주문하게 된다 사진이 팩커드사에서 라이선스 생산하여 무스탕에 탑재되기 시작한 멀린-패드사 엔진의 모습]
또한 고고도 에서의 엔진출력 저하 문제 역시 전혀 발견되지 않아 오늘날 우리가 아는 궁극의 전투기로 다시 탄생하게 됩니다.
영국공군은 이를 Mustang Mk. II 라 부르며 곧바로 자국의 롤스로이스 머린 엔진(Rolls-Royce Merlin 60 series) 을 미국의 팩커드사에서 라이선스 생산하여 탑재하여 생산해줄 것을 주문하는 한편 2천대라는 대규모 물량을 추가 주문하게 됩니다.
[영국공군은 자국의 롤스로이스 머린 엔진(Rolls-Royce Merlin 60 series) 을 미국의 팩커드사에서 라이선스 생산하여 탑재한 기종을 Mustang Mk. II 라 부르며 곧바로 생산해줄 것을 주문하는 한편 2천대라는 대규모 물량을 추가 주문하게 된다 한편 미육군도 막상 전쟁이 터지면서 참전하게 되자 마땅한 전투기가 없었는데 영국군이 이를 개량하여 채용하자 바로 따라서 P-51B형이라 이름 붙이고 정식채용하기 이른다. 이는 독일공군으로서는 불행의 시작이였다]
궁극의 전투기 MUSTANG D 형
롤스로이스 멀린 엔진 장착으로 전혀 새로운 전투기로 재탄생한 머스탱은 이후 빠른 개량이 실시됩니다.
롤스로이스 엔진을 미국의 팩커드 사에서 라이선스 생산하여 장착한 타입인 P-51B 형을 시작으로 영국식 무장 (기수에 caliber 50 12.7mm 기관총 2정, 주익에 브라우닝 7.7mm 기관총 4~6정) 과는 달리 주익에 12.7 밀리 Cal 50 기관총 4정을 장착한 타입을 미군에 납품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주익의 무장을 6정으로 늘리고 외부연료탱크 장착으로 항속거리가 최대 3,347km 에 달하는 C형도 이어 등장하게 됩니다. 이 B/C형은 총 3,748기나 생산되게 됩니다. 영국도 P-51B/C를 Mustang Mk.III라는 이름으로 도입했습니다.
[특히 주익의 무장을 6정으로 늘리고 외부연료탱크 장착으로 항속거리가 최대 3,347km 에 달하는 C형도 이어 등장하게 되는데 이 B/C형은 총 3,748기나 생산되게 됩니다. 영국도 P-51B/C를 Mustang Mk.III라는 이름으로 도입합니다. B/C형형의 활약상은 아래 동영상참고!!]]
하지만 무엇보다 궁극의 머스탱으로 불리는 기종은 역시 D형으로 궁극의 성능을 추구한 기종이자 가장많은 생산대수를 자랑하는 기종이 바로 D형이였습니다.
새로운 엔진 장착으로 전혀 새로운 전투기로 재탄생한 머스탱 이지만 한 가지 단점이 있었는데 다름아닌 캐노피의 시야가 썩 좋치 못하다는 점이였습니다.
[D형의 외형적 차이로는 물방울식 캐노피 (Buble Canopy) 가 도입되었다는 점으로 이는 바람의 저항면에서도 우수했고 특히 후방의 시야가 확 트이는 장점이 있었다]
[버블탑 방식의 캐노피는 스핏화이어 나 P-47D 형에 시범적으로 적용되었는데 효과가 이외로 좋아 머스탱에도 도입된것 프레임이 없고 팍트여 시야가 엄청 좋아졌고 또한 물방울 형태의 유선형이라 바란의 저항도 적었다 무엇보다 외형적으로 상당히 보기좋게 다듬어 졌다는게 ^^]
초기 머스탱 들은 레이저백 (Razorback)형 이라 불리는 캐노피를 장착하였는데 이 캐노피는 후방의 시야가 막혀버리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기존 B/C형의 캐노피는 흔이 레이져백이라 불리는 창살형 프레임이 붙은 캐노피였다]
[레이져 타입은 이처럼 창틀로 인해 가려지는 사선 부분도 많고 특히 6시 방향은 동체에 가려져 볼수 없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그리하여 당시 스피릿화이어나 P-47D 썬더볼트 등에 탑재되어 좋은 반응을 얻고 있었던 물방울 형태의 물방울 (bubble)형 캐노피가 도입되어 시야가 훨씬 좋아진 D형이 등장하게 됩니다.
[반면 버블탑 방식의 캐노피는 이처럼 프레임이 없어 사선이 생기지도 않았으며 전방위 감시가 가능한 장점이 있었다]
[D형에 장착된 버블탑 방식의 캐노피에서 후면을 바라본 시야.. 전혀 어려움이 없이 시야를 확보할수 있어 공중전에서 적보다 먼저 발견할 가능성을 높여준 획기적인 변화중 하나였다]
D형은 머스탱의 궁극의 타입이라 불리는 타입으로 물방울 캐노피를 도입하여 기체의 라인이 더욱 세련되어진게 특징입니다.
또한 기존버젼들의 문제점중 하나였던 급기동시 잼이 걸리는 주익의 기관총 급탄부에 모터방식의 급탄기를 사용 하고 기관총을 수평으로 배치하는등 잼 현상을 없애는등 궁극의 전투기로 불리우게 됩니다. 거기에 무장도 기존의 12.7밀리 각4정에서 6정으로 늘려 총 6문의 12.7밀리 기관총을 장착 화력을 늘릴수도 있었습니다. (기존의 B/C버전은 각 3정씩 총 6문을 장착..무게를 조금이라도 줄일수 있어 때론 이 무장을 선호하는 조종사도 있었다)
[P-51D의 기관총 배치도. 한쪽 날개에 3자루씩, 총 6자루의 기관총을 가졌다. 또한 P-51B와 달리, P-51D는 기관총을 똑바로 배치하여 고질적인 기관총 고장 문제를 해결했다.]
[영국의 허리케인 전투기가 320m 앞의 독일 전투기, Fw190를 추적하고 있다. 사진에서 표적 주변에 잘 보면 몇 가지 점들이 표적을 둘러싼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사진 오른쪽 위의 다이아몬드와 점으로 구성된 조준점으로, 조준기가 적기의 거리와 각도를 계산한 상태에서, 이 다이아몬드 안쪽 원에 적기의 날개가 가득 차도록 조준한 다음 발사하면 적기에게 예측 사격을 하게 된다. 사진을 잘 보면 조준기의 마크가 중앙이 아니라 옆으로 치우쳐 있다. 즉 현재 상황에서 기총은 적기보다 훨씬 앞쪽을 향하고 있는 상태이지만, 이 상태에서 기총을 발사하면 총알들은 적기와 만나게 된다. 즉 조종사는 자연스레 예측 사격을 하게 되는 것이다. 사진 속의 조준기는 영국의 Mk.II이나, 무스탕이 사용한 K-14와 거의 유사하다.]
P-51D형은 이후 대량 생산되어 계속 전쟁에 투입되었으며 영국군도 Mustang IV라는 이름으로 도입하여 사실상 전체 머스탱을 대표하는 기체가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군사전문가들은 P-51D형을 진정한 머스탱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숫자상으로도 머스탱의 총 생산기수 15,586 기의 절반을 넘는 7,956기가 생산되는등 머스탱 하면 가장 이미지가 강한 기종으로 인기가 높은 기체중 하나 입니다.
[2차대전중 생산된 P-51 기체들의 생산량을 나타낸 표 후기형 모델인 D형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을 잘 알수 있다]
D형은 높은 성능으로 인해 존 메이어(John C. Meyer),조지 프레디 등 많은 에이스를 배출하기도 했고 심지어는 Me-262 를 대상으로로 많은 격추를 올리는등 (주로 속도가 떨어지는 이착륙 때 격추한 거지만..) 많은 활약을 하게 됩니다. 특히 머스탱은 특유의 긴 항속거리로 인해 4발 중폭격기의 가드로 많은 활약을 하게 되는데 당시 머스탱의 항속거리는 웬만한 폭격기들보다 월등하거나 맞먹는 수준이라 독일을 폭격하는 4발 폭격기들의 수호천사로서 인기도 높았습니다. 물론 독일공군 입장에서는 공포의 은빛사신으로 불리기도 했지요..
실기체에 대한 좀더 자세한 정보는 아래 링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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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히트 아이템!! 아카데미 1/72 스케일 에어로 씨리즈
1988년경 아카데미는 미국의 모형메이커 미니크라프트 (MINICRAFT)사 와 손을잡고 독자 아이템인 1/72 B-17B/C형을 시작으로 1/72 아이템 들을 제작하기 시작합니다.
[1970~80년대 초반 일본 제품의 데드카피로 악명을 떨치던 국내모형업체 아카데미는 1988년 1/72 스케일 제품 B-17B 프라잉포트리스 제품을 들고 화려하게 세계무대에 데뷔하게 된다. 당시 꽤나 우수한 품질이였다 생각했는데 그뒤에는 미니크라프트라는 미국 모형회사가 뒤를 봐주고 있었다]
[아카데미의 B-17B/C형은 비록 국내이는 큰 인기를 얻지 못했지만 세계최초 1/72 스케일 재현이라는 점과 엄청난 디테일로 세계 시장에 (특히 미국모델러들에게..) 아카데미의 이름을 알리기에 충분했다]
미니크라프트 (MINICRAFT)사 는 미국의 모형메이커로 1980~90년대 정교한 일본의 모형제품들이 전세계를 강타하자 본토생산을 접고 설계만 자신들이 하고 공장은 상대적으로 가격이 싼 제3국을 통해 OEM 생산하여 포장판매하는(레벨생산방식과 같다) 회사로 80년대말 당시 떠오르고 있던 신생메이커 아카데미와 손잡고 다양한 제품들을 생산하게 됩니다.
이둘의 파트너 관계는 1988년대 후반부터 관계가 깨어진 2000년대 초반까지 이며 이때 생산된 제품중에는 B-17 ,B-24 씨리즈 와 B-29 등이 있습니다.
[이어 아카데미는 B-17E/F/G씨리즈를 출시하면서 그 명성을 떨쳤고 당시 이들 폭격기를 다룬 전쟁영화 멤피스벨이 큰 히트를 치면서 덩달아 히트치게 된다 ]
[B-17 씨리즈들과 더불어 B-24 리버레이터 폭격기 씨리즈를 출시하면서 1/72 4발 폭격기 씨리즈의 결정판 타이틀을 검어쥐게 된다. B-24씨리즈들은 아카데미가 독자 제작한 것이 아닌 미니크르프트 소유의 금형으로 1990년대말 아카데미와 미니크라프트사와의 파트너관계가 청산되면서 금형을 모두 인수해가 더이상 아카데미 상표로 볼수 없게 되었다. 이로인해 90년대 말 모형전시장에서 엄청난 떨이로 헐값판매 하던 기억이.. 미라지도 그때 사둔거 아직도 있는데..]
[미니크라프트사와의 합작으로 아카데미는 단기간에 1/72 에어로 제품 (특히 프롭기)에 대한 제작 노하우를 습득하게 되는데 그결과 현재까지 모노그람과 더불어 B-29A 관련 최고의 결정판 제품으로 불리는 1/72 B-29A형을 개발하기에 이른다]
[아카데미사의 B-29는 현재까지 동스케일상 이를 넘어설 제품이 없다는 평을 듣는 최상의 B-29 제품으로 1/48 스케일의 모노그람제를 제외하고는 최고의 디테일과 크기를 자랑하는 제품이다. 이 역시 미니크라프트사의 합작이 아니였다면 개발하기 힘든제품으로 현재는 미니크라프트사와의 라이센스 문제때문인지 시장에 거의 보이지 않고 있다. 유일하게 풀린게 수년전 한정판으로 풀렸던 B-29A 한국전쟁버젼인데 이제품은 과거 재고제품에 카르토크라프 데칼을 추가해 만들어 판매한 재고정리 제품이라는 설이 유력!]
[바로 이제품... 이제는 먹고 죽을래도 없는 제품으로.. 아카데미도 마음대로 못찍는것으로 봐 아마 미니크라프트사와 공동소유권이 있는것으로 보인다.에이스와 레벨과의 관계라 할까..?]
이둘의 관계는 미니크라프트가 실기체의 리써치와 도면을 제작해오면 국내의 아카데미가 제품을 생산하는 것으로 제품에 따라 금형비를 지접 아카데미가 대서 생산하는 방법과 금형개발비까지 미니크라프트사가 대고 제작 및 포장까지 해주는일을 아카데미가 대행해주기도 한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혹은 미니크라프트사가 가지고 있는 금형을 손봐 아카데미가 사출해주는 방법도 있었다)
[미니크라프트사와 아카데미와의 합작은 두회사의 로고를 동시사용하는것으로 쉽게 구분이 되는데 90년대 나온 아카데미 제품중에는 이런 상표가 유난히 많았고 실제로 미니크라프트는 제품 리써칭과 도면개발을 아카데미는 금형개발과 사출 그리고 포장을 맡은 OEM 공장이였다]
1990년대 이둘의 조합은 그야말로 환상적인 찰떡궁합으로 1/72 아이템 그중 2차대전 제품들이 전무하던 시절에 금형제작기술과 사출기술력이 뛰어난 아카데미와 모노그람만큼 실기체 리써칭 실력이 뛰어난 미니크라프트사의 합작 제품들은 그야말로 천하무적!! 전세계 1/72 프롭기 모델시장을 거의 휘어잡게 됩니다.
[때로는 미니크라프트사가 과거에 개발한 제품의 금형을 그대로 사출 포장해서 판매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1/200 ~1/100스케일 제품들이 바로 그것.. 이들 제품은 워낙에 재고가 많고 (유난히 작은 스케일 제품은 국내에 인기가 없다) 미니크라프트 제품의 일부 금형을 90년대 말 아카데미가 인수한것도 있어 현재도 심심찮게 볼수 있다 하지만 품질이 개판이라 그리 잘 나가는 편은 아니고 가끔 마트에서 화려한 박스아트에 속아 구입했다 피눈물을 흘리기도 한다는.. 충고하자면 같은 아카데미 상표를 달고 있지만 1/100~200 제품과 1/48 전차제품은 안사는게 좋다. 아카데미의 가장 졸작들이며 헛지랄중 하나니까..]
이 두업체의 밀월은 거의 10여년간 계속되다 1990년대말 결별하게 되는데 (단가문제 와 협의되지 않은 아카데미의 무단판매등이 문제된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끝은 상당히 안좋았다고 합니다.
[아카데미와 미니크라프트사와의 밀월관계는 1990년대 말까지 거의 10여년 이상을 같이하다 90년대말 결별하게 되는데 그 끝이 상당히 안좋았다고 한다. 혹자는 아카데미가 미니크라프사와의 허락없이 마구 찍어 팔아먹어서 짤렸다는 소문과 미니크라프트사가 가격을 너무 후리는 바람에 그랬다는 소문이 도는데 상황으로 봐서 두개 모두 맞을거 같다.. 결국 이둘은 2000년대 초반 공식적으로 결별했고 아카데미 상표로 나오던 미니크라프트 제품들은 이후로 볼수 없게 되었다. 사진의 1/48 블랙호크 씨리즈들도 그중 하나로 지금은 올드프라시장에서나 볼수 있는 명작중 하나..]
결국 아카데미와 결별한 미니크라프트사는 자사가 개발한 금형일체 (B-17 E/F형을 비롯 B-24제품 모두 그리고 B-29까지) 을 가지고 중국으로 가게 되고 현재는 중국 메이커를 통해 과거 제품들 위주로 생산하고 있지만 아카데미 시절보다 훨씬 떨어지는 품질로 과거에 누렸던 1/72 제품의 최강자라는 타이틀은 거의 퇴색하게 됩니다. (여기에는 후발주자로 맹추격한 타미야와 하세가와 같은 일본업체들과 미니크라프트사와 10여년간의 계약을 마치고 그 기술력을 흡수한 아카데미의 맹추격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B-24 제품들은 거의 치명적인데 대부분의 금형을 미니크라프트사가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아카데미와의 결별이후 금형을 모두 회수 현재는 중국에서 생산된다. 품질은.. 역시 과거 아카데미제와 비교할수 없이 조잡하다 이건 나중에 리뷰에 올릴듯..]
어찌되었던 신생업체로 제품기획력이 떨어졌던 아카데미는 미니크라프트사와의 합작으로 1/72 에어로 제품들에 대한 노하우를 완전습득했고 이어 독자적인 아이템들을 상당수 출시하면서 1/72 스케일 부분에서 세계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하며 오늘날까지 그 전설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노쇠한 과거의 명장 미니크라프트 홈페이지도 한때 1/72 시장을 휘어잡았던 업체라는게 믿기지 않을만큼 심플하다 주소는 http://www.minicraftmodels.com/ ]
오늘 소개할 P-51D 형 역시 그런 아카데미 제품중 하나로 (미니크라프트사와 손잡고 만든..) 1993년 생산된 비교적 초기 제품중 하나 입니다. (나중에 소개하갰지만 아카데미의 진짜 명작은 이보다 6년후인 1999년경에 출시된 P-51B형에 이르러 최고조의 기술력을 갖게 된다)
1. 박스 및 외형
약 30x13x4센티의 슬림하고 긴 박스 형태 입니다.
[약 30x13x4센티의 슬림하고 긴 박스 형태 입니다. 1/72 제품들은 지난 90년대 출시이래 같은 싸이즈를 가지고 있습니다.]
[측면에는 제법 잘 만든 작례가 나와 있습니다.]
[박스아트가 상당히 멋진데 누가 그렸는지 싸인이 흘려서 씌여져있어 알아보기 힘듭니다.]
[모형제품에서 박스아트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카데미는 일찍부터 안듯 박스아트가 상당히 멋진데 사실 이 제품 초기부터 이런 박스아트는 아니였고 90년도 중반인가부터 이 박스아트로 바뀐것으로 기억합니다.]
2. 내용 및 특징
[3벌의 런너 약 50여개의 부품구성으로 된 비교적 간결한 부품구성 입니다. 1/72 제품에서 더욱히 프롭기 제품이라면 더 복잡할 이유는 없지요..]
(1) 콕핏
[콕핏은 1/72 제품치고는 상당히 섬세하게 잘 나온 편 입니다. 이 제품이 발매되던 1993년 당시에는 상당한 디테일을 보여주었죠..]
[바스터브 후방의 무전기..]
[조종스틱의 모습]
[시트에는 벨트까지 재현되어 있습니다.]
[중앙 계기판은 둥근 계기판만 재현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1/72 스케일도 계기판의 바늘까지 재현하는등의 섬세한 몰드 재현이 가능하지만 이 제품이 출시되었던 1993년경에는 이정도만 되어도 양반이였습니다. 민짜가 대부분이였으니까요..]
[캐노피는 D형의 특징인 버블형 캐노피를 잘 재현하고 있습니다]
[투명도는 1990년대 나온 제품치고는 좋은편 캐노피의 두께가 얆고 형태도 잘 빠진편입니다.]
[둥근형태의 버블형 캐노피를 잘 빼고 있습니다만 그 형태는 뭐랄까 좀 낮게 나온 느낌이 듭니다]
(2) 동체
[동체는 기수부터 꼬리까지 통사출되어 있습니다.]
[금형제작일이 삭제되어 있는데 이는 예전에 아카데미의 자회사인 세미나로 한번 팔려갔다 온 금형이라 그런것 같습니다. 90년대 후반 반짝 떴던 세미나 라는 회사가 있었는데 소문으로는 아카데미 창립자 회장님의 자제분들이 나가 세운 회사였다고 합니다. 아카데미와 상당히 비슷한 품질을 가진 제품을 생산했는데 1/35 UH-1B/C형 외에는 별다른 아이템을 내기 못하다 2000년도 초반 페업.. 세미나가 아카데미에서 분사할때 몇가지 아이템을 가지고 나갔는데 이 제품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반면 한국공군형인 F-51형에는 금형 제작년도가 잘 찍혀있습니다.]
[이렇게 말이죠..]
[동체는 전반적으로 라인이 잘 뽑혀져 나온편입니다.]
[1/72 스케일 제품이라는게 믿겨지지 않을정도로 패널라인도 샤프하고 리벳도 잘 찍혀 있습니다.]
[동체의 패널라인은 여깃 아카데미 하는 감탄이 나올 정도로 우수합니다.]
[D형 후기형의 특징인 수직미익과 동체의 도셜핀이 재현되어 있습니다.]
[동체 측면의 리벳 재현은 1993년 당시에는 상당한 파격이였죠.. 이는 하세가와 같은 절정고수만이 재현할수 있다고 믿었는데 국내의 신생업체가 일본제 능가하는 기술을 보여주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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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오오~~~~~~더블팩 방식의 이런 패키지류는 아카데미에서 거의 처음으로 나온거 같아요!!!
이제 좀 제대로 장사하는법은 터득한듯.. 하지만 예전에도 뱅기에 지프넣어서 팔긴했지.. 그래도 1+1 구성이라니 참 참신하구만~~ 다만 d형보다는 c형을 넣어주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보면 알겟지만 이 재품은 1993년도에 나온 제품으로 이어 소개할 199년에 나온 b/c형보다 좀 떨어지는데.. 그래도 당시 2500원 가격에 저정도만 매우 훌륭했지 지금도 그렇고..
이제품도 상당히 명품이죠.... 십년전 추억이 새록새록...
주익만 수정하면 참 괜찮은 제품인데.. 주익이 밖으로 갈수록 적아지는 층류익 형태여야 하는데 이건 직선익이 가깝게 재현되었다는.. 지난 20년동안 금형개수 안하고 모했는지 모르겟습니다. 그 부분하고 고질병인 데칼만 수정해주면 진짜 최고의 제품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