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위삼존석불(국보 109호)제2 석굴암
경상북도 군위군 팔공산 절벽의 자연동굴에 만들어진 통일신라 초기의 화강석 석굴사원으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경주 석굴암 석굴(국보 제24호)보다 연대가 앞선다.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109호로 지정되었다.
석굴의 높이 4.25m, 본존의 높이 2.88m, 왼쪽 보살 1.92m, 오른쪽 보살 1.8 m이다.
동남향의 거대한 암벽에 조영된 석굴의 입구는 원형에 가깝고, 굴 안의 평면은 대체로 정사각형이다.
천장은 활의 등 모양이고 안쪽벽에 붙여서 원각의 삼존을 모셨다.
본존은 다른 돌로 만든 좌대 위에 안치하였으나, 그 뒷부분이 안벽에 마련된 턱에 걸쳐 있다.
석굴의 규모는 크지 않으나, 중국 당나라의 석굴양식을 보이고 있어
한국으로 전래된 과정으로 보아 중요한 유적임에는 틀림없다. 따라서, 이 석굴의 조영은 700년 전후로 추정된다.
이 작품은 삼국시대 조각이 통일신라시대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높은 문화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자연 암벽을 뚫고 그 속에 불상을 배치한 본격적인 석굴사원이라는 점에서 불교 미술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사전 발췌-
일년에 한번 석가탄신일에만 가까히 올라가서 볼 수 있다는데
마침 청소를 하느라 문이 열려있어서 가까히 삼존석불을
볼 수있는 행운을 얻어습니다.
↑마을 입구의 송림
대율리 한밤마을
어느 해 큰 홍수로 마을에 쓸려온 돌들로 담을 쌓기 시작한 것이
대율리 아름다운 돌담마을의 시초다. 꾸밈없이 천년을 이어온 집들과
마을 입구의 송림, 돌담사이의 고색창연한 이끼와 담쟁이 등 마을 곳곳의
소담하고 정감있는 풍경들이 역사와 함께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다.
마을이름은 처음 마을에 살던 신천 강씨들이 일야(一夜)라고 부르고,
950년경 입향해서 살던 부림 홍씨들이 대야(大夜)라고 부르다
1930년 부림 홍씨의 14대 손인 홍로(洪魯)가 밤 夜자가 좋치 않다고하여
밤 栗로 바꿔서 부르게 된 후 오늘날까지 내려온다.
이름은 바뀌었으나 우리말로는 一자나 大자나 모두 크다,
다는 뜻이고 夜든 栗이든 우리 소리로는 다 같은 밤이므로
오늘날 한밤마을로 불리운다.
↑고색창연한 이끼와 담쟁이가 조화로운
마을 돌담길을 여기저기 걸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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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위 대율리 대청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 262호
조선 전기에 건립되었으나 임진왜란 당시에 소실되고 이조10년(1632)에 중창돤 학사(學舍)이다.
효종2년(1651)년과 숙종 32년(1705)에 각각 중수된바 있으나 1992년에 완전 해체 보수 되었다.
이째 부식재아 기와가 교체되었고 기단도 보수되었다.
대청은 이 마을 전통가옥들의 중심부에 자리잡고있다.
일설에 따르면 대율리 전지역이 사찰터 였다고 하며 이 대청은 대종각(大鐘閣) 자리였다고 한다.
대청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건물로 서측 퇴간에만 간주가 서있다.
현재 바닥에는 전부 우물마루를 까았고 사면이 개방되어 있지만
중창 당시에는 가운데 마루를 두고 양 옆에는 방을 둔 형태로 건축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건물은 조선 중기 건축물로서 기둥위의 초익공의
수법이나 포대공 등에서 나름대로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남천고택(문화재자료 357호)는 부림 홍씨의 집성촌인 한밤마을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고택으로 ‘상백당’이라고도 부른다.
민박이용도 가능하다. 그 외에도 마을에는 군위 대율리 대청,
대율리 석불입상(보물988호) 등이 있다.10
↑ 군위 상매댁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 357호
대율리는 부림홍씨의 집성촌이며 상매댁은 그 가운데서도 규모가 가장 큰 가옥이다.
이 가옥은 당시 의흥현에서 가장 오래된 가옥으로 전해지며 남천고택으로 불리운다.
상매댁은 250여년 전의 부림홍씨 우태의 살림집이였고
그후 주손들로 이어지면서 여러차례에 걸쳐 중수돠었다.
사랑채 대청 상부에 적혀있는 상량문을 보면
이 가옥은 조선 헌종 2년(1836년)에 지어진것으로 보인다.
↑대율리 석불입상(보물988호)
화본마을과 화본역
↑화본역으로 가는길에 만난 벽화들...
시간이 없어서 뻐스를 타고 가는길에 몇점 담아왔습니다.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정다운 마을길이였습니다.
1936년에 완공된 화본역은 영천장이 서는 날이면 시끌벅적 하던
기차역이지만 지금은 하루에 상행 3번, 하행 3번으로 6회만 열차가 서는
고즈넉한 간이역이다. 전국에서 아름다운 간이역으로 뽑히는 곳이다.
화본역에 있는 1930년대에 지어진 증기기관차용 급수탑은
외벽 담쟁이넝쿨이 화본역과 함께 동화 속
그림같은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어 많은 사진작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높이 25m의 급수탑 내부에는
두 종류의 파이프관과 환기구가 그대로 남아있다.
화본역의 또 하나 명물.... 급수탑이 보입니다
인각사
신라 선덕여왕11년(642) 의상스님이 창건하였으며
640여 년 뒤 고려 충렬왕 때 일연스님이 이곳에서
<삼국유사>를 완성하고 입적하실 때까지 머문 곳이다.
문화의 산실인 이곳이 얼마 전 상류에 댐 건설로 수몰될 위기에
처했었으나 각계의 반대로 취소되기도 했다.
↑ 인각사 앞에 위치한 학소대의 아름다운 모습
김수환 추기경 생가
우리나라 최초의 추기경이었으며 종교와 관계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이 시대의 표상이었던 추기경의
생가를 복원한 곳이다. 추기경의 옛날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좁은 툇마루와 낮은 처마가 정감을 더해주는 이곳은 9월이면 생가 주변에
코스모스가 피어나 더욱 화사하다.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이곳에서
추기경의 삶과 사랑과 봉사의 정신을 회고해 보는 것도 의미있는 추억여행이 되었습니다.
첫댓글 함께 보게 해주셔서 우선 감사드립니다.
하루에 이렇게 여러곳 다녀오셨군요.
귀한 석굴암, 보물사진에 문화재까지 ...
마을 입구의 송림사진도 멋지구요.
학소대 풍경도 절경이네요.
정겨운 돌담길도 보이구요.
멋진 사진들 감사히 봅니다.
우리는 운좋게도 석가탄신일에만 개방하는 군위삼존불을
안으로 들어가 볼수있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군위의 다섯곳을 들려 보느라고 오랫만에 바삐 움직였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을 놓쳐서 아타까웠는데
아름다운 사진과 자세한 설명으로 가본듯 반갑게 잘 보았습니다
고색 창연한 돌답길의 모습
학소대의 차분한 모습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음악 또한 분위기를 살리는데 일조를한듯
완벽한 답사후기 감사히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