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는다'라는 표현을 자주 접하지만
과연 '나를 찾는다'는 게 무얼까?
이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일전에 어느 보살님의 신행수기를 읽었다.
그 보살님은 몸에 큰 병이 들어 장기를 드러내는 큰 수술을 두 번이나 받고
몸은 기력을 잃어가며 신경쇠약까지 걸렸었다고 한다.
입퇴원을 수도 없이 거듭하면서 몸은 수척해질 대로 수척해지고..
병원에서 맞던 링거 수액도 혈관이 자꾸 파열되면서 투여할 수도 없고..
그래서 한밤중에 강제 퇴원하니 주치의가 그렇게 해서 집에 가면 사망한다고 하였다.
'죽으면 죽으리라' 각오를 하고 손에 든 염주를 꼭 쥐고 집에서 염불만 하다가
겨우겨우 절에 가서 스님을 뵈었더니, 스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보살님! 그렇게 어렵게 살 만큼 살았으면 이제 그만 몸 벗으세요."
몸을 벗으라고?
이 말씀이 무슨 말씀일까?
설마 목숨을 버리라는 뜻은 아니렷다!
그럼 무엇일까?
짐작컨대 '몸을 초월하라' 즉
<병든 몸='나'> 라는 집착에서 벗어나라는 말씀은 아닐까?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몸의 고통은 느끼더라도 마음의 고통까지 느낄 필요는 없으니, 이것은 마치
첫 번째 화살은 맞을지언정, 두 번째 화살은 맞지 않는 것과 같으니라."
"몸은 비록 병이 들어 끊임없는 괴로움에 시달리더라도
그대는 이와 같이 공부하는 마음을 내어야 한다.
‘비록 나의 몸은 병이 들었지만, 나의 마음은 결코 병들지 않을 것이다.’ 라고."
"기쁨과 강건함에 기거하라, 설령 병든 몸과 함께 있을지라도."
이러한 맥락에서.. 아마 그 스님의 말씀 또한
몸은 병들었지만 병들지 않은 마음으로 회귀하라는..
그런 말씀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렇다면.. 이 몸, 병든 이 몸을 떠나 또 다른 '나'
참된 나, 진짜 '나'라는 게 있다는 말인데..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경봉스님이 하루는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
"내가 부산 가서 택시를 탔는데, 그 운전수한테 법문 한 번 하고 왔다."
"무슨 법문을 하셨는데요?"
- 여보슈, 운전수 양반.. 내가 물어볼 말이 있오.
- 뭔데요..
- 이 택시, 운전수 양반이 운전 안 하면 못 가지?
- 그럼요..
- 그럼, 운전수 양반의 운전수는 누구요?
길을 가던 나그네가 어디 가서 하룻밤을 자고 가도
떠나기 전에 반드시 주인을 찾아 인사를 하고 간다.
그런데 한평생 이 몸뚱이를 가지고 다니고서
어찌하여 그 주인을 찾아보지 않고 떠나려는가?
이렇게 무례할 수가 있단 말인가?
이런 의문이야말로 '나를 찾는' 시작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템플스테이에서 '나를 찾아보자' 할 때,
동제스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고 한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물으면 많은 사람들이 이름을 대는데,
그럼 이름이 같으면 그도 나인가?
또 곰곰이 생각하다가..
키가 얼마고 몸무게가 얼마고..
그럼 그런 게 같으면 그 사람도 당신인가?
요렇게 조렇게 생긴 사람이 나다?
그럼 외모가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있다면 그도 나라고 할 수 있는가?
말투나 목소리가 똑같은 사람이 있다면 그도 나라고 할 수 있는가?
똑같이 말하고 똑같이 행동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라고 할 수 있는가?
결국 나라는 것은 어떤 모습이나 말이나 행동이 아니다.
나를 찾아볼 때, 겉으로 드러난 모습이나
습관이나 성격도 일단 배제시켜야 한다.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배제시켜 나가면 끝에 뭐가 남을까?
있긴 있다. 없다면 여기 앉아 있는 건 무엇이겠는가?
이건 언설로써 표현되는 게 아니다.
그럼 무엇일까?
몸으로부터 한 발짝 물러나고
느낌과 생각, 감정으로부터도 확 물러선 그 자리..
가장 순수한 그 무엇..
이뭣고?
☞ 너희들은 나를 때렸다. 그러나 나는 맞지 않았다 http://cafe.daum.net/santam/IQ3h/68
첫댓글 감사합니다()
이글을 보며 나를찾는길은 과연 어디로가야하는거지? 하며 생각하는 나는 누구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