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뇌를 끊는 것은 이승二乘이고
번뇌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 대열반이다.
<선가귀감>에 나오는 말이다.
흔히 사람들은 불교의 가르침을 통해 번뇌를 끊는다고 하지만, 선불교에서는 번뇌란 본래 공한 것이기 때문에 마음에서 번뇌를 일으키지 않아야 대열반이라고 한다. 번뇌를 끊는다고 하면 번뇌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고 번뇌를 끊으려는 또다른 마음의 작용이 있어야 하니 번거로운 수행이 된다. 그러나 번뇌가 본래 공한 것임을 깨달아 마음에서 일으키지 않는다면 그대로가 해탈인 것이다.
성경에 보면 '원수를 사랑하라', 라는 말이 있다. 얼핏 들으면 굉장히 훌륭한 말 같지만, 이또한 낮은 하근기 중생을 위한 가르침이다. 상근기 중생을 위한 선불교식의 가르침으로 한다면, '사랑할 원수도 만들지 마라.' 이렇게 되야 할것이다. 원수를 만드는 것도 대단한 업을 짓는 일이고, 그런 원수를 사랑하는 것 또한 상당한 노력과 인내가 필요한 번거로운 일이다. 본래 마음 속에 고요한 사람이라면 원수조차 만들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원수를 사랑하는 일과 같은 힘든 일을 하지 않아도 될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종교적 수행은 어렵고 힘들수록 성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것을 보면서 경외심을 갖지만 정작 본인의 삶에 반영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러다보니 간디가 물레를 돌리는 일이 언제부터인가 성스러운 일이 되버렸다. 모든 일상사가 마음에서 시작하는 것인데 마음을 가다듬기 전에 거창한 것부터 찾으니, 종교의 가르침은 그저 '담배 끊으면 몸에 좋다'는 건강상식처럼 사람들 머리 속에 저장되어, 마치 먼지만 수북히 쌓인 창고 속의 세계명작 책들처럼 전락해 버렸다.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미리 예방하는 것이 문제가 터진후에 부랴부랴 처리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병이 깊어져 병원에 가서 수술하고 약 먹은 후에 낫는 것 보다, 병이 나기전에 예방하는 것이 시간과 돈을 절약하는 길이다.
마음이 고요하여 쓸데없는 욕망이 없는 도인이라면 사랑할 원수조차 만들지 않을 것이다.아무리 원수같은 사람들이 주변에 많을지라도.
첫댓글 닿고도 나툼이없다면..........._()()()_
그래유 ... 善이란 악의 상대이고 .. 분별의 표상이지유 .. 왜 선, 악이 엄고 .. 정말 空한지 ? .. 선 악에 걸림이 엄다함은 ? .. 선악을 떠난다 함은 ? .. 마음이란것이 밥그릇 처럼 엎는다고 비워지는가 ? ....... 기준을 정함은 벌써 등을 돌려 십만구천리 멀어지지유....()
원수를 만들지 않는 다는 것도 원수 만듬의 반대편에 불과하다는 것을 조심하셔야 함니다. 그리고 제가 이해하는 예수의 "원수를 사랑하라" 함은 자기 죽음을 의미함니다. 온갖 수행이 그렇듯......_()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