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수원 공고를 나왔다.
어려서부터 축구를 했고,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축구 하나만을 보고 살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당장 프로에 입단할 생각만 했다.
그런데 대기업 프로축구단 테스트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난 그때 별 볼일 없는 까까머리에
말라깽이 고등학생에 불과했다.
프로 입단을 희망하는
풋내기 축구선수가
어디 나뿐이었겠는가?
수십 수백 명의 학생 중에서
계산 빠른 프로축구단의 감독이나
스태프의 눈에 들려면 뭔가
남들과는 달라도 분명히 달라야 했다.
키가 크거나 체격 조건이 좋거나
그것도 아니면 공격이건 수비건
여하튼 특별히 잘하는 장기라도 있어야 하는데
난 그런 조건 중에 하나도 맞아 떨어지는 것이 없었다.
게다가 외모도 평범하고 성격도 내성적이라
좌중을 휘어잡는 스타성 마저 없었으니
그들이 탐내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대학팀도 사정은 다르지 않아
관동대, 동국대할 것 없이 다 퇴짜를 맞았다.
그러다 우여곡절 끝에
명지대 김희태 감독님 눈에 들어
어렵게 대학에 진학했다.
그때까지 내 인생은 늘 그랬다.
남들 눈에 띄지 않으니
깡다구 하나로 버티는 것이었고,
남이 보든 안 보든 열심히 하는 것을
미덕인줄 알고 살았다.
덕분에 허정무 감독님이
사령탑으로 계시던
올림픽 대표팀에 합류했고,
얼마 안 있어 일본 교토팀 선수로
스카우트 되었다.
그리고 지난해 월드컵 평가전에
우리나라 대표팀에 합류했다.
그 당시 나는 일본에서 활동했던 탓에
국내 선수 중에 가깝게 지내는 동료도
딱히 없어 늘 혼자 다녔다.
나를 주목하는 사람도 없었고
각기 포지션에는 이미 이름난 선수들이
꽉 들어차 있어 갓 스물 넘은 어린 나에게까지
기회가 올 것이란 욕심은 애당초 부리지도 않고 있었다.
경험 쌓는 거고 본선 때 한 경기 뛰면 좋겠다는
소박한 마음으로 평가전에 임했다.
그런데 히딩크 감독님은 평가전에서
나에게 예상 외로 많은 기회를 주었다.
처음엔 10분 정도 시합에서 뛰게 하더니
다음번에 20분을 그 다음번엔
전반전을 모두 뛰게 하는 식이었다.
그러다 감독님은 평가전이 있을 때마다
꾸준히 나를 시합에 내 보낼 뿐
다른 언질은 전혀 없었다.
언어 소통이 안 돼 감독님이 하는 말 중에
내가 알아 들을 수 있는 것은
오른쪽(right) 왼쪽(left)뿐이라
다른 말씀을 하셨다 해도
알아듣지 못했을 테지만 언론도 나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난 언제나처럼 눈에 띄지 않는 선수였을 뿐이고
감독님의 작전 지시나 전략은 지금껏
내가 알고 있던 축구와는또 다른 세계라
그걸 이해하느라 다른 생각을 할 여력도 없었다.
그런데 그 날은 달랐다
미국 골드컵 때라고 기억된다.
나는 왼쪽 다리에 부상을 입어
시합에 나가지 못해
텅 빈 탈의실에 혼자 남아 있었다.
잘 할 수 있는 기회를 조금이라도
더 많이 보여야 할 그 중요한 때에
하필이면 부상을 당했나 싶어
애꿎은 다리만 바라보며
맥이 빠져 앉아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히딩크 감독님이
통역관을 대동하여 나타났다.
성큼성큼 나에게 다가오신
감독님은 영어로 뭐라고 말씀하셨다.
무슨 말인지 몰라 통역관 입만 바라보았다.
박지성 씨는 정신력이 훌륭하대요.
그런 정신력이면 반드시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어떨떨했다.
뭐라 대답도 하기 전에 감독님은 뒤돌아 나가셨고,
나는 그 흔한 땡큐 소리 한 번 못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늘 멀리 있는분 같기만 했는데
그런 감독님이 내 곁에 다가와
내 정신력이 훌륭 하다는
말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솟았다.
더욱이 그 말은 내 심중을 꿰뚫고 있었다.
정신력 내세울 것 하나 없는 나일지라도
오래 전부터 내가 믿어왔던 것은
죽는 한이 있어도 버티겠다는 정신력이었다.
초등학교 땐가 중학교 때 축구부 감독님이
술에 취해 제 정신이 아닌 상태로 선수들에게
자신이 올 때까지 팔굽혀펴기를 하라고
지시하곤 휑하니 가버린 일이 있었다.
다른 친구들은 대충 상황을 파악하고
해가 뉘엿뉘엿 지면서 집으로 돌아가버렸을 때도
나는 감독님이 오시기만을 기다리며
자정이 넘도록 팔굽혀펴기를 했다.
비록 술에 취해 한 말일지언정
감독님의 지시라 따라야 한다는
고지식한 성격에다
어디까지 할 수 있나
나 자신을 시험해보고 싶은
오기가 생겨 했던 일이었다.
한 가지 덧붙이면 나는 평발이다
한 병원 의사는 내 발을 보고 평발인
선수가 축구를 하는 것은 장애를 극복한
인간 승리라 말하기도 했다.
난 그렇게 보잘것 없는
나의 조건을 정신력 하나로 버텼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눈에 띄지 않는
정신력 따위를 높게 평가하지는 않았다.
당장에 눈에 보이는
현란한 개인기와
테크닉만 바라 보았다.
그런데 히딩크 감독님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여드름 투성이
어린 선수의 마음을 읽고 있기라도 한듯
정신력이 훌륭하다는 칭찬을 해주셨던 것이다.
그 말은 다른 사람이 열 번 스무 번
축구의 천재다 신동이다 하는
소리를 듣는 것보다
내 기분을 황홀하게 만들었다.
어려서부터 칭찬만 듣고 자란
사람은 칭찬 한 번 더 듣는다고
황홀감에 젖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난 그 칭찬을 듣는 순간 머리가
쭈뼛 설만큼 나 자신이 대단해 보였다.
그리고 월드컵 내내 그날 감독님이 던진
칭찬 한마디를 생각하여 경기에 임했다.
내 정신력이면 분명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며 공을 몰고 그라운드를 누비며 달렸다.
침착하고 조용한 성격이라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것이
달갑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히딩크 감독님이라면 어디선가
또 나를 지켜보며 조용한 눈빛으로
격려하고 있을 거란 생각에 자신감이 생겨났다.
만약에 내가 . . .
히딩크 감독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지금의 나라는 사람이
이름 꽤나 알려진
유명 스타가 되었다거나
부모님께 45평짜리 아파트를 사드릴 만큼
넉넉한 형편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예전보다 더 나 자신을 사랑하는
내가 되어 있다는 것이...
감독님이 던진 채 1분도 안 되는
그 말 한마디는
앞으로 내가 살아 갈
나머지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 * *
출처: 이동활의 음악정원
글쓴이: 오가며
편집: lily
첫댓글 음악 아주 흥겹고 좋은데.., 다알고 있었다고 생각한 지성이에 얘기 다시보니 정말로 지도자에 안목이 얼마나 중요 한가 ?, 또 힘을 불어 넣어주는 말이 한인간의 앞길을 어떻게 잘 인도 하는가 ?,감격적이네.
명짱여사 반가워요. 예쁜 손녀의 재롱이 늘 눈에 선하지요? 우리 늙어가니.. 요런 맛도 보누나 싶지요?ㅎㅎ 운동경기에 별 관심 없는 내게도.. 잘 생긴 안정환이나 다른 선수보다 이 선수의 눈에 안 띔이 오히려 눈에 띄었다면.. 잘 먹고 자랐을 것같지 않은 저 몸 어디에서 힘이 날까하는 안스러움이 든 것도.. 저 평범한 외모 속에서 내 비치는 진지하고 착실하고 겸손하고 조용할 것같은 성품.. 나뿐 아닌 많은 이들도 호감을 가졌겠지 싶어요. 박지성의 지난 고난이 보상 받을 수 있도록 그를 알아보아준 이 감독이 참 대단하고 고맙군요. 한국인의 저력의 표상으로 그 외국인 감독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을 박 선수.. 자랑스러워요.
그 홀랜드 감독은 말도 전혀 안 통하는데 그청년을 똑독히 보셨구먼. 유명한 축구선수냐? 본것도 같으나,,,,, 잘되기를 그런데 운경아 나는 Ziegeunerweisen은 Garrett의 18 번이라 자주 들었는데 James Last 도 연주하는것 처음듣네. 그런데 이남자가 미국에도 알려있니? 이제는 아마 80넘었을걸, 이 축구선수의 예기 감명깊게 읽었다.
영국 어느 축구단에 있다가 이번 월드컵 한국팀 주장으로 그리스 전에서 멋진 경기를 보여주었던 "한국 축구의 별"로 알고있네요./ 맞아요 이 아저씨 81세. 이몸에게도 알려져있으니 미국에도 한국에도 물론.. 전 세계에 fan들이 상당하다고 알고있어요. 아줌마가 더 잘 알겠지만 혹 궁금한 이를 위해서 간략히 소개하자면.. 1929년 Bremen 출생, German composer & big band leader. 12세에 Piano를 시작해서 teenager 때는 Double bass(contrabass)로 바꾸었다고..
1964년 Studio Orchestra 를 결성하여 Jazz Musician 으로 1968년 순회 공연을 시작.. 전 유럽과 세계 여러나라에서 인기가 상당했다네요. 56세에 타계한 그의 형 Kai Warner(Werner Last)도 Orchestra leader. 미국에는 1964년 첫앨범이 발매되었다고. 그의 음악 인생동안 100 million 앨범 판매. 2011년 4월 European concert 가 홍보되고 있다니..아직도 참 대단하네요./ 이 연주는 10년 전이니 71세 때의 모습인데, 지휘라기엔 응원단장같은 제스추어에.. 저리도 아이같은 웃음 귀엽네요.ㅎ 이런 style의 연주, 아저씨나 아줌마 취향에는 쫌 거시기하겠지라.ㅎㅎ
깡다구정신력이 한국의 작은고추가 맵단 지구력정신이겠군.
무엇 하나 제대로 못하는내 인생살이에
박지성의 밋밋한 실토가 왜 이렇게 머리에 박히는 것일까?
그의 꾸준한 성실성, 꿋꿋한 정신력에 머리가 수그려지고... 낯선 땅에 뿌리 내리기에 남들 겪은 정도의 힘든 만큼은 나도 지나왔다해도.. 너무 안일했던 것 같고... 요지음 남 달리 치열한 인생을 살아낸 두 다른 한국 여인에 대한 책에서.. 그런 삶을 간접으로나 경험하고 나서인지.. 너무 꿈도 쬐끄마했다싶고...능력도 열정도 별로라면 차라리 작은 목표가 제격이지도 싶고...ㅎㅎ
멋진 감독.
대단한 박지성.
가슴이 아직도 뜨거운 운경씨.
ㅎㅎ 이 무슨 싯귀절인가 했구만요.
게시물 잘 보았다 는 말을.. 이렇게도 할 수가 있는 거군요.
멋지십니다. Thank you!!
즐겁고 경쾌하게 연주하는 집시의 노래도 즐거웠지만 박지성의 자서전 같은 이야기 콧등이 시큰해져 오네요. 말 한마디의 칭찬이 이렇게 큰 힘이 될 수 있다니...
히딩크 감독님과 명지대 김희태 감독님 참으로 고맙고 보시는 안목이...
평범해 보이는 박지성 선수! 어디서 그런 힘과 테크닉이 생기는 것인지...
역시 칭찬은 모두에게 힘을 솟게하는 원동력이 되는군요.
위의 재미있을 댓글도 이제부터 읽으려고 한답니다.
그래서 또 이몸도 향기여사의 댓글에 힘이 솟누만요.ㅎㅎ 고맙고요.
못참고 퍼갑니다


ㅎ 동진님.. 참을성도 짱이신 줄 알았는디.. 그렇다고 실망은 절대 아닙니다.ㅎㅎ
런던의유명한 club(췔시)선수구나 내가알기에는 그선수가 공넣어서 이 club이 이겼지 .전번에 뉴스보니, 그러니 될성푸른 나무는 잎사귀부터 본다는말 있지않나? 과연 보기좋든데 그런 유명한 선수당에들었으니......
Chelsea 가 더 유명한가요? 오늘 스포츠 판에 이 선수 Manchester United를 떠나서 Bayern Muenchen으로의 이적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네요. Football Club.. 선수를 사고, 팔고..영입도, 방출도.. 이름난 선수도 유명 연주가도 영욕이 극명한 세계란 공통점에 그 애환 또한 크겠지요. 뮨헨 팀 주장 Ram과 유니폼을 바꿔 입을 가능성이 성사되면.. 관전표에 또 돈 바치게 생겼으니, 낭군님께선 더 싼 것만 드시겠구랴. 불쌍한 이는 아저씨외다.ㅎㅎ/ 뮨헨은 박지성 이적료 약 1,000만 달러 제시.. Ram 의 몸값을 약 2,300 만 달러를 책정하여, 만일 그를 보낼 경우, 박지성이나 베르바토프 외에 현금을 추가로 받는 조건을 제시할 거라네요.
할 줄 아는 운동 하나 없고, 보는 취미도 없는 이몸이나...아줌마 말에 쬐금 관심으로 찾아보니... West London 에 있는 Chelsea 는 1905년에 생겼고, Stretford, Great Manchester 에 있는 Manchester United 는 1878년 생겨난 Newton Heath LYR Football Club 이 파산으로 문 닫은 후.. 1902년 새로운 이름으로 거듭난 것이라네요.
맞다 Manchester United 야 ,박선수의 공으로 둘이다투는 Chelsea에게 이겨서 ,좋와들 하는것 본것같에. 그런데 van Bommel이 바꿀 예정이래. 아이구 속상해.내 옆남자말이 더 웃겨. 얘 van Bommel 네게는 너무 늙었어 해서말야.32세인지 33세이니 오래는 못할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