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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재사랑산악회-제163차 산행] ♣ 전라남도 완도 상황봉(644m) 종주산행 (1)
▶ 2016년 4월 16~17일 (차박(車泊)-일요일 산행) ◀
* [산행 코스] 전라남도 완도군 완도읍 화흥리 <대구미마을>(05:30)→ 310고지→ (오봉능선) 전망바위1·2·3→ 460고지→ 심봉→ 상황봉(598m)→ 상황봉(644m)→ 전망대1·2→ 하느재→ 삼층 전망대(아침식사)→ 백운봉(601m) 암괴→ 업진봉(544m)→ 헬기장→ 철탑→ 숙승봉(461m)→ (동백숲)→ 불목리 주차장(11:40)→ 완도읍(개성순두부 점심식사)→ 귀경(歸京)
♣ [프롤로그] - 4월, 순결한 신록(新綠)이 움트는 계절, 세상은 지금 개벽(開闢) 중이다
☆… 봄이다. 대지에 생기가 넘치는 봄날이 무르익어 가고 있다. 일찍이 눈을 뜬 봄의 전령사인 원색의 개나리와 진달래, 화사하게 가슴을 설레게 했던 눈부신 벚꽃도 이미 지고 말았다. 그리고 겨우내 굳어버린 메마른 대지에 새로운 생명의 싹이 솟아오르고, 찬바람 속에서 시커멓게 얼었던 나뭇가지마다 연둣빛 움이 트고 있다. 여리지만 무서운 생명의 힘이다. 온 천하의 대지(大地)가 파릇파릇 녹색의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자연의 놀라운 에너지가 온 천하를, 생명의 땅으로 바꾸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봄은 혁명처럼 온다.’ 무채색의 대지에 돋아나는 새싹들, 땅속에서 물을 끌어올린 연두빛이 세상의 색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천하가 새로운 모습으로 개벽을 하고 있다. 작고 여린 생명들의 줄기와 잎들이 그 근육을 키워가면서, 작은 풀잎들이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 함성을 지르듯 번져 나가고 있다.
♣ [변화 변혁의 4월]— 생명이 부활하는 자연, 인간사 뜨거운 ‘혁명의 계절’ …
봄은 실제 혁명의 계절이다. 우리의 역사가 그것을 말해 준다. 3·1운동과 4·19혁명이 휘황한 봄기운 속에서 탄생했다. 거슬러 올라가면 녹두장군 전봉준이 ‘무장 동학포고문’을 선포해 민간의 봉기(蜂起)를 호소한 것도 1894년 4월의 일이다. 현대사가 요동친 1980년에는 민주화의 기회를 엿보았던 <서울의 봄>도 있었다.
☆… ‘4월’을 가리키는 영어의 라틴어 어원은 ‘(새로운 세상을) 열다(aperire)’이다. 새로운 세상을 여는 것이 혁명이다. 그래서 혁명과 봄은 짝으로 붙어 다닌다. <프라하의 봄>이 그렇고 <아랍의 봄>이 그렇다. 프라하의 두브체크가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자유와 민주 노선을 제안하는 강령을 발표한 게 1968년 4월의 일이다. <볼셰비키혁명>의 불을 댕긴 러시아 페테르그라드의 노동자 봉기는 1917년 3월에 일어났다. 그해 4월 레닌은 '자본주의 타도 없이 종전(終戰)은 불가능하다'는 등의 '4월 테제'를 발표했고, 5월에 트로츠키가 힘을 보태면서 볼셰비키 세력이 기반을 다져갔다. <프랑스혁명>을 촉발한 '전국신분회'는 1789년 5월 루이 16세가 소집했는데, 그때 평민 대표들은 귀족과 성직자의 횡포를 막기 위해 독자적으로 국민의회를 구성했고, 두 달 후 역사를 뒤흔들어 놓는다. 서양사에서 매우 특별한 해로 기록되는 1848년엔 유럽 각국에서 낡은 봉건체제를 타파하고 독립된 민주국가로 가기 위한 혁명의 바람이 연쇄적으로 불었다. 그 사건을 '국가의 봄(Spring of Nations)' 혹은 '인민의 봄(People's Spring)'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봄은 혁명이 일어나는 계절이면서 동시에 혁명의 메타포(은유)이기도 하다. (박성희 칼럼)
♣ [4·13 총선] — 국민의 매서운 채찍으로 달라진 정국(政局), 어디로 갈 것인가.
☆… 4월 한국의 정치판에서도 ‘대변혁’이 일어났다. 4월 13일 총선에서 다수 집권당이었던 ‘새누리당’이 무참하게 참패했다. 야당이 ‘더민주당’이 크게 약진하여, 비록 1석이지만 여당보다 많은 당선자를 내고, 신생 ‘국민의 당’이 돌풍을 일으켰다. 2000년 16대 총선 이후 16년 만에 여소야대의 정국이 되었다. 민심은 집권당에 대한 무서운 질책을 한 것이다. ‘더민주’는 수도권에서 압승하여 선전했지만 호남의 지지기반을 잃었다. 대신 ‘국민의 당’이 호남지역을 휩쓸었다. 정치판이 요동을 치면서 올 4월의 ‘선거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이미 지적했듯이, 한국의 정치는 지금 환절기의 심한 고열에 신음하고 있다. 지리한 싸움으로 허송세월한 19대 국회의 양당 체제가 20대에선 3당 체제가 된 것이다. 앞으로 각 당이 나라를 위해서 어떻게 정국을 운영해 나갈지 두고 볼 일이다.
『주역(周易)』의 혁(革) 괘에서 말했다. “바꾸어야 하는 형국이다. 고난의 날이 지나면 ‘한마음’이 될 것이다. 시작할 때 시작하고,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 나서며, 거두어야 할 때 거두고, 마무리할 때 마무리하면 후회가 없을 것이다.(.(革, 己日乃孚, 元亨, 利貞, 悔亡.)" 단전(彖傳)에서 말했다. ‘혁(革)’은 물과 불이 서로 멈추게 하며, 두 여자가 함께 거처하되 그 뜻이 서로 통하지 않으니 ‘바꾸어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고난의 날이 지나면 한마음이 되는 것은 바꾸어서 신뢰하는 것이다. 문명하여 기뻐하고 바른 마음으로 크게 떨쳐 일어나니, 바꾸어서 마땅한 것이니, 후회함이 없을 것이다.(彖曰, 革, 水火相息, 二女同居, 其志不相得, 曰革. 己日乃孚, 革而信之, 文明以說, 大亨以正, 革而當, 其悔乃亡)” 분명한 것은 양당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이 혹독하리만큼 무서웠다는 사실이다. 특히 여당에게는 잔인할 정도로 심한 채찍이었다. 선전한 제3당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곳곳에서 예상외의 반란(?)이 일어나긴 했지만, 아직도 고질적인 지역성을 중심으로 한 정치판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국민의 의식은 시퍼렇게 살아있고 국민의 눈은 늘 정치인들의 행태를 주시고 있다. 이제 분열만을 조장하는 적대감이 아닌 더욱 수준 높은 논의와 협상의 과정을 통해, 당리당략보다는 나라 전체를 생각하는 대국적(大局的)인 정치가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 [오늘의 산행지, 완도 상황봉] — 남북으로 뻗어있는 완도의 중추 오봉능선
☆… 오늘 우리의 산행지는 전라남도 완도(莞島)의 상황봉이다. 상황봉(象皇峰)은 완도의 산(山) 전체를 통틀어 부르는 이름이나 다름없다. 상황봉(644m)은 완도의 중앙에 자리 잡고 있으며 크고 작은섬 200여개를 거느린 이 섬의 진산(鎭山)이다. 노령의 마지막에 우뚝 솟은 오봉산의 중심 봉우리이다. 북쪽에서부터 숙승봉(宿僧峰, 534m), 업진봉(544m), 백운봉(白雲峰, 600m), 상황봉(像皇峰, 644m), 쉼봉(598m)의 5개의 봉이 일렬로 솟아있는 오봉산 중 가장 높이 솟은 봉이 상황봉이다. 오늘 우리는 남쪽의 대구미마을에서 북쪽의 숙승봉을 향하여 산행을 하게 된다.
상황봉(해발 644m) 정상에 오르면 동·서·남 삼면으로 아름다운 다도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북쪽으로는 굵직한 산줄기가 육지를 향해 힘차게 뻗어 있다. 하늘을 가리는 상록수림(常綠樹林)을 뚫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정상에 오르면 푸른 바다와 맑은 하늘 거기에 점점이 박힌 크고작은 섬들, 바로 다도해(多島海)가 펼쳐진다. 강진만의 고금도, 신지도, 청산도, 소모도, 대모도, 여서도, 소안도, 보길도, 심지어 추자도, 제주도까지 눈에 잡힌다고 한다.
♣ [동행하는 산우들] — 우천(雨天)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원행을 함께하는 벗들
☆… 이번 4월의 산행은 차박(車泊)으로 진행하는 여정이다. 밤 11시에 서울을 출발하여, 다음날 새벽에 완도 상황봉을 오르는 일정이다. 전라남도 해남의 땅 끝에 자리한 완도(莞島), 워낙 멀리 떨어진 곳이기에 차박으로 야반을 달리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 일주일 동안 멀쩡하던 날씨가, 오늘부터 내일 오전까지 비가 내린다는 것이다. 아침부터 제주도와 남쪽으로 엄청나게 많은 강풍을 동반한 비가 많이 내린다는 기상청의 예보가 있었는데, 서울은 해가 저물면서 본격적으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제주도는 물론 우리가 찾아가는 완도의 남해안 지역도 강한 바람을 동반한 많은 비가 내린다는 것이다. 참 걱정이다. 전날 일기예보를 들은 민창우 대장도 걱정하는 전화를 했다. 다가올 아침, 날씨는 우리가 기약할 수 없다. 오직 하늘의 일은 하늘에 맡기는 마음, 겸허한 기도로 마음을 모을 뿐이었다.
☆… 밤 11시 20분, 우리의 분홍버스는 차가운 비바람이 쏟아지는 가운데 군자역을 출발했다. 우천(雨天)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예정된 대원들이 거의 다 참석했다. 남정균 회장을 위시하여 김준섭·한영옥·장태임 부회장, 김의락 자문위원이 자리를 잡고, 노익장의 안상규·강재훈 님·꽃구름의 이달호 님, 오수정·허향순 단짝은 늘 우정 어린 동행이다. 그리고 임백기 님도 지기와 동행하고, 김재철 님은 늘 부부동반이다. 노을비 조희우 님은 중학교 1학년 아들인 우현 군을 데리고 나왔다. 아름다운 부자유친이다. 늘 활달한 문승배 님, 과묵한 김기봉 님도 여전하고, 박은배 총무와 그 지기인 이명자·나천옥·장영서·박현주·허강석 님 등도 변함없이 나오셨다. 지난달부터 나오신 ‘사모바위’ 님도 부인을 동반해 오셨다. 그리고 예의 호산아·장병국 고문을 비롯하여, 우리들의 산행하여 직접 앞장서는 주무 민창우 대장과 승조 김화영 산행위원, 베토벤 유형상 부대장이 늘 든든하게 포진하고 있다. 좌석 예약표의 ‘윤채’ 님 등 아직 성명을 확인하지 못했다. 그리고 성함이 확인되지 않는 분들이 몇 분이 있다. 모두 한마음으로 산행하는 정겨운 벗들이다. 모두 38명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진국·전평국 님이 4일 전(4.12) 모친상을 당하여 오늘 참석하지 못했다. 김영이 부회장에게는 시모상이다. 이 자리를 빌어 … ‘삼가 명복을 빕니다!’
♣ [완도로 가는 길] — 세찬 비바람 속에서 남으로 질주하는 원행 길
☆… 서울을 출발한 우리의 <금강고속> 버스는 경부고속도로와, 천안-논산간 고속도로를 경유하여, 남공주에서 공주-서천간고속도로를 타고 서해안고속도로에 진입했다. 강풍을 동반한 비가 많이 내리고 있었다. 세찬 바람이 엄청난 위력으로 빗줄기를 몰아친다. 차창에 부딪치는 빗줄기, 몰아치는 강풍에 달리는 고속버스가 흔들리는 느낌이 들었다. 자정(子正)을 넘기고 깊어가는 밤, 남으로 남으로 내달리는 버스 안에서 불편하지만 모두 잠을 청했다. 차장을 때리는 비바람, 그러나 모두가 잠든 차 안은 적막하기까지 했다. 차를 타면 쉬 잠을 들지 못하는 필자는 앞좌석에 앉아 도로의 전방의 주시하며, 내일 아침의 날씨 걱정을 하고 있었다. 남공주J.C에서 서천 방향으로 가는 길목의 ‘부여백제휴게소’에서 잠시 내려섰을 때에도 여전히 비바람이 기승을 부렸다.
버스가 ‘금강대교’를 건너 군산을 지나, 어둠 속 만경평야 한 가운데를 달려 나갈 때는 바다에서 상륙한 강풍이 더욱 세차게 몰아쳤다. 우리의 버스는 서해안고속도로 김제-고창-영광-함평-무안을 지나 죽림J.C에서 내려, 동으로 향하는 2번 국도를 타고 영산강 무영대교를 건너 달리다가, 13번 국도로 타고 남행, 해남을 경유하여 완도대교를 건넜다. 아, 그런데 우리들 마음의 기도가 통한 것인가. 버스가 전라남도 함평-무안을 지날 무렵부터 비가 그치고 소강상태를 보였다. 그 이후의 도로의 노면은 아주 깨끗하게 말라있었다. 그러나 나무들이 요동치는 것을 보니 바람은 여간 드센 게 아니었다. … 어둠의 새벽 5시, 산행들머리인 완도군 완도읍 화흥리 대구미마을에 도착했다. 장장 500km가 넘는 먼 거리를 5시간 넘게 달려온 것이다. 세상은 아직 캄캄한 밤중이었다.
♣ [미명(未明)의 새벽, 산행에 돌입하다] — 산행 들머리 ; 남해의 섬, 완도 ‘대구미마을’
☆… 오전 5시 30분, 대구미마을에서 산행에 돌입했다. 캄캄한 한밤중이다. 주변의 모습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짙은 어둠, 마을도 깊은 잠에 들어 적막했다. 대원들이 복장을 정비하고 랜턴의 불을 밝히고 산으로 들어갔다. 오늘도 선두에는 김화영 대장이 길을 열어나가고 지평 민창우 대장이 후미를 수습해 간다. 유형상 부대장은 대열의 중간에서 산우들의 산행을 돕는다. 완도(莞島)는 섬이다. 새벽, 차가운 바닷바람이 세차게 몰아치고 있었다. 산길은 처음, 비교적 완만한 오르막길로 시작되었다. 초입의 커다란 묘지를 지나 본격적인 숲속의 산길로 들어섰다. 몰아치는 바람을 받는 나무들이 서로 몸을 비비며 솨솨 숲의 한숨을 토해냈다. 어둠 속이지만 바람을 받은 나무들이 뒤채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숲은 자연 그대로 울창한 원시림의 모습이었다. 서서히 고도를 높여가면서 가파른 산길로 접어들었다.
안내문에 따르면, 상황봉 일대의 수림은 가시나무, 동백나무, 후박나무 등 난대림이 주종을 이루고 중부 내륙지방의 산들과는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완도가 이렇게 숲이 울창하게 된 것은 신라시대 이래 역사적인 배경이 있다. 해상왕으로 일컬어지는 장보고(張保皐)의 죽음 이후, 서기 851년 완도 사람들은 모두 전라북도 김제군으로 강제 이주됐다가, 고려 공민왕 때인 1351년에야 다시 들어와서 살기 시작한 것이다. 무려 500년 동안 비워둔 섬이니 숲이 울창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 [상황봉, 오봉 능선 길] — 남도의 여명 속에서 제1·2·3의 전망바위를 지나다
☆… 오전 6시 05분, 310고지의 능선의 제1전망바위에 올랐다. 30분 이상을 계속 오르막을 오르면서 본격적인 능선에 들어섰는데 산은 토산(土山)이어서 걷기에 좋은 흙길이었다. 그런데 한참 올라온 지점에 너럭바위가 나타났다. 멀리 바다가 보이는 지점이었다. 여기가 제1전망대, 거기에서 산 아래의 마을과 바다에 연해 있는 들판이 어슴푸레하게 눈에 들어왔다. 아직도 마을에는 가로등의 노란 불빛이 점점이 반짝이고 있다. 멀리 바다로 나아간 두 산을 잇는 직선의 방조제(防潮堤)가 보이고 그 안은 물이 가득한 장방형의 호수가 보였다. 그리고 호수의 안쪽은 간척지(干拓地) 들판, 경지정리가 잘 되어 바둑판처럼 반듯하게 펼쳐져 있다. 저기가 바로 완도방조제와 그 호수가 완도호이고, 그 가장자리에가 꽤 많은 가호(家戶)의 마을이 잠들어 있었다. 고즈넉한 새벽의 풍경이었다.
☆… 제1전망바위에서 조금 올라가다가 다시 제2전망대의 너럭바위에 도착했다. 선두의 대원들과 대열 중간 부분의 대원들이 합류했다. 오전 6시 17분, 날이 밝기 시작했다. 여기서 는 완도방조제와 담수호, 그에 연해 있는 들판과 마을의 풍경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아직 마을에는 가로등 불빛이 있지만 자연스러운 아침의 밝은 분위기였다. 산 아래쪽으로 깊숙이 들어온 농촌마을도 눈에 들어온다. 상황봉을 정상으로 한 이 오봉능선은 완도의 중앙에 남북으로 뻗어있는 산줄기이다. 우리는 지금 완도의 남쪽에서 북쪽으로 산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오전 6시 21분, 제3의 전망바위에 올랐다. 사방이 많이 밝아졌다. 이제 산길 주위의 풍치와 발아래의 해안풍경도 익숙하게 조망할 수 있었다. 하늘은 짙은 구름으로 잔뜩 흐리고 여전히 바람이 불고 있지만 산행 중에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비가 내리지 않은 것이 여간 다행스럽지 않다. 하늘의 돌보심이다.
☆… 대열을 정비한 대원들이 눙선을 따라 산행을 계속해 나갔다. 날씨는 계속 흐린 상태, 오락가락 안개도 시공(時空)을 채우고 있었다. 능선 길은 산죽이 무성하고 온통 울창한 숲으로 이루어져 있어 산록의 방향에 따라 바람도 때로 잠잠해지기도 했다. 잠시 완만하게 내려가는 길이다. 길 주위에는 짓푸른 산죽(山竹)이 끊임없이 이어져 갔다.
♣ [오늘 산행의 제1의 포인트] — 안부 삼거리를 지나, 짙은 안개에 휩싸인 ‘심봉’
☆… 오전 7시 정각, 안부(鞍部)의 삼거리 이정표에 이르렀다. 산행의 들머리인 대구미마을에서 2.1km 올라온 지점이다. 진행방향으로 나아가면 심봉이 0.3km, 상황봉까지 0.8km를 앞두고 있다. 그리고 왼쪽으로 난 길은 완도방조제가 있는 대신리(2.7km)로 내려가는 길이다. 여기는 길이 갈라지는 곳이므로 뒤따라오는 민 대장을 비롯한 후미대원들을 기다려 대열을 정비했다. 여러 대원들이 함께 포즈를 취하여 후레시를 터뜨려 사진을 찍고 난 후 산행을 계속했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라가 다시 바윗길을 치고 올랐다. 고지에 오르니, 건너편에 거대한 산체가 아득하게 바라보인다. ‘심봉’과 그 뒤의 ‘상황봉’의 위용이 우람하게 시야를 압도해 왔다. 가파른 바위를 타고 오르니 거대한 수직의 절벽이 앞을 가로막았다. 20m정도 되는 직벽에 고정자일이 설치되어 있었으나 비온 뒤 바위가 미끄러워 우회로를 이용하여 암봉에 올랐다.
☆… 오전 7시 24분, 안개가 자욱한 심봉(598m)에 올랐다. 오늘 산행의 제1포인트 지점이다. 안내문에는 ‘쉼봉’으로 표기하기도 했지만 산봉에는 자연석의 거대한 입석에 ‘심봉’을 암각해 놓았다. 표지석은 주변의 풍경에 어울리지 않게 아주 ‘무모하게’ 큰 입석으로 사람을 압도해오는 느낌이었다. 대원들이 잠시 머물며 휴식을 취하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마침 짙은 안개가 몰려와 주위의 풍경을 모두 삼켜버리는 듯했다. 잠시 뒤 안개가 스쳐가는 뒤 끝에 상황봉 정상이 올려다보였다. 심봉에서 능선 길을 걷다가 가파른 산록을 치고 올라가서 상황봉 정상에 이르렀다.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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