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익점(文益漸)이야기◈
문익점은
고려 말인 1329년(충숙왕 19)경상남도 산청에서
문숙선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영특하기로 소문난 문익점은
11살 때, 충청도 한산으로 가서 이곡 스승에게
글을 배웠고 32살 때인 1360년에 과거에 합격하여
김해부 사록이라는 벼슬을 받았습니다.
그 후 여러 관직을 거쳐
사간원 좌정언에 올랐다가 1363년 이공수를 따라
원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원에 사신으로 갔던
문익점은 공민왕 제거 음모에 연루되어 중국에서
뜻하지 않은 귀양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3년 동안 귀양살이를 하면서 고려에서는 볼수도 없는
무명옷을 일반 백성이나 귀족 모두 입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문익점은
넓은 벌판에 하얗게 핀 목화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목화에서 실을 뽑아 무명천을 만들고,
그것으로 옷을 해 입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따뜻하고 질기고 깨끗한 것이
목화라는 풀에서 나온다는 것을 안 문익점은
우리 고려도 저런 목화를 재배하기만 하면
백성들이 따뜻하고 질긴 무명옷을 입을 수 있겠구나.
저 목화씨를 우리나라로 가지고 가야겠다.'
이런 결심을 하였습니다.
그때까지 고려에는 무명천으로 만든 옷이 없었습니다.
그 당시 고려에서는
누에고치로 만든 명주(비단)옷과 마로 만든 삼베옷을
주로 입었습니다.
그런데 명주옷은 귀하고 비싼 옷이어서
귀족이나 부자들만 입을 수 있었고,
일반 백성들은 삼베옷을 주로 입었습니다.
한편 삼베옷은 겨울에 입기에는 매우 얇아서
일반 백성들은 겨울이 되면 추위에
떨며 지내는 형편이었습니다.
문익점은 가난과 추위로 고통 받는 고려 백성들을
추위로부터 벗어나게 해주고 싶은
뜻을 가슴깊이 품었습니다.
그래서 귀양지 운남에서
고려로 돌아갈 때 반드시 목화씨를 가져가야겠다고
결심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원나라에서는
목화씨와 그 재배 방법이 나라 밖으로
새어 나가는 것을 법으로
엄격히 금지하고 있었습니다.
1363년 귀양이 풀려 고국으로 돌아가게 된
문익점은 관리들의 삼엄한 감시를 피해 붓 뚜껑
속에다 목화씨를 숨겨 갖고 나오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고려로 돌아온 문익점은
예문관 재학의 벼슬을 받았지만 벼슬보다도
더 중요한 사명을 성취하고자 고향으로 내려갔습니다.
고향 경상도의 봄은 윈난 지방처럼 따뜻했습니다.
고향 산청으로 간 문익점은 장인 정천익을 찾아갔습니다.
문익점은 중국에서 어렵게 가져온 목화씨 10개 중에
다섯 개는 자신의 밭에 심고 나머지 다섯 개는
그의 장인인 정천익에게 주어 심게 했습니다.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씨를 나누어 심었던 것이었습니다.
그의 염려는 현실로 드러났습니다.
문익점이 심은 씨는 모두 썩었고 정천익이 심은 것은
겨우 한 개만 싹을 틔웠던 것입니다.
두 사람은 정성껏 그 싹을 키웠습니다.
초가을 드디어 한 개의 목화가 피어올랐습니다.
그들은 거기에서다시 싹을 얻었고 이를 해마다
늘려 심었습니다. 3년간의 노력 끝에
드디어 목화 재배에 성공하여 전국에 목화씨를
퍼지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목화 재배에는
성공했지만 목화에서 씨를 빼고 실을 뽑아내는
법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손으로 씨를 발리고 솜을 얻어 이불이나
베게에 넣어서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때마침 정천익의 집에 머무르던
원에서 온 승려로부터 목화에서 씨를 뽑는 법과 실을
뽑을 수 있는 물레 만드는 법을 배우게 되었고,
비로소 이때부터 무명옷을 만들어 입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때가 정천익과 문익점이 목화씨를
심은 지 5년쯤 뒤의 일이었습니다.
이제 백성들은
올이 성글고 시원한 삼베옷과 모시옷은
여름철에나 입었고 겨울이 되면
무명옷에 솜을 넣어 따뜻하게 겨울을 나게
될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문익점이
최초로 우리나라에 목화씨를 들여옴으로써 한민족의
의생활에 일대 변혁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아름다운 황혼열차◈
-카페지기 석양노을- |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10.02 11:26
첫댓글 문익점선생의 목화 이야기,감사합니다.
^-^
좋은 지식 담아갑니다 감사
잘 감상합니다.
애국자이싶니다.
감사합니다.
문익점과 목화 이야기 잘읽고 갑니다.감사합니다.
나라와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목화씨를 중국에서 목숨을 걸고,가져와 국민이 겨울에 따듯하게 옷을 만들어 입고 살도록,,,문익점이, 벼슬도 마다하고 고향에가서, 목화를 재배한것은,한나라의 영웅이로다,고맙습니다,건강하세요.
문익점 선생의 도움으로 옛조상들이 겨울에 따뜻하게 지낼수 있었으니 나라의 애국자 이십니다 좋은글 감사 합니다
진정한애국자입니다. 요즘 내가 애국자네하는놈들 꼴이란?....
좋은 내용의 글에서 쉬어 갑니다. 감사합니다.
목화씨를 중국에서 몰래 가저와서 장인과 함깨 목화 농사가
시작 되었고 그것이 성공 명주옷을 입게 되었다는 글 잘 보고
문익점 선생 야기 감사합니다.
정말 국민과 국가를 생각 하시는 문익점 선생님의 기개가 감개무량 합니다
문익점과 같은 충신으로 인해 의상에 대혁명을
이르키게한것은 오늘에 까지 의상생활에 도움을
받고 살아온 한민족이라 하겠습니다
좋은 공부 잘하고 갑니다,
학교에서 배워 알고는 있었지만 덕분에 더 자세하게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나라에는 나라위해 큰일한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요즘 국회의원들이 본받았으면 대한민국은 더욱 강한나라로 우뚝서게 될것이고, 더더욱 국회의원만 없다면 그렇게 되겠지요. 국회의원들은 방해꾼이라고 생각만 듭니다. 이것이 저만의 생각일까요
우리나라 최고 위인으로 모셔야합니다,
아름다운 문익점 이야기 감사한 마음으로 즐감하고 나갑니다 수고하여 올려 주신 덕분에
편히 앉아서 잠시 즐기면서 머물다 갑니다 항상 건강 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국민학교 시절에 배웠으나 지금 글을 읽고나니
옛 생각이 새롭습니다.
감사한 마움으로 잘 보고감니다,
문익점 이 위대한 옷과 주민생활에 도움되는 일을 하셨군요 감사합니다
잘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좋은글 올려주셔 마음에 담아갑니다
고맙습니다
우리나라 목화씨 주인공 문익점 선생님.....
감사합니다...
衣 食 住 중 衣을해결한 애국자이십니다.
진정한 애국자 입니다.
새삼 좋은글을 한참 읽어 보았습니다
너무나 소중한 내용을 다시한번 느꼈습니다
참으로대단한사람이었지요
지금도저러한사람들이존재
하고잇다는것을
정말 훈륭한분 이였습니다.
문익점 선생님 좋은일 많이하셨습ㄴ다
네 너무도 좋은일을 하신 문익점 님께 감사를 드려야겠네요 옛날에는 지금보다 더 추웠을터
씨를 앗고 물레를 돌려 무명실을 뽑아내던 옜적 할머니 들이 생각 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우리의 의복에 일대 혁명을 갖어온 "무명" 감사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국민학교시절 노래를 배웠는데 그 가사에는 "수륙만리 먼나라 강남땅에서 붓대롱에 갈무려 가져온씨야....."에서 강남땅이
중국 운남성 이였군요. 상세설명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문익점선생 이야기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유명한 문익점 이야기 잘보고 갑니다.
문익점 선생님 정천익선생님 참으로 훌륭한분이시네요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