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념인생] '게으른 농부' 이영문씨
경남 하동에서 농사 짓는 이영문(李永文.51.옥종면 청룡리)씨는 '게으른 농부'다. 3만7000평의 논, 밭을 소유하고 있지만 농번기가 다가와도 느긋하기만 하다. 모를 심지 않고 논을 갈아 엎지 않는 독특한 농사법 때문이다. 농약, 비료, 제초제까지 사용하지 않으니 들에 나가봐야 할 일이 거의 없다. 이 처럼 태평스레 농사를 짓는다 해서 그는 자신의 농법을 '태평농법'(taepyeong.co.kr)으로 부른다.
그는 30여년째 이렇게 농사를 지으며 농법을 국내외에 보급하고 있다. 이 농법은 미국, 인도네시아, 중국 등에 수출돼 있고, 국내서 500여 농가가 이 농법을 활용하고 있다. 모 TV방송의 '골든벨' 프로에 퀴즈 문제로 출제되기도 했다. 그의 농장은 자연농법에 관심 있는 전국 농민단체나 개인의 견학코스가 된지 오래다. 그가 생산한 '태평쌀'등 곡식은 400여 회원들의 직거래를 통해 팔려 나간다. 태평쌀 80㎏ 1가마가 30만원으로 보통쌀 16여만원 보다 2배쯤 비싸지만 부족한 실정이다.
그가 새 농사법에 눈을 뜬 것은 스물살 무렵. 중학교를 중퇴한 그는 유달리 손재주가 좋아 농기계 수리점을 냈다. 청운의 꿈을 안고 무작정 서울에 갔다가 쓴맛만 톡톡히 보고 고향으로 돌아온 직후였다. 수리점을 운영하면서 당시 국내에 보급 중이던 농기계들이 모두 서양 농기계를 모방해 만든 것을 알게 된다. 옥수수 등 사료작물 수확에 맞춘 서양 농기계가 개조되지 않은 채 들어왔던 것이다. 그는 수입 농기계가 논.밭을 필요 이상 깊게 갈아 토양 생태계를 파괴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우리 실정에 맞는 농사법은 없을까'고민에 빠진 청년은 틈만 나면 평생 농사를 지은 노인들을 찾아다녔다. 경남 밀양의 어느 들녘을 지날 때 노인이 논두렁에서 풀을 베어 어린 모 사이에 까는 것을 본 그는 "잡초가 말라 죽는 데다 거미들이 생기면서 병충해도 없어져"라는 노인의 말을 듣고 손바닥을 쳤다. 그는 자신의 논에서 실험을 시작했다. 처음엔 풀을 베어 벼 사이에 덮어 주다가 나중엔 벼 논엔 보릿짚.밀짚을, 보리.밀밭엔 볏짚 을 깔았다. 이모작 논에서 수확한 뒤의 부산물을 활용, 일이 수월해졌다. 신기하게도 노인의 말처럼 풀이 자라지 않았고 병충해도 끓지 않았다.
그는 이러한 작업을 할 수 있는 기계를 1995년에 만들었다. 농사비를 크게 줄인다는 의미로 '농비(農費))0기(機)'라는 이름을 붙여 특허를 획득했다. 이 농법을 적용한 주곡 생산이 본궤도에 오르자 그는 우리 종자 복원작업을 시작했다. 3년전 독지가의 도움으로 사천군 서포면 비토리 별학도를 사들여 토종종자의 대량 생산법을 찾고있다. 고향서 실험 중인 모종과 종자를 도난 당하는 일이 잦자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이 섬을 택한 것이다.
그는 우리 토종 종자가 있다면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달려간다. 한국의 전통 쌀 종자를 일본 종자회사에서 구입했고, 고추종자도 몽골의 조선족에게서 찾아냈다. 그는 "오랫 동안 우리 토양과 환경에 적응된 토종 종자들이 병해충에 강하고 우수한 데도 아무도 관심을 갖는 사람이 없어 종자 복원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섬에서 태평농법을 마늘.상치.양파.고추.감자.참깨 등에 적용하는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그동안은 쌀.보리.밀.콩 등에 주로 활용했다.
두 가지 밭작물을 함께 심어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잘 자라게 하는 '농작물 짝짓기'도 마무리 단계다. 자외선을 싫어하는 고구마와 자외선을 좋아하는 참깨를 같이 심을 경우 서로 잘 자라고, 고구마 덩굴 때문에 참깨가 쓰러지지 않는 것을 확인했다. 이러한 혼작 작물로 마늘.상치, 양파.시금치, 고추.열무, 감자.콩 등을 짝짓는데 성공했다. 그는 내친 김에 아열대성으로 바뀌고 있는 우리나라 기후에 맞춰 외국산 열대 과일의 토착화에도 도전장을 냈다. 이 섬에는 체리.롱간.리치 등 외국산 열대 과일이 온실이 아닌 야외에서 잘 자라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가 씨앗을 심어 어릴때 부터 환경에 적응시켰기 때문이다.
그는 준호(28).준부(27)등 두 아들을 농부로 만들었다. 고교 성적도 괜찮았던 두 아들을 농촌진흥청 부설 한국농업전문대를 나오게 한 뒤 농부 수업을 시키고 있다. "농업을 제대로 배운 두 아들과 힘을 합치면 외국산 농산물도 두렵지 않아요. 농업을 자손대대로 물려줄 참입니다." 그는 태평농법을 개발하면서 체험한 자신의 자연주의 철학을 '모든 것은 흙 속에 있다''이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농사꾼 이야기'등 두 권의 책으로 펴냈다.
*** 태평농법
▶ 마늘과 상추를 같이 심어 잡초의 발생을 억제하는 태평농법의 혼작.
농약.비료.제초제.퇴비 등을 사용하지 않고 땅도 갈아 엎지 않는다. 벼농사는 초여름 밀.보리 수확과 동시에 논에 볍씨를 뿌린 뒤 보릿짚.밀짚 등을 덮는다. 가을엔 벼를 거두면서 밀.보리를 파종한다. 모내기를 하지 않아 물을 거의 대지 않는다. 벼 생육 집중기에 2~3번 물을 댈 뿐이다. 퇴비를 넣지 않고 보릿짚.밀짚이 퇴비가 된다. 이런 농법이 오랫 동안 적용된 논은 부엽토층처럼 씨앗이 뿌리 내리기 좋게 푸석푸석하다. 씨앗 위에 덮힌 짚.보릿대가 잡초 생육을 억제하며 온갖 미생물.천적들을 생겨나게 한다.
땅을 갈아 엎지 않는 것은 미생물이 죽거나 흙 생태계가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땅의 본래 주인인 미생물들이 써래질 해주기 때문에 물을 대지 않아도 씨앗은 습기를 찾아 뿌리를 깊이 내린다. 경상대 최진룡 교수팀의 조사결과 이 농법의 3백평당 평균 수확량은 498㎏로 기존 농법의 413㎏보다 85㎏이나 많다. 농사비도 싸다. 기존 농법은 한 마지기(200평)에 13만~18만원 들지만 1만원밖에 들지 않는다. 이 농법을 연구한 논문으로 박사 1편, 석사 4편 등 5편이 나와 있을 정도로 학계도 효능을 인정하고 있다 |
첫댓글 오~~~더 발전하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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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게시글에 꼬리말 인사를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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