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새재사랑산악회-166차 산행] 강원도 횡성 <운무산>
▶ 2016년 7월 17일 (일요일) ◀
* [오늘의 산행지]▶ 한강기맥 운무산(雲霧山) ; 강원도 횡성군 청일면 속실리
* [산행 코스]▶ 오전 10:30. 내촌입구→ 능현사→ 원시림의 숲길→ 가파른 오름길→ 능선→ 오름길→ <한강기맥> 삼거리→ 안부→ 오름길→ 헬기장(점심식사)→ 안부→ 오름길→ 운무산(980m) 정상→ 원넘이고개 삼거리(하산점)→ 전나무수림→ 계곡 합수점→ 운무산 산장가든→ 오대산샘물 공장 주차장(하산완료)
* [프롤로그] — 7월은 장마 중, 무더운 여름의 고개를 넘으며
대한민국의 7월은 장마와 폭염의 계절이다. 지난 유월은 봄부터 마른 날이 계속되어 매우 뜨겁고 목이 말랐다. 그렇잖아도 국민들은 정치 사회적으로 엄청난 스테레스를 받고 있는 가운데, 요즘 유례없이 뜨거운 날들이 우리를 숨막히게 한다. 연일 터지는 ‘가진 자’들의 전횡(專橫)과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의 부정·부패가 뉴스를 도배질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 열린 20대 국회에서도 정치인은 여전히 막말과 당리당략의 천박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총선에서 참패한 집권당은 여전이 계파간 이전투구로 죽을 쑤고 있고, 대한민국의 교육을 기획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국민을 개·돼지에 빗대어 매도하는 망발을 하다가 파면을 당했다. 그리고 국민이 믿고 맡긴 국가 기업 대우조선 사장의 부패 커넥션, 롯데 그룹 일가(一家)의 분식회계와 갑질 횡포, 그리고 진경준 현직 검사장의 ‘주식대박과 뇌물수수’로 구속된 사건 등 연일 터지는 불법과 비리가 국민들의 더운 가슴을 더욱 우울하게 하고 있다. 참 능력있고 잘난 사람들, 17일이 제헌절(制憲節)인데 그들에겐 법(法)도 없고, 인간적인 미덕(美德)이 없다. 심각한 것은 우리 사회의 정신적 빈곤이다.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군자는 의리(義理)로 살고 소인은 이익(利益)을 탐하여 산다.(子曰 君子 喩於義 小人 喩於利)"고 했다. 이제 선량한 국민의 마음은 상심을 넘어 그 분노가 산이 되었다. 그래서 더욱 뜨거운 여름이다. 너무 덥다!!
그런데 이렇게 갈라진 마음을 달래기나 하듯이, 7월 들어 장마전선이 북상하면서 제주도를 비롯한 남부지방에서부터 중부지방에 이르기까지 많은 비가 내렸다. 목 타는 대지에 내리는 단비였다. 연천, 포천 등 경기북부지방에는 200mm 내외의 폭우가 내리기도 했다. 그리고 장마전선이 남으로 내려가면서 다시 33℃를 상회하는 폭염이 도심을 달구었다. 그런데 15일, 다시 장마전선이 북상, 토요일인 어제부터 본격적으로 경기 강원지방에 많은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토요일인 어제도 밤새 비가 내렸다. 올해 비가 넉넉하게 내리는 것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작년, 재작년 마른장마와 가뭄으로 인해 수도권 시민의 젖줄인 북한강 수계의 소양호와 남한강 수계의 충주호가 바닥을 드러낼 만큼 힘겨운 여름을 보내면서 말할 수 없이 속이 탔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그야말로 이 땅의 생명수가 아닐 수 없다. 비록 산행을 앞두고 있는 우리에게는 날씨가 걱정이기는 하지만, 대지를 흠뻑 적시는 생명의 물은 여간 소중한 게 아니다. 비는 하늘의 베풂이요, 강물은 대지의 덕(德)이다.
* [오늘의 산행지] — 한강기맥 강원도 횡성 <운무산(雲霧山)>
해발 980m의 <운무산>은 강원도 횡성군 청일면과 홍천군 서석면 청량리의 경계에 위치한 산이다. 오지(奧地)의 산, 첩첩산중의 산이다. 고래로부터 항상 구름과 안개가 끼어 있다고 하여 ‘구름과 안개의 산[雲霧山]’이 되어 버렸다. 운무산은 백두대간 오대산 두로봉에서 서쪽으로 뻗어 나온 한강기맥(漢江氣脈)의 산줄기에 속해 있는 산으로, 산세가 정상을 찾을 수 없을 만큼 뒤엉켜, 구름과 안개에 감싸인 날이 많은 것이다. 운무산에는 운무산성지(雲霧山城址)가 있다. 이 산성에 대한 기록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으나, 다만 주민들의 전언에 의하면 고구려, 혹은 궁예가 활동하였던 시대에 쌓은 것이라고 하며, 성읍국가 시기에 어느 부족의 왕이었던 태기왕이 태기산에서 신라군에게 패하여 도주할 때, 태기산성 동북방에 있는 지르매재를 넘어 이곳 운문산성으로 왔으며 그때 쌓은 것이라고 한다.
* [운무산을 품고 있는 한강기맥] — 북한강과 남한강의 수계(水系)를 가름하는 산줄기
<한강기맥(漢江氣脈)>은 백두대간(白頭大幹) 오대산 두로봉(1,422m)에서 갈라져 나와 북한강과 남한강의 분수계(分水界)를 이루며 서쪽으로 내달리는 산맥으로, 남한 제6위 고봉인 평창 계방산(1,577m)-청량봉-삼계봉-횡성의 덕고산-운무산 등 큰 산을 두루두루 섭렵하면서 오음산-금물산-양평의 용문산(1,157m)-청계산-유명산을 거쳐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에서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162.6Km의 산줄기를 말한다. 웅장한 산세와 명산들이 즐비한 한강지맥은 청량산에서 북으로 분기하는 '춘천지맥', 삼계봉에서 남으로 분기하는 '영월지맥'과 '백덕지맥', 금물산에서 남으로 분기하는 '성지지맥'이 수려한 마루금을 이루고 있다.
* [산행에 동행하는 산우들] — 일단 산에 들면 신선한 행복감이
오전 7시 38분, 서울 군자역을 출발했다. 하늘에는 두터운 구름이 드리워 있는 날씨다. 오늘은 남정균 회장, 호산아·장병국 고문을 비롯하여 김준섭·한영옥 부회장, 민창우 기획, 김화영·김동만 산행대장, 유형상 부대장이 자리를 잡았고, 김의락 자문위원과 이종렬 님, 늘 한결같은 우정으로 참석하는 안상규·강재훈 님과 전진국 님 내외분, 그리고 늘 참석하는 김기봉 님과 이달호 님, 민백기 님, 이영근 님, 사모바위 님, 그리고 향이 부대장, 이명자, 장영서, 김재철 님의 부인 그리고 무칠이 안수경 님의 지기(知己) 두 분이 오랜만에 참석하였다. 지난달에 이어 박은배 총무, 수정 감사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거의 빠진 일이 없던 김재철 님, 문승배 님도 나오지 않아서 아쉬웠다. 어제부터 비가 내렸고 아침에도 간간히 비를 뿌리고 있는 가운데에서 변함없이 나온 분들이 마음이 굳건하다. 일단 산(山)에 들면 늘 신선한 행복을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 [산으로 가는 길] — 경춘고속도로를 타고 가는 길,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서울을 출발할 당시의 날씨, 비는 소강상태를 보이고 하늘에는 두터운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일기예보에 의하면 서울 중부지방에는 오전까지 비가 내린다고 했다. 매월 셋째 일요일에 시행되는 우리들의 월례 산행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정해진 날이면 '한결같은 마음'으로 출행하는지라 비의 예보가 있음에도 늘 이렇게 결행(決行)을 하는 것이다. 서울 군자역을 출발할 때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 우리의 분홍색 금강버스(권영길 기사님)가 경춘고속국도를 타고 달리는 중 본격적으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가평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동홍천I.C에서 56번 국도로 내려 달리다가, 홍천군 서석에서 19번 도로를 타고 '먼드래재'를 넘어 횡성군 청일면 속실리의 산행 들머리에 도착했다. 오전 10시 20분이었다.
* [운무산 산행의 들머리] — 속실리 ‘내촌 입구’에서 산행을 시작하다.
오늘은 산행은 횡성군 청일면 속실리 ‘내촌 입구’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한강기맥의 운무사 구간의 종주는 ‘먼드래재’에서 운무산으로 향하거나, 그 반대로 속실리 ‘샘물공장’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한강기맥 원넘이재에서 운무산 정상을 거쳐 먼드래재까지 산행하는 것이 보통이나, 오늘은 속실리 능현사(能顯寺)가 있는 ‘사자골 계곡’을 따라 산행을 하기로 했다. 굵은 빗줄기는 아니지만 비가 내리고 있었다. 대원들은 우장을 하거나 배낭에 방수용 커버를 씌웠다. 오늘은 선두에 김화영 대장과 김동만 대장이 서고 중간에는 유형상 부대장이, 민창우 대장은 후미를 수습하여 오기로 했다. ‘내촌 입구’에서 ‘능현사(能顯寺)까지는 깔끔하게 포장된 길, 완만하지만 경사진 오르막이 아주 팍팍하게 느껴졌다. 비오는 날씨 때문인가 산을 오르는 사람은 우리 대원밖에 없었다. 대원들은 삼삼오오 어울려 호젓하고 조용한 길을 따라 올랐다. 길목의 밭에는 한껏 물기를 머금은 농작물이 싱싱하게 자라고 있고, 탱탱하게 익어가는 자두에는 맑은 이슬이 맺혀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 [능현사 앞에서] — 비를 맞기로 작정하고 울창한 숲길에 들다.
포장이 잘 된 1차선 도로를 한참 올라가니 단청(丹靑)이 고운 절이 한 채 나타났다. 능현사(能顯寺),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 절은 2층으로 지은 단출한 건물이다. 아래층은 살림하는 요사채인 듯하고, 2층은 훌쩍 기둥 높이를 올려 덩그런 대웅전으로 지었다. 능현사 앞에서 모든 대원을 점검하고 산행을 시작했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거센 빗줄기는 아니어서 그냥 비를 맞기로 작정하고 우의(雨衣)를 벗었다. 비보다 우의 속의 땀과 열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단 하나 걱정은, 카메라에 물기가 스며들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우리들의 산행을, 추억의 앨범으로 만들기 위해 번거롭지만 카메라를 정상적으로 유지해야 한다. 그것이 늘 하는 수고로움이다.
* [첫 번째 능선에 오르기까지] — 빗속에서 울창한 숲길을 치고 오르다
본격적인 산속의 길로 접어들었다. 물기를 잔뜩 머금은 원시림 속의 작은 길을 따라 들어간다. 강원도 오지의 산(山)은 무성한 수림과 울창한 숲을 헤치고 나아가는 산길이다. 산의 초입에서 몇 굽이를 완만하게 오르다가 이내 가파른 오르막길이 나타났다. 후두둑 후두둑 굵어진 빗방울이 얼굴을 때렸다. 비는 내리고 땅은 질척거렸다. 어차피 비를 맞기로 작정하였으니 마음이 편안해 졌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맞으며, 흠뻑 물기를 머금은 나뭇잎을 헤치고 뜨거운 숨을 몰아쉬며 산을 오른다. 비에 젖은 흙길은 미끄러웠다 가파르게 경사진 비탈길에 고정자일이 설치되어 있었다. 대원들은 열을 이루어 자일을 잡고 올랐다. 드디어 첫 능선에 이르렀다. 이정표를 보니 능현사에서 0.53km 올라온 지점이다. 선두의 승조 대장이 갈림길에 서서 뒤에 올라오는 대원들을 안내하고 있었다.
이제 가파른 능선 길을 따라 산행을 계속했다. 산록 주위 나무들은 뿌연 운무 속에 젖어들었고 안개와 여린 비가 뒤섞여 뜨거운 이마를 스친다. 경사가 급하다보니 후미의 대원들이 멀어지기 시작했다. 오늘 운무산은 우리 대원들 이외의 등산객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호젓한 산길이다. 오로지 스스로 호흡하는 거친 숨소리가 무거운 발걸음을 잡아당겼다. 그렇게 0.3km를 치고 올랐다.
* [한강기맥 첫 번째 이정표] — 한강기맥의 능선길에 들다
오전 11시, 오늘 한강기맥 첫 이정표가 있는 능선에 이르렀다. 서쪽의 먼드래재와 동쪽의 운무산 정상으로 갈라지는 삼거리 갈림길이다. 이제 우리는 한강기맥의 능선을 타고 운무산 정상을 향하여 산행을 계속하게 된다. 오늘 산행의 여정이 한강기맥 운무산 구간종주이다. 이정표 부근에서 선두의 민창우 대장이 대원들과 함께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잠시 물을 마시며 휴식을 취했다. 빗줄기는 아주 가늘어져 대부분의 대원들이 우의를 벗고 산행을 한다.
한강기맥의 이정표 앞에서
* [안개 자욱한 울창한 수림(樹林)] — 비내리른 호젓한 산길, 동자꽃 슬픈 이야기
이제 본격적인 한강기맥의 능선을 걷는다. 산길은 바위등을 타고 오르내리는 암릉이었다. 울창한 수림으로 둘러싸인 사위는 온통 안개 속이다. 뽀얀 운무에 잠긴 산록, 바위와 소나무가 어우러져 선계(仙界)와 같은 환상적인 풍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한강기맥 두 번째 이정표에 이르러 잠시 한숨을 돌렸다. 먼드래재에서 3.52km, 운무산 정상까지는 1.7km 지점이다. 이제 산길은 토산(土山)의 흙길이다. 낙엽이 쌓인 산길, 비에 젖은 초목들, 함초롬히 이슬을 머금은 나뭇잎들이 반들거린다. 빗줄기도 약간 소강상태를 보인다.
호젓한 산길, 능선을 넘어가는 서늘한 바람이 분다. 뜨거운 가슴이 시원하게 대기를 호흡하니 한결 쾌적한 느낌이 든다. 길 주위의 풀섶에 주홍빛 동자꽃 한 송이가 바람결에 흔들린다. 그리고 순백의 야생화가 여기저기 눈에 띄기도 한다. 비오는 날, 오지의 깊은 산중에서 만나는 풀꽃들, 애틋한 사랑을 만나듯 마음이 설렌다. 동자꽃에 얽힌 슬픈 전설(傳說)이 있다.
▶ 먼 옛날 어느 깊은 산 속의 작은 암자(庵子)에 젊은 스님이 수도를 하고 있었다. 젊은 스님에게는 부모를 잃은 어린 조카[童子]가 있었다. 그 해 겨울이 되자 스님은 겨울동안 먹을 양식을 구하기 위해 어린 조카만 남겨두고 잠시 마을로 내려왔다. 잠깐 마을에 다녀온다며 떠난 길이었는데 스님이 마을로 내려왔을 때 그만 폭설(暴雪)이 내려 암자로 올라가는 길이 첩첩이 막히게 되었다. 폭설이 그치기를 마음 졸이며 기다리던 스님, 하루가 지나고, 이틀, 사흘… 어느덧 일주일이 지났지만 폭설은 그치지 않았고 오히려 점점 쌓여만 갔다.
결국 암자로 올라가는 길은 모두 막히게 되었고 폭설 때문에 쌓인 눈은 이듬해 봄이 되어서야 녹았다. 눈이 녹자 젊은 스님은 조카에 대한 걱정으로 바삐 암자를 향해 올라갔지만 스님이 암자로 도착했을 때 어린 동자는 이미 싸늘한 주검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동자의 무덤가에 맑은 주홍색의 꽃이 만발했는데 사람들은 이를 보고 ‘동자꽃’이라 부르게 되었다.
<계 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