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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회-제172차 산행] ♣ 충북 영동<민주지산> (2)
▶ 2017년 1월 15일 (일요일)
* [오늘의 산행 코스]
서울→ 경부고속도로→ 황간I.C→ 49번 지방도로→ [산행들머리] <도마령> : 충북 영동군 상촌면 둔전리(전북 무주군 설천 방향으로 가는 고개)→ 상용정(上龍亭)→ 갈림길→ 쉼터→ 각호산(1,202m)→ 갈림길(황룡사)→ 1,185고지→ 십자로 갈림길→ 무인 대피소(점심식사)→ 민주지산(1,241m)→ 쪽새골 갈림길(하산)→ 쪽새골 <순백(純白)의 적설로>→ 낙엽송 군락지(삼도봉-민주지산 갈림길)→ <물한계곡>→ 황룡사→ 주차장(영동군 상촌면 물한리)→ 황간I.C→ 경부고속도로→ 귀경→ 구의동
* [눈이 소복하게 쌓인 산록의 풍경] — 아름다운 설경(雪景) 속을 걸으며 …
☆… 다시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많은 눈이 쌓인 암릉 길, 그리고 시퍼런 산죽(山竹)이 눈을 소복이 뒤집어쓰고 있는 산길을 걸었다. 그렇게 걷는 사이에 1,185고지의 산봉을 넘었다. 아침보다 기온은 조금 올라갔는지 살을 찌르는 지독한 냉기가 조금 가신 듯했다. 겨울날, 오후의 햇살이 따스하게 느껴지는 산길이지만, 응달의 산록에는 아직도 눈을 소복아 뒤집어 쓴 겨울나무와 산죽이 아름다운 설경(雪景)을 보여 주었다. 시계를 보니, 오후 2시가 가까워오고 있었다. 문득 배가 고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가는 대원들을 확인하며 걸었다.
동쪽으로 백두대간의 장대한 산줄기 보인다 -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산봉우리가 황학산(1,111m)이다
남쪽으로, 삼각의 석기봉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리본의 뒤로 보이는 산봉이 민주지산이다
* [민주지산 <무인대피소>] — 찬바람을 피하여 점심식사를 하다
☆… 오후 2시, 민주지산 <무인대피소>에 도착했다. 여기에서 정상까지는 0.4km를 남겨두고 있다. 워낙 추운 날씨라 산록에서 점심식사를 할 수 없으므로 이곳에서 점심식사를 하기로 예정되어 있다. 일군의 사람들은 찬바람이 세차게 부는 산록에서 여럿이 함께 비닐을 뒤집어쓰고 식사를 하기도 했지만, 우리 대원들은 실내가 좁고 많은 사람들로 복잡하지만 이 대피소에서 식사를 했다.
우리가 찬바람을 피하여 점심식사를 한 민주지산 <무인대피소>, 여기에서 정상까지 0.4km ; 참사의 그 자리에 세웠다
☆… 점심 후 산행을 계속했다. 하늘은 파랗게 맑은 기운이 팽팽하여 더 높이 깊어지고 오후의 겨울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져 내렸다. 안부에서 올라가는 길, 다시 가파른 경사가 시작되었다. 산은 발이 푹푹 빠지는 눈길, 다시 몸이 더워지고 땀이 나기 시작했다. 바람은 여전했지만 그렇게 매섭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하늘이 열리고 따스한 햇빛이 내려오기도 하고 몸이 더워진 상태이기 때문이리라.
* [해발 1,241m의 민주지산의 정상(頂上)에서] — 장엄하게 펼쳐진 첩첩산군의 모습
☆… 오후 2시 30분 경, 민주지산 정상에 올랐다. 동서남북 천하의 산세가 한눈에 들어오는 최고의 산봉이다. 정상에는 삼각점과 매끄럽게 다듬어진 오석의 정상표지석이 있다. 오늘 따라 정상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모두 민주지산 등정의 인증샷을 찍겠다고 북적거렸다. 우리는 차례를 기다려 단체 사진을 한 장 찍고, 정상석 아래에 있는 이정표와 함께 찍거나 민주지산의 산줄기와 백두대간의 첩첩산세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사방의 산세를 조망했다.
☆… 우선 남쪽으로는 우뚝한 삼각의 석기봉에서 삼도봉에 이르는 산줄기가 장엄하게 펼쳐져 있었다. 거대한 몸채를 가긴 용(龍)이 엎드려 있는 듯한 형세였다. 그리고 그 삼도봉을 중심으로 동쪽으로는 장대하게 뻗어가는 산맥이 바로 추풍령에서 황학산을 거쳐 삼도봉에 이르는 백두대간이다. 민주지산의 서남쪽은 무주군 설천면 산곡이다. 서쪽으로 멀이 덕유산의 산체가 거대한 산군을 거느리고 남북으로 뻗어 있다. 서북쪽은 영동군 용화면 일대의 산곡이다. 민주지산휴양림과 시설이 있는 곳이다. 민주지산의 동쪽은 상촌면 물한계곡이다. 북쪽을 돌아다보면 우리가 지나온 각호산과 1,185고지의 장대한 산줄기가 펼쳐져 있었다. 천만산-도마령-각호산-민주지산-석기봉-삼도봉에 이르는 산줄기는 수많은 산군을 거느리고 있는 풍경이 아주 장엄하고 했다.
[정상에서의 조망] 남쪽으로 뻗은 산줄기 바로 앞이 석기봉 그 뒤의 삼도봉
[정상에서의 조망] 정상의 남서쪽 무주군 설천면의 산곡(山谷)
[정상에서의 조망] 정상의 동쪽, 장대한 백두대간이 뻗어있다
[정상에서의 조망] - 무주군 설천면, 멀리 설천봉 무주리조트 슬로프
[정상 아래의 이정표] 뒤쪽의 산곡이 상촌면 물한계곡이다
겨울나무, 찬 바람에 마른 잎이 서걱인다 - 바람의 사나이 베토벤 부대장
☆… 아아, 그런데 이 민주지산은 참으로 혹독한 참사의 비극이 있었던 곳이다. 대한민국 특전사 흑룡부대의 훈련 중 수많은 사상자를 낸 참사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민주지산과 무인대피소] — 특전사 훈련 중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던 ‘참사의 현장’
1998년 4월 1일, 특전사 흑룡부대(제5공수여단)는 한 달간의 종합전술훈련을 떠났고, 전술훈련의 마지막이자 훈련의 하이라이트인 ‘천리행군(千里行軍)’이 시작되었다. 특전사 훈련 중 ‘특전사의 꽃’이라 불리는 훈련이다. 400km에 달하는 코스를 1주일 동안 걷는 훈련으로 실제 전술훈련을 포함하면 그 거리는 약 500~600km에 달한다고 한다.
‘천리행군’이 시작되자, 충청남도 청양 칠갑산을 출발하여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강행군을 거듭한 5공수여단 특전대원들은 공주 계룡산, 보은 속리산을 거쳐 행군 5일차 되는 날 충북 영동의 민주지산에 다다르게 된다. 계절은 4월, 초봄이었지만 민주지산은 눈이 쌓여 있었고 기후는 심상치 않았다. 해발 1,242m의 민주지산은 충북 영동군 용화면과 전북 무주군 설천면 그리고 경북 김천시 부항면 경계의 정점인 백두대간 삼도봉 권역 중 가장 높은 산으로, 산의 서남쪽에 위치한 덕유산과 함께 그 산세가 장대하고 예측할 수 없이 기후가 변화무쌍하다.
사고 부대는 1일 오후1시 전북 무주를 출발, 20㎞의 산길을 3시간 동안 강행군한 끝에 민주지산 정상에 도착하여 그 산록에서 야영에 들어갔다. … 그리고 밤이 되자 초속40m의 강풍과 함께 장대비가 쏟아졌고, 곧 이어 그 비가 폭설로 바뀌면서 30cm까지 쌓이는 적설량을 기록한다. 갑자기 몰아친 기상이변으로 체감온도가 ‘영하 30도’까지 내려가는 4월의 혹한이 엄습했다. 엄청난 악천후로 헬기마저 뜰 수 없는 상황 속에서, 한 달 간의 전술종합훈련에 이어 산악으로만 다니는 천리행군에 지칠 대로 지쳐있던 대원들은 극한의 추위를 만나게 된 것이다. 결국 18시 20분 경 이광암 하사(23)가 숨졌고, 곧이어 김광석 대위, 오수남 하사(19), 이수봉 중사(24), 한오환 하사(22), 전해경 하사(22)가 목숨을 잃는다. 그리고 1명 실종, 6명이 부상하는 불상사가 발생했던 것이다
방한복과 야영장비, 응급의약품 등 산지야영에 대한 충분한 대비 없이 무리하게 훈련을 강행했던 지휘관의 과실도 있었다. 그리고 기상악화로 첫 사상자가 발생했음에도 산악훈련을 중단하지 않고 예정된 집결지로 모이도록 하는 훈련을 강행해 추가 사상자도 발생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당시 지휘관이 내렸던 명령은 “군장이고 총이고 다 버리고 살아남아라. 무조건 살아서 집결지에서 만나자”였다. 당시 훈련에 참가했던 대대원사는 “군 생활 30년만에 이런 날씨는 처음이었다. 우리는 예측하지 못했고 더 많은 사상자가 나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
* [특전사 대원들 ; 대한의 귀한 아들들] — 장대비-강풍-폭설에 몸이 꽁꽁 얼어서 죽어갔다!
☆… 오늘 우리가 점심식사를 한, 민주지산 정상 아래에 있는 <무인대피소>의 자리가 특전사 부대원들이 참사를 당한 현장이다. 그리고 영동군 상촌면 물한리에 <慰靈碑>(위령비)가 건립되었고, 거기에서 매년 ‘추모식’을 열고 영령들을 추모하고 있다. 대한민국 특전사 부대는 적의 후방에 침투하여 작전을 수행하고 아무런 지원 없이 스스로 살아서 돌아오는 임무를 수행하는 불굴의 용사들이다. 그러므로 극한의 혹독한 훈련을 한다. 하늘을 나는 수송기에서 창공에 몸을 던져 뛰어내리기도 하고, 차가운 바닷물에 온몸으로 뛰어들기도 하고, 칠흑의 어둠 속에서 험준한 산악을 타고 먼 거리를 신속하게 이동하는 하는 등 보통사람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고난의 훈련을 하는 것이다. 아아, 그들 모두가 대한민국의 귀한 아들이요, 아프게 꽃다운 청춘들이다. 그들은 누구를 위해 그렇게 목숨을 잃었는가.
☆… 오늘 우리의 산행도 매서운 추위 속에 이루어진 것이기는 하나, 그날 밤의 엄청난 폭풍설 속에 생명을 마감한 우리의 특전사 대원들을 생각하며 묵연히 추모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파란 하늘 아래 청정하고 장엄한 산세를 바라보며, 그날에 있었던 참사를 상상해 보니 가슴이 저리고 아팠다.
* [하산 길 ; 민주지산 쪽새골] — 순백의 적설, 아름다운 설경에 취하다
☆… 민주지산 정상에서 석기봉으로 가는 가파른 능선으로 내려서서, 이정표 갈림길에서 <쪽새골>로 내려가는 산길로 하산을 했다. 갈림길에서, 민창우 대장이 뒤에 내려오는 대원들을 기다려 안내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물한계곡 황룡사까지는 3.8km, 주차장까지는 4km를 내려가야 한다.
쪽새골로 내려가는 갈림길에서
☆… 쪽새골로 내려가는 산길은 순백(純白)의 적설(積雪)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해가 이미 능선의 서쪽으로 기울어졌으니 완전히 ‘응달의 산록’이었다. 엄격히 말해서 이곳은 이미 해가 진 것이다. 겨울의 하루해가 짧은 곳이니, 쌓인 눈이 녹지 않고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었다. 바람기도 전혀 없었다. 거봉 민주지산과 그 산줄기가 거대한 방풍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고즈넉한 정적이 흐른다. 앙상한 겨울나무도 그 정적 속에서 묵연히 있는 모습이 정겹다. 공기는 차갑지만 아늑한 느낌을 준다. 어떤 이는 혹한의 겨울, 하얀 눈밭에 고요히 침묵하고 서 있는 겨울나무를 성자의 모습이라고 표현했다.
* [삼도봉과 민주지산을 오르는 갈림길] — 울창한 낙엽송 수림과 계곡의 물소리
☆… 산길은 가파른 내리막길이었다. 가파른 눈길은 지기재그 형태로 럿셀이 되어 있었다. 대원들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하산을 한다. 눈길은 길고 길었다. 저 멀리 보이는 계곡의 산봉에는 아직 햇살이 머물고 있는데 우리가 걷은 눈밭은 어둑한 응달이었다. 산죽의 시퍼런 잎사귀가 두꺼운 적설을 뚫고 날카로운 성깔이 드러내고 있다. 새삼 인고의 생명이 경이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 그렇게 30여 분 이상을 내려오 눈길은 넓어지고 그렇게 또 한참을 내려오니 눈 덮이 계곡의 얼음장 속에서 흐르는 물소리가 들린다. 눈이 내리고 얼음이 얼어도 흐르는 물길은 어쩌지 못하는가 보다. 쪽새골의 원류이다. 이 골 저 골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이 합수하여 물한계곡을 이루는 것이다. 임도에 이르자 길바닥의 눈은 녹아 있었다. 오른쪽의 계곡을 끼고 한참동안을 내려왔다. 울창한 낙엽송이 군락을 이루는 곳에 이르렀다. 삼도봉-삼마골재와 민주지산 쪽새골에서 내려오는 물이 합수하고 두 등산로가 만나는 지점이다, 이곳에서부터 물한계곡을 따라 내려가는 비포장 찻길이다.
* [하산(下山) ; 물한계곡의 자연석 안내탑] — 차고 맑은 물이 끝없이 흐르는 계곡
☆… 토산품을 파는 상가와 식당들이 들어서 있는 관광단지와 그 가까이 있는 황룡사를 지나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가정교 옆에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의 장승을 좌우에 배치한 ‘맑은 물살 굽이도는 물한계곡’의 자연석 안내탑이 설치되어 있었다. 돌판에 새겨놓은 안내문의 내용은 이렇다. …
‘차고 맑은 물이 끊임없이 흐른다는 물한계곡은 삼도의 분수령을 이루는 삼도봉을 비롯, 해발 1,000m 이상의 준령을 이루는 민주지산·석기봉에서 발원하여 심산유곡을 이루어 자연경관이 수려할 뿐 아니라, 숲속에는 우리나라 전체의 식물 중 16%가 자생하고, 각종 야생동물이 서식하여 충북의 <자연환경명소 100선> 중 10걸로 지정된 곳입니다. / 2000. 9.28./ 충청북도지사/ 영동군수’
‘물한계곡’은 처음 ‘이 계곡의 물이 차다’고 하여 이름이 붙은 한천(寒川)마을. 그 계곡의 상류에서 상도대리까지 12.8km에 이른 긴 계곡을 일컬어 ‘맑은 물이 끝없이 흐르는 계곡’이라 하여 ‘물한계곡(勿閑溪谷)’이라 불려졌다.
* [경부고속도로 ; 쾌주의 상경(上京) 길] — ‘미남’을 빌미로 하여 베푼 인정, ‘따끈한 칼국수’
☆… 오후 4시가 조금 넘은 시각, 모든 대원들이 무사히 하산을 완료했다. 오후 4시 47분 황간I.C에서 경부고속도로를 올랐다. 황간에서 대전까지는 도로에 차가 그리 많지 않았고 호남고속도로가 합류하는 회덕분기점부터 차량이 많아졌으나, 청원부터 버스전용차로를 이용한 우리의 버스는 쾌주의 상경을 할 수 있었다. 올라오는 버스 안에서 자칭 ‘미남’ 장병국 고문이 ‘미남을 그리워하면 그대가 행복해지고 그대가 미남을 그리워하면…’ 운운하면서 ‘그대가 누구냐’ 하고 퀴즈를 던지더니 그 답을 빌미로 ‘저녁’을 사겠다고 제안했다. 오후 8시가 채 되기도 전에 서울에 도착했다. 구의동 <민속칼국수>집 앞에 차를 세우고 대원들 모두 구수한 우리 칼국수로 저녁식사를 했다. 영하의 날씨에 하루 종일 험한 산길을 다녀온 대원들은, 따끈한 국수 한 그릇으로 몸과 마음이 훈훈해졌다. ‘미남’을 담보로 훈훈한 인정을 베푼 장 고문에게 감사를 드린다.
* [에필로그] — 강추위 속의 행복 산행 그러나 특전사 용사들의 희생을 아프게 생각하며…
☆… 멀리 충청북도 영동의 각호산-민주지산을 다녀왔다. 영하의 강추위 속에서, 세찬 바람이 몰아치는 눈밭 길을 걸으며 따뜻한 행복감을 느낀 산행이었다. 겨울 산의 묘미(妙味)를 만끽했다. 모든 일이 다 그렇지만 스스로 해 보지 않으면 그것의 참맛을 모른다. 겨울의 산행이 그렇다. 그런데 무엇보다 고마운 것은 설산(雪山)의 동행이었다는 것이다. 전국적으로 눈이 자주 오지 않는 이번 겨울, 민주지산은 생각하지도 못했던 하얀 적설(積雪)을 그대로 간직한 채 우리에게 길을 열어주었다. 멀리서 달려온 보람이 있었다. 뜨거운 숨을 토해내며 산길을 치고 오르는 거친 호흡은 바로 생명(生命)의 박동감 그것이었다. 파랗게 맑은 하늘 아래, 화사하게 쏟아지는 겨울 햇살, 장엄하게 펼쳐지는 첩첩 산군의 장관이 우리의 가슴을 충만하게 했다. 오늘 산행에서 베토벤 부대장을 비롯하여 모든 산우들이 함께 수고를 했지만, 선두와 후미를 아우르며 고군분투한 민창우 대장의 노고(勞苦)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 화창하지만 매섭게 추운 날씨였다. 민주지산 정상에 서서 사방의 장엄한 첩첩산군을 바라보면서, 묵연(黙然)히 가슴이 저리고 아팠다. 1998년 4월 이곳에서, 냉혹한 폭풍설 속에서 유명(幽明)을 달리한 특전사 대원들을 생각했다. 오늘 산행에서 방한복으로 무장한 우리가 ‘춥다, 춥다’ 했지만, 기상이변으로 갑자기 장대비가 내리고 강풍을 동반한 30cm 이상의 폭설이 쏟아진 그날 밤, 장거리 행군에 지칠 대로 지친 특전사 대원들에게 엄습한 추위는 얼마나 혹독했을까. 비와 눈을 맞고 그대로 혹한에 노출된 대원들이 몸이 꽁꽁 얼어가는 고통 속에서 처절하게 죽어갔다. 그 정황을 생각하면 온몸에 전율(戰慄)을 느낀다. 아, 그 꽃 같은 우리의 젊은이들이 누구를 위하여 그렇게 죽어갔는가.
☆… 호시탐탐 우리의 생명을 노리는 북(北)으로부터 국가를 보위하고 우리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일련의 훈련이 아닌가. 그런데 오늘날 일군(一群)의 사람들은 노골적으로 ‘친북(親北) 성향’의 발언을 스스럼없이 토해낸다. 그리고 탄핵의 정국 속에서, 공공연하게 ‘친북’을 주장하는 유력한 대권 주자가 대한민국 정권을 쟁취하겠다고 야욕을 불태우고 있다. 아,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어디에 있는가. 사상의 자유, 그 사회적 분위기가 아무리 달라졌다 해도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위험한 국가관이다. 북(北)이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여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 상황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특전사 대원들의 죽음을 생각하면 그들의 희생이 무색해지는 오늘날의 이런 현실이 여간 부끄럽지 않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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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리는 그저 즐기만 했지 .....숙연해집니다
한해시작을 산뜻히 출발했습니다 올 일년도 무사 무탈하게
화이팅입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역쉬~~~ 호산아!! 상수!! 고문!! 형님은 저를 비롯한 새재사랑 산우님들을 흥분하게 하십니다...
늘 새재를 중심 잡아 주시고, 최고로 훌륭한 산행기를 써 주시고, 산악회를 이끌어 주심에 캄쌰 또 감사드립니다...
게으른 인간들은 손시럽다고 카메라나 핸폰을 꺼내지도 않는데~~~
손이 곱을 정도로 매서운 찬 바람과 차거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님들의 면면을 ~~~
고생 많으셨습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7.01.21 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