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나 개인전
한국적인 조형 이미지의 현대적 모색
작가의 그림에는 어떤 대상을 단순하게 표현하려는 성향보다는 그 대상이 지닌 특성과 본성을 조형화시키려는 성향이 훨씬 강하다. 작가는 그 동안 대상과 본질에 대한 많은 사색을 해왔던 것이다.
글 : 장준석 (미술평론가)
동양화이면서도 지필묵의 틀에서 벗어난 창의적인 작업이 있다. 물론 지필묵을 중심으로 하는 한국화의 전통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한국화에서의 새로운 장르의 모색은 한국화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부분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작가 안영나의 최근 작품은 전통 한국화의 장르에서 이처럼 변화를 모색한 경우라 하겠다. 그는 유화의 재료나 다양한 물성 등을 통한 실험으로 새로운 한국화를 찾고자 한다. 따라서 근작에서는 동양적·한국적이면서도 새로운 성향을 추구한다. 말하자면 한국적인 정서와 요소를 작품에 내포하면서도 재료적인 면에서 변화를 보여준다. 지금까지의 작품 콘셉트를 그대로 보여주면서도 새로운 느낌과 조형성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다.
Flower No Flower, oil on canvas, 70x70cm, 2012
특히 이번 작품에서는 한국의 전통 회화인 민화를 활용하고 있다. 작가는 본래 한국적인 정서를 토대로 한 한국적 조형에 많은 관심을 가져왔다. 따라서 다양한 조형적인 실험을 해왔으며 새로운 매체에 관심을 가져왔다. 때로는 입체적인 조형을 시도했으며 때로는 터프하면서도 강렬하고도 화려한 채색으로 조형적 이미지를 드러내고자 하였다. 따라서 작가의 그림에는 어떤 대상을 단순하게 표현하려는 성향보다는 그 대상이 지닌 특성과 본성을 조형화시키려는 성향이 훨씬 강하다. 작가는 그 동안 대상과 본질에 대한 많은 사색을 해왔던 것이다. 오직 그림을 그리는 데 몰두해 왔다고 생각된다. 커피를 마시거나 여행을 하는 등 일상의 사사로운 것들은 모두 그림에로 집약되어왔다고 생각된다. 작업실에서 작업하는 경우에도 적잖은 시간을 사색하며 자신이 의도하고 표현하려는 조형성에로 함축돼왔다. 이 함축은 곧 자신이 경험하는 삶의 내면적 감흥과의 조화로운 사색이 될 것이다. 작가는 어느 한 순간에 스스로도 억제하기 힘든 조형적 감성으로 과감하게 조형화시키는 흥미로운 작업을 하고 있다.
Flower No Flower, oil on canvas, 130x180cm, 2012
최근 작가는 사색을 토대로 한 소통으로 전통적인 우리의 민화의 이미지를 현대적으로 드러내는 과정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민화가 주는 깊고도 아름다운 요소들을 전혀 새로운 각도에서 펼쳐내고자 한 것이다. 그러기에 작가의 그림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꽃, 산, 새 등이 등장한다. 마치 민화의 한 소재가 오롯이 담겨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지만 여기에서는 여느 민화와 같은 세세함이나 묘사 위주의 모습 등은 볼 수가 없다. 터프한 붓의 흔적과 강렬한 모노 계통의 색채만이 현란하게 드러나 보인다. 우리 고정관념 속의 민화가 작가의 내면에서 전혀 다른 민화적 요소가 흐르는 조형으로 표현된 경우인 것이다. 그동안 작가가 추구해왔던 진과 허를 통한 이미지의 실체를 조형으로 보여주려는 작가의 의도가 더욱 심도 있고 재미있게 변화한 것이다.
Flower No Flower, oil on canvas, 91x60.6cm, 2012
이처럼 한국화에 남다른 애착을 갖고 민화적인 요소와 더불어 자연의 본성과 감흥을 조형화시키고자 부단히 노력해 온 작가는 최근 전통 한국화의 재료가 아닌 유화로써 한국성적인 콘셉트를 조형화시키는 흥미를 갖게 되었다.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온 조형성을 유화로써 모색하며 우리의 정서를 거침없이 드러내는 작업을 진행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작가의 작품에는 평소 추구하던 조형적인 꿈과 이상이 시각적으로 표현돼 있음은 물론이고 한국적인 조형에 대한 마음과 생각까지도 담겨있다. 자유로운 붓의 흔적들과 강렬한 색채 그리고 현란하기조차 한 형태들은 작가의 타고난 끼의 발산이라 생각된다. 쉽게 그린 듯하면서도 아무나 쉬 그려낼 수 없는 자유분방한 표현력이 작가의 장점인 것이다. 더욱이 전통 한국화적인 재료에만 머무르지 않고 유화 혹은 도자기 파편, 한지 등의 다양한 재료를 활용한 평면과 입체를 넘나드는 작업들은 그가 얼마큼 조형에 대해 깊게 고민해왔는가를 말해준다. 이번 전시에서는 민화를 소재로 한 한국성이 농후한 유화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여기에는 작가의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인간적인 향기와 자연과 조형에 대한 꿈 등의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여러 가지 속성들을 표현하기 위해 때로는 자연에 의존하고 때로는 민화와 같은 소재들을 활용하면서 한국적인 조형 이미지를 새롭게 변용하여 예술적으로 표출·승화시키는 작업을 사색 가운데 꾸준히 진행시키고 있다.
Flower No Flower, Acrylic, Ink on Korean Paper, 2012
따라서 안영나의 작품에 보이는 꽃,새, 나무, 산 등을 비롯한 여러 가지 형태들은 단순히 드러나는 형상이나 비형상적인 것이 아니라, 작가의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고 자신과의 관계 속에서 설정된, 신선한 현대성을 지닌 한국적인 조형의 이미지인 것이다. 평소에 생각해온 어떤 것, 다시 말해 한국의 자연이나 한국인의 삶, 자신의 이상이나 꿈 또는 한국인으로서의 삶의 추억 등이 자유분방한 조형 속에 압축된 경우라 생각된다. 따라서 거침없이 순간적인 감성과 감흥을 드러내는 듯한 붓의 터치들과 조금은 뭉개진 듯한 형상들은 작가가 의도적으로 즐기는 민화적인 혹은 자연성적인 이미지에로의 접근이다. 여기에는 전통 조형에 대한 애정뿐만 아니라 과거에 대한 작은 꿈과 관심 그리고 우리 정서에 대한 사랑, 자연에 대한 애정, 과거에 대한 추억 등이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내면의 조형적인 감성이 한순간에 여러 다양한 속성들과 더불어 섞이는 작용 속에서 표현적으로, 혹은 자율적으로, 때로는 우연적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작품으로 승화되고 있다. 이는 작가의 내면에 의해 지향되는, 삶의 모든 것과의 심리적인 만남과도 같은 것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