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마태오 13,10-17
그때에 10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왜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1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에게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12 사실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13 내가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이유는, 저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14 이렇게 하여 이사야의 예언이 저 사람들에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너희는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리라. 15 저 백성이 마음은 무디고, 귀로는 제대로 듣지 못하며, 눈은 감았기 때문이다. 이는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서는 돌아와, 내가 그들을 고쳐 주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16 그러나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 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고자 갈망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듣고자 갈망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화원에 진열되어 있는 예쁜 꽃을 보게 되었지요. 그는 돈을 치르고는 집으로 가져왔습니다. 너무나도 예쁘고 자신의 마음에 쏙 드는 꽃이었기에 매일 매일 물을 주고 온갖 정성을 기울여서 가꾸어 나갔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꽃은 하루가 다르게 시들어 가는 것입니다. 결국 화분 안의 꽃은 완전히 사라져 죽고 말았지요. 이 사람은 화가 나서 화원을 찾아가 따졌습니다.
“이렇게 형편없는 꽃을 팔면 어떻게 합니까? 내가 온갖 정성을 기울였지만, 점점 시들더니만 이렇게 죽고 말았습니다.”
화원 주인은 “그럴 리가 없을 텐데요? 이 꽃나무는 물을 일주일에 한 번씩 조금씩만 주면 아무런 문제없이 잘 자라거든요.”라고 말을 합니다.
바로 이 순간 이 사람은 알았지요. 이 꽃은 일주일에 한 번씩, 그것도 아주 조금의 물만 줘야 하는 꽃이라는 것을. 그러나 자신은 정성을 기울인다고 매일 매일 물을 듬뿍듬뿍 주어서 꽃나무의 뿌리가 썩고 만 것입니다.
사랑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됩니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 사람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가장 중요한 계명을 사랑의 계명이라고 하셨습니다. 즉,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느님을 알아야 그리고 이웃을 알아야 제대로 사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잘 알 수 있도록 쉽게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신 것이지요.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우리 인간을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쉽게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쉽게 다가오시는 예수님이십니다. 그 이유는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시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우리들은 얼마나 주님을 알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었을까요? 이렇게 쉽게 다가오시는 분인데도 불구하고, 전혀 알지 않으려는 우리들의 무성의함에 주님과 나의 관계가 더욱 더 멀어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면서 ‘저는 당신을 도저히 모르겠습니다.’라는 무책임한 말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사실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많은 대화를 해야 합니다. 지금 나와 가장 친한 친구를 생각해보세요. 그 친구와 친해진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친구와 대화를 많이 했기 때문에, 그래서 그 친구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친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과 친한 관계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연한 바로 기도를 통한 주님과의 대화가 필요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어떤 분인지 잘 모르겠다고 하시는 분, 혹시 기도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기도하지 않으면 주님을 모르는 것이 너무나 당연합니다.
기도하세요. 지금은 주님을 알기 위해 기도가 필요할 때입니다.
분명한 것과 희미한 것(‘좋은 글’ 중에서)
분명히 아는 것과 희미하게 아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분명히 아는 것은 내 것이지만,
희미하게 아는 것은 남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사랑하는 것과 희미하게 사랑하는 것은 다릅니다.
분명히 사랑하는 것은 아름답지만,
희미하게 사랑하는 것은 추하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믿는 것과 희미하게 믿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분명히 믿으면 신뢰받지만,
희미하게 믿으면 의심받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떠나는 것과 희미하게 떠나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분명히 떠나면 새로운 것을 얻게 되지만,
희미하게 떠나면 과거에 얽매이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바라는 것과 희미하게 바라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분명히 바라는 것은 이루어지지만,
희미하게 바라는 것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말하는 것과 희미하게 말하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분명히 하는 말은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지만,
희미하게 하는 말은 나를 뒤로 물러나게 하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좋은 생각과 희미한 좋은 생각은 전혀 다릅니다.
분명한 좋은 생각은 나를 자유롭게 하지만,
희미한 좋은 생각은 나를 얽매이게 하기 때문입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신부님!!!
^-^ 분명하게"" 기도할게요♡ 신부님 화이팅이요 ^^
감사합니다..오늘도 마음에 꽉꽉 채워갑니다...^^
고통 속에서도 분명히 알아 들을수 있도록 희망합니다
감사 합니다.
비가 많이 오네요. 늘 신부님의 새로새록한 말씀을 들으며 하루 하루를 살아간답니다.
감사!!! 나의 주님을 알기 위해.....분명히 알기 위해..... 기도하는 노력을 해야겠습니다. 주님께서는 나의 작은 소리도 다 알고 계시겠지만 제가 모르기에 기도하며 그 분 옆에 머무르는 자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신부님 좋은날 되세요~~^^!
늘 주님께 기도하며 주님을 알아 가는 거 그 자체가 행복이 아닐까요? 장마비가 하루종일 올 거 같아요. 신부님 기쁜 하루 되세요.
쉽게 분명하게. '예' 아니면 '아니요'. 갈것인지 말것인지. 이러한 분명한 것들 가운데 끼어서 사는것 같아요, 그래서 안개속을 걷는것 같고요. 예수님은 쉬운 비유로 사람들의 번뇌를 거둬주시는데, 사람들은 스스로 번뇌를 가지려고 애쓰는 것 같아요. '분명히와 희미하게' 둘 중에서 분명히를 선택하도록 노력해야겠어요. 그리고 쉬운 언어, 제가 마음만 열면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랑으로 말씀하시는 예수님과 늘 함께하도록 기도두 게을리하지 않겠습니다. 신부님 감사합니다!
요즈음 사람들은 분명한 것을 좋아하는 것 같네요... 저도 예전에는 불분명한 성격인데... 지금은 많이 개조(?) 되었답니다. 확실하게 의사를 표현하는 것도 그리 나쁘다고 생각되지는 않네요..(아무때나 하지는 않지만...)
감사 합니다 신부님!! 지루한 장마철에 건강 조심하세요.....
감사합니다. 항상 신부님 덕분에 좋은 일만 생기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제 카페에 복음 말씀을 올리려 합니다. 한 사람이라도 주님의 말씀을 듣는 이가 있다면 열심히 퍼 나르겠습니다.
찬미예수님 신부님 오래만에 인사드립니다. 하지만 신부님의 새벽 묵상글을 하루도 빠짐없이 봅니다. 그러하와 신부님의 일상을 신부님의 묵상글을 통해 잘 봅니다. 신부님 감사합니다. 뵙고 싶네요? 동영상으로 뵈옵는데 훨씬 갑곶성지 계실 때보다 좋아보였습니다. 신부님 감사합니다. 건강 유의 하셔서 매일 올려주신 새벽 묵상 애청자분들께섣ㅗ 감사하실것입니다. 신부님 건강 하십시요 그럼 안녕히 계십시요. 손명수 올림
분명히 떠나면 새로운 것을 얻게 되지만, 희미하게 떠나면 과거에 얽매이기 때문입니다. 그것 또한 미련이요 집착 인것을 바보같이 연연 하면서 희미하게 사는것 같아 화가 납니다. 버릴것은 버려야 하는데....... 더운 날씨 건강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