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기 아리랑 3..꿈꾸는 금양정사
하늘이 들어 올려, 허리춤에 놓고 앉아
비로봉 병풍치고 밀실을 꾸몄던가
오백년 세월품고 꿈꾸는 금양정사
나그네 인기척을 멧새가 알려주니
졸고있던 댕기소년 하늘,처언 따아~지
구름도포 준량선생 댓돌아래 내려서네
웃음짓는 입매보다 서글퍼라 젖은 눈이
하염없는 기다림에 잠긴세월 외로웠나
살포시 뒷꿈치들어 그를 안고 품었네라.
꿈꾸는 금양정사......황진이(이경진)
금양정사(錦陽精舍)는 낮잠을 자고 있었다.
몇 백년전 댕기머리 소년들의 낭랑한 목소리를
베고 누워 단잠에 빠져있었나,
나그네 인기척에 푸드득! 산새가 달아났다.
햇살이 마구 부서지며 금양정사 지붕을 두드리니
마루 밑 고양이가 노곤한 눈을 뜨고 하품을 한다.
오르는 길이 하도 험하여 팽팽한 외로움이 짐작되었지만,
이토록 은밀할 줄이야. 깊은 산중에 은폐된 비밀기지처럼
망 보던 키 큰 나무에 매미소리 걸려있다.
부산한 동행인들의 소리가 잠자는 금양정사의
깊은 마당을 건드리자 두껍게 가라앉아 있던 침묵이
낮은 포복을 하고 슬금슬금 흩어진다.
쉿!
잠깐만, 잠깐만.. 움직임을 멈추어달라고 손짓을 했다.
아!! 제발 조용히요...
발걸음을 멈추고 수백년 되었다는 목조 건물을 올려다본다.
시선을 우측으로 꺽고서... 뒷걸음질치고 물러나 다시 올려다본다. 이번엔 정면에서.
그리고 뒤돌아 아래를 훑어보니 본래의 물빛을 짐작할 수 없는 뿌연 연못이
마당 아래 놓여져 있다. 둥글지 않고 네모진 모양의 연못 안에는 회색빛 물에 동화된 잉어들이
유영하고 있다.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은 산중 고가에 잉어라니...기묘하다.
‘이건 뭐지?’
‘저 서원인지, 집인지 모호한 형상을 하고 있는 이 집의 정체가 뭐지?’
나는 그저 너를 보러만 왔는데, 네가 침묵을 하던, 낮잠을 자던,
난 그저 보이는 대로 보면 되는데, 동공에 잡혀서 그냥 머물러 있는 널 보면 되는데,
왜 심장 안쪽이 들썩거리지? 마치, 현실과 꿈의 경계를 부유하고 있는 듯 한 그 기와집의
안개빛 기운이 내 몸뚱아리를 휘감아 끌어 올리고, 처마를 맞대고 이어져 있는
금양정사의 두 칸짜리 기와집으로 발목을 잡아당긴다.
검은 그늘을 덮고 있는 마루 밑 어둠이 짓궂은 햇살에 지 속을 다 드러내고 있다.
이미 오래전 일찌감치 수액을 모조리 빨아들인 희뿌연 소나무는,
나이테를 멈추고 마루로 누워있었다. 골 깊은 세월자국마다 먼지를 뒤집어쓰고
드러낸 마루의 나이. 짐작하기 어렵다. 댓돌을 디디고 대청마루로 오르기 위해
밟아야 하는 세 칸의 나무 계단을 나도 밟고 올라본다.
어느 누가 짜 올렸길래, 어떤 염원을 담아 이어 붙였길래 한 뼘도 안 되는
그 얇은 나무판자의 두께로 그 모진 세월과 그 숱한 디딤을 견뎠을까.
처마아래에는 금계선생이 간절히 머물길 바라며 이름 지었다는
‘금양정사’ 네 글자가 예사롭지 않게 걸려있다. 누가, 저 현판을 썼는가!
혹시, 이퇴계 선생의 글씨? 어디를 둘러봐도 설명 한 자락 없다.
너는 기억하고 있구나 금양정사여!
대청마루 한 켠에 바람을 들이기 위한
폭넓은 장지문 열어젖히고,
공자왈 맹자왈 읖조리는
댕기 딴 사내아이들의 넉살좋은 목청을.
차마 잊지 못하여, 차마 놓지 못하여
그래서 이토록 굳건하게,
이토록 의연하게 버티고 있었구나.
현판을 또 한번 바라보니
준량선생의 헛기침소리가 들리는듯하다.
마루를 따라 둘러쳐져 있는 아름다운 난간을
쓰다듬으니 저쪽 구석에 졸고 있던 댕기소년이
나를 보고 한쪽 눈을 찡긋한다.
서생들의 기숙을 위해 지어 놓은 듯 한 옆채로
발길을 옮겨본다. 좁은 들마루를 앞에 둔
두 개의 방문. 동그란 쇠고리가 얌전하다.
그 옆에 부엌인 듯 한 나무문을 열어젖히니 가마솥 올려놓은 아궁이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이미 유물이 되어버렸으나, 의식 속 깊숙이 웅크리고 앉아 절대 사라지지 않는 그 옛날 부엌의 형상.
그 부엌 안쪽에 또 하나의 문이 숨겨져 있다.
마치 아름다운 새색시를 감추어 놓은 은밀한 내실로 통과하기 위한 비밀의 통로처럼...
집안 속에 숨겨 놓은 또 하나의 마당이 나타나고,
또 하나의 묵은 툇마루가 나타나고, 누군가가 기거하고 있는 흔적이 나타난다.
나일론 빨랫줄에 매달려있는 빨래집게가 이곳이 꿈속의 집이 아니라는
명백한 증거물인양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어여쁜 새색시가 연기처럼 사라졌다.
순간 방향을 잃어버린 나.
고개를 들어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기와집 처마 끝에
언제나 같은 빛깔로 고여 있을 것 같은 하늘에게 물어본다.
말해줘요!!
고요한 나의 심상을 건드린 것.
시선으로만 머물지 않고, 심장을 들썩이게 한 그것.
낡고 방치되어 있음에도 찬란하기 그지없는 저 당당함 안쪽에 무엇이 있는지를...
아름답기 때문인가요?
교교히 흐르는 적막함 때문인가요? 그것이 정녕 다인가요?
연필 한 타스 정도를 기대했던 보물찾기에서 산신령이 잃어버린 빛나는 구슬을 발견했거늘
사용할 줄 모르니 그대로 두고 가야하는건가.... 혼란스러웠다.
나는, 어디쯤에서 발길을 멈추어야,
풍기가 낳은 석학이자 대 문장가였던 황준량님을 만날 수 있지?
퇴락한 금양정사를 보고 비통한 마음 금치 못하여 이곳을 지켜 달라 부탁했던
퇴계선생의 마음을 느낄 수 있을 터인가. 숨겨진 안마당을 빠져 나와 맥 빠진 마음을 추스르며
원래의 모습대로 부엌문을 닫고 뒤돌아서는데, 긴 돌담이 에워 싼 또 다른 공간에
작은 문틀 하나가 문짝도 없이 열려져 있는 게 보인다. 무심코 들어선다.
내 몸이 문 안쪽으로 들어서자 분명 없었던 문짝이 안쪽에서 스르르 빗장을 잠그며
저 혼자 닫히고 있다. 커다란 마당이 눈앞에 드러나고 사방에 솟구쳐있는
키 큰 나무들이 돌담 바깥으로 빽빽이 그곳을 에워싸고 있는 게 보인다.
이곳이 어디지? 아무것도 가두지 않았건만 왜 담을 쌓아 바깥을 가렸을까?
그때 무언가가 눈 안에 들어온다. 키 작은 연두빛 풀들이 마치 잔디를 깔아 놓은 듯
마당 가득 펼쳐져 있는 그 곳에서 나를 바라보는 두 사람. 구름으로 만든 도포를 걸친 듯
윤곽은 선명하지 않지만 분명 두 남자가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다가선다.
왼쪽에 나를 보고 서 있는 비석의 글씨.
‘퇴도이공(退陶李公)’
그 비석 한 칸 아래 오른쪽 비석의 글씨
‘금계황공(錦溪黃公)’
금계선생의 비는 퇴도 이공의
비석을 향하여 옆으로 세워져 있다.
퇴도? 퇴계가 아닌 퇴도라는 명칭이 낯설지만
달리 짐작되는 사람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황 선생의 또 다른 이름일 수도 있으리라.
비석이 있는 걸로 보아 이곳은
후손들이 제사를 지내는 공간인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그들을 향해 걸어갔다.
도산서원 초상화에서 보고, 지폐에서 본 그의 얼굴이 저랬었나?
흰 수염을 늘어뜨리고 만면에 웃음주름 가득한 할아버지 얼굴을 보니
두근거리는 가슴에 힘줄이 뻗쳐 용기가 솟아났다. 에라, 나도 모르겠다.
천연스레 미소를 지어보이며 가까이 다가서는데,
오른쪽에 앉아 있는 남자의 목소리가 먼저 울린다.
“먼 길을 오시느라 애썼겠구려.”검은 수염에 유건(儒巾)을 쓰고 있는
그 분을 바라보니 어찌된 일일까?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이다.
누군가가 떠올려진다. 그도 나를 바라보며 웃고 있는데 왠지 웃고 있음에도
젖은 눈빛. 사나움이 하나도 없다.
“당신은 황준량(黃俊良)님이시고 저 분은 이황(李滉)선생님이신가요?”
고개를 끄덕이는 황준량님. 공손히 인사라도 해야 하건만 질문이 먼저 나간다.
“제가 여기에 올 줄 알고 계셨나요? 제가 누군지 알고 계시나요?
그렇다면 제가 무얼 알고 싶어 하는지 짐작하시나요?
비석의 글씨는 퇴계가 아닌 퇴도라 적혀 있던데요.
아! 그리고...그리고...묻고 싶은게 너무나 많았는데, 갑자기 생각이 안나네..”
하다가 “아! 생각났어요!” 퇴계선생님께 고개 돌려 다시 묻는다.
“근데 왜 당신의 비석이 이곳에 있지요? 그리고 당신은 안동 도산서원(陶山書院)을
지키고 계셔야지 어찌하여 그 곳을 비우고 여기에 와 계시는 거죠?”
퇴계선생과 금계선생이 마주보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음을 터트리는데 웃음소리가
귀로 들리지 않고 머릿속으로 들어와 웅웅 울린다.
“보아하니 아낙네 같은데 성격이 아주 급하군요. 내 오백년 가까이 이곳에 머무는 동안
이토록 당돌하게 나를 불러대는 여인네는 처음이요. 지난 밤 꿈에 귀한 손님이 올 거 같아
내 잠시 스승님을 모셨는데, 천천히, 천천히 머물면서 궁금한 것을 물어 보구려”
“영혼도...꿈을 꾸시나요? 그리고, 저는 천천히 머물 시간이 없답니다. 동행인들이
바깥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고, 돌아갈 길도 아주 멀기에... ”
“허허허! 나는 오백년 세월을 이곳에 머물렀어도 젊어지지도 늙어지지도 않았소이다.
바깥의 동행인들은 잠시 잠을 잘 것이고 그대는 이곳에서 하루를 지내도 단 일분의
시간조차 닳지 않을 것이외다. 여기는 모든 것이 멈추어 있는 영혼의 세계이며,
그 무엇도 멈출 수 없는 의식의 세계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하오.”
“무슨 말씀인가요? 멈추어 있는 영혼의 세계, 멈출 수 없는 의식의 세계라는 것이...”
금계선생은 빙그레 웃었다
마치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를 보고 그 순백의 영혼을 상상하며 저절로 미소 짓듯..
마흔 일곱 살에 생을 마친 그때 그 얼굴로 나이만 오백 살을 더 먹어버린 금계선생은
아무래도 학식과 인품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어리숙한 여인네와의 만남이 곤혹스러운 것 같았다.
좀 더 멋진 여인네가 되지 못하고 말귀 어두워빠진 내 자신이 속상했지만,
이런 만남이 언제 또 내게 주어질 터인가, 그는 분명 귀한 손님이 올 거라는 꿈을 꾸었다했으니
배우고 갈 것이 반드시 있으리라.
궁금한 게 있으면 못 참는 성격이 튀어나온다.
“저는 우리 고향의 민속학자 송지향(宋志香) 선생님께서 쓰신 글을 읽고
금양정사를 알게 되었습니다.
19년을 풍기에서 공부를 했지만 그때는 한 번도 당신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었지요.
성리학의 대표 학자이신 퇴계선생님은 워낙 유명하셔서 그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읽고
독후감을 쓴 기억도 나는데, 당신은 잘 모르겠어요.
그럼에도 왜 저는 당신이 낯설지 않을까요?”
묻기는 금계선생께 물었는데 퇴계선생이 입을 떼신다.
“호오! 나의 어린 시절을 알고 있다니, 정말 놀라운 일일세.
그렇다면 내 어린 시절 무엇을 책에서 읽었지?”
주저할 게 없다. 바로 대답했다.
“무엇을 읽었는지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저 독후감을 써야 한다기에 썼던 건 생각난다는 말이지요.”
“그래? 그렇다면 방금 성리학이라 말했는데,
그렇다면 성리학은 무슨 학문이지?” 첩첩산중이다
“그것도 무엇인지, 어떤 학문인지,
무엇을 주장하고 무엇을 깨닫기 위해 만든 것인지 아는 게 없습니다.
전 그저 그렇게 외운 답을 시험지에 쓴 기억이 날 뿐이라....
죄송합니다. 다음에 올 때는 반드시 공부를 하고 오겠습니다.”
“하하하! 아무 것도 모르면서 퇴계가 유명한 건 알고 있다고? 허 참,
그것도 희한하구나.” 희한한 일은 아니라 냉큼 말한다.
“성리학(性理學)이 어떤 학문인지 모르고, 어린 시절 읽은 책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신을 아주 모르진 않습니다. 주워들은 게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당신께선 태어난지 7개월 만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의 막내로 크면서
거의 모든 공부를 독학으로 깨우쳤다 들었습니다. 가난한 살림을 홀로 꾸려가면서도
자식들을 훌륭하게 키워 낸 어머니께는 극진한 효자였다는 것도 들었구요.
사실, 훌륭하기야 선생님보다 어머니가 더 훌륭하신 거지요”
“오, 그래 맞았네! 내 그런 어머니를 두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 좋은 서원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을 수 있겠는가! 참으로 맞는 말이네. 아암 백 번 맞는 말이지...
그리고 또 무얼 들었는가?”
열심히 머리를 굴리며 금양정사를 보러 오기 전에 읽었던 짧은 자료를 기억해 본다.
“풍기 군수로 부임했었고, 음..백삼십번 넘게 왕의 부름을 받았지만
절반 넘게 벼슬을 사양했으며...”
“그리고?”
짓궂은 웃음이 눈가에 가득한 퇴계선생을 보고 있자니 꼭 면접을 보러온 수험생 꼴이다.
“좌우지간 이율곡 선생과 이황 선생이 학자 중에 제일 유명하거든요?
또 제가 듣기론 당신께선 학문을 입으로만 주장한 게 아니라
몸소 실천하여 다른 이들의 존경을 받았다고 했어요. ”
“과분한 칭찬을 들으니 아주 기분이 좋은 걸?
공의 말을 듣고 여기에 오길 참으로 잘한 것 같소이다”
하면서 그 옆에 앉아 있는 황준량 선생을 향해 다시 한 번 큰 웃음소리를 뱉으신다.
그러고 보니 또 있다.
“그리고요, 저 분을 가장 아끼는 문인으로 대하셨고, 서신 교환도 두 분이 제일 많았으며, 또,..”
옆에다 사람을 두고 돌아가신 분이라는 표현을 쓰자니 좀 어색해졌다. 그러자 대뜸
“금계가 죽자 내가 그를 위해 행장을 쓰고 직접 제문을 지었다는 말을 하려는 거지?” 하신다.
“맞아요!!” 역시 똑똑하신 분이라 뭐가 다르긴 다른 것 같다.
즐거운 듯 말을 나누던 그 분의 목소리가 갑자기 낮아진다.
| 금계 황준량 친필 |
“그렇다네,
그만큼 아까운 내 동지이자 훌륭한 석학이였는데,
빛을 보지 못하고 여지껏 묻혀만 있으니
참으로 애닯기가 그지없어” 라며
침통한 표정을 지으셨다. 이어서 하시는 말씀.
“금계는 어떤 학문의 완성은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떴지만, 그는 사후에도 이곳을
잊지 못하고 지금까지 머물러 있다네.
어쩌다 내 있는 서원으로 오기도하지만
주로 내가 이곳을 찾는 편이야.
자네가 보다시피 이곳은 풍광이 뛰어나지만
산새들과 바람소리만 드나들 뿐
찾아오는 이들이 적으니
그가 외로울까 늘 걱정이 되거든.
내 살아 있을 적에는 세상을 등진 금계가 생각나
어느 날 이곳을 찾아왔는데 말이야,
정사가 황폐해지고 퇴락되어
말할 수 없이 가슴이 아팠다네.”
“그 때 스승님께서 군수에게 부탁하여 이곳을 지켜 달라고
간곡히 당부하는 것을 제가 보았습니다.
스승의 은혜를 사후에까지 받았으나 아무것도 갚아드리지 못하니...
못난 제가 미울 따름입니다. ”
머리를 숙이며 준량선생이 말했다
“무슨 소리인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네.
벼슬을 마다하고 정사를 지어 후학을 양성하려던
꿈이 너무나 허무하게 무너진 것도 한이 되거늘, 그 정신이라도 후대에 물려주어야지!
못된 벼슬아치들이 그 뜻을 헤아리질 못했으니....
다행히도 풍기 군수 ‘조완벽’이 내 뜻을 거르지 않아 정사를 지킬 수 있었다네.”
“그 뒤 병자호란 때 정사가 소실되었다 들었는데요. 누가 다시 이곳을 지었나요?”
“호오? 그걸 어찌 알았는가!
이제 보니 금계를 만나려고 공부를 꽤 하고 왔나보구먼.”
퇴계선생이 금계선생을 바라보며 그리 말하자 집주인이 나를 보고 눈으로 웃어준다.
“그 후 60년 동안 잡초만이 우거진 쓸쓸한 빈터로 남아 있다가,
영조 때라지 아마? 금계의 손자 황성이 안타까이 여겨 다시 지어 올렸다들었네.
그러니 지금의 금양정사는 근 300년이 된 건물이야.”
“터는 500년 전에 제가 골라 둔 것이지요”
그들이 삼백년, 오백년 세월을 마치 3년,5년처럼 다루는 걸 보자
내 태어나기 이전에 이 분들의 500년 세월이 내 생 앞에 존재했다는 것이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금계선생께 물었다
“이곳을 금양정사 터로 점찍어 둔 이유가 무엇이지요?”
갑자기 금계선생의 얼굴에 화색이 돌 듯 밝아지더니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대 여기 오면서 보지 못하였소? 풍기 사람이 아니오?
이곳을 둘러보면 금방 알 게 되리라 생각했는데....
아! 오죽 아름다우면 금계(錦溪:비단계곡)라 불리었겠소.
드러나지 않으나 너무 깊이 앉아있지 않고,
세상을 등진듯하나 마을과 가까우니 아이들 드나들기 어렵지 않고,
게다가 금선정(錦仙亭) 맑은 냇물을 안고 돌아 흐르니 얼마나 정답소이까.
비단계곡 금선대에 금선정을 세우니 운치가 더하고, 어지러운 조정의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옛 성현의 말씀을 음미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어디 있겠나 싶었지요.”
그러나 그는 금양정사도, 금선정도 완성 되는 걸 못보고 세상을 떠난 사람이다.
그 염원이 오죽했으면....그는 아직도 꿈을 꾸고 있구나. 싶으니 가슴이 아린다.
“당신은 풍기에서 태어나셨지요?”
“그렇다오”
“성주목사를 병으로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중 예천에서 운명하셨다 들었습니다.”
“그랬지요”
“금양정사라는 이름은 당신이 살아계실 적에 미리 지어놓은 것인가요.
아니면 후손 중 누군가가 지은 이름인가요.”
“허허허, 내가 지은 이름이라오. 고향을 드나들 때
이곳이 너무 마음에 들어 초가집 한 칸지어 노년을 책이나 읽으며 보낼 생각이었는데,
너무 호사롭게 지어 처음 내 영혼이 이곳을 찾아 왔을 때 꽤 당황스러웠지요”
아름답기는 하지만,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금양정사이건만...욕심 없는 분이라고 느껴진다.
“당신은 왜 입신양명의 기회를 물리치고 한사코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에 그토록 집착하셨나요?
몸도 약하신 분이 편하고 손쉬운 방법을 마다하고 구태여 어렵고 성가신 쪽을
선택하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그리고 이곳에서 오백년 가까이 머물렀다 하셨는데
60년 빈 터 시절엔 어디에 계셨나요?”
“쯔쯔쯔, 또 급한 성질이 나오시네..천천히 물어도 된다 했거늘
요즘엔 어찌 그리도 빠르고 급한지, 아마도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듯싶으니
우리 편하게 앉아서 귀를 열고 입을 떼면 어떻겠소?” 하며 내 손을 잡고 앉히는데,
조금도 민망하지가 않고 편안하다. 비록 지금의 얼굴은 나와 비슷한 나이로 머물러 있다하지만
그는 오백 살이 넘는 대선배님이 아닌가. 나는 그가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세상의 인기척에 문을 닫은 영혼의 마당은 오직 천상에게만 길을 열어 주었는지
청정한 푸른 하늘만이 우리 세 사람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바깥의 동행인들은 조금 더 낮잠을 자야할 것 같았다.
그들이 말한 멈추지 않는 의식의 세계에 대하여
내 나쁜 머리로 이해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퇴도는 퇴계선생의 또 다른 호라고 했다. 그들의 인연에 대하여 묻고 답을 들었다.
풍기 군수로 재직할 적에 금계를 만난 퇴계선생은
그 누구보다 그의 학문과 인품을 사랑했노라 말씀하셨다.
준량이 단양 군수로 부임했을 때, 탐관오리의 횡포와 무거운 세금으로
곤궁에 빠진 백성들을 위해 왕에게 4,800자에 달하는 장문의 상소문을 올렸는데,
문장 하나하나가 너무나 아름답고, 목민관(牧民官)으로서
백성을 향한 극진한 마음씨가 넘쳐났으며,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한
논리적 설득력이 얼마나 치밀했던지 미처 다 읽기도 전에 왕의 눈에
눈물 맺히게 했으며 결국 마음을 열게 하여 그의 뜻대로 10년간 세금을 면제해 주었다고 했다.
퇴계선생은 그런 그의 올곧은 기개와 현명함과 수려한 문장력을 칭찬하고,
먹고 살기도 힘든 시절에 양반이 아니면 공부 할 수도 없었으니 척박한 지방이야 오죽 했겠는가.
하면서 벼슬을 마다하고 자기가 태어난 곳에 자리를 잡고
자기네 고장에서 후학을 양성하려 했던 그의 단심이 애틋했노라 하셨다.
“백학서원이 완성 되었을 때 그 기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답니다. 스승님”
“그 뿐인가. 부임되어 가는 곳마다 학교의 부흥에 얼마나 애착을 가졌던가.
단양 향교를 중수하고, 성주에서도 영봉서원을 중수하여 제자들을 불러 모아 교육에 힘썼지.”
“사람은 죽지만, 학문은 영원하지요”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학문이 영원하다는 말은 좀 생소하게 들렸다.
퇴계선생은 이어 말씀하셨다 60년 동안 금양정사가 허물어진 시기에는 금계의 영혼이 금선정과
풍기 향교를 오가면서도 금양정사 빈 터를 떠나지 못했다고.
외롭지 않으셨나요? 라는 내 질문에 준량선생은 다시 정사가 세워진 것만도 감사하다고 했다.
저 우거진 잡풀더미에 오가는 내방객 하나 없는 지금의 정사모습이 너무 마음 아프다고 하자,
당신의 영혼은 사통팔달이라 사방을 돌아다니고 있으니 괜찮다고 하셨다.
인근에 향교와 동양대학이 있고, 항공고등학교가 있고, 금계, 풍기중학교가 있는데다,
아직도 많은 이들이 금선정을 찾아오니 그 모양새 바라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라 하셨다.
요즘은 생전 알지 못했던 항공기술을 배우러 몰래 학교로 청강을 하러 다니는데,
졸음이 쏟아지면 서책을 앞에 두고 꾸벅꾸벅 조는 모습들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며 환하게 웃었다.
나는 갑자기 금선정 소나무가 생각났다.
“당신은 금선대위에 세워진 금선정이
완공되기도 전에 타계하셨지만,
그곳을 지키는 소나무를 잘 알고 계시겠네요?
얼마 전에 완성된 새 다리 때문에
당신의 나이와 맞먹는 소나무가
무더기로 잘릴 뻔 했던 일을 알고 계시나요?”
라고 물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했다.
“이곳은, 우리나라의 10승지 가운데 1승지에 속하는 훌륭한 땅이라오.
그런 곳에서 나고 자란 후손들이 그토록 아름다운 계곡을 함부로
다치게 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나는 가지고 있었지요.
조바심나긴 했지만,
끝까지 소나무를 보호하려 했던 아름다운 얼굴들을 잊을 수 없답니다.
어제도 옮겨 심은 513살 소나무가 잘 적응하여 살아낼 수 있도록 오래도록
쓰다듬어 주고 왔지요” 정 깊은 성품까지 갖고 있는 멋진 분!
나는 또 물었다.
당신들을 기억하는 이들은 거의가 사라지고 있고,
지금의 교육은 성리학이나 유교나 고전 철학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고.
모두들 서양 언어에 열중하고 있으며,
많은 자녀들이 이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로 이동하고
그들의 교육과 문화를 배우는데 혈안이 되어 있는데,
그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도대체 그들은 심각한 게 없는 사람들인가 보다.
여전히 웃음 뛴 얼굴로 여유 있게 말씀하신다.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가 없다. 다른 나라의 앞선 기술력을 배우고, 언어를 배운다고
그들이 그 나라 사람으로 바뀌는 건 아니라고 했다. 결국 우리나라를 위해 쓰일 것이며,
우리나라의 학문을 높이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하신다. 미국에서 미국인 이름으로
대단한 업적을 이룬다 해도 결국 그는 한국 사람이니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것이라면서.
조국을 부정하는 사람은 결국 모든 세상이 그를 비난할 터이니 결국엔
그 나라 사람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고. 그리하여 지나친 걱정은 안한다 해서 깜짝 놀랐다.
당연히 해괴망측한 일이라고 단정지을 줄 알았던 예측을 보기 좋게 뒤집는 말이었다.
한술 더 뜨신다 황준량님.
축구선수 박지성이 외국에서 선수 생활을 한다고 로버트.박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해서 그만 쓰러질 뻔 했다.
그들은 서책만 읽어대는 융통성 없는 선비들이 아니다. 산수를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하고,
예술을 사랑할 줄 아는 멋진 남자들이다. 그들을 더 많이 알고 싶어졌다.
학문과 교육에 대한 그들의 열정과 염려도 나왔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어떤 훌륭한 업적을 이룩하는 것보다 앞서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인간의 도리를 깨우치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깨우침은 교육에서 나온다 라고 하셨다.
알 듯 말 듯 하다 하자 부연의 설명을 하시는 퇴계선생님.
어떤 학문이라도 완벽한 완성이란 있을 수 없다.
끊임없이 새로운 사상이 대두되고, 역설되고,
연구하다보면 매번 다른 학문이 생겨나는데 어떤 것은 충돌하고, 어떤 것은 화합하면서
생성되고 소멸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학문의 연구는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결국 하나의 정점으로 모여지는 것은 인간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라고.
그렇지만 그것 역시 다가 아니라 가치 충족을 위해선
하늘의 이치와 자연의 법칙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하셨다.
그러려면 앞선 자가 솔선하여 가르치고, 알지 못하였던 것을 깨닫게 하여
모두가 올바른 삶을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그 역할을 하는 것이 교육이다.
그러니 교육은 백년대계가 아니라 천년대계라 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슬쩍 동의를 구하셨다.
틀린 말씀이 아닌듯하여 반론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금계가 세상이 알아주는 석학이었지만 안타깝게도 그 뜻이 접혀졌다.
그러나 그가 추구했던 교육의 정신은 또 다른 교육을 지탱하는데 주춧돌 역할을 하고 있으니
그 정신을 외면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또 그가 목민관으로 행했던 백성만을 위한
마음가짐과 몸으로 실천하여 보여 준 청빈함은 후손들의 귀감으로 삼아야 한다고 하셨다.
금계선생이 죽었을 때 수의마저 갖추지 못해 베를 빌려서 염을 했으며,
관에 의복도 다 채우지 못할 만큼 검소했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났다.
그의 정신을 배워야 할 사람들이 우리 중앙엔 넘쳐나는구나, 싶었다
그렇다면...
멈추지 않는 의식의 세계라는 것은
당신을 두고 하신 말씀이네요 라고
준량선생을 향해 물었다.
그가 내 의문에 답을 주신다.
“모든 현재는 그 자체의 과거라 할 수 있지요.
그 현재라는 것이 과거 없이 이루어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오, 단순히 지나간 시간에 있었던
사실만이 역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인간이 관계한 과거’ 만이
역사라 할 수 있는데, 그 역사를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교육이 필요하다는 말이지요”
쉽지가 않다. 그는 쉽게 설명해주려 애쓰는데.
“쉽게 말할까요? 과거의 교육을 알아보는 것은
미래의 교육을 예측하기 위해서다.”
재미있다는 듯 싱글벙글 웃는 모습 한 구석에
사내아이의 장난기가 살풋 보인다.나는 말했다.
“당신을 외면해선 안되겠네요.
금양정사를 잠재워선 안된다는 말 같아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옛것을 통해 새 것을 익힌다는 고사성어.
“너무 간단하네요?” 내가 말하니
“간단한듯하지만 잊혀지기 쉬우니 간단하지 않지요”라고 하신다.
“하지만, 이곳은 세월 뒷마당에 몸을 숨기고 잠을 자고 있는 거 같아요.”
그의 눈치를 살피며 그리 말하자 이번엔 눈을 지그시 감았다 뜬다.
“자고 있다. 라.....그렇지 않아요, 항상 꿈을 꾸지요.”
“옛날을 그리워하는 꿈인가요?”
“미래를 생각하는 꿈도 함께 꾸지요”
“아무도, 알아주지 않잖아요”
“느끼지 못할 뿐 그 누구라도 비껴갈 수 없는 것이 역사의 흔적 아니겠소.”
비껴갈 수 없는 역사의 흔적이라.
“제가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 고조할아버지의 피를 이어 받은 것처럼요?”
“비유하는 솜씨가 제법이구려. ”
“하지만, 이제라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꿈에서 깨어나야 하지 않을까요?”
“크게, 달라질 것이 뭐 있겠소. 나는 이미 과거의 한 자락이고,
그 자락을 펼친다고 갑자기 나아지지도 달라질 것도 없다 생각하오.
다만, 이런 곳이 있었다는 것을 잊지만 않는다면...”
“잊지 않는 다면요? ”
“그것만이라도 감사하지요”
“너무 겸손한 말씀이네요. 전 당신을 만나니
우리 고향에 대한 긍지가 생기는 것 같은데요”
그 말을 뱉는 순간, 긍지라는 말이 저절로 내 입에서 나오는 순간,
그가 왜 나를 귀한 손님이라 했는지를, 그리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 것 같았다.
그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다정한 미소. 내가 무엇을 깨달았는지 짐작된다는 눈빛.
조용히, 아주 느리게 그가 입을 떼었다
“이렇게 와주어, 너무나 감사하오 ”
나는 몰랐던 답을 기억해내어 해답을 맞춘 아홉 살짜리 아이처럼 조금 흥분되었다. 그
리고, 정확히 알아차렸다. 침묵을 헤집고 내 심상을 진동시킨 그 무엇은 바로 숨겨진
보물을 발견하고도 알아차리지 못한 내 무딘 감각을 일깨워주기 위한 그의 속삭임이였다는걸!
사람들에게 자신은 금양정사를 한시도 떠난 적이 없음을 알리고픈 바램이였다는걸.
멈출 수 없는 의식의 세계, 즉 그의 정신은 변하지 않을 거라는 의지라는걸.
결코, 가볍지 않은 당당한 자부심이 내 어깨 위로 내려앉았다.
나를 바라보는 금계선생과 똑바로 눈을 맞추었다. 말했다.
“당신은 티끌이 아니라 보석이고, 금양정사는 그저 오래되어
아름다운 옛 기와집이 아니라 내 고향의 보물입니다!”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그 사실을 모르고 있어서 무척 미안하지만,
이해해 달라고 했다. 당신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니라고 말했다.
작년에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 388호로 등록 되었으니 이제 저 묵은 먼지를
털어낼 것이라고도 했다. 아마도 더 이상 당신은 깊은 잠속에서 아이들의 목소리를
꿈꾸지 않아도 될 거라는 말도 빠트리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눈 안에 그가 들어온다.
“당신을.....안아 봐도 돼나요?”
그의 젖은 눈빛이 잠시 흔들리는듯하더니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이 곳에 계속 머물러 주실거죠?”
구름도포가 들썩거렸다.
대답을 듣기도 전에 나는 그에게로 다가가 그의 목을 감았다.
영혼의 옷을 입은 그의 품은 어떤 질량감도 느껴지지 않았고,
어떤 촉감도 잡히지 않았으나, 따뜻했다.
‘이렇게 만날 수 있어 너무나 다행입니다’ 그런 말을 가슴으로 내뱉은 거 같다.
고개를 돌려 이 황 선생을 바라보는데, 민망한 꼴을 이해해 달라고 말을 하려는데..
그 곳엔 아무 것도 있지 않았다.
다시 고개를 돌려 준량선생을 보니 그 역시도 사라지고 없었다.
스승을 향해 누워있는 비석만이 뜨거운 여름 햇살이 버거운지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그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을 가만히 어루만졌다.
그리고 황준량 선생의 학문과, 그의 청빈한 자세와
그의 인품을 존경해주었던 퇴계선생의 비석을 향해 걸어갔다.
‘그와 함께 해주어 감사해요. 당신께서 그를 아끼셨으니 그는 항상 든든했을 겁니다’
그리 말하며 그의 비석을 쓰다듬으니 더운 열기가 전해진다.
왜 그의 후손들이 이퇴계 선생의 비석을 함께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지 헤아려졌다.
어느새 잠에서 깨어났는지, 문으로 동행인들이 들어온다. 아무 것도 모르는 표정들이다.
내가 그들을 만났다고 한다면, 뭐라고 말을 할까?
다시 한 번 둘러본다.
가야하기 때문이다.
금양정사 앞 쪽에
심어진 오동나무가 마치
현판을 가릴세라 옆으로 누워
가지를 뻗고 있다.
이십년 수량 밖에 안됐다 하니 누가,
무슨 의중으로 그걸 심었는지 궁금했다.
적막한 금양정사가 어느 후손의
가슴팍을 답답하게 했나보다.
빨리 자라고 후다닥 굵어지는
오동나무라도 보면서 가라앉는 시간을 견디라는 헤아림이었나...
둘러봐도 역시 부연의 설명이 없다.
갈 차비를 서두르니 흩어졌던
침묵의 마당에 다시 고요가 몰려온다. 두고 가려니, 가슴이 왜 그리 아려올까.
보물을 발견한 희열이 내 심장을 붉게 달구건만, 코끝에 몰리는 이 아릿함은 무엇일까..
또 뒤돌아본다.
금방이라도 그가 지붕위로 불쑥
얼굴을 내밀고 나를 바라볼 거 같은데,
가지 말고 이곳에 남아달라는 눈빛을 건네줄 거 같은데,
그러면 모든 걸 다 내팽개치고 그에게 달려갈 거 같은데,
내 마음이 이리한데....... 처연한 하늘아래 무심한 매미소리.
단 몇 장의 자료만으로 남겨진, 어느 목민관의 이야기가 어떤 거대한 파장이야 불러일으키겠는가.
그런 기대를 꿈꾸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는 금양정사에 넋을 담고 머무르면서
후손들에게 티끌만한 자부심정도만 심어줄 수 있다면 만족한다고 했다.
이 고을 사람들 가슴에 작은 긍지 여물게 심어주면 기쁘리라 했다.
그 말이 깊고도 무겁다 말한다면, 억측이라 할까?
오르는 길목에 고운 빛깔 나무계단 두르고,
한 칸씩 밝고 오를 때 마다 살아있는 웃음소리 울리고,
낮은 책상 줄 맞추어 아이들 학습장체험이라도 한다면
졸고 있던 댕기소년들 신바람이 날 텐데...
부산했던 한낮이 물러나면
고단한 밤이 되어 외롭지 않을 텐데...
그런 날이 오겠지.
밀실에 누워 꿈꾸는 그의 마음 곁에 내 마음 누이고 왔으니
좋은 날이 오겠지.
그리 생각하며 금양정사를 떠났다.
모퉁이만 돌면 금방 숲 속으로 사라질 마당 깊은 기와집.
내 고향 풍기의 큰 스승이자 어른의 영혼이 머무는 아름다운 집.
노년을 아름다운 정사에서 책과 함께 도를 강론하며
여생을 보내고자 기원했던 소박한 그의 꿈을 시로 표현했다지.
금양정사
휘어 꺾여 맑은 산골 물을 따르고
얽히고 돌아 끊어진 다리를 건너네.
언 구름이 돌구멍에서 피어나고
찬 눈이 소나무 끝에 쌓이네.
자리를 편 듯 바위가 예스럽고
병풍을 두른 듯 산이 높다네.
봄이면 한 초가집에 돌아가서
고기 잡고 나무하면서 늙으리
黃俊良(1517~1563년)
차가 덜컹거렸다.
행여 그가 빠져 나갈세라 가슴 안쪽 깊숙이 그를 밀어 놓고 고리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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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미나 ~~! ㅎㅎㅎ
아름다운 우리 고향 구석구석을, 때로는 서정적으로,때로는 담대함으로 우리네 가슴을 뛰게 만들었던 황진이! 이번에는 500년 묵은 역사속의 인물 황준량님을 대화로 이끌어내어,단번에 세상 밖으로 끌어낸 그 기지에 감탄하오. 발길 닿는 곳곳이 그녀에겐 시요,소설이니 선배로서 어떤 마음가짐을 갖고 풍기를 지키고 가꾸어야 할 지 생각합니다. 풍기아리랑을 쓰기 위해 방문한다면 언제라도 뛰어나가 안내자 역활을 할 것이오.너무나 기쁜마음으로..
댓글과 답글이 페이지를 넘겨버렸습니다. 영광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쓰는 풍기 아리랑이 다음편엔 무엇이 나올지 지금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많은 선후배님들께 물어보고, 가 보고, 느껴야 되겠지요. 매 번 귀찮다 안하시고,선뜻 도와주셔서 얼마나 고마운지요..풍기 발전 협의회장이라는 직함에 걸맞게, 크고, 넓고, 너그러우며, 화합을 이끌어내시는 분으로 자리매김하시길 바랍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여전히 그 통화음이시겠지요?ㅎㅎ
이런생각을 해봤습니다 황진이님 글은 이제 아마추어 수준은벗어나고있다라고, "점점 스케일이 커져서 아마 우리풍기를 전국에 알리는 큰 작가가될거다,,감탄하지만 지금은 풍기사람들만 댓글을보니... 소설을쓸것같은데 어서 박경리같은 유명작가가되어 지도를들고 온 나라사람들이 금양정사를 찿아왔음좋겠다는 생각을합니다 꼭 그런날이올거라 확신하고 우린 그날을 기다리겠습니다 힘내십시요 황진이....!!!
아직은 아마츄어 수준입니다. 제가 작가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면, 이렇게 겁없이 풍기아리랑을 연작으로 올릴수 있겠느냐는 생각을 합니다. 암것도 모르니 무식한거지요^^ 소설을 쓰고 싶다는 것은 오래전 염원이지만, 박경리님 같은 대작가가 되라니요. 어불성설입니다. 하루종일 생각에 싸여, 이곳에 올린 제 글을 모두 읽어보니...그저, 고향이야기를 썼기에, 고향 분들의 호응을 얻은 것이다.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물안에서 폴짝폴짝 좋다고 제자리뛰기를 하고 있더군요..일요일입니다. 편안한 휴식이 되세요..
2009년 1월 12일 풍우회 우정이야기에 정연화님께서 올려주셨던 思- "退溪草屋喜黃錦溪來訪" 을 읽은 이래로 금계 황준량 석학님에 관한 관심은 나를 꾸준히 매료시키는 것 중에 하나였었죠. 아직까지도 정연화님이 쓰신 글이 소설인지 아니면 어느 객관적 자료를 해석한 것인지 통 모르겠지만 금계 어르신의 퇴계에 대한 그리움과 학문으로 맺어진 찬란한 인연이 참 부럽고 자랑스럽기만 했는데 이렇게 황진이님이 또 한번 나의 호기심을 충족해 주는 글을 써 주심에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한답니다. 소설 형식으로 이루어진 것이기에 너무 픽션의 냄새가 많이 나는 것이 내가 보기에는 좀 아쉽다고나 할까요.... 조금더 논픽션의 형식이 되었으면
더 좋았겠다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그리고 기왕 말나온김에 한마디 더... 설정이 너무 전설의 고향 같아서 약간 어색함이...... ^+^ --- 황진아 이건 친구라서 부담없이 하는 얘기니깐 혹시 삐지거나 기분 나빠하지 말거래이..... 니글 읽느라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한 대 여섯 번은 읽었는 거 같다..... 참 잘 썼다. 금계 선생님을 자세히 묘사해 주어 그분에 대한 많은 궁금증이 해소되고 자랑스런 내고향 어른이시란 걸 알게해줘서 고맙다. 특히 니가 쓴 시조(맞나?)는 정말 멋지다. 한필에 휘갈겨 쓴것같이 막힘이 없구나. 천박한 내 재주로 이렇게 댓글 달수 있다는 것도 니가 내친구이기 때문이니 참 자랑스럽다. 건강해~~~
친구야, 니는 내가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고생해서 쓴 글을 어예 전설의 고향에 비교할 수가 있노? 이 야속한 사람아!....이럴줄 알았지?*^^* 아니다, 친구야.나도, 고민하고,염려했던 부분이란다.에세이는 논픽션이라는 명제를 잊기야했겠니..그냥, 단순한 생각으로 전개를 하자 맘먹었던 배경엔 금양정사의 역사적 사실과 금계선생의 짧은 업적을, 어떻게하면 읽는이들이 쉽게 받아들일까. 그걸 바탕에 두었단다. 물론 수려한 글솜씨가 안되니 지나치게 글이 길고 안써도 될 부분이 이제야 눈에 띄이지만,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이면에 나와같은 생각들 다 하시겠지..
다만, 그런 지적을 하고, 살가운 네성격에 내 마음 살피느라 신경쓰이지?^^ 어찌 비판없이 발전이 있겠니.. 댓글을 다신 분들중에는 따로 전화해서 이런저런 결점을 이야기해주셨단다. 그리고, 시조는 100% 내 솜씨가 맞기는 하다만, 그 것은 초보 수준이라는게 여지없이 드러나지만, 고칠 생각을 하지 않았어. 나는 시조시인이 아니니까, 조금 못해도 이해하리라 생각했거든. 그러고 보니 울친구도 어색한 인공감미료가 첨가된 글보다는 천연 조미료같은 뒷창락 개울가 소녀를 더 인정하는가보다^^ 나역시 동감이지만, 실수와 잘못을 되풀이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글쓰기라 생각해..고마워 내친구. 진정으로!
'금양정사'언젠가 나도 한 번 지나치다가 들러서 문화재 관리가 너무 안되고 있어서 안타깝다 하고 별 생각없이 씁쓸한 마음으로 돌아서 나온적이 있는 것 같은데 여기서 너의 깊은 통찰력과 해박한 역사적 지식이 담겨있는 글을 보고 놀라움과 부끄러움과 자랑스러움이 밀려오는구나. 암튼 언제 역사공부를 이렇게 해 뒀는지 감탄! 감탄! 황진이 진짜루 대단타. 이제 풍기에 관해서 궁금한 것이 있으면 너에게로 달려가면 곧 바로 해결이 될것 같구나ㅋ대단타. 열심히 노력해라. 두드리면 머지 않아 모든것이 이루어 질 것이로다.
저는, 단단한 껍질로 에워싸인 갑각류처럼 내 몸을 이루고 있는 연한 살점과 관절을 그 껍질속에 밀어놓은채, 오랜 시간을 웅크리고 앉아 있엇습니다. 갑자기 알수없는 두려움이 어둡고 끈적한 검은물처럼 바닥을 적시고, 벽을 타고 올라와 내온몸을 그대로 흡수해 버릴 것 같이 맹렬하게 공격을 했기 때문입니다..너무나, 겁이나고 두렵고,화가 나서..답글을 미루었는데..아직도 두통처럼 머리를 두들겨대는 어떤 메시지가 강력한 방망이를 휘두르며 저를 몰아부칩니다....선생님..저를 이해해주세요...머리가, 머리가 너무 아프네요.
조용한 시간에 읽어볼려고 벼르고 있었는듸..공자책을 쓰시던 어느작가분 말씀에, 새벽녁 글쓰고 있으면 공자께서 오셔서 귓가에 대고 이런저런 비밀스런 얘기를 들려 주신다고, 사도세자책을 쓰시던 어느작가분도 꿈에 사도세자가 나타나서 자신의 억울함을 하소연 하신다고 하드만 우리님도 그런 경지에 오르셨네요.음~감동입니다...그리 깊은 스승님이 계심을 다만 옛어른 이라고만 치부해버린..한없이 부끄럽게 한심함을 느께게 해주네요.금양정사!..정적이 서려있는, 정숙함이 자리잡고 있는 그곳을 한번 방문해야겠습니다. 화이팅!,,우리 아지매, 귀여운 어여쁜 동생, 후배님, 건투를 빕니다..
사람을 처음 만났을때, 우리는 어쩔 수 없는 가벼운 존재의 인간이기에,불과 3초안에 그 사람의 인상을 결정해버립니다.끌림과 거부감을 단정짓는거지요.금양정사를 맨처음 보았을때,저는 한없이 제심장을 떨게하는 어떤 울림을 느꼈습니다.그것은 가여움보다는 이끌림이였답니다. 좁은 버스 통로안에서,선배님을 처음 보았을 때,몇마디 목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불과 몇 초만에 깊은 호수를 품고있는 여인이라고 느낀것과 다르지 않다 생각합니다. 아마, 제가 갖고있지 않은 것들이 그 호수안에 일렁이고 있겠지요. 언니! 하루끼소설 스푸트니크의 연인에 나오는 '뮤'를 볼 때마다,언니를 떠올립니다. 물론 저는 철없는 '스미레'와 닮았지요^^
제 허락도 없이 언제 저의 선조이신 진성이공 퇴계할배와 제자이신 황준량 선생을 만나고 오셨나요,,,황진이님??? 혹여나 우리 퇴계할배 마음아픈 말씀은 안 하시고 잘 노시다 온거 맞죠^^??? ㅎㅎㅎ,,,놀라운 글솜씨에 또 한번 감동하였고 하루 속히 등단하시어 박경리를 능가 하시는 우리 풍기의 빛나는 작가가 되어 주시길~~~
그랬나요,선배님! 퇴계할부지가,선배님의 푸르고 건강한 동맥안을 활보하고 있는 붉은 피를 물러주셨군요.아픈 소리를 하다니요,절 그토록 정답게 대해주신 그 분의 매력적인 모습에 그만 푹 빠지고 말았는데요^^ 어느 보슬비 내리는 날 청량산 아래 자락에 의젓이 누워있던 도산서원을 보러간 적이 있었답니다. 입구에 서 있던 그 거대한 두 그루의 나무 이름을 몰라 지나는 사람마다 묻고 다녔는데..아! 지금 갑자기 또 그이름이 생각나지가 않아요..그러니 또 가봐야 할 거 같은데..제가 작은 작가라도 된다면 퇴계할부지가 계신 곳을 써 보고 싶어요..울 금계선생을 사랑하셨던 작은 보답으로.그 때 후손으로서 짧은 댓글을 부탁드릴게요^^
저는 작가도 아니요 예술혼을 불사르는 예술가는 더욱 아닌 그저 평범한 풍기가 고향인 사람입니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금양정사의 풍경이 너무나 고향에 대한 애절함으로 뭍어 나 있군요. 몇날 며칠을, 아니 그보다 더 많은 날을 마음속에서 같이 동거동락한 금양정사 정말 멋지십니다.. 수고 마니 아주 마니 하셨고, 풍기인의 자긍심을 높이셨어요...화이팅. 황진이...마음이 서럽씁니까? 아니 마음이 편안하신가요? 아니면 못내 아쉬움이란게 생겼나요? 허전함이 더 커져 마음에 자리잡고 같이 살자 하지 않더이까? 황진이.. 찾아갔던 금양정사,,,옛 선조님들... 지금도 그대로 있더이다... 그런데 왜 나의 마음이 아플까요?
마음속 한구석 자리한 그무언가가 자꾸 생각을 일으키면서 자꾸만 나를 버리려 할때.. 황진이 이제 돌아와 마음의 평화를 찾아봐요.. 아마 그러면 더 크고 찬란한 소백산을 가슴에 안고 살아갈 수 있을것 같네요...칭찬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눈부친 금양정사입니다...금양정사에 대한 저의 고백은 며칠 후 도착할 책 한권으로 대신합니다.
그저께, 일요일이였지.발신자표시없는 익명의 메시지를 받고, 갑각류 곤충처럼 몸을 웅크리고 앉아 터질듯한 두려움에 떨고있을때, 네 댓글을 읽고 얼마나 놀랐는지..30년 세월동안 아직도 얼굴 한 번 대하지 못한 꼬맹이적 친구가, 어떻게! 그토록 절묘하게, 기가 막힐 정도의 타이밍으로 그때의 내 심정을 읽을 수가 있었을까!!!세상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적이 있다던가..그저,단순한 우연일까..현실과 비현실의 접점에서 소용돌이 치는 혼란스러움.. 하지만,이제는 아무렇지도 않다. 친구야. 네 말대로 세상을 비추는 아침을 향해 소리없는 아우성을 한바탕 내지르고, 참으로 보잘 것 없는 여자에게 따뜻한 응원을 보내주시는
수많은 선후배님들의 댓글을 보고 또 보면서, 으싸! 오늘 아침 굳은 등허리를 쭈욱 편다. 나는, 척박하고 황폐한 땅을 맨 손으로 일구어 집안을 만든, 울 아비와 어미의 딸이다. 얼마전에 맹세한 두 분의 무덤 앞 꽃줄기에 먼지도 앉기 전에, 바보같은 절망감에 떨면 안된다...그렇게 외쳤다. 어떻게 변했는지, 어떤 모습으로 나이 들었는지, 궁금한 게 하나도 없다..너의 우정을 통째로 느끼기에...고맙다, 친구!
허무하여라 그져 이렇게 존재한다는 사실자체가 감사이어라 네가 나에게 내가 너에게 무슨평을 한들 그뭇은 의미가 있겠는가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그대로 보고 느기고 인정하고 이해함이 다함이 아닐런지 너가 아름답고 내가아름답고 모두가 아름다운 세상 내가 꿈꾸는 이상향일까 ? 한없이 사랑이 그리울때 사랑하고 말없이 멀어지고 싶을 때 멀어져가는 아무런 이유없는 우리의삶이 언제인가 이해하고 서로 교통하고 삶의 의미를 께닭을 날이 오겠지 물론 답은 아닐지라도 우리의 인생에 교요함이 찿아오면 그곳이 우리의 귀착지라는 것을 감히 힌트하고 싶구먼 ~~~~~~~~아야아야 그져가련다 그져가련다 내갈길모르지만 그져가련다...
아이고, 참으로 난해한 댓글입니다.그래서 답글 쓰기가 난처합니다.*^^*우리는 한번 씩 살아가는 도중에, 길을 걷거나, 차에 실려 어디론가 몸을 흔들리며 가고 있을 때, 문득 작은 혼란에 휩싸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그 지극한 고전적인 명제에 발목이 잡혀버리면 혼돈이 시작됩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명확한 답을 주지 못한다 생각합니다. 세상에, 자기 자신을 자기만큼 잘 알고 있는 이가 어디에 있겠는지요. 그리고,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입니다 라고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것이 또 자신의 실체가 아닐지..답이 나와있네요^^ 아아아 나는 가련다,그저 가련다.내 갈길 모르지만 그저가련다~~
햐~~~ 감춰져있으대 너무나위대한 정신이 살아 숨쉬던곳 그곳이 정녕 소백산자락 고이 감춰진 금양정사였단 말인가요? 풍기인들 대부분이 모르고, 잊고지낸 금양정사..... 선인이시여 긴잠에서 깨어나소서 정신적 지주하나없는 이세상 커다란 기둥되어주소서..풍기인들이여 영원하소서..양파껍질 한겹한겹 벗겨내듯 풍기를 한겹한겹 벗겨내는 황진이... 다음엔 무엇을 잉태하여 긴 산고끝에 무었을 생산해낼지 두고볼터이다
어젯밤,존경하는 어떤 선배님께서 한잔 걸치신김에 용기를 내셨는지 전화를 했더이다. 꼬박꼬박 후배님,후배님 하시면서 댓글을 대신해 칭찬을 하시는지,푸념을 하시는지*^^* 그 와중에 하시는 말씀이. 그런데, 답글 달기가 글쓰기보다 어렵지 않느냐고, 그 많은 댓글에 어찌 그리 답글을 다 달아주냐고..솔직히, 글쓰기보다 세배는 힘들고,네배는 신중하고,다섯배는 더 시간이 걸립니다^^ 하늘타리님처럼 점점 더 마음을 다 해 쓰시는 댓글들이 예사롭지 않으니 흔들어 행구듯 쓸 수가 없거든요*^^*하지만, 독심술을 익히는 여자처럼 그 분들을 알고픈 욕심이 더해지고,감사하는 마음에 행복해지니,저는 이 시간이 진정 소중하답니다.감사합니다
풍기로 시집 온 지 26년이 훌쩍 지난 지천명의 아낙인데도 아직도 시댁에선 새댁이라 부르는 아지매입니다. 여기저기 마실을 돌다가 우연히 알게된 풍우회를 즐겨찾는 이유는 "황진이"님의 글을 대하고 부터입니다. 참 좋은글에 고운 단어를 대할때면 지난여름 소백산 등정하면서 좀처럼 속살을 드러내지 않으려던 신령같은 소백산에 선녀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감히 평을 할 수야 없겠지만... 나날로 발전하는 글솜씨가 예사롭지가 않네요. 좋은글 몇번씩이나 읽고 그냥 갈려니 체면이 말이 아니라 이렇게 한글 남김니다. 오백년을 넘나드는 황진이님의 깊은 사고가 부럽고 그렇게 대쪽같은 선비님들과 독대가 가능하다니...
닉네임과 꼭 닮은 황진이님이라 가능하겠죠. 한편의 동화같다는 생각도 들어 조금 무거운 글이 였으면 더 발하지 않겠나 하는 이 아지매의 소감입니다. 부디 좋은글로 제 2의 박경리 선생님같은 풍기의 소설가로 거듭태어나시길 바라며 추석명절 잘보내세요. 이번 추석에 풍기 시댁에 가면 꼭 금양정사에 들러 보겠습니다.
새댁님의 댓글이 짙은 밤하늘에 홀로 반짝이는 별님 같아서,두번,세번,네번을 읽었습니다. 아이고,이러다가 황진이를 진짜 선녀로 알면 안되는데^^ 아름다운 고향의 향수를 걸러내어 글로 표현해야하니까 제 마음속에 콜콜 잠들어 있는 소녀를 깨워서 쓰니 그리 느끼는거지요. 습작한 소설이나 독백같은 일기장을 보면, 섬뜻할 만큼 도발적이고,복잡하고,기괴한 제가 그 곳에 있답니다. 어여쁜 새댁이 그런 제글을 읽고 실망하실까 은근히 걱정이 되네요*^^* 그렇기나 말기나 지금은 너무 반갑고 좋아서 입이 귀에 걸려있답니다. 황진이가 보기보다 단순하고,철딱서니가 없거든요.
지천명의 나이임에도 왜 새댁이라 부르는지를 아시나요? 그것은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고, 영원히 갓시집 올 때 그 모습 그대로 어여쁜 존재로 담고 싶어하는 어른들의 바램이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자신을 그렇게 불러 줄 때마다 꼭 가슴에 간직하세요. 그리 부르시는 분들의 따뜻한 사랑을...저에게 별빛같은 희망을 선물해주셔서..정말 고맙습니다. 미몽꾸세요 새댁*^^*
우리고향의 선비 목민관 황준량선생께서 노년에 금계(錦溪)에 금양정사(錦陽精舍)를 짓고 도를 강론하고자 하는 뜻을 후손들이 이루었습니다.. 황진이님의 "꿈꾸는 금양정사" 이 글은 고향 풍기의 금양정사와 황준량 선생님의 휼륭하신 인품과 학식을 알리고 우리가 잘모르던 부분을 감동으로 받아 드릴수 있도록 잘 표현 하였다고 봅니다.. 글이 게시된지 많은 날이 지났지만 금계 황준량 선생님과 관련 되시는 분들이 글에 대한 보충설명이나 의견이 없어 무척 아쉽게 느껴집니다 우리고향의 소중한 문화 유산이고 긍지와 자부심을 가질수 있는 금계 황준량 선생님과 금양정사 ....중지를 모아 고향의 자랑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태어난 곳이고 어린 시절을 보낸 곳 / 늘 그 자리에 있는 것이 당연하고 / 오래 찾지 않다가 들려도 포근한 / 어머니 품처럼 안온하고 커다란 곳 / 그런 느낌이 주를 이루지만 / 한 편으론 / 선조가 외지에서 펼치던 도학연구와 인재교육 / 그 사업 고향에서 펼치고자 마련한 곳 / 그 뜻을 이루지 못하심에 아쉬움이 베인 곳 / 그 곳에 들린 황진이의 시계는 / 시간을 뛰어넘어 공간을 같이 하여 / 선인의 느낌이 눈으로 보이고 귀로 들리는 듯... / 추석 때 들린 금양정사의 느낌은 또 다른 느낌이었습니다.(황재천)
두 번째 금양정사를 보고나서 선배님을 만나뵜지요. 장소와, 시간과, 대화했던 곳마저..엉크러진 분위기였지만, 짧은 만남보다 긴 여운이 남겨졌다고 생각했지요.글을 쓰는내내 선배님을 의식하지 않았다면 거짓일겁니다. 금계선생님의 후손이라는 의식이 아니라, 진정 그 분을 향한 존경심과, 안타까움과, 사랑을 품고 계심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어쩌면,가장 기다렸던 선배님의 글. 부족함에도 따뜻하게 받아들여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제, 선배님을 이곳에서 다시 뵈었으니 아쉬움과,초조함을 내려놓겠습니다.밤만되면 내얼굴을 내려다보던 금양정사.선배님께 돌려드리고 저 이제 오래도록 쉬고 싶습니다....
황진이님 글 보고 뭐라고 써야할지... 써 놓고 보믄 성에 안 차고... 차일피일 썼다 지웠다 하다가 기양 맘 가는대로 댓글 달았었제요. 금계선생의 후인으로 지대로 할 일도 모하니 그 부끄러움이 많디더. 이렇게 시보네선배님 황진이 후배님 그리고 많은 분들이 금양정사를 아껴주시니 기쁨과 부끄럼이 같이 함을 느끼니더. 요새 얼굴이 더 두꺼워졌는지 기쁨이 더 크이더.
금계할배요! 명절 때마다 종가 뒷 마당 금계 할배 사당에 절을 하면서도, 잊혀져가는 이 땅의 이름 없는 선비려니라고만 생각하였지 그 분의 꿈에 생각이 미치지 못하였습니다. 어려서부터 골백번도 더 들은 금계 할배가 어리석은 후학을 질타하는 데만 능하신 줄 알고 저는 괜히 그분 앞에서 주눅만 들었나 봅니다. 황진이님! 그분을 가까이 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황변호사 잘 올라 갔제? 요새는 전부 다 시간에 쫒기니라 사당 차례 지내고 야기도 잘 모해서 섭섭터라.
이제,금양정사의 댓글은 다 끝났으리라 생각했는데, 못보던 이름이고, 황씨라..준량선생님의 후손인가 짐작했네요^^ 제대로 질타받고 제대로 주눅들어 공부하셨나봅니다. 그 어려운 고시를 통과하셨으니 금계할부지가 좋아하셨겠어요. 재천선배님이하 많은 후손들께서 더더욱 애정을 가지시고 금양정사를 살펴주시길 바랍니다. 제가 문여님께 물었지요'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으세요?' 그 후덕한 인상에 미소지으며 이리 대답하셨습니다.'금양정사 곁에 내려가 살아야지요' 라고. 얼마나 제 가슴이 뭉쿨했는지 귀뜸해드립니다. 재선씨, 훌륭한 변호사님이 되어주시길 바랍니다.금계할배의 인품과 사랑이 님의 혈관에 흐르고 있음을 잊지마세요.
형님도 잘 올라 가셨는지요? 집사람이 그날 집 제사 때문에 금선정을 못 봤다고 해서, 저녁에 다시 금선정엘 다녀 갔습니다. 아지매도 길가에서 잠깐 뵈었는데, 점심때보다는 좀 나아 보이시기는 했어도 여전히 많이 편찮으신거 같아 보여서 걱정입니다. 건강하셔야 될 터인데요... 성천암아 앉아 한가롭게 새소리 들으며 구름 흘러 가는 하늘을 함께 볼 여유라도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두 분의 정겨운 대화에 아마도 속깊으신 우리 고향분들 모두 미소를 머금으실듯 합니다. 두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난 재요이 때문에 일찍 올라왔제. 어머이는 괜찮아졌다고 하시는데 울 어무이아부지 세대가 당신들이 괜찮다고 하는 말이 영 미덥지가 않아서 걱정이구만. 글고... 황진이님요. 그 말씀 들으이 기분이 와 이리 좋은지 몰겠니더.
일일이 댓글 달아 주시는 황진이 님의 정성에 감사드립니다... '꿈꾸는 금양정사' 읽고 또 읽어도 정감이 새롭습니다...
오늘, 가을이 물들기 시작하는 아름다운 산천과, 아름다운 노을과, 제 주변에서 함께 숨쉬며 열심히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하고 돌아왔습니다.컴을 켜니,왕팬이라는 멋진 후배님의 쪽지와 금양정사를 바라보면서, 다시 한번 저를 응원해주시는 많은 이들의 댓글을 가슴깊이 새겨봅니다. 비록, 내삶이 척박하고,힘들게 몰아부쳐도, 그 분들의 마음을 가벼이 여기지 않겠노라고,스스로 다짐한 약속을 절대 저버릴 수 없다는 각오를 한 번 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제고향과, 절 사랑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부끄럽지 않은 풍기인으로 최선을 다해볼게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너무나 깊이 사랑합니다*^^*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주위 사람들을 위할 수 있다고 했지요. 황진이님은 글 속에서나 글 밖에서도 타는 정열과 함께 깊은 애정을 소유함을 봅니다. 스스로를 아끼고 이웃을 위하며 고향을 사랑하는 문인으로서의 충분한 자격을 갖춘 맹렬 여성입니다. 세 편의 아리랑을 읽고 감동하신 독자들은 황진이님의 보다 크고 넓으며 심오한 글 속에서 풍기의 자존심을 가 일층 북돋우고 고향 사랑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입니다. 부디 건강에 특별 유념하시고 하시는 일마다 평안이 깃들기를 빕니다.
난 오늘도 이 글을 보며 가슴 뭉클 해집니다. 준량선생님 당신을 기리기리 섬기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