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순간이 내게 주어진 마지막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오늘 할 일이나 경험할 수 있는 것
기쁨, 직업적 의무, 내가 상처입힌 누군가에게
사과하는 것 등을 내일로 미루지 않는다.
우리는 언제가 될지 모르는 죽음의 순간에 조금씩 다가서고 있다.
그러니, 항상 그것을 의식하고 일 분 일 분에 감사해야 한다.
그뿐 아니라 죽음에게도 감사해야 한다.
죽음이 있기에 우리는 결단의 중요성을 되새길 수 있으니까.
할 것이냐 말 것이냐. 죽음은 우리로 하여금 '산 송장'으로
머물러 있지 않도록 북돋우고, 우리가 늘 꿈꿔왔던 일들을 감행케 한다.
우리가 원하든 말든, 죽음의 사자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파울로 코엘료 / '흐르는 강물처럼..'
아침 7시 10분..
여늬때와 다름없이 머리맡의 탁상시계에서 울리는 자명종 소리에 눈을 떴다.
얼른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만약 앞으로 10분만 더 뭉기적거린다면..
어김없이 이번에는 휴대폰에 맞춰놓은 시간에 따라 알람에서 '꼬끼오~'하고는
도심 한복판에서 난데없이 닭 우는 소리가 들릴 것이었다.
미처 잠이 덜 깬 눈을 비비적거리며 세면실로 들어가 양치질을 하고,
수염을 말끔히 면도질하고 머리도 감고 세수를 마친 뒤
이젠 몇가닥 남지도 않은 머리털의 물기를 닦으면서 안방으로 돌아오는 순간
갑자기 현깃증이 느껴진다.
'왜.. 이러지?'
하지만 계속되는 현상은 아닌 것 같아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출근 준비를 마쳤고
4층 옥탑방에서 계단을 내려오는데 또 다시 어지럽다는 생각이 들더니
급기야는 속도 메슥거리기 시작했다.
'이상하다.. 무얼 잘못 먹었나?'
그러나 어제 저녁 식사 땐 별로 먹고 싶지도 않아서
그냥 남은 밥을 찬물에 말아 냉장고 속에 있던 밑반찬 두어가지랑 간단하게 떼웠을 뿐
특이하게 상해서 못 먹을 거나 체할 정도로 무거운 식사를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왜 이러지?'
느낌이 꼭 뭘 잘못 먹고 체한 것 같았다.
그래도 별로 큰 일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 부지런히 걸어 출근을 하고
매일 그렇듯 일상적인 작업에 들어가 5층 주차장 구석에 있던 청소 장비를 몰고
1층 매장으로 내려와 출입구부터 매장 안쪽으로 바닥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심 우려했던 것처럼 장비를 타고 운전을 하면서 매장 구석구석을 뱅글뱅글 돌았더니
마치 차(車)멀미가 더 심해지는 것처럼 어지럽고 속은 울렁거리고 이마부터 시작해
차츰 온 몸이 식은 땀으로 흠뻑 젖어 가고 있었다.
조금 힘에 부쳤지만 하던 일은 어떻게든 마저 끝을 내 볼 요량으로
(주간 반장이 쉬는 날이라 딱히 대신해서 그 일을 시킬만한 사람도 없었고)
꾹 참으면서 일을 계속하고 있는데 약간 친분이 두터운(?) 매장 여사원이 그런 나를 보고
"소장님! 얼굴색이 왜 그러세요?
너무 안좋으세요.. 좀 쉬시는 게 좋겠는데요.."
나는 짐짓 큰 일은 아니라는듯..
"응.. 좀 그렇지.. 하지만 괜찮아 하던 일은 마저 끝내야지 뭐...ㅎㅎ"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잠시 후 나는 약간 구석진 곳에 장비를 세워두고는
슬그머니 사무실로 돌아와 남사원 탈의실에 잠시라도 몸을 눕힐 수 밖에 없었다.
처음엔 그러다가 조금 안정이 되면 다시 매장으로 돌아가 오픈 준비를 끝 낼 작정을 하면서..
그런데 눈을 감고 누워있음에도 몸은 좀체 진정되지 않고 어지러움증이 심해지더니
급기야는 헛구역질이 날 정도로 속이 메스꺼워져서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
휴대폰으로 연락을 해서 우리 여사님들에게 내가 장비로 미처 다하지 못한 부분을
힘들겠지만 마포걸레를 사용해서 수(手)작업으로라도 마무리해주기를 당부하고는
기술팀장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의 상황을 간단히 설명하고
매장 귀퉁이에 서있는 장비를 매우 미안하지만 우리 사무실 앞까지 좀 가져다 달라고 부탁을 한 뒤
다시 눈을 꼬옥 감고 속이 안정되기를 기다렸다.
약 10여 분 지났을까..??
총무가 헐레벌떡 내려와 우리 사무실로 들어와서는 그런 나를 보고
지원팀장이 얼른 병원으로 모시고 가라고 하더란다.
"무슨 병원은 번거롭게..
조금 있다가 약간 가라앉으면 가까운 동네 의원에 가볼께.. 걱정말고 가 있어!"
"안됩니다.. 소장님! 우리 팀장님 성격 모르세요.
그러면 제가 혼납니다.
지금 사무실 앞에 차 세워뒀으니 얼른 타고 병원에 가시자구요."
바로 큰 길 하나 건너 조금 더 내려가서 동네 의원치고는 제법 규모 있어 보이는 곳으로 들어가
내과에 접수를 하고 잠깐 기다리니 이내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 의사 앞에 앉아서
지금 내 몸의 증상을 자세히 설명하며 몸 속에 지니고 있는 '인공심장박동기'에 관해서
진료에 참조가 되도록 얘기를 해 주었다.
나는 어떤 경우 어느 병원엘 가도 항상 치료를 받기 전 먼저 내 몸의 상태에 대해
특히 간(肝)이나 '인공심장박동기'에 대해 밝혀줘야만 의사가 정확한 진찰과 처치를 할 수가 있다.
내 설명을 듣고 머리를 끄덕이며 차트를 작성하던 친절하고 사람 좋아보이는 중년의 의사가
우선 맥박을 체크하고, 체온을 재고, 오른쪽 손목을 가볍게 잡고 맥박을 재다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청진기로 가슴 부위를 몇 번 살펴보더니..
"지금 제 판단으로는 몸 속에 지니고 계시다는 페스메이커(인공심장박동기)가
전혀 작동을 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여기서는 더 이상 자세한 검사를 할 수 없을 것 같으니 제가 드리는 진료의뢰서를 가지고
종합병원으로 속히 가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진료비를 내실 필요 없으니 그냥 가셔도 됩니다."
의사의 그 말에 나보다도 더 놀란 건 옆에 있던 총무였다.
번개같이 차를 몰고 가까운(마트에서도 아주 가깝다) 을지대학병원으로 내달려 가서는 접수를 마치고
오전 진료 받을 사람이 너무 밀려서 오후 2시 넘어서야(이미 그 때 시계가 오전 11시를 훌쩍 넘기고 있어다)
내 차례가 돌아올 것이라고 하길래 일단 '심전도검사'라도 예약을 해두고 갈 심산으로
2층 순환기(심장)내과 접수대로 올라가서 현재 내가 느끼는 증세와 함께 사정을 이야기 했더니
먼저 심전도 측정을 하고 와서 이내 담당의사를 만나게 해주었고..
젊은 전문의 역시 '심장박동기'가 전혀 내 심장에 도움을 못주고 있으며 현재 내 상태가 아주 좋지 못하다면서
곧바로 중환자실로 옮기고 그 분야(심작박동기)에 좀더 많은 경험과 경력이 있는 교수앞으로
내 차트를 보내도록 간호사에게 지시를 했다.
그랬다.
벌써 5년이 넘도록 나는 단, 한 번도 내 몸 상태를 체크하기 위해(특히 심장박동기) 병원을 찾은 적이 없었고
그나마 내 몸 속에 두번 째로 '심장박동기'를 이식한 것이 벌써 9년 가까이나 지났다는 것을
까맣게.. 정말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다가 조금 전 의사의 말을 듣고 손에 들고 있던 지갑 속에서 꺼낸
'인공심장박동기' 이식정보에 관한 카드를 보고서야 비로소 적잖은 세월이 지났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젠장~ 어쩌다가 벌써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버렸지... 쩝!'
갑자기 생각이 많아지더니 머릿 속에 실타래가 엉키듯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치료에 걸리는 시간.. 그동안의 직장일.. 그리고 수술과 입원을 포함한 병원비 등등...
그렇다고 해서 달리 선택의 여지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차피 발 등에 떨어진 불(?)이라면..
속전속결로 헤쳐나가는 수 밖에 없을 것이었다.
먼저 중환자실 담당 의사를 설득하고 그를 통해 전문의에게 내 입장을 전달 한 뒤
다음날 일찍 중환자실을 찾은 담당교수에게 직설적으로 부탁을 해서..
예정에 전혀 없던 수술 일정을 잡고 초고속으로 기계(인공심장박동기)를 공수받아
그날 오후 2시에 먼저 예약된 다른 환자(비교적 가벼운 혈관수술)와 함께 수술실로 들어 갔었다.
심장에 문제가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기계(인공심장박동기)를 교체하는 건 벌써 세번 째인 나에겐 아무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오히려 지나치게 걱정을 하는 의사들을 몰아붙이다시피 하면서 일정을 앞당겨
수술 후 다시 올라 간 중환자실에서 그날 저녁 일반 병실로 침대를 옮긴 덕분에
내 머리맡에는 '절대안정'이라는 팻말이 걸리고 말았다.
어떻게 하든 간에 근본적으로 내 심장을 치료하는 것은 아니었으니..
이제 기계(인공심장박동기)를 바꿔넣느라 찢은 왼쪽 어께의 살가죽만 아물면 될 일이었다.
그래서 더 이상 입원실에 머물지 않고 어제 오후 퇴원을 했다.
내가 워낙 자신만만해 하니까 처음엔 좀 우려를 하던 의사들도 나중에는 나를 믿고
내가 원하는대로 순순히 응해주는 눈치였다.
본디는 오늘 예정되어 있던 산행을 갈까 했지만..
들리는 소문에 여러사람이 대놓고 걱정(?)을 한다길래 그만두기로 했다.
그깟 자그마한 섬 한바퀴 도는 둘레길 트레킹(등산이라고는 할 수도 없는)쯤이야
나는 전혀 힘들다는 생각은 안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위 사람들 걱정끼쳐 가면서
내 고집만 내세울 필요까지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대신 내일을 휴무를 하루 앞당기고 출근을 하기로 했다.
벌써 나이 예순을 훌쩍 넘긴 주간 반장을 2주 내리 휴무없이 쉬지않고
무리하게 일을 시킬 수는 없어서였고 내 몸에 별다른 걱정이 되지를 않아서였다.
하여튼 그렇게 한바탕 소동(?)이 지나갔다.
더군다나 대구도 아니어서.. 더욱 더 외롭고, 쓸쓸한 투쟁(?) 같은 짧은 며칠이었지만
무사히 또 한고비를 넘기고 나니 기다렸다는듯이..
'신용보증기금'에서 제주본사까지 연락을 해서는 '월급압류'운 운 하더란다.
'망헐 넘의 자식들..' 그깟 미처 다 갚지 못한 경영자금 6천 만원 때문에..
(6억도 60억도 아니고 그래서 나는 더욱 더 자존심 상하게 만드는)
나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는 이젠 쓰러져서도 죽지 않을려고 허덕거리는 사람
목덜미를 짓밟겠다는 수작이 아닌가..??
그러니 내게는 까짓 육신의 고통 쯤 아파 할 시간도 없을 뿐더러
남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아무 것도 아닐 수 밖에...
정말 얼마나 남았을지도 모르는 내 남은 삶을..
하루라도 마음 편히 살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육신의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움쯤은 얼마든지 참고, 이겨나갈 수 있으니까...
첫댓글 기운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