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마태 13,47-53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47 “하늘 나라는 바다에 던져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과 같다. 48 그물이 가득 차자 사람들이 그것을 물가로 끌어 올려 놓고 앉아서,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 버렸다.
49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천사들이 나가 의인들 가운데에서 악한 자들을 가려내어, 50 불구덩이에 던져 버릴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51 너희는 이것들을 다 깨달았느냐?” 제자들이 “예!” 하고 대답하자, 5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러므로 하늘 나라의 제자가 된 모든 율법 학자는,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
53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들을 다 말씀하시고 나서 그곳을 떠나셨다.

먼저 오늘 새벽을 열며 묵상 글이 늦은 점 죄송합니다. 사실 어제 인천교구 신부님들의 모임이 있었는데, 며칠 뒤 공부하러 유럽으로 떠나실 신부님의 송별 자리였거든요. 따라서 늦은 밤까지 함께하다가, 깨어나 보니 이렇게 늦잠을 자고 말았습니다.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장담은 할 수 없지만, 이러한 일이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어제 모임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들었기에, 여러분과 함께 나눠보고자 합니다.
아담과 하와 이야기 아시죠? 그런데 하와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아십니까? 맞습니다. 여러분들도 잘 알다시피 아담의 갈비뼈로 만들어졌지요. 그런데 신학교 교수 신부님께서 그렇지 않다는 것이에요.
우선 하느님께서 아담의 갈비뼈 하나를 뽑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진흙으로 빚어 형태를 만들고 있는데, 글쎄 개 한 마리가 나타나서 그 갈비뼈를 물고서 도망을 갔다고 해요. 하느님께서는 열심히 개를 쫓아갔지요. 이 개는 하느님의 손아귀에서 잡힐 듯하자 근처의 개구멍으로 얼른 들어갔답니다. 하느님께서는 얼른 그 개구멍에 손을 넣어서 도망치는 개의 꼬리를 잡았지요. 이제 개와 하느님의 줄다리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개는 어떻게든 도망가려하고, 하느님은 어떻게든 잡으려 하고…….
바로 그 순간, 개 꼬리가 잘려서 하느님의 손에는 아담의 갈비뼈가 아닌 개 꼬리가 남게 되었다고 하네요. 하느님께서는 갈등이 생겼습니다. ‘시간도 없는데……. 어차피 똑같은 뼈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가지고 그냥 개 꼬리를 가지고 하와를 만들었답니다.
그래서 여자들은 남자들에게 꼬리를 친다고 하네요.
신학교의 교수 신부님께서 말씀하시기에 처음에 저는 새로운 학설이 나왔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하나의 우스갯소리이더군요.
문득 이러한 생각이 듭니다. 만약 이 이야기를 개그맨이 이야기했다 어떠했을까요? 당연히 우스갯소리로 처음부터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평소에 농담도 잘 하지 않는 신학교 교수 신부님께서 하신다면, 끝까지 우스갯소리가 아닌 변하지 않는 진리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개그맨은 우스갯소리를 하는 사람이고, 교수 신부님은 진리를 말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바로 누가 이야기 하느냐에 따라 이야기의 진실 여부가 결정될 수 있다는 이야기인데요, 그렇다면 주님의 이야기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었을까요? 진실인가요? 아님 농담인가요? 분명히 항상 진실만을 말씀하시는 분인데요, 우리들은 과연 그 진실된 말씀을 얼마나 실천하고 있을까요? 주님께서 농담하시는 것이라고 쉽게 그분의 말씀을 이 쪽 귀로 듣고 저 쪽 귀로 흘려버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예수님께서는 오늘 그물의 비유를 통해서 좋은 고기는 그릇에 남고 나쁜 고기는 밖으로 던져질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즉, 항상 진실된 주님의 말씀을 열심히 실천한 사람들은 세상 종말에 주님으로부터 선택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단 한 번도 헛소리를 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말씀을 지켜야 될까요? 무시해도 될까요? 바로 나의 이 선택이 세상 종말 때의 주님의 선택을 결정짓게 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따르도록 합시다.
다른 사람을 배려했을 때(‘행복한 동행’ 중에서)
벤자민 프랭클린은 미국 독립을 이끈 주역으로 헌법의 기초를 마련했다. 그는 뛰어난 문학 작품을 남긴 작가였고, 피뢰침과 가로등을 발명한 과학자였으며, 미국 최초의 외교관,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해 애쓴 사회운동가, 교육자, 언론인이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 플랭클린이 존경받는 이유는 그가 자기 이익보다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살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에게 마지막 날이 왔을 때 “부유하게 살다 갔다.”는 말보다 “남을 도우며 살았다.”는 말을 듣고 싶다고 했다.
그가 피뢰침을 개발할 때의 일이다. 벼락 때문에 큰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보고 그는 독학으로 전기를 공부하고 벼락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연구를 시작했다. 그러나 수없이 실험에 실패했고 심지어 감전되어 목숨을 잃을 뻔 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위험한 일을 하는 그를 조롱했지만 그는 고집스럽게 연구를 계속했다. 마침내 그가 피뢰침을 개발했을 때 사람들은 벼락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의 발명품 중에는 이중 초점 안경처럼 수백만 명의 삶을 편리하게 만든 것도 있다. 모두 타인을 향한 관심에서 탄생했기에 지금도 전 세계는 그의 발명품을 애용하고 있다. 그러면 프랭클린은 어떻게 타인을 돕게 된 것일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진리 하나를 터득했다. 나 자신만을 생각할 때는 나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나 혼자뿐이었다. 그러나 내가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기 시작한 뒤로는 다른 사람도 나를 위해 일해 주었다.”
첫댓글 저에게는 언제부턴가, 좋은것과 나쁜 것의 기준이 모호해지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모든 행위는 해석하기 나름이라는 사뭇 관용적인 태도가 찾아온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그때와 같이 무리한 관용의 태도는 아니지만. 여전히 좋은 것과 나쁜 것의 기준이 모호한 상태입니다. 지금까지 저의 가치관을 무기력한 상태로 방치해두기만 한 것이지요.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분하십니다. 저도 이제 다시 좋은 것과 나쁜 것의 기준을 세우는 노력이 필요한 순간인 것 같습니다. 신부님, 감사합니다^^★ 그런데, 하와는 왜 하필 아담의 갈비뼈로 만들어진 것일까요?
새벽에 일어나서 신부님 묵상글을 보려고 우체통을 열었는데, 없더라구요^^ ..아프신가 해서 걱정을 했습니다. 늦잠이라는 개구쟁이와 친구 하셨던 거네요..^^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 버렸다. 이 말씀을 아침 문자로 받고 생각된 것이 "자신에게 득이 되는 것은 수용하고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배척한다." 이렇게 해석을 했고,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라고 묵상을 했습니다. 하지만, 마태오 복음의 전문을 읽어보니 선과 악에 대한 기준과 같은 내용이네요. 그렇다면, "악"을 수용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걸까요.. 선과 악에 대한 판단은 사람의 기준이 아닌 하느님께서 판단하실 사항일텐데...
아침에 신부님의 묵상글을 읽을때 마음을 다잡고 살자하지만, 꼭 저녁만 되면 걱정스런 마음과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들이 복합되어 혼돈을 일으킵니다. 회사옆에서 자취를 하고 있지만, 곧 타지에 있는 사람과 결혼을 합니다. 주말부부를 생각하는대요..언제부터인지 이 사람을 평생 믿을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저를 힘들게합니다.........주님 말씀대로 기도하며 긍정적으로 살아야하거늘............좋은것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 버렸다. 아멘!! 마음에 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신부님!!!
"내가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기 시작한 뒤로는 다른 사람도 나를 위해 일해 주었다.” 명심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하느님은 옹기장이 처럼 흠집없는 그릇을 만들기위해 다시 만들기를 거듭하시고, 어부들처럼 좋은 고기만을 골라내는 수고를 아끼지 않으시는데, 저는 좋은것을 위해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것 같아요. 대충대충..그냥저냥..그런 습관들로 귀한 시간을 보내버리고 있어요. 하느님께서 들려주시는 진리의 말씀을 마음안에 간직하고 되새기고 또 되새기면서 온전히 내것으로 받아들인다면, 천진스런 아이들이 부모의 말을 신뢰하고 따르듯이, 한귀로 듣고 또 한귀로 빠져나가기 전에 의식적으로 그것을 내면화시킨다면... 저도 작은 옹기장이처럼, 어부처럼 그렇게 정성과 최선을 다한다면...주님의 말씀은 참으로 진리임을! 신부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며느리 라는 존재감에 불편한 하루가 시작 되었는 데 위안을 받습니다. 가족을 위해 희생을 감수 하는 삶...... 신부님 건강하세요.
좋은말씀 가슴에 담고 갑니다 감사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