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를 풀다/최연수

[최장순]

이유를 풀다

                              최연수

몸은,

수많은 기록이 내장된 블랙박스다

유난히 얼룩진 곳을 따라가면

한 가지 냄새를 흘리고

신발의 뒤축처럼 경사진 습관들이 있다

다알리아 반쪽을 비운 건 기울어진 바람, 사건과 정답은

기울어진 그곳에 있다

창밖의 나무들은 낡은 계절을 벗어놓는데

두 발에 걸음이 단단히 묶인 잠을 푸는 예민한 손끝

메스에 닿는 공기의 빛깔이 검붉다

한쪽으로 튄 비명과

스키드마크 또렷한 밤의 방향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사인

미처 내뱉지 못한 혀 밑의 까끌까끌한 말과

움켜쥔 왼손의 분노와

부릅뜬 시선이 사건을 재구성한다

뒤늦게 수거된 파편, 혹은 숨겨둔 열쇠 같은

뜻밖의 지병은 구겨지지 않게 잘 펼쳐놓는다

그날을 모두 꺼내놓은 싸늘한 잠은 다시,

조용히 봉해질 것이다

* 2015 시와표현 12월호. 문장록, '2016 올해의 시' 70선 수록

[최장순]

몸은 수많은 기록이 내장된 블랙박스... 돋보이는 발상!

[김경애]

돋보이는 발상이 한 줄만 있어도 되는데, 그 게 참 힘이 드네요.
(이 글을 어디서 퍼 오셨는지 난 알지요.~^^)

[김형구]

우린 신발의 뒤축처럼 경사진 습관에 숨은 비밀을 모른채 삽니다~ㅎ
멋진 시는 사유의 낯설음으로 짠 그물에 달린 싱싱한 물고기처럼 아름답네요

[김대원]

되뇌어 암송해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