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11월 8일 그 날, 안면도에서는 1만 5천여 명의 주민들이 모여 경찰과 대치하고 있었다. 5일 전인 11월 3일에 과학기술처가 발표한 '안면도 핵폐기장 건설계획'에 반대하는 집회였다. 이들은 서산경찰서 안면지서와 서장 승용차에 불을 지르고 경찰차를 뒤엎었으며, 경찰관을 연금하는 등의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안면도 내 이장단들은 일제히 사퇴를 하였으며, 중고등학생들은 등교를 거부하고 자체 집회를 여는 등 반핵 운동에 가담했다. 이 시위로 주민 7명이 구속되었다.
결국 정부는 주민들의 조직적인 반대에 굴복하여 1993년에 핵폐기장 건설 계획을 백지화한 뒤 핵폐기장 후보지 선정을 지역 주민과의 협의 하에 민주적이고 공개적으로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런 핵폐기장 반대 투쟁은 안면도 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체르노빌화'를 막아낸 반핵 환경운동의 첫 모범 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이와 같은 투쟁은 1991년 전국 6개 지역 핵폐기장 선정 저지, 1995년 인천 굴업도 핵폐기장 유치 저지, 2005년 부안 방폐장 유치 저지로 이어졌다. 그러나 최근 경주 핵폐기장 유치 논쟁에서 보듯, 우리나라 에너지 사정상 핵발전소 및 핵폐기장 건설은 불가피하다는 정부의 입장과 핵 중심의 에너지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방향 전환을 요구하는 환경단체의 대립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첫댓글 총무님 작품 영상 잘봤읍니다
감사합니다
부산 알피니스트 산악회
http://cafe.daum.net/pa3043
총무 박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