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마태오 18,1-5.10.12-14
1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 하고 물었다. 2 그러자 예수님께서 어린이 하나를 불러 그들 가운데에 세우시고 3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5 또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10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12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남겨 둔 채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느냐?
13 그가 양을 찾게 되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보다 그 한 마리를 두고 더 기뻐한다.
14 이와 같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두 명의 정신병자가 병원에서의 탈주를 시도했습니다. 우선 시트를 찢어서 길게 묶어 창밖으로 늘어뜨렸지요. 그리고 한 명이 길게 늘어뜨린 시트를 타고 내려갔습니다. 하지만 잠시 뒤 다시 올라와서는 말합니다.
“안되겠어. 너무 짧아.”
다시 그들은 심지어 속옷까지 동원하는 등 뭐든 눈에 뛰는 건 다 꺼내 묶었습니다. 다시 그 남자가 줄을 타고 내려갔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다시 올라와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역시 안 되겠어. 이번엔 너무 길어.”
분명히 1층까지 내려가려면 그 줄이 바닥까지의 높이보다 길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 사람은 짧아서 안 된다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긴 것까지도 너무 길어서 안 된다면서 다시 올라온 것입니다. 그래서 정신병원에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문득 우리들도 이러한 모습을 취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즉, 주님께서는 나보다 훨씬 크시고 나의 생각을 뛰어넘는 크신 분인데도 불구하고 그래서 주님의 그 크심을 인정해야 하는데, 나에게 주님을 맞추려고 할 때가 너무나도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주님께 대한 원망도 많습니다.
왜 저에게 이러한 고통과 시련을 주시냐는 원망들, 나에게는 왜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부와 명예를 주시지 않느냐는 원망들, 내게 재주와 능력이 없음을 탓하는 원망들……. 이밖에 많은 원망을 주님께 표현하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주님께 원망을 드리고 있다는 것은 나한테 주님을 맞추려는 욕심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닐까요? 그 반대로 나를 주님께 맞춰야 하는 것이 옳은 길인데 말이지요.
주님은 부족하고 나약한 우리 인간들의 생각과는 너무나 다른 분입니다. 바로 그 점을 오늘 복음을 통해서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인구분포를 봤을 때도 어린이의 인구분포는 우리나라에서 10%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늘 나라에 들어갈 사람은 1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일까요? 물론 그것은 아니겠지요. 주님께서는 100% 모두가 예외 없이 하늘 나라에 들어가길 원하십니다. 그러나 그 자격이 어른처럼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것을 좋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또한 욕심과 이기심이 가득한 어른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린이처럼 순수한 마음. 있는 그대로 만족하고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른의 마음으로 하늘 나라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 어른의 마음을 버리고 어린이의 마음을 채워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게 주님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나를 맞추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주님께 나를 맞춥시다.
마케팅을 가르친 할아버지(댄 J 샌더슨, ‘섬기는 기업 문화가 경쟁력이다’ 중에서)
어느 날 오후 할아버지께서 나를 밭으로 데려가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조그만 돌멩이들을 모두 주워 담아라.”
날이 몹시 더웠을 뿐더러, 내겐 그런 일 말고도 하고 싶은 일이 수백 가지는 더 있었다. 그래도 별 수 없이 낡은 양동이 하나를 집어 들고 돌멩이를 줍기 시작했다. 꽤나 오래 일을 했다 싶을 무렵이 되자 나는 지루함을 참기 힘들었다.
“별로 진도가 나가지 않는 것 같구나, 얘야.”
“지겨워요. 전 돌을 줍는 거 안 좋아해요.”
“그래? 그럼 네가 좋아하는 일은 뭐니?”
“운동이요.”
할아버지가 다시 물으셨다. “혹시 농구 좋아하니?”
“엄청 좋아하죠!”
“여기 지금 네가 가지고 있는 양동이가 농구 골대고 돌멩이들이 농구공이라면 어떨까? 30분 동안에 양동이를 몇 개나 채울 수 있을 것 같니?”
나는 조그만 돌멩이를 하나 집어 들고 가벼운 점프 슛을 날려 보았다. 돌멩이는 양동이 한가운데로 쏙 들어갔고 나도 모르게 탄성이 새어 나왔다. 밭의 돌멩이들은 점점 사라졌고, 나는 상상 속의 농구 게임에 완전히 빠져 있었다.
나는 기업의 리더들에게 광고와 마케팅의 차이에 대해 교육할 때 이 교훈을 종종 써먹곤 한다. 할아버지께서 내게 텃밭의 돌멩이들을 주워야 한다고 말씀하셨을 때에는, 거기 돌들이 있다는 사실을 그저 ‘광고’ 하신 것뿐이다. 그러나 양동이가 농구 골대고 돌들이 농구공이라는 말로 나를 설득하셨을 때 할아버지께서 하신 것은 바로 ‘마케팅’이었다. 그 일에 대한 할아버지의 관점을 내가 수용한 결과, 자갈은 메디슨스퀘어 가든(뉴욕의 대표적인 명소)이 되고, 나는 뉴욕 닉스 팀의 스타급 포워드가 되어 즐거운 마음으로 일을 완수할 수 있었다. 기운 빠지고 고문 같기만 하던 순간이 갑자기 가장 즐거운 여름날의 기억이 되어 버린 것이다. 사람 중심의 문화가 바로 이러하다. 그런 문화에서는 어떤 일을 해야 한다고 ‘광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마케팅’해야 한다.
첫댓글 오랜만에 시원한 아침을 맞이합니다.. 이제 무더운 여름도 얼마 남지 않았겠지요.....건강하십시오..신부님^^
며칠 새벽을 열며를 읽고 힘을 얻어갑니다...무더운 여름이 이제 빗속으로 숨어버리는것 같군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신부님!!!
오늘도 좋은 양식으로 배 불리우고 무더운 하루를 힘차게 열겠습니다. 신부님!!! 감사 합니다.
즐거운 하루 하루 되도록 ~ 신앙안에서 마케팅 해야겠습니다
"주님은 부족하고 나약한 우리 인간들의 생각과는 너무나 다른 분입니다." ........... 신부님, 감사드립니다.~
내게 주님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나를 맞추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아멘. 신부님 덕분에 기쁘고 행복합니다. 신부님 감사드립니다. ^*^~
주님께 나를 맞추는 하루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신부님 감사합니다..
주님께 나를 맞추는 삶이 아니라 내게 주님을 맞추며 살았습니다. 반성하며 노력하겠습니다. 신부님 건강하세요.
어려워요 신부님, ^^★
어른의 마음을 버리고 어린이의 마음을 채워야..... 쉬운 일은 아니지만 노력하겠읍니다. 감사합니다 신부님 !
주님께 나를 맞추다~~네~~~가끔 무엇이 옿은지 그른지 모를때....십계명을 외워본답니다....잘살기가 무척 어렵지만 오늘도 노력해보며~~멋진 신부님 말씀 ~~짱!~~~~~~하느님 아버지말씀은 더`~짱~~!!!!ㅎ.....
요즈음 더운 날씨가 계속 되어 지치고 힘든 하루를 지내는 것 같은데요.. 지난 일요일에 신부님이 너무 힘들어 보이시더라구요. 어디 아픈곳이 없으시죠.. 기운이 없거나 아프신것 같은데 열정적으로 강론하시는 것 같았어요... 피곤해 보이기도 했구요.. 더운날씨에 건강하세요..
신부님 이곳을 알게 되어 너무도 행복합니다. 제가 주님을 따르려 노력 하겠노라고 나름대로 다짐을 했거든요.ㅎㅎ . 감사합니다. 종종 들릴게요.
오늘도 마음의 양식 담고 갑니다 감사함다 심님~
신부님~ 오늘은 간밤의 소나기 덕분인지 제법 시원한 하루였지요?? 오늘도 저희를 기르시는 귀한 글 감사합니다. _()_()_
주님께 나를 맞추는것, 어린아이와 같이 되는 것, 광고와 마케팅의 차이..모두가 어떤 공통점이 있는듯해요. 진심으로 내가 원하고 좋아하고 즐거워야한다는 거예요. 어차피 해야될 일이라면, 즐겁게~ 모든것엔 비밀이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즐겁게 할 수 있다는 거예요. 같은 일을 두고도 어떤이들은 즐겁게하고, 어떤이들은 가장 괴로워하며 일을하죠. 왜그럴까요? 즐거움을 발견해낸 사람과 그렇지 못함의 차이일거예요. 어린이와 같이 된 사람과 그렇지 못한사람처럼요. 할 수없는 일이란 없어요. 단지 즐거움과 기쁨을 발견하지 못한일들만이 있을뿐이죠. 아이들에겐 모든것이 놀이예요. 경쟁과 욕심도 없고요.
제 맘안에서 그 둘을 쏙 빼버리도록 노력하겠어요. 신부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