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먼과 트럼프의 공통점?
(시 122:6)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제33대 대통령 트루먼과 제45대 대통령 당선자 트럼프
그들은 모두 소속당의 지지를 받지 못하였다.
언론들의 편파보도(?)로 곤혼을 치뤘다.
대통령선거에 당선될 수 없는 지지율에 있었다.
그러나 친 이스라엘 정강정책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대이변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번 제 45대 미국대통령에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에 관한 내용들은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상황들인지라 생략하기로 하고, 미국 제33대 대통령이었던 트루먼에 대한 내용만 인용해보기로 한다.
미국 33대 대통령 트루먼도 1948년 11월 2일 대통령선거에 당선될 수 없는 지지율에 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독립을 찬성함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 당시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선언을 할 때 유대인이 약50만 명이었다. 그 이후 전 세계에서 유대인이 귀환하여 지금 약 650만 명이다.
이스라엘이 독립하기 위하여 미국의 지원을 얻기 위해 트루먼의 지지를 받으려고 하였으나 루스벨트 대통령의 사망으로 부통령에서 대통령을 승계한 트루먼은 1948년 11월 2일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 될 수 없는 지지율에 있었다. 한편 민주당은 당이 둘도 아니고 셋으로 갈라지고 말았다. 민주당이 한둘도 아니고 무려 셋으로 갈라졌는데, 이거야말로 사실 엄청나게 어려운 선거를 하게 되었다.
우선 전 러닝메이트에서 잘렸던 헨리 월리스가 당을 창당하고 나갔고, 그리고 노조들 때문에 들썩이던 남부의 보수파들도 노조의 활동을 일부 제한하는 태프트-하틀리 법에 트루먼이 서명한 걸로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딕시크랫(Dixiecrat)이라는 당으로 빠져나갔고, 그런 가운데 트루먼은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 공화당 후보 토마스 E. 듀이에게도 한참 멀리 뒤지고 있었고, 1948년 11월 2일 대통령 선거일까지 여론조사에서 트루먼은 토마스에게 뒤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변이 일어났다 인터넷 검색에도 이변이 일어났다고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또 주변 참모들도 이스라엘 독립을 적극 반대하였고 딱 한 명이 지지하였다.
그러나 트루먼은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독립을 승인하였다.
5개월 뒤 이변이 일어나 트루먼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은혜로운 공감을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