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5국9일 보스니아
남북으로 길게 뻗어있는 크로아티아 최남단 두브르브니크에서 북쪽으로 이동중 바로 서쪽으로 끼고있는 보스니아로 국경을 넘어왔다
보스니아 네움이란곳으로 넘어와 저녁식사후 하룻밤을 잔후 보스니아 코스들을 둘러 본후 다시 북으로 크로아티아로 넘어가는 일정이다.
보스니아는 터키의 지배하에 놓였다가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의 지원으로 영토를 탈환하고 1918년 유고슬라비아의 한주가 되었으며
1946년 북부의 보스니아와 남부의 헤르체코비아지방이 합쳐 유고슬로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의 일원이 되었다.
1991년 공화국 국민투표에서 독립이 가결되어 1992년 3월3일 독립을 선포하였으나 공화국 거주
이슬람교도와 크로아티아계 세르비아계세력간 유혈 민족 분규가 발생하여 내전으로 발전하였다.
내전 기간 동안 20만명 이상이 사망하고100만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하였다.
1995년11월 내전3개 당사국 대통령들이 미국 오하이오주 데이턴 공군기지에 모여 내전 종식을 위한 평화협정이 가조인한 뒤
43개월여에 걸친 인류 최악의 민족 분규가 종식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감정의 골이 깊어 긴장되는 나라다.
정식 명칭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공화국으로, 발칸반도의 서남부 아드리아해 연안에 위치하며,해안선의 길이는 20㎞에 불과하다
국토면적은 51.107km2이며 인구는 약460만명 1인당소득은 4.500불이며 수도는 사라예보며 50만 명이 산다.
건국일은 1992년 4월5일로 되어있다.
아드리아 해안과 알프스 자락을 끼고 있는 지역적 특성 때문인지 이날도 날은 흐리고 비가 온다.
그러나 우린 카롤릭 성지로 유명한 메주고리예 성모마리아가 발현한 곳으로 간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서남부에 위치한 메주고리예는 성모마리아가 발현한 곳으로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의 성지 순례지로 유명하다.
이 작은 시골마을이 유명해진 것은 어린이들 앞에 성모마리아가 발현한 것이 알려지면서 부터다.
이슬람 국가인 보스니아에서 이 작은 마을만 가톨릭을 믿는다. 적과의 동거라고나 할까?
적진 깊숙이 한가운데에서 포위당한 채 당당하게 맞서는 장병들 같은 처지인데도 메주고리예는 너무나 평온하고 여유가 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서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이 도로 양쪽으로 죽 늘어선 성물가게들이 세계적인 성지임을 말 해 주듯이 다양한 재료와 종류의 성물이 가득했다.
이곳 예수님상 좌측 무릎 못질 당한 부분에서 물이 흘러 그액을 받아 아픈 관절에 부분에 문지르면 치유가 된다고 했다.
해서 무릎 부분이 반질 반질하다.
모스타르 다리(Mostar Bridge) 로 이동
보스니아와 헤르체코비나의 국가적 상징물인 모스타르 다리(Mostar Bridge)는 400여 년 간 보스니아를 통치했던 투르크가
이곳 네레트바(Neretva) 강 위에 독특한 높은 아치형 석조 다리를 건설했으며 마지막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이 다리는 잘 보존되어왔다.
그러나 이 16세기의 다리는 1993년 11월 크로아티아 군의 무자비한 공습으로 완전히 파괴되고 말았다.
피사의 사탑이나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만큼이나 중요한 이 중세의 모스타르 다리는 16세기에 수천개의 모스크와 궁전 등을
건축했던 오토만 제국의 건축가였던 미말 시난 의 제자 미말 하이레틴이 세운 것으로, 1993년 11월 보스니아 내전 때 파괴되었다.
이곳 주변의 많은 역사적인 건축물들도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 회교도들 간의 갈등으로 1992년에서 1995년 사이에 파괴되었다.
우리가 이곳으로 오는 도중에 아직도 전쟁의 상처가 그데로 남아 있는 건물들을 많이 보았다.
이 다리는 각국의 지원과 함께 터키 건축가와 기술자들에 의해 원형 복원되었으며, 2004년 7월 23일 찰스 황태자등
각국 원수들이 평화의 상징으로 많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식을 갖고 재개통 되었다.
이 다리는 200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모스타르는 네레트바강을 사이에두고 한쪽은 이슬람지구 한쪽은 기독교지구로 나뉘어 평화롭게 공존하며 살았는데 이후
내전과 전쟁을 치르며 평화는 깨지게 되었고 이웃간에 영토확장 분쟁이 전개 되었던 과거를 지닌도시이다.
"오래된 다리"라는 뜻의 스타리 모스트는 이슬람과 기독교를 이어주는 평화의 상징이자 분단의 비극을 증언해주는 상징이기도하다.
1개의 국가 안에 2개의 문자, 3개의 종교, 4개의 언어 5개의 민족, 6개의 공화국 그리고 7개의 주변국가.
구 유고연방은 이렇게 '1234567'의 국가로 설명되었다.
이러한 혼재로 인한 불만과 불안들이 사회주의 붕괴로 한꺼번에 터져나오게 되며 '인종청소'까지 강행되었던
유고내전은 흔히 '보스니아 내전'으로 알려져 있다.
종교와 민족이 무엇이길래 이 수많은 젊은 목숨들이 희생되어야 했던걸까?
그들이 1993년을 잊지 말자 다짐하는 것을 조금은 이해할만하다.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게.
하지만 지금은 이것마저 하나의 관광상품이 된 건 아닌지 약간은 씁쓸함이 없지만은 않지만,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 양국의 국경에서는 다른 유럽과는 다르게 입국 심사를 받아야한다.
내전은 오래전에 종식되었지만 그들 사이에 골은 아직도 이런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다.
전 후 유럽 국가들의 지원으로 다리는 중세의 것과 똑같이 재건되었으나 그들의 야만적인 행위는 아직도 모든 보스니아인들의 가슴에
상처로 남아 있으며, 다리 옆 바위에는 "Don't forget 1993!"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보스니아를 둘러 보면서 느낀것이 많다. 땅따먹기 인종갈등 종교갈등 이념갈등 등 내외부의 갈등으로 내란을 격고있는 보스니아를 생각하니
해결책이 어렵고 내포된 갈등은 쉽게 지워지지 않을것 같다. 이네들 현실을 보니 우리나라의 현실도 걱정이 된다.
그네들 보다는 조금은 단순하지만 갈라진 남북한 문제와 남한 내의 이념갈등 세대간 갈등 등....남한 만이라도 무조건 하나로 합쳐야 하는데...
다시 크로아 티아로 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