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그 마이어라는 독일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전쟁 중 러시아군에게 포로가 되어 우크라이나의 포로 수용소에 수용되었습니다. 그녀의 남편 또한 연합군의 포로가 되어 웨일즈 수용소에 갇혀 있었는데. 그는 특사를 받아 베를린의 자기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흩어진 가족을 모으기 위해 사방으로 연락을 취하여 간신히 세 자녀를 찾았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남편과 세 자녀는 가정을 이루고 살았습니다. 러시아의 포로 수용소에 갇혀 있던 마이어 여사는 남편과 세 아기가 베를린에서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자기도 이 포로 수용소에서 어떻게 해서든 나가야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포로 수용소에서 나갈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임신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임신한 여자는 석방한다'는 규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이어 여사는 고민하다가 자기에게 늘 친절히 대해 주던 간수에게 자신이 임신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임신하게 된 그녀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제 그녀의 온 가족들이 함께 모여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얼마 후, 그녀는 아이를 낳았습니다. 온 가족들이 이 아이를 사랑하였습니다. 그 아이로 인해 가족이 모두 다시 모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이 여인의 태도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러한 이 상황윤리 이론에는 네 가지의 맹점이 있습니다.
첫째로, 상황윤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둘째로, 상황윤리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혼동합니다. 세째로, 상황윤리는 상황만을 중시할 뿐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간과합니다. 네째로, 상황윤리는 절대적인 도덕 기준을 폐기합니다.
당신이 만일 마이어 여사와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면 어떻게 행동하겠습니까? 그 행동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 하나님의 말씀과 상충되고 있을때 당신은 어떤 길을 택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현실의 고충을 감수할 수 있으십니까?
아니면 상황윤리를 따라 현실의 행복을 택하시겠습니까?
[마 15:4-6] (4)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거늘
(5)너희는 가로되 누구든지 아비에게나 어미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6)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
1. '주님의시선' 카페와 카페지기가 섬기는 '마산시민교회'가 더 풍성해 질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합니다.
제 목 : 불편한 길, 생명의 길 성 경 : 마7:13-14
미국의 어떤 조사에 의하면 미국인들이 50년 전에는 70가지를 생활의 필수품으로 요청했는데 지금은 700여 종류를 필요로 한다고 합니다. 50년 동안에 일상생활에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물건이 10배이상으로 늘어난 것은 생활이 편리해졌다는 증거도 되지만 복잡해졌다는 증거도 되며 풍부해진 증거도 되지만 욕심스러운 증거도 됩니다.
10배나 편리해졌으면 50년보다 10배나 더 감사하는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느냐고 물으면 그 면에 있어서는 오히려 퇴보를 하고 있는 것이 풍요한 사회의 타락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1.무엇이 발전인가
인류는 보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더 많은 것과 새로운 것이 필요하고 우리의 생존환경을 더 안전하게 보장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안전장치가 필요하다고 외치며 새로운 것을 만들고 발명하는데 혈안이 되고 있지만 인간의 과학문명은 오늘날 인간의 생존에 과학보다 더 중요한 생태계를 치명적으로 파괴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문명국가의 국민들이 누리고 있는 냉장고와 에어콘에 사용되는 프레온 가스가 지구의 대기를 둘러싸고 있는 오존층을 엄청나게 파괴하고 있습니다. 이 오존층은 태양광선 중 살인적인 위력을 가진 자외선을 차단시켜 지구의 생태계를 안정되게 보호해주는 하나님의 치밀한 창조품입니다. 이 오존층이 파괴되면 지구의 표면온도 상승으로 인해 양극지역의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상승하고 자외선의 과다로 인하여 피부암 발병율의 증가와 기상이상등 인간으로서는 대처할 수 없는 여러가지 재앙을 초래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프레온가스 사용을 규제하자고 하는 국제회의에 유럽공동체는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고 합니다. 경제적인 이유와 기업성장등의 이유일 것입니다. 인간의 이기심이 자기의 죽음을 재촉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치우쳐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무시한 인간의 지식의 말로는 비극적인 종말일 수 밖에 없습니다.
2.영적인 발전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세계를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섬김의 도를 본보여 주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시고 세상의 맨 아래자리까지 낮아지신 예수께서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시고 구원의 길을 여셨습니다. 이것이 영의 길 생명의 길입니다. 다른 사람과 피조 세계를 다스림으로써 편안하게 살고자 하는 이기적인 사람은 하나님의 동산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런 사고방식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사고방식입니다. 하나님없는 인간은 불안한 인간입니다. 그는 자신의 삶의 안전을 스스로 확보해야 합니다. 그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환경을 위협적으로 느낍니다. 아벧을 죽이고 하나님을 떠난 가인은 땅으로 부터 위협을 느낄 뿐아니라 그가 만날 모든 인간이 자기를 해하지 않을까 두려워 하는 불안의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안전장치를 필요로 했습니다. "가인을 해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일곱배나 벌하리라고 하셨다."고 하며 사람들을 위협했습니다. 그의 자손 라멕은 칼을 만들어 그 아내들 앞에서 흔들어 대며 이렇게 외쳤습니다. "아다와 씰라여 내 소리를 들어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창상을 인하여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을 인하여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배일찐데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배이리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떠난 인간은 이와 같이 타인과 환경에 대해서 지나친 피해망상 의식을 가진 인간입니다. 이기심과 자존심과 지배욕은 생존에 불안을 느끼고 있는 인간의 본능적인 죄의식입니다. 이런 인간의 지식은 평화의 지식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의 심리적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 환경을 지배하고 인간을 짓누르려고 하는 것입니다. 파괴하고 개조하려고 합니다. 자신의 죄의식에서 빗어진 지식으로 인하여 인간은 환경과 타인을 파괴함으로 자신도 멸망의 함정으로 빠져 가고 있습니다. 오늘 이 세상을 구원하는 참지식은 섬김의 지식입니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지고 세상을 하나님에게로 화목시키신 그 분을 따라 사는 길만이 하나님의 구원에 참여 하는 길입니다. 악착스럽게 다스리는 자의 자리에 오르고자 하는 경쟁사회 속에서 섬김의 지식을 좇아 산다는 것은 힘든 길입니다. 좁고 협착한 길이요, 불편한 길입니다. 남은 뛰어가는데 나는 걸어가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남은 나를 다스리며 자존심을 뽐내는데 나는 허리를 굽혀 남의 발을 씻는 자와 같이 살겠다는 각오는 죽는 것과 같습니다. 너무들 더 가지고 더 많이 누리려고 아우성인데 나는 없이 살고 불편하게 살겠다는 것은 바보스런 삶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와같이 자원하는 바보들을 필요로 하십니다. 섬기라고 하시는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불편을 감수하는 자들을 통하여 부활의 권능이 나타날 것입니다. 재창조의 희망이 싹틀 것입니다. 이것이 청조세계와 함께 사는 지혜로운 삶의 길이며 모두가 함께 사는 생명길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말합니다. 불편하게 사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