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운동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희화화’라는 말이 오르내립니다. 사실 한국인에게 ‘미투’와 관련된 희화(戱畵)는 무수히 많습니다. 아래 소개하는 얘기는 순전히 ‘웃자고 하는 말’이니, 절대로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마시길 바랍니다.
6.25 전쟁이 소강상태에 접어들고 휴전회담이 시작된 1951년 여름부터, 미군은 한국군 장교들을 미군부대 영내에 불러들여 재교육하는 프로그램을 시행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한국군 장교들 중에는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실내 교육이야 못 알아들어도 알아듣는 척 하며 앉아 있으면 되는데, 문제는 식사였습니다. 식당엔 평생 처음 보는 음식들이 널려 있었지만, 뭘 어떻게 먹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던 거죠. 이런 경우에는 당연히 평소 영어 잘 한다고 으스대던 장교가 책임을 떠맡게 됩니다. 그는 동료들에게 말했습니다. “내 뒤에 바짝 붙어 서서 그냥 ‘미투’라고만 하면 돼.”
식사 시간에 영어 잘하는 장교가 맨 앞에 섰습니다. 그는 식판을 들고 음식들을 쓱 훑어 봤습니다. 그런데 이름을 아는 게 샐러드 밖에 없는 겁니다. 그래도 뒤에 선 동료들에게 ‘가오’는 잡아야겠기에 배식병에게 큰소리로 “사라다”라고 외쳤습니다. 배식병은 의아한 눈빛으로 “왓?”이라고 물었습니다.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된 이 장교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사...사사라다”라고 말했습니다. 배식병은 다시 “샐러드?”라고 물었습니다. 장교는 이번에는 고개만 끄덕이고 식판 한 가득 샐러드만 받아 들고 식탁으로 걸어갔습니다. 그 뒤에 섰던 사람들은 미리 배운 대로 “미투”, “미투”, “미투”만 따라 했고 역시 샐러드만 식판 한 가득 받아들었습니다. 그 뒤로 미군들 사이에서는 “한국군은 채식만 해서 키가 작다.”는 얘기가 정설로 유포됐답니다. 미국에 가서 ‘Thank you’, ‘Excuse me’, ‘OK’, ‘Me too’ 네 마디만으로 생활하다가 낭패 본 사람에 관한 이야기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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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을 악용한 성범죄’의 피해자였던 사람이 오랜 시간 덮어두었던 상처를 다시 헤집으며 용기를 내어 폭로하면, 그에 힘을 얻어 유사한 피해자들이 ‘나도 당했다’, ‘우리도 당했다’며 폭로대열에 동참하는 것이 미투입니다. 연대를 통해 기존/현존 권력에 맞서는 거죠. 그때는 폭로할 수 없었으나 지금은 폭로할 수 있도록 힘을 주는 것이 미투운동입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권력관계’도 아니고 그때 폭로하거나 고발하지 못한 사유가 무엇인지도 알기 어려운 ‘피해사례’가 ‘미투’에 섞여 드는 양상이 일부 보입니다. 총상 입은 사람이 미군 군의관에게 죽을힘을 다해 자기 상태를 설명했더니, 그 뒤에 있던 벌레 물린 사람이 ‘미투’하는 격입니다.
며칠 전에도 썼지만, ‘질풍’에는 모래와 먼지도 섞이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더운 여름이라도 바람에 모래와 먼지가 너무 많이 섞이면, 사람들은 창문을 닫습니다. 미투운동을 ‘희화화’하는 행위들은 운동 내부에서, 그리고 언론에서, 먼저 엄격하게 걸러내야 할 겁니다. 누가 '미투'를 외치기만 하면 무조건 '위드유'라고 응원하는 것이 능사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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