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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의 청춘과 섬집 아기
요즘 딸애가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다. 좋아하는 것이 그렇고 관심 두는 분야가 그렇다. 특히 좋아하는 노래와 그 노래를 부르는 가수에 대한 관심이 통제하기 힘든 상태로까지 가는 것 같다. 제 엄마는 케이블 텔레비전을 설치해 놓아 더 그렇게 되는 것 같다고 걱정이다.
라디오 음악에 매달려 있는 때도 많다. 헤드폰을 머리에 쓰고 녹음 테이프를 듣는 걸 볼 때가 자주 있다. 밤에는 박아무개가 진행하는 FM을 들으며 빈 테이프에 녹음도 하고 무슨 편진가 엽선가를 보내 놓고 안달보새기를 떨기도 한다. 엄마와 딸이 상의해서 하루에 텔레비전 시청하고 라디오 듣는 시간을 합해서 일정 시간이 넘지 않도록 정했는데 시간 연장 문제로 실랑이하는 것을 자주 본다.
딸애 친구 선이 엄마도 이 문제 때문에 걱정이 보통이 아닌 모양이다. 애 엄마와 상의하면서 우리 집 애가 세 시간 이내로 정했다고 하니까 깜짝 놀라더란다. 그렇게 많이 주어도 되느냐는 생각 때문이다. 선이 엄마는 선이가 노래와 가수에 빠져 있는게 걱정되어 방과후에 학원을 몇 군데 더 보내기로 했다고 한다. 딸애를 감시하고 통제하느라 너무 힘이 들어 견딜 수 없어하더라는 얘기도 들었다.
우리 딸애가 빠져 있는 가수는 H.O.T다. H.O.T가 노래를 하고 있으면 아무리 밥 먹으라고 성화를 해도 헛일이다. 어른들이 포기해야 한다. 어른들이 어디 가자고 하면 무조건 따라나서던 아이였는데 노래에 빠지고부터는 달라졌다. 어디를 가자고 해도 라디오 듣고 있겠다고 한다. 설 전에는 외가에 함께 놀러 가자고 했더니 그 시간에 FM 들을 게 있다고 도리어 짜증이다.
H.O.T가 어디가 그렇게 좋으냐고 물었더니 "그냥요" 그런다. 다 좋단다. 누구를 좋아할 때 이거보다 더 무서운 표현이 없다. 무조건 다 좋은데 무슨 다른 설명이 필요하고 이유가 있을 수 있겠는가. H.O.T는 저희와 나이 차이도 많이 나지 않아 보이는 학생이고, 학생이면서 자유분방하게 자기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외모도 모두 곱상하게 생긴 것 등이 아이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해 보였다.
어저께는 딸애가 컴퓨터 통신에 들어가 그 가수 네 명의 무슨 번호를 알아 내 가지고 환호를 하고 호들갑을 떤다. 진짜로 그 애들한테 전화를 걸 참이냐고 물었더니 정색을 하며 그냥 번호만 가지고 있어도 친구들 사이에서는 자랑거리라고 대답한다. 보나마나 제 친구들한테 전화 걸어 자랑하고 으스대고 난리를 칠 게 분명하다. 이제 겨우 초등학교 6학년에 올라갈 아이인데 나이에 비해 너무 일찍 가수들에 빠져 있는 게 아니냐고 제 오빠나 언니 그리고 어른들이 걱정을 해도, "엄마는 제 나이 때 가수들 안좋아하셨어요?"하며 당연한 일 가지고 뭘 그러느냐는 듯이 말을 해 어디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말 갖고는 안 될 것 같아 요즘 신세대 아이들이 좋아하는 최신 가요 수십 곡을 나도 직접 들어 보기로 했다. 그래야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H.O.T말고도 벅, 뚜띠, 영턱스, 쿨, 뱅크, 육각수, 하모하모, 자자, 깨비깨비 등 처음 들어 보는 이름들이 많았지만 노래는 한두 번 들어 본 것들도 있었다.
신세대는 기성세대에게 늘 할 말이 많아서 그런지 노래말이 무척 길었다. 랩으로 처리하는 부분들이 많아서 더욱 그랬다. 템포도 무척 빠르고 일단 노래말보다는 몸이 경쾌하게 따라 움직이게 되어 있는 곡들이 많았다. 노래말도 발랄하고 솔직했다. 텔레비전에 나와 노래 대신 춤으로 관객을 사로잡는 립싱크 음악을 어른들이 낯설어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어 보였다. 그들의 음악을 노래보다는 춤이, 내용보다는 몸짓이, 가사보다는 리듬이 더 강했다.
또 하나는 신세대 음악을 통해 그들도 자기 세대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들의 삶의 방식과는 다른 자기들만의 삶과 이야기를 어떤 형태로든 표현하고 싶어한다는 생각이었다. 신세대인 지금 아이들의 모습을 노래하고 있는 깨비깨비의 '메세지'란 노래는 이런 내용으로 되어 있다.
(노래) 도대체 내겐 왜 아무도 연락을 안 해 주는 거야. 내 친구들은 수업시간에도 그냥 정신없이 울려 대네. 뿌듯한 표정으로 확인하는 그 모습이 정말 부러웠어. (랩) 어! 바로 그 때 내게도 삐삐 신호가 울리는 거야. 이건 뭘까 궁금해하며 전화박스로 가서 메세지를 확인하는 순간 오잉? 아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너의 메세지. (노래) 너무나 재미있었어. 이렇게 재미있는 음성 메세지 처음이야.
몇 곡을 더 들어 보자.
밤늦은 길을 걸어서 지친 하루를 되돌아오면 나를 맞는 깊은 어둠과 고요히 잠든 가족들. 때로는 짐이 되기도 했었죠. 많은 기대와 실망 때문에..... 늘 곁에 있으니 늘 벗어나고도 싶고 어떡해야 내가 부모님의 맘에 들 수가 있을지 모르고, 사랑하는 나의 마음들을 그냥 말하고 싶지만 어색하기만 하죠.... 가족이어도 알 수 없는 얘기 따로 돌아누운 외로움이 슬프기만 해요. 아무 이유도 없는데 심술궂게 굴던 나를 위해 항상 참아 주던 나의 형제들. 사랑하는 나의 마음들을 그냥 말하고 싶지만 어색하기만 해요. (이승환 '가족')
차창 밖으로 어느 새 비가 오네. 유리창 가득 뿌옇게 서린 입김 위에 써 내려간 너의 이름과 사랑이란 두 글자. 몇 번씩이나 뒤돌아보며 아쉽게 웃던 니 모습. 그런 너에게 어떤 약속도 해 줄 수 없었던 이유는 보이지 않는 내 미래와 무거운 주위의 시선과 숨막히는 지금의 현실에 혹시 널 잃게 될까 난 두려워.(김수근 '어떤 약속')
'메세지'란 노래의 내용은 삐삐를 산 지 한 달이 넘도록 아무에게서도 연락이 안 오다가 여자친구로부터 음성 녹음이 왔는데 기뻐서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는 게 전부다. 이런 내용을 갖고 노래를 만들어 연습하고 녹음하고 공연하고 무대에 선다는 게 한편으론 이해가 되지 않는다. '코끼리'란 노래가 있는 그 노래 역시 '내 여자친구는 코끼리를 너무 좋아해서 동물원에 가자고 졸라 댄다'는 것이 전부이다. 별 고민 없이 사는 세대답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신세대의 음악과 삶이 발발하지만 가볍다는 평가를 받는 게 이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그런 것이 서로 통하면서 이야기가 되고 노래가 되는 게 또한 신세대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들 세대가 전혀 고민하지 않는 세대라는 건 물론 아니다. 가족과의 단절, 가족에 대한 고마움을 알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있는 그들의 심정을 노래한 '가족'을 보면 십대들의 고민이 솔직하게 나타나 있다. 비록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보이지 않는 내 미래와 무거운 주위의 시선과 숨막히는 지금의 현실"이란 말로 압축하고 있는 그들의 고민은 우리가 귀담아들어 주어야 할 부분도 있다. 무조건 "신세대 음악은 노래인지 뭔지 알 수가 없어". "세대 차이 느껴"란 말로 선을 그어 버릴 게 아니다.
록이란 것이 본래 노래를 통한 저항이라는 정신이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이고 보면 방향을 어떻게 잡도록 도와 주어야 할 것인가 하는 것도 우리의 몫일 수 있다. 서태지의 음악이 왜 그토록 십대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었으며, '발해를 꿈꾸며'나 '교실이데아'가 노래하고자 했던 내용과 그 지향점이 왜 이 시대 집권층의 심사를 불안하게 했었는지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망설이고 주저하며 자기 의사를 제대로 표현할 줄 몰라하는 십대들에게 용기와 적극성을 갖도록 하는 노래들도 있다.'못난이 컴플렉스', '버스안에서'라는 노래가 그것이다.
언제나 나는 혼자였었지. 키 작고 이쁘지도 않아서 애들과 친해지고 싶었지만 언제나 혼자였어. 그 애는 아주 특별했었지. 얼굴도 잘 생겼고 멋있어. 그래서 주위에는 여자친구 항상 많았었지. 하지만 그 앤 나랑은 전혀 어울릴 수 없었어....(대화) 그래 넌 말이 없는 키 작은 아이. 이쁘지도 않아. 하지만 넌 누구보다 작지만 투명하고 맑고 큰 눈이 있지. 난 항상 너를 느꼈고 또 나를 바라보는 너의 눈빛 보았지. 내가 갈 수 있게 조금 용기를 줘. 내가 갈 때까지 기다려.(영턱스 '못난이 컴플렉스')
(랩) 그녀는 너무 지적이야. 그녀는 너무 매력있고 그녀는 나를 병들게 해. 너무너무 좋아 죽겠어. (노래) 나는 매일 학교 가는 버스 안에서 항상 같은 자리에 앉아 있는 그녀를 보곤 해. 하지만 부담스럽게 너무 도도해 보여. 어떤 말도 붙일 자신이 없어. 아니야 난 괜찮아. 그런 부담 갖지마. 어차피 지금 나도 남자친구 하나 없는데, 하지만 너는 왜 아무 말도 없을까....(랩) 그렇게 쉬운 일도 망설이는 한심한 네 모습 정말 무지무지 답답해.(자자 '버스 안에서')
좋아하는 남자친구나 여자친구에게 용기가 없어 말도 못 건네던 기성 세대의 수줍은 로맨티시즘은 신세대의 눈에는 답답해 보일 것이다. 그들은 랩으로 쏟아 낸다. 한심하고 답답해서는 안 된다고, 용기를 가지고 먼저 말을 붙여 보라고, 상대방도 너를 좋아하고 있다고 노래하며 젊은이들의 가슴 속을 파고든다. 수줍게 다가서도 신중하게 선택해서 깊이 있게 사랑해야 한다는 기성세대의 사랑을 아우성치며 거부하는 신세대의 사랑은, 노래를 통해서 본다면 가볍게 만나서 부담 없이 헤어지는 얕은 사랑으로 흐르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게 한다.
게다가 이런 노래에서 느끼는 것처럼 그들이 찾는 대상이 특별하고 얼굴도 잘생긴 사람, 지적이고 매력적인 사람, 너무도 이상적이기만 한 사람들이라면 이것 또한 신데렐라 콤플렉스나 왕자 콤플렉스는 아닌가 걱정스럽다. 문학과 예술에서 찾고자 하는 사랑하는 대상은 우리 마음 속에 담겨 있는 소망적 사고(Withful Thinking)의 반영인데 현실 그 자체라고 모두 다 혼동하고 있다고 단정하는 것도 지나친 기우겠지만 한창 자라나는 십대들이라서 걱정스러운 부분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대중가요가 그랬듯이 비현실적인 사랑과 공허한 아픔, 가공의 현실 속에서 떠나 버린 사람에 대한 감상적인 눈물과 탄식을 노래하고 있는 것은 신세대 노래에서도 역시 마찬가지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걱정되는 것은 다음과 같은 노래가 담고 있는 신세대의 인생관이다.
이렇다 할 빽도 비전도 지금은 당장 없고 젊은 것 빼면 시체지만 난 꿈이 있어. 먼 훗날 내 덕에 호강할 너의 모습 그려 봐. 밑져야 본전 아니겠니. 니 인생 걸어 보렴...(랩)길고 짧은 건 대 봐야지. 지금은 비록 내가 보잘것없지만 나도 하면 돼. 뚜껑을 열어 봐야 알지...오직 믿는 건 배짱뿐. 가진 것 하나 없이 폼 잰다지만 나 젖 먹던 힘 다해 내 꿈을 이룰거야. 간다 와다다다... 어차피 인생은 한판의 멋진 도박과 같은 것. 자 맨발에 땀나도록 뛰는거야. 내 청춘을 위하여. (벅 '맨발의 청춘')
젊은이들이 가질 수 있는 배짱과 과감한 도전 그리고 치열한 정신 같은 것들이야 탓할 게 아니지만, 이 노래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인생은 한판의 멋진 도박과 같은 것'이라고 많은 이들이 생각하게 된다면 그건 문제다. 그렇지 않아도 노력하지 않고 일확천금을 벌 수 있다는 황당한 꿈을 꾸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천민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때묻지 않고 가장 진취적으로 세상을 개쳑해 나갸야 할 젊은이들이 한판 승부에 인생을 걸겠다는 식의 도박성 인생관을 갖는다면 큰일이다.
성실히 일하고 자기 분야에 전문성을 탄탄하게 갖추면서 때론 과감하게 도전하는 자세가 아니라 투기적인 세계관에 빠진다면 그런 성공은 기초가 튼튼하지 않은 집처럼 무너지고 마는 것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보아왔는가. 또 그렇게 투기로 번 재물과 성공은 그렇게 쉽게 날아가 버리고 마는 속성을 갖고 있다. 그리고 다시 그 공허함을 메우는 방법으로 도박과 같은 투자를 생각하게 되고 끝내는 빈 주먹 맨발로 다시 돌아오는 악순환을 되풀이하게 된다. 생각해 보라, 이런 노래말을 함께 따라 부르며 열광하고 있을 젊은이들이 모습을.
그 날 내가 정작 더 우울했던 까닭은 다른데 있었다. 딸애와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네 음악책 좀 가져와 볼래"하곤 펼쳐 본 음악책에는 "하늘 향해 두 팔 벌린 나무들같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나무들같이..."하는 그야말로 교과서적인 아동관에서 한 발도 벗어나지 못한 '어린이 노래', 유아적 감수성에 어린이들을 묶어 놓고 있는 "다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하는 '동네 한바퀴'가 첫번째, 두번째 노래로 수록되어 있었다. 교과서 음악 '동네 한바퀴'와 실제로 아이들이 더 즐겨 부르는 '맨발의 청춘'이나 더블데이트를 노래하고 있는 '운명'과 같은 노래 사이의 너무도 큰 차이 때문이었다.
어떻게 교과서적이 노래와 현실 노래 사이의 이 괴리를 건전하게 메워 낼 것인가. 딸애의 책에 실려 있는 어효선 작사.한용희 작곡의 '파란 마음 하얀 마음'이나 강소천 작사.정세문 작곡의 '그리운 언덕'은 지금도 나를 금방 30여 년 전으로 데리고 간다. 이흥렬 곡 '섬집 아기'도 거기 실려 있었다. 이 노래는 내가 가장 가난하던 시절에 불렀던 노래이다. 멸치 장사를 다니시던 어머니를 기다리며 동생들과 저녁이면 들마루에 앉아 이 노래를 부르곤 했다. 동생들은 지쳐 잠들고 어둠이 허기처럼 밀려오던 저녁 하늘과 지독한 가난. 이 노래는 지난날 내 문학적 심성의 어두운 심연 같은 것을 담고 있다.
지금도 나는 술이 거나해지면 이 노래를 부른다. 부른다기보다 노래가 입에서 그냥 흘러나온다. 3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는데도 말이다. 그게 노래다. 한 인간의 삶과 사랑과 아픔과 갈망, 이런 것들을 담고 그 인간과 함께 가는게 노래다. 한 인간의 삶과 사랑과 아픔과 갈망, 이런 것들을 담고 그 인간과 함께 가는게 노래다. 그래서 사람들이 늘 즐겨 부르는 노래를 들어보면 그 사람의 삶의 어느 한 단면과 체취 같은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섬집 아기'를 교과서에서 배우고 있는 딸아이가 H.O.T의 '캔디'를 더 좋아하는 것을 무조건 나무랄 수만은 없다. 내가 '섬집 아기'에서 느꼈던 아름다움과 아픔은 그것대로 나 혼자 가져가야 할 것이다. 그들에게 강요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 그들도 그들의 삶 속에서 자신들의 삶을 제대로 노래한 노래를 바르게 만나고 제대로 느끼고 간직하게 하는 일, 그게 바른 자세일 것이다. 우리 세대 모두의 고민도 거기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세대끼리만 느끼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정말이지 안타깝고 뭔가 허전하고 걱정스러운 마음을 버릴 수 없는 것도 솔직한 심정이다.
이 아이들이 다만 지나치게 가볍고 경솔하고 찰나적이거나, 쉽게 무언가를 찾고 쉽게 잊어버리며 깊이 없는 삶을 사는 사람으로 자라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버릴 수 없다. 다시 또 그들을 바라보는 눈높이를 낮추고 그들의 저 빠른 템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그들을 믿고 그들이 만들어 갈 세상을 진득하니 기다려 주는 어른으로 곁에 서 있어야 할밖에.<교육 에세이>
- 도종환/'맨발의 청춘과 섬집 아기'중에서 -
- 2006년 04월 20일 아침 태백산맥(太白山脈)
太白山脈
- 출처 http://geulbang.wo.to
- 음악 THE SOUND OF ANGELS - 'From The Northern Country' E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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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중심에서
싱그러운 하루 맞으십시오.
오늘도 많이 웃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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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ing of Korea
200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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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Canon 30D / EF16-35mm F2.8L U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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