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밤과 음악, 밤의 우체국에서 김미라 작가>
아름다운 음악을 듣게 되었을 때,
하던 일을 멈추고 꼼짝하지 못하게 묶어놓는 정말 아름다운 음악을 듣게 되었을 때,
세상에 태어난 기쁨을 느낀다,
그렇게 생각하곤 합니다.
모차르트와 베토벤과 슈베르트와 바그너와 브람스의 이름이 친근하게 들리고,
하나하나 음반을 사모으면서 듣고 싶은 음악들을 선택하는 기쁨은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이 큰 것이지요.
그러다가 어느 날 생각합니다.
이토록 많은 음악의 바다로 어떻게 헤엄쳐 들어가야 하나,
세상에는 음악에 해박한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데
나는 어느 세월에 이 넓고 깊은 음악의 세상으로 걸어가
저 사람들처럼 높은 경지에서 음악을 감상하게 될까,
그런 생각 끝에 문득 우울해지기도 합니다.
서점에 갔을 때도 그렇습니다.
서점의 그 많은 벽을 가득 채우는 책들,
그 중에서 세상에 태어났다면 꼭 읽어봐야 한다고 들었던 책 몇 권을 사들고 옵니다.
한동안 책의 바다에 빠져 있다 보면 문득 우울해져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그동안 나는 이토록 많은 책을 읽지 않고 뭘했던가,
이 책 속에 보면 내가 알아야 했던 것은 그토록 많은데
이 많은 책들을 어떻게 다 섭렵하나..
음악이나 책 뿐만이 아니라 세상의 많은 부분들이 그렇습니다.
스포츠도 그저 볼 때에는 즐겁고 행복하지만
내가 스스로 배워보겠다고 시작을 하면
가야 할 길이 너무 멀고 아득해서 때때로 우울해지곤 하는 것이지요.
생각해 보면 너무 깊이 들어가는 일은
언제나 그렇게 막막하고 우울한 기분을 동반했던 것 같습니다.
사랑도 그 입구에서는 설레이는 마음으로 선뜻 발을 들여놓지만
사랑이 깊어지면 그 사랑 앞에서 막막하고 우울해서
울고 있던 우리 모습을 때로 목격하기도 했었지요.
그래서 문득 생각하곤 합니다.
왜 아마추어로 사는 것이 행복한지 알겠다고 말이지요.
내가 좋아하는 음악 한 곡을 낡은 오디오에 걸어놓고,
음질에 상관없이 정말 좋아서 마음으로 듣는 것,
그런 아마추어의 과정이야말로 참 행복한 시절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한 시인이 고속버스를 타고 여행을 하게 된 일이 있었는데,
옆자리에 앉은 청년은 재미교포 2세였다고 합니다.
직장을 잠시 쉬고 조국의 강산을 여행하고 있다는 청년은
알고 보니 미국에서 유명한 법률회사의 변호사였어요.
남들은 앞서 가느라 정신이 없을텐데 이렇게 시간을 써도 괜찮으냐고 묻자
청년이 그랬다고 합니다.
'이렇게 아마추어로 살다 가지요, 뭐.'
너무 방대한 세상 앞에서 잠시 고독하고 우울할 때
우리도 주문처럼 외워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아마추어로 살다 가지요, 뭐.'
하고 말이지요.
*
이런 생각, 한번쯤 해보지 않으셨나요?
아침 나절, 세상과의 소통에 뒤떨어질세라 <시선집중>을 공부하듯 열심히 들었답니다.
그런데 아무리 들어도 돌아서면 인터뷰이가 누구였는지도 기억나지 않고
사회 전반에 대해 분석적인 사고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진행자에 대한 호감 이외에는 달라지는 게 전혀 없더군요.
결국엔 늘상 듣던 93.1로 채널을 돌리고 말았지요.
세상에서 멀어지더라도 그냥 아마추어로 살자, 마음을 바꿨더니
그제서야 마음이 편안해지는 거였어요.
매일 아침 한곡의 음악으로 출근길이 행복해지는 것,
저는 그냥 소외된 아마추어로 살아야겠습니다.
첫댓글 좋은글......퍼갑니다.
네,,생각이 많아집니다..좋은글 공유하게 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사회전반에 대한 분석적인 사고"가 생긴다면 정말 좋겠군요? ㅎㅎ 요즘엔 정말 답답한 분들이 저마다 잘났다고 하는걸 보면서 겨레의 앞날이 걱정됩니다. 모두 지금 전쟁이라도 했으면 좋겠는가 보죠? 전쟁은 정말 참혹합니다. 세상도 사랑도 음악도 여행도 밥도 모두 끝입니다. 이땅에서 전쟁만은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평화가 지속될수있다는 건 전날을 살다간 사람들의 정말 값진 유산입니다.
문득, 기분이 좋아지는 예쁜 글입니다....퍼갈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