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천 북지맥 제 1구간(대운산. 상대봉) 2016년 4월 2일, 산악랜드, 2,207회 산행,
코스: 진태고개(50번도로,부산추모공원,)-용천 북지맥 분기점-투구봉(562.5m)-시명산(675.6m)-대운산(742.6m)-상대봉(667.5m)-신묘정사-382.6봉-1028도로 (15,1km/5시간)
용천북지맥은 용천지맥 용천산 아래에서 분기되어 동부산CC, 불광산, 대운산, 배읍산, 화장산을 거쳐 남창천이 회야강과 만나는 합수점까지 이어지는 거리 약 30.8Km의 산줄기이다.
용천지맥에 ‘북’이 붙었으니 용천지맥에서 북쪽으로 갈라진 산줄기를 말함이다.
용천지맥은 낙동정맥 천성산 남쪽 1.7km 지점 ×718.6m봉에서 분기하여 남진하면서 해운대 동백섬까지 이어지며 수영강을 가두고, 용천북지맥은 용천지맥 7.6km 지점에서 북으로 다시 갈라져 북동진하며 동해바다로 가면서 회야강을 가둔다.
축하 리셉션은 계속 이루어지며 오늘 오신 산우들은 진심으로 축하하는 것입니다.(양산 23 삼각점도 있다)
조진대님과 환담중인 박성태님.
이번 지맥은 이미 오래전(2011년12월 24일) 지났던 곳이기도 하지만 이번엔 용천 북 지맥이란 제목으로 다시 찾은 산길이기에 한편 새로운 추억의 산길이기도 했었다.
산수유꽃,
생강나무꽃,(산수유와 구분하기 어렵죠?)
오늘의 산길은 부산 추모공언에서 시작하여 용당고개까지를 그 첫 구간으로 시작했다.
많은 상춘객으로 인한 도로 사정때문에 이곳 추모공원에 12시가 넘어서 도착했다.
차는 최대한 접근거리를 이용 추모공원 막다른곳까지 들어와 우리를 내려준다.
추모공원 안이기에 내림과 동시 휀스망을 넘어 용천지맥에 들어간다.
분기점까지는 용천지맥을 따른다.
분기점까지 2여분 바쁘게 이동한다.
준희님의 표지판과 함께 많은 시그널이 지맥길을 안내한다.
골프장 카트로를 따라 무조건 빠른 걸음으로 진행한다.(방산재)
캐디의 연락으로 사무실직원이 나와 제지를 했지만 막무가내로 통과하여 시간을 벌기도 했다.
그 와중 활짝핀 벚꽃앞을 그냥가지 않겠다기에.....
활짝핀 벚꽃.
골프장을 통과 했기에 실제 마루금도 통과했고 시간도 절약, 거리도 줄인 결과였다.
여기만 벗어나면 방산재 골프장은 통과 하는 것이다.
화사한 진달래,
해운대 컨츄리 클럽을 우측에 두고 진행.
그린에 사람이 많아 보이지는 않았다.
골프장 휀스밖을 계속 따르다 철망을 넘어가면 만나지는 안내판.
제단이 있는 투구봉.
바윗길을 직진할 수도 있었지만 길좋은 우회로를 따랐다. 추모공원에서 2시간 거리였다.
지나와서 돌아본 투구봉.
소나무도 한캇 하고......
내 리번도 함께 걸어두고.....
이젠 이정표만 따라가면 된다.
장안사 갈림길.
산불감시탑?
투구봉에서 약 40여분만에 도착한 시명산이다.
삼각점과 함께 정상석을 찍고는 그대로 진행한다.
삼각점 안내판.
2km를 더 가야 대운산이다.
전망바위와 소나무도 보고........
새로난 임도같은데........
이정목.
바위도 지나고....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이정표.
드디어 대운산이다.(출발한지 3시간 30분 만이다)
정상의 2등 삼각점도 보고.
민들레님.
우리부부도 함께.
등산로와 전망대는 울산시에서 많은 자금을 들여 정비를 했다.
지방예산이 충분해서인지 등산로에 너무 많은 투자를 한 것 같아 오히려 송구할 정도였다.
평지수준임에도 데크 시설을 한 것은 육산이라 진흙 때문에 이렇게 했다고 잘 아는 사람이 소개를 한다.
대운산 정상도 흙 밟을 일 없으니 좀 과한 시설같다.
상대봉 가는길.
안해도 될 곳을 돈자랑한 증거.
작은 개 2마리와 함께 1박한 어느 등산객.
맨발(윤상대) 6.000회 산행 기념 정상석,
당시 걸어둔 시그널과 함께.(2011년 12월 24일) 출발한지 4시간만,
민들레님.
상대봉에서 1시간만에 도착한 1028도로인 용당고개.
용당고개에 버스 주차가 어려워 우측 아래로 약간 이동한다.
빈 집이지만 물도 나오고 넓어 이곳에서 식사를 하며 후미를 기다리기도.....
정확하게 5시간만의 산행이었다.
귀경길 산행대장님의 다음산행지 설명과 오늘산행을 마치는 맨트 중.
(용천 북(北) 지맥 그 첫 구간을 마치고)
그렇게도 많은 눈(雪)들이 과연 다 녹아 없어질 때가 언제쯤일까 하고 막연하게 기다리며 궁금해 하던 그 마음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3월이 가고 꽃피고 새우는 4월이 우리 곁에 바짝 다가왔다.
오늘의 산길은 대부분 다 다녀갔던 길이지만 오늘은 용천 북 지맥이란 타이틀로 또 걷게 되니 새록새록 지난날을 추억하게 되었으며 나도 모르는 사이 어느덧 추억의 산길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특히 오늘 산행 초입인 부산추모공원엔 장모님을 모신 곳인데도 일행의 흐름에 방해될까봐 그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불효(不孝)사위가 되고 말았다.
아무 말 않고 따라오는 집사람 마음 은 더 착잡했을 것인데 아무런 기색도 내색도 없어 오히려 마음 아팠지만 내가 뭐라고 얘길 하면 아픈 곳 다시 찌르는 결과일 것 같아 침묵으로 순간을 넘기고 말았다.
산을 찾아 이곳저곳 기웃거리다 보니 자연 많은 산악회에 출입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그 산악회의 기본 윤리(倫理)개념(槪念)도 알게 되었고 회원들 각자 속내도 어느 정도 짐작되어지며 어떤 사람은 동료를 위해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최선을 다해 봉사를 하는가 하면 아주 극소수이기도 하겠지만 남 보다는 자기 자신의 목적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그런 사람은 구분해 낼 줄도 알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여러 계층의 회원들로 인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도 되었고 어떨 땐 침통한 분위기였다가도 또 어떤 땐 분노에 가까운 감정이 나를 보채고 닦달해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을 가져오기도 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땐 그 산악회엔 당연 가기도 싫어지고 갈등과 미움으로 나 스스로를 원망할 때도 있었던 것 사실이다.
산이 좋아 산 찾아 가는 사람이 산만 있으면 됐지 또 뭐가 필요한가라고 한때는 그렇게 생각 하기도 했지만 자주 접하다 보니 회원들의 됨됨이를 구분하게도 되었고 산도 산이지만 사람들이 좋아 같이 어울리고 싶은 경우도 많다는 것을 늦었지만 스스로 알고 느끼게 되었다.
자주는 아니지만 산을 가려고 집을 나설 때의 묘한 감정이 간혹은 젊은 사춘기의 소년 같다가도 때론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생각할 때도 있었지만 새벽길 나서는 나에겐 언제나 꿈을 꾸는 소년 같은 맑고 밝은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희망을 갖고 꿈을 향해 달려가는 청순함도 있었던 것이다.
때로는 짐짝처럼 내 몸을 던져 버리는 식으로 차에서 곤하게 잠들 때도 있었지만 역시 잠을 잔다는 것은 순간을 잊고 내일을 위한 충전(充電)의 단계라고 자위(自慰)하기도 하는 것이다.
많은 선배님의 호의(好意)를 받으며 때로는 그런 선배님과 같은 위치에서 한 공간을 공유했다는 자신감에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은 후의 포만감 이상으로 생활의 활력소요 마음의 정화는 물론 신체적인 재생효과도 있는 것이라 생각해 보기도 한다.
오고가는 차 안에서 자기의 피로는 뒷전이고 동료들에게 GPS보는 법을 매번 가르쳐주는 저런 사람이 바로 성인군자(聖人君子)다 라는 생각도 해보며 감탄하기도 한다.
간혹 지하철에서 하느님을 믿읍시다, 라고 외치며 소음수준으로 자기희생에 즐거움을 느끼며 봉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비이성적으로 자기의 욕망과 욕심을 채우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는 그런 사람과 비교해 볼 때 남(南)과 북(北)의 차이 같다.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요즘 선거철이 되자 수준이하의 행동으로 민심을 얻겠다며 온갖 입에 발린 소리로 자기의 체면에 자기를 던져버리고 왕왕거리며 국민을 우롱하는 한심한 사람들이 이 사회를 오염시키는 것 같아 진짜 귀마개와 마스크를 하고 살아야 할 판이다.
잠깐이라도 사람답게 살아가는 곳이 있다면 바로 우리가 찾는 산이며 도인(道人) 수준인 우리가 아닌가 하고 세상을 내려다보기도 한다.
걸을 때는 땅을 보고 걸으라는 말처럼 겸허하게 땅을 바라보며 급하지 않게 다박다박 사색하며 걷는 것이 건강에도 좋고 여유 있는 마음의 자세일 것이나 요즘 산악회 산행은 앞뒤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들머리에 도착하기 무섭게 한발이라도 먼저 빨리 가려고 뒤는 물론 옆도 돌아보지 않는 산행을 하는데 과연 무엇을 보고 느끼며 무엇을 얻는지 알다가도 모를 것이며 오로지 죽자 사자 걷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눈치다.
물론 운동효과야 배로 증가하겠지만 일거양득(一擧兩得)이란 말이 있는데 좀 천천히 여유 있게 산행을 즐길 수는 없을까 하고 생각해 보지만 먼 서울에서 시작하여 산 들머리까지 오고가자면 시간이 부족하여 제대로 된 산행을 즐길 수 없다는 기막힌 사연 모르는 것은 아니나 그래도 이습관은 어딘가 모르게 많이 수정해야만 할 것이란 생각이기도 하다.
백두대간이 세월을 이기고 굳건하게 홀로 서 있는 것처럼 나도 작은 산길하나 노치지 않고 모두모두 찾아볼 계획이다.
거칠 것도 없고 고민할 것도 없는 70대의 인생에 덧칠한다고 60대가 되고 50대가 되는 것은 절대 아닐 것이니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솔직하게 살아가는 것이 세상과 함께 맞장 뜨고 버티며 살아가는 방법일 것이다.
왜 지나온 내 인생에 후회할일이 없겠는가. 만은 이제는 후회한다고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지경이니 모든 것 마음 가볍게 내려놓고 욕심 부리지 않고 사는 것이 장수(長壽)하는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농부도 땀을 흘린 만큼의 수확을 기대하는 것이고 제 아무리 욕심을 부려도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러야 열매도 영그는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란 말은 있을 수 없는 말이다.
우리 모두 요행 바라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최선을 다하며 사는 것이 최고의 삶일 것이다.
오늘도 대원들을 위한 임원님들의 수고에 감사하며 다음 산행지를 생각해 본다.
아름다운강산 정병훈 하문자.
첫댓글 멋진곳 사진 잘 보았습니다.
좋은글 잘 보았습니다. 부산 추모공원에 장모님이 계시는데 지나가는 마음 정말 눈시울이 뜨거워 지겠네요. 저도 장모님생각을 하면서 등산갈때 문장대 밑 화북 쌍용계곡 장모님 장인어른 묘지 근방을 지날때 고개숙이며 지난세월을 회고해 봅니다. 역시 눈시울이 그때마다 뜨거워집니다. 산행을 하면 아무래도 나이가 40-50대로 젊어질 같습니다. 제가 20-30대에는 조그만 동산도 못오르는 형편없는 체력이었는데, 우연히 서울용두산악회 문유복선생님을 점촌까지 태워준 인연으로 백두대간을 눈뜨게되었고 월간조선을 통하여 정선생님 부부의 산행을 읽고 검색하여 이방에 가입한후 많은 정보를 얻어 등산을 하고있습니다.
등산을 하다보니 체력도 눈에 띄이지 않게 나 도모르게 조금씩 상승하는같습니다. 오르막 오를때 힘은 들어도 자신은 생깁니다. 저런 높은산은 등산인만 하는줄 알았지 나같은 사람은 관계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가끔 사우나에서 백두대간 탐험하는 분들이 대화해도 나에겐 딴나라 사람으로 느겼습니다.이젠 밤 이슥하도록 다른분의 등산기를 읽고 앞으로 남진 북진할 자료를 공부하며 노트에 정리하고, 숙박지, 택시번호 저장하고합니다. 퇴직 후 할일없이 빈둥거리다가 이젠 등산공부를 하니 일거리가 생기고 몸도 건강합니다.비록 거북이 속도로 조금씩 마루금을 탐방하고 있으며 보람있게 나날을 보냅니다. 저의 졸필과 희미한 사진을
올려도 항상 격려 댓글 해주셔서 용기가 나서 발전을 합니다. 계속 멋진 글과 사진 올려주셔서 우리 국민들이나 나같은 초보산행인에게 좋은 정보 주시길 희망합니다. 글과 사진 잘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너무 과한 칭찬을 해 주셔 몸둘바 모를 정도입니다.
암턴 더 잘 하라는 예시로 받아드리며 알차게 후회없는 삶을 갖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