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꽃을 보려면
채송화 그 낮은 꽃을 보려면
그 앞에서
고개 숙여야 한다
그 앞에서
무릎도 끓어야 한다
삶의 꽃도
무릎을 끓어야 보인다
(박두순·아동문학가)
+ 그 꽃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고은·시인, 1933-)
+ 물, 무서운 겸손
우리는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나?
큰물이 논과 밭을 휩쓸더니
집을 덮치더니
길과 개울을 끊더니
우리는 얼마나 막돼먹게 살았었나?
흙탕물에 집짐승이 떠내려가더니
산사태로 무덤까지 데려가더니
막무가내로 길을 바꾸며
제 갈 길만을 가려 드는
흙탕물을 보아라
흘러서 낮은 데로만 찾아가는
저 무서운 겸손을 보아라.
(나태주·시인, 1945-)
+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슬퍼할 일을 마땅히 슬퍼하고
괴로워할 일을 마땅히 괴로워하는 사람.
남의 앞에 섰을 때
교만하지 않고
남의 뒤에 섰을 때
비굴하지 않은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미워할 것을 마땅히 미워하고
사랑할 것을 마땅히 사랑하는
그저 보통의 사람.
(나태주·시인, 1945-)
+ 겸손과 교만
진실로 겸손한 자는
대인관계에서 나보다 늘
남을 낫게 여길 뿐만 아니라
자기가 겸손하다는 것조차
언제나 잊고 사는 사람이다
참으로 교만한 자는
자기가 교만하다는 사실을
전혀 인식 못할 뿐만 아니라
또한 자기 스스로는 자신이
겸손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오정방·시인, 1941-)
+ 겸손엔 생명이 있습니다
그리움에 빛깔이 있듯이
겸손엔
숨을 쉬는
아름다운 생명이 있습니다
아침 햇살에 깨어나는
영롱한 이슬처럼
겸손은
경쾌하고 산뜻함입니다
향긋한 내음에
온 마음을 다 빼앗기듯이
낮추는 마음에
고개가 숙여지며
자신을 없애는 마음에
따뜻한 사랑과
한없는 존경심이
우러나오게 되는 법입니다
낮아지고자 할 때
한없이
높이어지는 진리를
그분 안에서 깨닫습니다
(김귀녀·시인, 1947-)
+ 겸손이 교만에게
사람이 살믄 을매나 산다고
목에 힘주고 눈꼬리 치켜 세워,
지그들은 뒷간에 안 가고
입으로 먹고 입으로 내놓는 감
지그들은 죽으믄
무덤에 풀 안 나고 생수 솟는 감
지나 내나 시장 뒷골목에 서서
꽁치 한 마리에 흥정하는 건 매일반여
어디서 잘난 척을 혀
비싼 옷 입으면 다냐구,
지들이 잘났으면 을매나 잘났길래
지그들은 똥 안싸고 금덩어리 싸냐구,
아이고 세상으나
그려도 손에 흙 만지는 우리가 낫지
분바르는 낯바닥 생비린내 나서 싫여
저승사자도 싫여할껴
(김옥진·시인, 1962-)
+ 겸손
연해주 연어를 구워놓은
만찬식탁의 촛불 아래
영국산 본차이나 접시와
리델의 모슬리에 포도주 잔은 아니어도
막사기그릇 잡곡밥 소반 위에
당그랗게 놓여 있는
입맛 넉넉한 간장종지.
(정재영·시인)
+ 겸손
자기 도취의
부패를 막아주는
겸손은
하얀 소금
욕심을 버릴수록
숨어서도 빛나는
눈부신 소금이네
'그래
사랑하면 됐지
바보가 되면 어때'
결 고운 소금으로
아침마다 마음을 닦고
또 하루의 길을 가네
짜디짠 기도를 바치네
무시당해도 묵묵하고
부서져도 두렵지 않은
겸손은
하얀 소금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겸손의 향기
매일 우리가 하는 말은
역겨운 냄새가 아닌
향기로운 말로
향기로운 여운을 남기게 하소서.
우리의 모든 말들이
이웃의 가슴에 꽂히는
기쁨의 꽃이 되고, 평화의 노래가 되어
세상이 조금씩 더 밝아지게 하소서
누구에게도 도움이 될 리 없는
험담과 헛된 소문을 실어나르지 않는
깨끗한 마음으로
깨끗한 말을 하게 하소서
나보다 먼저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는
사랑의 마음으로
사랑의 말을 하게 하시고
남의 나쁜 점보다는
좋은 점을 먼저 보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긍정적인 말을 하게 하소서
매일 정성껏 물을 주어
한 포기의 난초를 가꾸듯
침묵과 기도의 샘에서 길어올린
지혜의 맑은 물로
우리의 말씨를 가다듬게 하소서
겸손히 그윽한 향기
그 안에 스며들게 하소서.
(이해인·수녀 시인, 1945-)